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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에서 수많은 음악가들이 등장하고 사라져 갔지만, 그중 지금까지 가장 많이 언급되는 인물 중 한 명이 모차르트다. 1756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도 태어난 모차르트는 지금의 유치원생 나이에 작곡을 했다고 전해지는 음악 신동이었다.

모차르트의 음악적 재능은 당시 잘츠부르크의 궁정 음악가로 활동했던 아버지에 의해 발견됐고 그의 가족들은 그의 음악적 성장을 위해 온 힘을 다했다. 또한, 그 재능은 적극적인 마케팅으로 이어졌고 모차르트는 그의 아버지 손에 이끌려 10여 년 동안 연주여행을 지속 했다. 이를 통해 모차르트는 자신의 재능을 전 유럽에 알리는 음악회를 열었고 여행지에서 유럽의 음악가들과 교류하며 음악적 역량을 키울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모차르트는 천재적 재능에 실전 경험과 관련 지식을 더하며 그의 음악 세계를 만들어갈 수 있었다. 또한, 유럽 각지의 역사, 문화를 경험하면서 세계관을 넓히고 사고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이는 그의 자유분방한 성격과 틀에 박히지 않는 음악 성향은 그 시기 만들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의 삶은 화려함 속에 불행을 함께 담고 있었다. 그는 천재는 단명한다는 말에 딱 맞게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어린 시절부터 모차르트는 장거리 연주 여행을 지속했다. 지금의 세계 순회 콘서트를 했다. 교통수단은 크게 흔들리는 마차가 대부분이었다. 전 유럽을 거치는 여정 속에 모차르트는 불편한 교통수단과 잠자리 속에서 모차르트는 혹사당했다 할 수 있다. 소년기 분명 힘든 여정이었지만, 그의 아버지는 그의 성공을 위해 가문의 성공을 위해 연주여행을 강행했다. 그 과정에서 모차르트는 그의 삶의 에너지를 크게 소진했을지도 모른다. 

 

 




음악 신동 그리고 35살에 요절한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 


그런 탓인지 모르지만, 모차르트는 35살의 나이로 요절했다. 그는 짧은 생애에도 모차르트는 620여 곡을 작곡했다. 그 안에는 대규모 오페라부터 교향곡 등 다양한 장르가 망라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의 곡들은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도 곳곳에서 연주되고 공연되고 있다. 현대 대중음악에서 그의 음악이 자주 샘플링되고 있기도 하고 그의 곡들은 클래식의 명곡으로 음원 사이트에서도 자주 접할 수 있다. 

모차르트는 그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그의 명성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지속적으로 재조명되면서 사후 모차르트는 천재 음악가 그리고 클래식을 잘 모르는 이들도 자주 언급하는 대중적인 음악가로 추앙받고 있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그리고 음악가로 성공한 삶을 살았던 오스트리아는 모차르트를 통해 상당한 관광수입이 발생하고 국가 이미지를 제고하고 있다. 훌륭한 문학가, 예술가의 존재가 그 나라에 어떻게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지 모차르트는 보여주고 있다. 

이런 모차르트의 생애를 따라가는 여정은 EBS 세계 테마기행 오스트리아 편에서 볼 수 있었다. 12월 13일 방영된 알프스의 심장 오스트리아 편에서는 모차르트 로드를 통해 그의 생애와 그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던 인물들도 함께 조명했다. 

먼저 찾은 곳은 모차르트가 태어나 청소년기를 보낸 잘츠부르크였다. 잘츠부르크는 모차르트의 도시라 해도 될 만큼 모차르트 마케팅이 매우 활발한 곳이었다. 그의 이미지를 이용한 각종 굿즈가 곳곳에서 판매되고 있었다. 이렇게 모차르트를 통해 창출되는 가치는 수조원에 이른다는 평가도 있다. 그만큼 모차르트는 오스트리아 그리고 잘츠부르크에는 소중한 인물이다. 

 

 




알프스를 품고 있는 관광대국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인물 모차르트 


중부 유럽 알프스산맥 자락에 위치한 내륙 국가 오스트리아는 과거 유럽 역사의 중심에 있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중심지로 신성 로마제국의 지위를 얻는 등 번영기를 보내기도 했지만, 같은 독일어권 국가인 독일의 통일과 함께 패권 경쟁에서 밀렸고 1, 2차 세계 대전 때 패전국이 되면서 그 영향력이 크게 떨어졌다.

