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라는 말은 이제 많은 이들에게 부정적인 단어가 됐다. 이에 정치에 관심을 끊거나 혐오의 감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정치 관련 뉴스는 대부분 각 정당 간의 치열한 정쟁과 부정, 비리 등의 어두운 내용이 가득하다. 이에 정치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각종 선거에서 투표율은 계속 내림세에 있다. 어느 정치세력도 내 삶에 도움이 안 된다는 사고가 팽배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정치 무관심에도 누군가는 권력을 잡게 된다. 그리고 무관심 속에서 더 나쁜 정치인과 추종 세력들이 권력을 잡게 되는 부작용으로 연결될 수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우리 삶을 더 힘들게 만들고 있다. 그 속에서 우리들은 정치가 결코 내 삶과 동떨어져있지 않음을 느끼곤 한다. 하지만 어느새 다시 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멀어지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영국의 정치학자 브라이언 클라스는 오랜 세월 정치 그리고 정치인들의 궁극적인 목표인 권력에 관한 연구를 했다. 그는 이를 위해 전 세계 수많은 권력자들은 만났다. 그들 중에는 큰 존경을 받는 정치인도 있었지만, 독재자들 그리고 존경받는 독립 영웅이 독재자로 흑화 한 경우도 있었다. 그런 만남과 연구를 통해 브라이언 클라스는 권력의 어두운 이면과 왜 많은 권력자들이 부패하고 독재화될 수밖에 없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더 나은 권력자를 만날 수 있을지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 했다. 그는 이를 위해 보다 고도화된 시스템의 확립을 주장한다.
나쁜 권력자의 속성 연구한 브라이언 클라스
브라이언 클라스는 영국의 저명한 정치학자이자 역사학자였던 존 달버그 액터가 얘기했던 '권력은 부패하는 경향이 있고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라는 말을 인용하며 아무리 선한 이도 권력을 잡게 되면 흑화 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런 권력을 심판하고 교체할 수 있는 방법인 선거가 있는 민주주의 제도지만, 흑화 한 권력자들은 그들의 권력을 이용해 권력을 연장하고 유지한다. 심지어 헌법을 고치는 일도 있다. 우리나라 역시 1980년까지 그런 권력의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었다.
이런 권력의 속성을 설명하면서 브라이언 클라스는 생존자 편향이 권력자들을 지배한다고 말한다. 이는 어떤 문제를 지적할 때 특정 선택 과정을 통해 걸러진 일부 데이터만을 고려함으로써 잘못된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으로 설명된다. 그러면서 브라이언 클라스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전투기 생존확률을 높이기 위한 연구를 언급했다.
이 연구에서 당시 군 수뇌부나 전문가들은 생존한 비행사들의 의견을 토대로 전투기의 생존확률을 높이기 위해 날개나 꼬리 등의 보강 등의 이슈로 논쟁을 했다. 하지만, 정작 항공기의 생존에 절대적인 엔진과 관련한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들은 전사한 이들을 논의의 중심에서 빼버리고 말았다. 즉, 권력자들은 한정된 정보에 의존해 의사결정을 할 위험이 크고 문제의 본질을 살피지 못한 확률 또한 크다. 이는 권력이 잘못된 길로 가는데 큰 원인이 된다.
실제 현실 정치에서 많은 권력자들과 정치인들의 제대로 된 상황 인식을 하지 못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들은 그들에게 유리한 정보, 가동된 정보를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일이 많다. 그들에 우호적인 목소리에만 집착하면서도 현실을 바로 볼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나쁜 지도자가 되는 지름길이 된다.
우리가 나쁜 권력자를 뽑는 이유
브라이언 클라스는 그럼에도 우리가 나쁜 지도자를 뽑는 이유를 여러 각도로 살폈다. 리더가 될 수 있는 사람과 관련한 유전학적 연구를 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인력풀이 한정돼 있는 점도 지적했다. 이는 선거에서 유권자들에게 선택의 폭을 좁히는 일이다.
