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을 다룬 역사 드라마 징비록이 시작됐다. 징비록 1, 2회는 임진왜란 이전 조선 정치 상황과 일본의 상황이 함께 그려졌다. 당시 조선은 선조 즉위 이후 가시화된 동인과 서인의 정치적 대립 속에 동인 정권이 주요 권력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징비록의 저자이자 주인공 류성룡은 선조의 두터운 신임 속에 조정의 요직에 있으면서 집권세력인 동인의 중심인물이었다.

당시 임금이었던 선조는 직계 혈족이 아닌 방계 혈족으로 임금에 올라 정통성에 대한 도전을 받고 있었다. 왕권은 미약했다. 하지만, 선조는 명나라로부터 조선 왕조의 정통성을 공인 받으면서 왕권에 확립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게 됐다. 선조는 당시 동인에 밀려 권력에서 멀어진 서인을 이용해 비대해진 동인 세력을 숙청했다.

서인은 동인 계열의 정여립이라는 인물의 반역 사건을 빌미로 동인에 대한 대대적인 탄핵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 수많은 동인계 인물들이 목숨을 잃었고 정국의 주도권을 다시 서인으로 넘어왔다. 이 과정에서 동인의 중심에 있던 류성용 또한 서인의 숙청 대상에 있었지만, 류성용은 자신의 죄를 스스로 청하는 승부수로 왕의 재신임을 얻고 화를 피할 수 있었다.








이렇게 동.서인의 대립으로 혼란스러운 정국이 이어지는 조선에 외부의 위협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일본을 통일하고 제1 권력자자리로 올라선 토요토미의 대륙 진출 야망이 그것이었다. 토요토미는 철권통치로 권력을 강화함과 동시에 군사력을 증강했다. 일본군은 서양에서 들어온 조총이라는 신무기로 무장했고 오랜 내전으로 강해진 육군에 수군의 전력도 증강하고 있었다.

토요토미는 이런 군사력을 바탕으로 조선을 넘어 명나라에까지 세력을 넓히려 했다. 이는 필연적으로 조선과의 전면전을 예고하는 일이었다. 토요토미는 왜구를 이용해 조선군의 방비를 시험하는 한편, 국교 수립을 끊임없이 요구하며 조선을 시험했다. 하지만 조선은 이런 토요토미의 야욕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조선의 안의함에 안타까움을 가진 이는 조선 외부에 있었다. 조선과의 교역이 경제활동의 주요 부분이었던 대마도주는 조선과 일본의 원만한 관계를 원했다. 양군의 전면전은 그들에게 국과도 같은 일이었다. 대마도주는 조선과 이본의 수교에 노력하면서 일본 본토의 조선에 대한 위협을 끊임없이 알렸다. 류성용은 이에 관심을 가지고 토요토미와 일본의 정세를 살피기 위한 통신사 파견을 주장했다.


하지만 조선에서 야만국으로 여겨지는 일본에 통신사를 파견하는 일은 명분을 중시하던 집권층의 극심한 반발을 불러왔다. 류성용을 굽히지 않고 통신사 파견을 주장했지만, 선조 역시 이에 미온적이었다. 그는 명나라로부터 조선 왕조의 정통성을 겨우 인정받은 상황에서 야만국인 일본과의 소통은 국격을 떨어뜨리는다는 이유였다.

이렇게 조선은 정구의 불안과 외교 국방정책에 있어 국제정세 변화를 잃지 못하면서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다. 비밀리에 진행중인 신무기 개발로 국방력 강화를 위한 움직임이 있었지만, 전면전을 준비하고 있는 일본군의 침공에는 턱없이 대비가 부족한 상황이었다. 류성용은 이런 일본의 위협에 대해 대비가 필요함을 역설했지만, 서인은 물론, 같은 당인 동인 내에서도 이런 주장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류성룡은 안으로는 자신을 견제하고 틈만 나면 탄핵하려 하는 서인과의 정치적 대결은 물론이고 일본의 위협에도 대비하는 이중의 부담을 안게 됐다. 임금인 선조의 그에 대한 신임이 두텁지만, 선조의 가장 우선순위는 왕권의 강화다. 즉, 최 측근인 류성용 역시 위협이 된다면 제거될 수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바다 건너 일본의 조선 침공은 초읽기에 들어가 있다.

징비록 1, 2회는 류성용의 정치적 행보가 그리 녹녹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그가 이끌어 갈 조선의 운명또한 바람 앞에 등불 같은 상황이다. 앞으로 이야기기에서는 임진왜란 전 숨 가쁘게 전개될 조선과 일본의 외교전, 동.서인으로 양분된 정치권의 대결이 함께 할 것으로 보인다. 


사진, 글 : 지후니 (youlsim74@gmail.com)

Posted by 지후니 지후니74 트랙백 0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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