이후 국가 체제는 왕조가 완전히 소멸되고 의회 민주주의 국가가 됐다. 미. 소 냉전시대에는 영세 중립국으로 민주주의 공산주의 진영 모두가 수교를 맺고 교류했고 그 전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현재 오스트리아는 서유럽에서 드물게 남한과 북한 모두와 수교를 맺고 있기도 하다. 

오스트리아는 그 영토나 영향력이 줄었다고 하지만, 매우 부유한 국가 중 하나고 국민들의 삶의 만족도도 높다. 알프스산맥의 중심에 자리한 탓에 청정한 자연이 함께 하고 있고 중세와 근대까지 각 시대별 유럽의 문화, 역사를 간직한 유적과 유물이 일상과 공존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역사, 문화적 흔적들은 오스트리아를 전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관광 대국으로 만들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오스트이라는 서유럽 여행 시 꼭 들러야 하는 여행지로 인식되고 있고 많은 이들의 지금도 방문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에서 관광산업을 통한 수익은 국가 재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모차르트는 관광 대국 오스트리아의 중요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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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츠부르크에서의 여정은 그의 생가와 그가 남긴 유품을 통해 그의 청소년기를 살필 수 있었다. 또한, 도시 곳곳에 자리한 모차르트의 흔적도 인상적이었다. 여기에 어릴 때부터 아버지로부터의 혹독한 음악 교육과 연주 여행을 하면서 크게 힘들었을 모차르트를 사랑으로 보듬어 주었던 그의 어머니의 존재도 재조명할 수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엄격하고 냉정한 아버지와 달리 따뜻함으로 모차르트와 교감했고 모차르트는 그 어머니에 크게 의지했다. 당연히 그의 삶에서 어머니가 차지하는 비중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머니와 함께 한 파리 여행 도중 어머니는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어쩌면 어머니의 죽음은 모차르트가 세상과 담을 쌓고 당시로는 일탈이라 할 수 있는 기행을 일삼는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게 된 원인이 되었을 수도 있다. 

잘츠부르크 인근의 볼프강 호수는 모차르트의 전체 이름인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에서 들어갈 정도로 모차르트와 남다른 인연이 있다. 이 호수는 알프스의 산맥과 어울리는 멋진 경관이 일품이었다. 알프스산맥의 멋진 자연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관광지는 문화, 예술, 그리고 멋진 자연이 함께 하는 오스트리아의 또 다른 모습을 함께 할 수 있게 했다. 또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촬영지로 유명한 미라벨 정원에서는 17세기 바로크 양식의 아름다움도 함께 할 수 있었다. 

 

 




모차르트의 도시 잘츠부르크 그리고 문화 예술의 도시 빈


이렇게 모차르트의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함께 한 잘츠부르크에서 여정은 이제 오스트리아의 수도이자 합스부르크 왕가의 전성기를 함께 했던 도시 빈으로 향했다. 오스트리아의 멋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도시 빈은 곳곳에 자리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유적지와 중세, 근대 건축물로 인해 도시 전체가 하나의 박물관가 같았다. 왜 외국 관광객들이 빈에 발걸음을 하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 별궁이었던 쇤부른 궁전, 중세 고딕 양식을 대표하는 성당인 성 슈테판 대성당은 그 명성 그대로였다. 그리고 일 년 내내 클래식 공연이 끊이지 않고 곳곳에서 열리는 모습에서 문화 예술의 도시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매년 11월 시민들이 모두 참여할 수 있는 거리 왈츠 축제는 클래식이 보편화되고 대중화되고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빈의 면모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이 빈에서도 모차르트의 흔적이 있었다. 모차르트는 그의 생에서 마지막 10년을 빈에서 거주하며 전성기를 보냈다. 모차르트는 그의 고향인 잘츠부르크에서 당시 음악가들에게는 최고의 영예인 궁정 음악가 생활을 했지만, 틀에 박힌 생활에 염증을 느꼈고 궁정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결정적으로 대주교와의 갈등은 그가 궁정 음악가의 자리를 박차고 나가게 하는 계기가 됐다. 그의 아버지는 안정적인 수익이 보장되는 궁정음악가로서 삶을 지속하길 원했지만, 모차르트는 그 길을 버리고 빈으로 향했다. 

모차르트는 빈에서 어디에서 얽매이지 않은 프리랜서 음악가로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쳤다. 그 과정에서 다수의 걸작들이 양산됐다. 특히, 그의 오페라는 대중들이 모차르트가 누구인지를 각인시켰다. 이 시기 모차르트의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두 인물이 있었다. 