우리는 여전히 정치는 엘리트들이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고 정치권에 들어오는 인사들의 면면은 한정적이다. 그들은 그들의 영역에서 보고 배운 정보를 바탕으로 정치를 할 수밖에 없고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기에는 한계가 있다. 즉, 앞서 언급한 생존자 편향, 구조적 편향성에 갇힐 수 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강한 권력자에 끌리는 경향이 있다. 그런 지도자가 삶의 빠르게 바꾸고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알게 모르게 사람들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다. 브라이언 클라스는 이를 인류의 문명 발달사와 연계했다. 수렵과 채집 위주였던 선사시대와 달리 정착 생활을 하고 마을을 이루고 부락을 이루고 게 되면서 사람들은 보다 강한 이들이 리더가 되어 그들을 이끌어 주길 원하기 시작했다. 신체적으로 우월하고 계속된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스트롱맨은 지도자의 중요한 덕목이었다.
점점 고도의 문명사회가 됐지만, 오래전부터 사람들 마음속에 자리한 강한 지도자에 대한 선호는 여전히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다. 특히, 국가적 재난이나, 전쟁, 경제 위기 등의 상황에서 강한 지도자에 대한 열망을 더 커진다. 독재자들인 이런 사람들의 성향을 이용해 일부러 국가적 위기 상황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이런 브라이언 클라스의 연구나 주장을 종합하면 권력에 대한 환멸과 부정적 사고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또한, 좌절감도 생긴다. 누가 권력을 잡아도 부패하고 우리 삶을 바꾸기 힘들다면 과연 정치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결국, 정치인들과 권력자들의 선의에 기대야 하는 상황이 답답할 수 있다.
더 나은 권력자를 뽑을 수 있는 시스템
하지만 브라이언 클라스는 시스템을 통해 권력의 잘못된 속성을 견제하고 보다 나은 권력을 작동시킬 수 있다고 했다. 권력이 잘 작동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의 중요성을 그는 말하고 있다. 권력의 문제가 권력자, 즉 사람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는 권력자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의 폭을 넓혀야 한다고 했다.
브라이언 클라스는 그 근거로 몇 가지 예를 들었다. 그와 친분이 있는 합리적 사고를 가지고 있었던 미국의 외교관이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점령 후 세운 임시정부 수반이 되면서 인권 탄압적인 통치를 하게 되는 과정을 통해 아무리 사려 깊고 훌륭한 사람도 시스템 속에서 흑화 할 수 있음을 설명했다. 수많은 이들을 학살한 나치 독일의 고위 인사들도 실제로 자신의 가정과 지역사회에서는 모범적인 시민이고 부모였다.
이와 함께 그는 흑인 등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과 인권침해 행위가 지속하면서 미국 사회의 큰 문제가 되고 있는 미국 경찰과 뉴질랜드 경찰 채용 시스템에서 희망을 발견했다. 미국의 경찰은 백인 참전 군인 출신들이 대부분인 탓에 대체로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분위기가 강하다.
반대로 뉴질랜드의 경찰은 채용의 폭을 크게 넓혀 아시아계들도 상당수 지원을 하고 있다. 뉴질랜드 경찰과 관련한 콘텐츠에서도 경찰은 정의를 구현하는 보안관이 아닌 지역민들과 함께 하는 봉사자의 이미지를 강조하며 미국과 대조를 보였다. 이를 통해 뉴질랜드는 권력의 오남용을 막고 있다. 브라이언 클라스는 현실 정치에서도 이런 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권력자를 선출할 때 선거를 통하지 말고 무작위로 일반인 중에서 사람을 뽑아야 한다고 했다. 그런 경우 정파적 이해관계나 개인적 이해에 얽매이지 않고 각종 현안에 대해 보다 객관적이고 보다 합리적인 권력구조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이는 매우 이상적이고 현실에서 구현되기 어렵긴 하지만, 이는 더 나쁜 이들이 권력을 잡게 될 확률을 그만큼 줄일 수도 있다.
