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축구 8강전은 한 편의 드라마 그 자체였습니다. 그 상대가 우승을 노리는 주체국 영국이었고 경기장은 우리 선수들에 낯선 돔 경기장이었습니다. 먼 거리를 이용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었고 경기를 해야 할 경기장을 밟아보지 못하고 경기에 임해야 했습니다. 경기를 시작하기 전에 이미 주체국의 텃세를 경험해야 했습니다.
여기에 7만 홈 관중의 일방적인 응원도 넘어야 할 벽이었습니다. 주체 측은 경기 티켓을 판매하면서 원정팀을 위한 별도의 자리를 마련하지 않았습니다. 월드컵과 달리 올림픽은 응원에 대한 배려가 없었습니다. 우리 선수들의 응원할 일사불란한 응원을 기대하기 어려웠습니다. 간간히 영국 국기의 물결 사이로 보이는 태극기와 우리 응원단의 소리로 힘을 얻어야 하는 경기였습니다.
경기 시작전부터 힘든 환경이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대한민국 팀의 열세를 예상했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올림픽 대표팀의 목표도 8강이었습니다. 주체국을 만나는 것 자체도 부담스러웠지만, 영국 대표팀 선수들의 면면은 화려했습니다. 경기를 치를수록 경기내용도 좋아지는 팀이었습니다. 그들의 받는 연봉은 우리 선수들과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꿈의 무대라는 프리미어리그 선수들이 주축을 이룬 영국팀을 상대로 대한민국팀의 고전을 예상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습니다.
경기를 시작하자마자 예상치 못한 악재가 생겼습니다. 대표팀의 와일드카드로 우측 측면을 담당하던 김창수가 경기를 시작하자 마자 부상으로 교체된 것입니다. 엄청난 불운이었습니다. 주력 선수가 빠진 것도 문제였지만 전술적인 변화를 가져올 카드 하나가 사라진 것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선수들은 이런 악재에 굴하지 않고 집중했고 더 강한 투지를 발휘했습니다.
선수들은 강력한 압박으로 영국의 공격을 막았습니다. 공격수들의 수비 가담도 좋았습니다. 영국이 우리 진영으로 넘어왔을 때 우리 팀은 이미 수비 블록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영국은 우리 팀의 강력한 수비를 깰 카드가 없었습니다. 우리 팀 보다 우수하다는 선수들의 개인기도 발위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공격은 단조로웠고 속도감이 없었습니다. 대한민국팀의 수비 조직력을 그만큼 완벽했습니다.
강력한 수비와 압박으로 기선제압에 성공한 대한민국은 닫혀있던 빗장을 열고 공세를 강화했습니다. 대한민국의 날카로운 공격에 영국 선수들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승리를 확신했을 그들이었지만 대한민국팀의 경기력은 상상 그 이상이었습니다. 경기가 풀리지 않고 선제골이 나오지 않으면서 영국은 조급한 모습이 보였습니다. 선수들의 표정도 점점 굳어져 갔습니다.
경기의 균형을 깬 선제골은 대한민국의 것이었습니다. 문전에서 이어진 패스 이후 지동원의 기습적인 왼발슛이 영국의 골망을 가른 것입니다.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 선덜랜드에서 많은 기회를 잡지 못했던 지동원이 영국과의 경기에서 자신의 진가를 골로 보여준 것입니다. 점점 대한민국의 흐름으로 전개되던 경기에 선제골은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 골을 넣은 이후 우리 팀은 잠시 움츠러드는 모습이었습니다. 지키겠다는 마음이 강한 탓인지 압박이 약해지고 뒤로 물러나는 수비를 했습니다. 이른 시간 내 동점 골이 필요했던 영국은 거칠게 대한민국팀을 몰아붙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페널티킥을 얻어내며 동점에 성공했습니다. 우리 수비가 넘어지면서 공이 맞는 감이 있었지만 주심의 판정은 핸드볼 파울이었습니다.
영국의 득점으로 경기는 다시 원점으로 전개되었습니다. 한 골씩 주고받은 양 팀은 이전보다 더 조심스럽게 경기에 임했습니다. 전반 막판 경기의 흐름을 좌우할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문전에서 넘어진 영국 선수에 주심이 페널티킥을 또다시 선언한 것입니다. 주심은 우리 수비수에 걸려 넘어졌다고 했지만, 시뮬레이션 동작을 의심할 수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이전 페널티킥보다 더 억울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여기서 극적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골키퍼 정성룡이 그 페널티킥을 막아낸 것입니다. 만약 실점이 되었다면 좋은 분위기가 가라앉을 수 있었습니다. 정성룡의 선방은 결과적으로 승리로 가는 문을 열어주는 것과 같았습니다. 결국 ,양 팀의 전반전은 동점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큰 고비를 넘긴 대한민국은 후반 더 활발한 플레이로 밀리지 않는 경기를 했습니다. 오히려 더 공격적이었습니다.
