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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산업화와 경제 발전을 이룬 한국은 그에 비례해 도시화 역시 빠르게 진행됐다. 그 결과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 지역의 인구 집중 현상이 심화됐다. 이에 서울은 늘어나는 인구를 감당할 수 없어 주거난이 심각해졌다. 생활 환경 역시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서울 주변에 인구 분산을 위한 도시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교과서서는 위성도시, 베드타운이라는 용어로 등장하는 수도권 도시들은 서울을 경제 활동의 근거지로 하는 이들의 배후 주거 단지로의 기능을 했다. 그 결과 그렇게 만들어진 도시들이 늘어나면서 수도권으로 불리는 서울 중심의 생활권이 형성됐다. 이는 한편으로 수도권 인구 집중이라는 또 다른 부작용으로 연결됐다. 인구의 집중은 주택의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하게 했고 부동산 가격의 급격한 인상, 주거난의 심화와 부동산의 부익부 빈익빈을 초래했다.

여기에 수도권 주변 도시들은 주거기능을 위주로 건설된 탓에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문화, 예술 인프라가 부족하게 됐다. 문화, 예술 관련 인프라가 서울에 집중되면서 수도권 도시의 주민들은 여가선용을 위해 교통 체증을 뚫고 서울로 향하는 불편을 겪어야 했다.

서울과 인천 사이에 자리한 수도권의 도시 부천시는 이러한 급격하 도시화 과정 속에서 탄생했고 그에 따른 역기능을 함께 하고 있는 도시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런 역기능을 극복하고 문화, 예술의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속에서 도시화 과정에서 원형이 파괴되거나 쓰임이 다한 시설이나 자연을 회복하고 재 활용하는 도시 재생의 사업을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그 결과 부천시는 다양한 문화, 예술행사가 다양하게 이어지는 축제의 도시라는 또 다른 이미지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대동여지도에서의 부천

 



TBS의 역사 교양 프로그램 역사스테이 흔적에서는 이 부천시를 찾아 부천의 발전사와 현재의 모습, 잘 알려지지 않았던 부천만의 역사적 사실과 관련 인물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부천시는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수도 한양 외각의 복숭아나무가 많았던 농촌마을이었다. 그 탓에 부천은 과거 복사골로 불리었다. 현재도 부천시는 복숭아나무를 시목으로 복숭아꽃을 시화로 지정해 과거 역사를 현재에 반영하고 있다. 

부천에 큰 변화가 생긴 건 구한말, 일제 강점기를 기간 서울과 인천을 연결하는 경인선 철도가 부설되고 그 철도가 이곳을 지나가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이후 부천지역에 기차역이 생기고 사람들이 모이고 상권이 형성됐다. 부천은 광복 후 산업화가 진행되는 시긴 서울과 인천을 연결하는 입지 탓에 교통의 요지로 기능했다. 이는 지속적 인구 유입으로 이어졌고 서울 인근의 위성도시로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 1973년 부천군이었던 부천시는 시로 승격되면서 시로서 그 역사를 시작했다. 

부천시는 1990년대부터 신도시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급격한 도시화와 인구 증가가 일어났다. 하지만 부천시는 특이하게도 도시의 영역 확대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서울과 인천 사이에 자리한 입지가 이를 제한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부천시는 경기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인구 밀도를 가진 도시다.

역설적으로 이런 도시의 환경은 인구의 유입을 제한했고 주거지 환경 개선을 제한했다. 그 결과 부천시는 인구 증가 도시가 아닌 인구 감소 도시가 됐다. 기존 주거 단지가 노후화되면서 보다 쾌적인 주거 환경을 찾아 사람들이 인근 신도시 지역으로 지속 이주하면서 생긴 현상이다. 또한, 높은 인구 밀도에서 파생된 주거환경 악화와 베드타운으로 제한된 기능적인 한계도 작용했다. 즉, 부천시는 급속히 진행된 산업화와 도시화 속 빠르게 성장했지만, 그에 따른 문제들은 함께 보여주는 대표적인 도시였다. 

