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1일은 대한민국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 있었던 날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날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4월 13일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일로 알려져 있었지만, 최근 연구를 통해 4월 11일로 정정되었고 임시정부의 역사는 2019년 100주년을 이미 맞이했고 또 역사를 더하고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의 의미는 최초의 민주공화국의 시작이라는 점과 나라의 주인, 주권이 국민들에게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점이다. 조선 후기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서구의 문물과 제도를 받아들이긴 했지만, 조선의 주인은 임금이었다. 대한제국이 수립되긴 했지만, 권력은 황제에게 있었다. 그 전에 있었던 독립협회의 의회설립 시도 등이 무산되고 오히려 전제군주제가 강화되는 역사의 퇴보였다. 이후 봉..
한일간의 과거사 갈등과 일본의 경제 보복 속에 그 어느 때보다 의미가 컸던 2019년 광복절이었다. 여전히 한일간의 갈등은 진행형이고 남북 관계가 더 이상 진전되지 못하는 상황,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들의 이해관계 충돌로 인한 긴장은 여전하다. 일본의 경제 보복에도 일본을 옹호하는 국내 세력들이 버젓이 공개적인 활동을 하는 현실은 마음을 더 복잡하게 하고 있다. 광복절에 앞서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에 이어진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해이기도 하다. 임시정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건국절로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세력들이 있지만, 우리 헌법에는 3.1운동의 정신과 우리 대한민국이 임시정부를 계승하고 있다고 하고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대한민국 민주 공화정의 시작이..
수도권의 대도시 수원은 조선 후기 마지막 부흥기를 이끌었던 정조의 꿈이 함께 하는 도시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비참한 죽음을 직접 지켜보았고 이후 계속되는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생명의 위협까지 이어진 수 맣은 위기를 극복하고 왕위에 올랐다. 어렵게 왕위에 오른 정조는 왕권을 강화해 반대 세력을 힘으로 누르는 한편, 상공업 진흥 정책을 추진했고 보다 나은 백성들을 삶을 위해 노력했다. 수원은 정조의 사상과 철학이 함축된 도시였다. 수원을 둘러싼 수원성은 당시로는 혁신적인 기술이 집약되어 건축된 신개념 건축물이었고 그 안에서 정조는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다. 아버지 사도세자를 기리기 위해 수도 한양에서 수원 화성으로 대규모 행차는 지금도 그 웅장함이 기록으로 남아있다. 수원은 정조에게는 정치적 ..
정도전은 고려 말과 조선 초기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이다. 정도전은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라는 새로운 나라가 건국되는 데 있어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는 조선의 건국과 함께 조선의 통치 시스템을 만들고 나라의 기틀을 다지는 데 있어 중요한 설계자였다. 하지만, 조선 3대 왕이 된 이방원과의 권력 다툼에 밀려난 이후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고 이후 조선의 역사에서 역적이었고 철저히 배척됐다. 조선은 정도전이 세운 토대 위에 건국되고 수백 년의 역사를 유지했지만, 정도전은 환영받지 못하는 인물이었다. 그가 정치적으로 복권된 된 조선 후기 대원군이 집권한 이후 이루어졌다. 정도전은 살아서도 그리고 죽고 나서도 순탄한 삶을 살지 못한 풍운아였다. 8월 7일 방영된 JTBC 시사 교양 프로그램 차이나는 클라..
안산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산업단지다. 과거 반월공단이라 불리기도 했다. 우리 산업화 역사에서 그만큼 중요한 위치에 있었던 안산이었다. 거대한 방조제로 바닷길을 막아 조성된 안산과 접하고 있는 시화호는 과거 활발히 일어났던 간척 사업의 산물이기도 하다. 이렇게 안산은 우리나라의 산업화, 현대화 과정에서 많은 변화를 겪은 곳이다. 그리고 지금의 안산은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공존하는 다문화 공간으로 변신했다. 안산의 산업단지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모여들면서 생긴 현상이다. 이 안산에서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35번째 이야기가 펼쳐졌다. 안산의 이야기는 시화 방조제를 걸으며 시작됐다. 시화 방조제는 7년여의 공사 끝에 1994년 완공됐다. 이를 통해 만들어진 담수호 시화호와 그 주변의 땅은 신도시와 농..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34번째 여정은 서울 서남부의 금천구의 이런저런 이야기로 채워졌다. 금천구는 과거 구로공단이라 불렸던 섬유 산업의 중심지로 1970년대 대한민국 수출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던 공업단지였다. 이곳에는 당시 수많은 섬유, 의류 공장을 비롯해 경공업 공장이 즐비했고 고향을 뒤로하고 서울로 올라온 많은 젊은이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며 꿈을 키워왔던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금천구는 세월이 흐르고 대한민국의 산업의 첨단 산업으로 변화하면서 경공업 단지는 쇠락했고 당시의 공장들은 하나둘 사려져 지금은 고층 빌딩들이 즐비한 IT 산업단지로 변모했다. 이 때문에 금천구는 대한민국의 산업화 흐름을 그대로 보여주는 곳으로 독특한 현대사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진행자는 이 금천구 전체가 내려다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