이런 흐름에서 대표팀에 또 다른 악재가 발생한 것입니다. 골키퍼 정성룡이 상대 선수와 충돌로 입은 부상으로 교체된 것입니다. 우리 대표팀은 경기 중 2명의 와일카드 선수를 잃은 것입니다. 이범영이 그 자리를 대신했지만, 접전의 경기에서 노련한 골키퍼의 부재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수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두 번째 부상 악재도 대표팀에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대표팀이 수비조직력을 여전히 좋았고 기성용을 중심으로 한 미드필더 싸움에서도 밀리지 않았습니다. 최전방의 박주영은 많은 활동량으로 공수에서 기여했습니다. 경기장에 있는 선수 전원이 하나가 된 대표팀은 체력적인 부담에도 전반과 같은 좋은 경기력을 유지했습니다.
토너먼트 승부에서 양 팀은 더 조심스럽게 경기에 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긴장된 승부가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경기 주도권은 점점 대한민국으로 넘어왔습니다. 영국은 공격의 해법을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조직적인 플레이가 나오지 못했습니다. 개인기에 의존하는 단조로운 공격으로 득점하긴 어려웠습니다. 이런 영국과 반대로 대한민국은 빠른 공격으로 영국의 수비진을 흔들었습니다. 득점의 기회만 놓고본다면 대한민국이 우세한 경기였습니다. 선수들 역시 자신감을 가진 모습이었습니다.
우세한 경기에도 승패를 가를 득점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경기는 연장전으로 이어졌습니다. 대한민국은 연장전에서도 지치지 않는 플레이를 보여주었습니다. 흐트러짐 없는 수비와 날카로운 공격은 여전했습니다. 영국 선수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홈 관중들의 응원소리도 점점 작아져 갔습니다. 경기 흐름은 대한민국이었습니다.
하지만 연장 승부에서도 1 : 1의 승부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양 팀은 마지막 교체 카드로 빠른 공격수를 투입했지만 큰 소득은 없었습니다. 결국, 경기는 승부차기라는 가혹한 대결로 이어졌습니다. 대표팀은 실수 없이 5명이 모두 승부차기를 성공했습니다. 압박감이 큰 순간이었지만 선수들의 킥은 거침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영국 선수들의 더 긴장하는 모습이었습니다.
5번째 키커 대결에서 승부가 결정 났습니다. 영국 키커의 킥은 우리 골키퍼의 선방에 걸린 반면, 마지막 키커로 나선 기서용의 킥은 골망을 강하게 갈랐습니다. 긴 기다림 끝에 대한민국의 4강행이 확정된 것입니다. 정성룡을 대신에 투입된 이범영은 대회 첫 출전에서 큰일을 해냈습니다. 앞선 4차례 영국의 킥에 감을 잡지 못해 불안감을 노출했지만, 마지막 순간 큰 키가 진가를 발휘한 것입니다.
이렇게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의 4강은 극적인 해피앤딩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승리에 대한 낮은 확률과 홈 텃세, 예상치 못한 주전 선수들의 부상, 막판 체력부담 등 원정의 어려움을 모두 극복한 극적 승리였습니다. 애초 대표팀 구성과 와일드카드 선택, 예선 마지막 경기의 졸전 등 여러 우려를 승리의 결과로 씻어낸 것입니다.
대표팀은 이제 8강을 넘어 올림픽 메달을 따기 위한 여정을 더 지속하게 되었습니다. 4강 상대가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 브라질이라는 점은 큰 부담입니다. 8강전을 치르면서 엄청난 체력소모가 있었고 두 선수가 부상을 당했습니다. 전력의 약화가 불가피합니다. 휴식의 시간도 길지 않습니다. 힘든 승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대표팀은 승리를 위한 강한 의지가 있고 상승세라는 무형의 플러스 요인도 있습니다. 어렵게 잡은 메달획득의 기회를 허무하게 날려버리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8강전과 같은 경기력과 집중력을 유지한다면 브라질을 상대로도 좋은 경기를 할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올림픽 축구대표팀의 여정은 아직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여정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8강전에서 보여준 대표팀의 모습은 더 큰 기대를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야구팬의 입장으로 본다면 지금 대표팀은 연승으로 갈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한 것과 같습니다. 연승 가도를 달리는 팀에 있어 전력의 강함과 약함은 큰 변수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 대표팀이 그 흐름을 이어갈 수 있을지 더 큰 목표를 이룰 수 있을지 그 결과가 어떻게 되건 대표팀의 투혼은 절대 헛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앞으로 치러질 4강전에서도 후회 없는 일전을 치르길 기대해 봅니다.
Gimpoman/심종열 (http://gimpoman.tistory.com/, http://www.facebook.com/gimpoman)
사진 : 런던올림픽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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