 

 

 

 



도시의 성장에 한계에 다다르고 삶의 질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부천시가 내놓은 해법은 도시를 문화, 예술의 도시로 변모시키는 일종의 도시 리모델링, 특성화였다. 부천시는 이를 위해 기존의 시설이나 주거지를 모두 부수고 새롭게 만드는 재개발보다는 산업화 과정에서 파괴던 자연성을 회복하고 기존 시설을 재활용하는 도시 재생 방식을 활용했다.

그러면서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역사의 흐름이 단절되지 않고 연결되는 도시로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또한, 다양한 문화, 예술 인프라를 구축하고 관련 행사와 이벤트를 지속적으로 열면서 문화, 예술의 도시, 축제의 도시 이미지를 만들었다. 실제 부천시에서는 매년 영화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고 대표적인 문화행사로 자리를 잡았다. 이를 통해 부천시는 시 내에서 문화,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도시로,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있었다. 

프로그램에서는 부천시의 도시재생을 대표하는 장소 2곳을 찾았다. 첫 번째 장소는 부천 도심을 흘러가는 심곡천이었다. 심곡천은 도시가 만들어지고 확장되던 시기, 도로 망 확충을 위해 복개되어 그 모습이 감춰져 있었다. 하지만 현재 심곡천은 하천을 덮고 있는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생태 하천으로 그리고 시민들이 언제든 산책을 즐길 수 있는 수변 공원으로 변모했다. 서울의 명소가 된 청계천과 비슷한 도시 재생사업이라 할 수 있지만, 기존 하천의 복원에 더 중점을 둔 모습은 차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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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복원된 심곡천은 이제 다양한 동식물들이 공존하면서 도시와 자연이 공존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부천시는 과거 복개천 때의 흔적을 남겨두면서 심곡천의 역사를 함께 살필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 역사가 하천을 파괴하는 역사이지만, 하천의 복원이 역사의 단절이 아닌 새로운 창조와 연결이라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였다. 

도시 재생의 예로 도심의 심곡천이 있다면 도시 외각에는 최근 부천시의 새로운 명소가 된 아트 벙커 B39가 있었다. 이곳은 과거 수도권 일대의 쓰레기를 태워 처리하는 소각장이었다. 도시 외각의 사람이 살지 않는 지리적 입지가 쓰레기 소각장이 자리한 배경이었다.

하지만 이는 시민들을 고려하기보다는 행정의 편의적 효율성만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쓰레기 소각장은 필연적으로 소각 과정에서 다량의 유해 물질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사람들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산업화 시대 사람에 대한 고려는 발전이라는 명분 앞에 묻히고 말았다. 그렇게 운영되던 쓰레기 소각장은 시민들의 지속적인 운영 반대 여론 속에 사용이 중단됐고 방치 상태에 있었다. 통상적인  경우라면 소각장을 철거하고 다른 시설을 지었겠지만, 부천시는 쓰레기 소각장 건물을 문화, 예술인들의 위한 공간으로 만들었다. 

이곳은 창작의 공간이 됐고 다양한 전시 행사가 열리고 있다. 이후 도시에서 대표적인 혐오 시설인 쓰레기 소각장은 아트벙커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지금은 재 단장 과정을 거쳐 더 업그레이드된 문화, 예술의 공간으로 방문자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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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벙커는 지금도 문화, 예술적 영감을 얻으려는 이들의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독특한 분위기는 사진 명소로도 주목을 받고 있다. 실제 다수의 연예인들이 이곳에서 화보 촬영을 하기도 했고 최고 전 세계적인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 그룹 BTS의 화보집이 이곳에서 촬영되면서 그 인지도가 한층 높아졌다. 앞으로도 아트벙커는 독특한 분위기를 찾는 젊은 층들이 찾는 명소로 자리할 가능성이 커 보였다. 

부천시에서의 여정은 부천시의 현대사를 지나 좀 더 앞선 역사 그리고 그 중심에 있었던 부천의 인물을 알 수 있는 장소로 향했다. 

그 인물은 일제 강점기 그리고 광복 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문학가, 기자이기도 했다. 수주 변영로였다. 그의 호인 수주를 이름으로 하는 수주 문학관에서 변영로의 삶을 살필 수 있었다. 변영로는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렸던 그의 시 '논개'를 통해 대중들에게 알려져 있다. 