 

살리에르 초상화




모차르트의 큰 존재감 속 대중들의 편견과 오해를 받는 두 인물 


그의 아내였던 콘스탄체와 당대 최고 음악가 중 한 명인 살리에르였다. 두 인물은 모차르트의 한층 높아진 명성 속에 큰 오해와 편견이 함께 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아내 콘스탄체에 대한 오해는 그녀가 모차르트 집안의 큰 반대속에 혼인을 했고 사치가 극심했고 모차르트 사후 그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고 심지어 그의 악보 등을 헐값에 매각하는 데 이어 재혼을 했다는 등의 이유로 악처라는 이미지와 함께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모차르트와 콘스탄체의 결혼은 모차르트가 강력히 이를 추진했고 모차르트 스스로가 매우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다. 이에 모차르트는 작품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얻고 있었음에도 막대한 빚을 지고 있었고 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작품을 양산하는 과정에서 극심한 과로로 세상을 떠났다는 게 가장 유력한 모차르트의 요절 이유이기도 하다.

콘스탄체는 모차르트와의 결혼 생활 동안 건강이 악화됐고 그로 인해 그의 장례식에도 참석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또한, 그의 사후 그가 남긴 막대한 부채를 감당할 수 없어 그의 유품과 작품들을 매각할 수밖에 없었다. 콘스탄체에 대한 부정적 여론은 모차르트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데 따른 안타까움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 한 명의 인물 살리에르는 억울한 오해의 주인공이다. 그는 모차르트가 빈에 진출한 시점부터 최고의 음악가였고 궁정 음악가로 큰 명성을 얻고 있었다. 프리랜서 음악가로 활동한 모차르트와는 활동 무대가 달랐다. 그가 모차르트의 천재적 재능을 시기하고 질투했고 심지어 그를 독살했다는 식의 루머는 분명 과장된 측면이 있다.

살리에르로서는 보편적인 음악가의 길을 걷지 않고 제멋대로의 모습을 보이는 모차르트에 반감을 가질 수 있었지만, 그의 입지는 모차르트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수준이었다. 모차르트에 대한 부정적 시선은 당시 주류 음악계에 있는 상당 수 음악가들도 가질 수 있었다.

 

 

 

https://worldtrip.ebs.co.kr/worldtrip/replayView?siteCd=KH&courseId=BP0PAPD0000000013&stepId=01BP0PAPD0000000013&lectId=60422758

 

세상의모든기행 - 알프스의 심장 오스트리아-모차르트 로드

잘츠부르크(마차 타고 시내 구경, 모차르트 생가), 볼프강 유람선, 빨간 열차 타고 샤프베르크 산 전망대 오르기, 빈 왈츠 축제, 독일 기사단 집, 성 슈테판 대성당, 쇤브룬 궁전...

worldtrip.ebs.co.kr

 

 

시기 질투와 화신이 아닌 당대를 대표하는 음악가였던 살리에를 


오히려 살리에르는 젊은 음악가들을 후원하고 교육하는 등 후진 양성에 열성이었다. 최고 음악가로 추앙받고 있는 베토벤과 슈베르트로 그의 제자였다. 또한, 음악가들의 복지에도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는 등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는 데만 몰두하지 않고 음악의 발전을 위해 큰 역할을 했다.

이에 살리에르와 모차르트와의 관계는 경쟁적 공생이라고 표현하는데 더 맞을 수 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그와 모차르트가 공동 작업한 작품도 존재하고 있고 살리에르는 변화한 음악 트렌드를 인정하고 일선에서 스스로 물러나는 모습도 보였다. 그가 모차르트를 시기 질투하고 독살했다는 건 말 그대로 루머였다.

하지만 살리에르는 모차르트 사후 독살설의 배후로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힘든 말년을 보내기도 했다. 오히려 그는 모차르트 아들까지 제자로 받아들여 음악 교육을 했던 인물이었다. 그에게는 이런 오해에 대한 억울함을 끝내 풀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지금도 모차르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나 드라만에서 살리에르는 그와 대립하는 빌런 같은 존재로 등장하곤 한다. 그 역시 모차르트의 명성이 후대까지 공공하게 이어지는 상황에서 그 반작용으로 인한 편견의 희생자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세계테마기행의 오스트리아 모차르트 로드는 오스트리아의 역사, 문화, 자연을 곳곳에 함께 하며 보는 재미를 더했고 모차르트의 삶을 다시 살피는 시간이었다. 아울러 그의 삶의 어두운 일면과 그에 가려져 있었던 또 다른 인물들들에 대한 오해를 조금이나마 풀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 점에서 모차르트 로드는 특색 있는 여행기라 할 수 있다. 


본 게시글은 EBS 스토리 기자단 18기 활동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사진 : EBS,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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