그러면서 정치인의 중요한 덕목인 권력의지에 대한 강한 경계심을 보였다. 그러면서 그는 가징 이상적인 권력자로 권력을 원하지 않지만, 제대로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라 했다. 쉽게 이해하기 힘든 말일 수도 있지만, 브라이언 클라스는 이상적인 권력자의 예시를 고대 그리스에서 찾았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실제 제비뽑기 방식으로 권력자를 선출하기도 했다. 그리고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정치가 신시나 투수는 두 번 최고 권력자가 됐지만, 목표를 이룬 후 권력을 내려놓고 귀향했다. 어떻게 권력을 더 오래 유지하고 권좌에서 내려와서도 그 영향력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 많은 권력자들과의 크게 다른 점이다.
브라이언 클라수는 권력자들을 향해 특정한 조건이 되면 권력을 내려놓을 수 있는지를 물어봐야 한다고 했다. 분명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정치 시스템과는 차이가 있는 주장이지만, 그렇게만 된다면 어떨까 하는 기대감도 가지게 하는 주장이다.
브라이언 클라스는 우리가 피해야 할 권력자의 유형을 분명히 했다. 그는 권력이 목표인 사람과 권력을 도구로 사용하는 이를 구분해야 한다고 했다. 권력자로서 미래 비전이고 철학도 없이 오로지 권력만을 추구하는 이는 언제든 흑화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즉, 국민은 권력자를 추앙하고 막연한 기대를 하기보다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도구로 삼아야 하고 그럴 수 있는 사람으로 선택해야 한다고 할 수 있다.
나쁜 권력자를 뽑지 않는 대중들의 역량 필요
또한, 브라이언 클라스는 나쁜 권력자를 판별하는 기준으로 어둠의 3요소를 제시했다. 첫 번째는 반사회적 성향에 타인과 현상에 대한 공감 능력이 부족하고 극단적인 자기중심적 성향으로 대표되는 사이코패스적 인물과 극단적인 자시 중심적 세계관의 사로잡힌 나르시시즘적 인물, 목적이 모든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다고 여기는 마키아벨리즘 성향이 강한 이들이 그에 포함된다. 이 3요소를 두르 갖추고 있는 권력자든 독재자로 흐를 가능성이 크고 이는 해당 국가에는 큰 불행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의 현대사에서도 잘못된 권력자들에 의한 어둠의 역사가 있었다. 이 점에서 브라이언 클라스의 권력과 관련한 주장은 여러 가지로 의미가 크다. 한편으로 불의한 권력에 맞서 국민들이 일어나 그 권력을 두 차례 쫓아낸 우리 민주주의 역사에 대한 자부심도 생긴다.
앞선 언급한 대로 그 나라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그리고 국가의 권력을 선거라는 민주주의 정치 시스템을 통해 국민의 선택을 받은 이에게 일정 기간 위임된다. 그 권력을 결코 개인의 것이 아니고 사유화될 수 없다.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고 더 많은 국민들을 행복하고 편안하게 하는 도구로 사용해야 그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국민의 위임한 권력이라는 도구를 제대로 사용하지 않고 심지어 잘못된 방향으로 사용한다면 권력자로서 그 자격을 상실해야 한다.
브라이언 클라스가 제시한 이상적인 정치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국민들은 선거를 통해 권력자를 심판하고 바꿀 수 있다. 그만큼 선거를 할 수 있다는 건 매우 소중한 국민의 권리다. 그리고 권력자를 수시로 감시하고 올바른 통치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정치에 대한 관심이 매우 중요하다. 국민 한 개인이 정치를 바꾸는 건 힘들지만, 그 관심을 모아 여론을 만들고 투표를 하면 그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보다 나은 권력자를 뽑을 수 정치적 안목을 가지는 건 민주시민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라 할 수 있다.
본 게시글은 EBS 스토리 기자단 18기 활동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사진 : EBS,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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