1922년 신생활이라는 잡지를 통해 발표된 시 '논개'는 임진왜란 당시 진주에서 적장을 껴앉고 남강에 빠져 순국한 기생 논개의 나라를 사랑하는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시는 일제 강점기라는 시기를 고려하면 시를 통해 일제에 대항하는 저항시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 그의 삶을 살피면 그런 해석이 가능하다. 

변영로는 문학가로서 작품 활동을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노력을 지속했다. 특히, 1919년 일어난 3.1 만세 운동 당시 우리의 독립선언문을 그의 형과 함께 영어로 변역해 해외에 알린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1919년 3월 28일 하와이의 한 신문에는 우리 독립선언서 전문이 영어로 번역되어 소개됐다.

 

 

부천시 도로망

 



이는 추후 문학인들 사이에서 번영로 형제가 했던 일이라는 말이 돌았고 정설이 됐다. 물론, 이와 관련해 다른 주장이 있기도 하지만, 그가 어려서부터 신학문을 접하고 영어를 배워 영어에 능했다는 점과 영문 번역 문장이 매우 수준 높게 되어 있다는 점에서 번영로가 한 일이라는 설이 힘을 얻고 있다. 또한, 그의 삶을 살피면 더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이후에도 변영로는 언론인으로 신문과 잡지에 기고를 지속했다. 그러면서 일제에 협력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일제에 저항했다. 특히,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과 관련해 일어난 일장기 말소사건과 관련한 글을 기고하며 손기정의 다리만을 담은 사진을 함께 '조선의 건각'이라는 제목을 붙여 일제의 언론 탄압을 비판했다. 이후 그는 시골에 칩거해 생활했고 광복 후 교육자로 문학가의 삶을 살다 1961년 세상을 떠났다. 

이런 변영로에게는 변영만, 변영태, 두 명의 형이 있었다. 이들은 삼변이라 불리며 조선을 대표하는 지식인으로 활동했다. 첫째, 변영만은 법조인으로 유명했고 일제 강점기 판사직을 버리고 변호사로 활동했다. 이 시기 바람이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척살한 안중근의 변호를 맡기 위해 노력한 일화가 전해진다. 변영만은 이에 그치지 않고 독립운동을 위해 해외 망명을 하기도 했다. 광복 이후에는 일제에 부역한 민족 반역자들을 처벌하기 위해 만든 반민특위의 재판관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둘째 변영태는 영어에 능통했고 일제 강점기 신흥무관학교를 1회로 졸업하는 등 독립운동에 투신하기도 했고 교육자로서 삶을 살았다. 광복 후 우리나라의 외교를 이끈 외무부 장관으로 활약했고 1954년 우리 외교의 중요한 한 축이라 할 수 있는 한. 미 동맹의 기틀을 마련한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시 외무부 장관이기도 했다. 국무총리를 역임하며 정치인으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 

하지만, 변영태는 해외 출장 시 출장비를 아끼고 아껴 반납하는 게 보통이었고 생애 내내 청빈한 삶을 살았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1969년 자택에서 연탄가스 중독으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방송 링크

https://youtu.be/9ZyJWTl2VYA

 



이렇게 번영로의 형제들은 불의에 저항하는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자신의 재능을 나라와 민족을 위해 바친 인물들이었다. 이런 지식인의 흔적을 부천에서 만나면서 여정의 의미를 더할 수 있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부천시의 다양한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프로그램 말미에 나온 부천아트센터는 넓은 공원과 접한 기초 자치단체로는 이례적으로 큰 규모의 클래식 전문 공연장이 함께 하고 있었다. 이곳에는 국내 최대 규모의 파이프 오르간으로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이를 통해 부천시는 문화, 예술의 도시의 입지를 강화하고 다양성을 더하는 시도를 함께 하고 있었다. 

부천시의 모습은 도시의 급속한 발전 후 무엇을 지향해야 해야 하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다. 그동안 우리는 삶의 질을 말할 때 넓고 최신식 시설에 좋은 입지를 가진 아파트가 우선이었다. 그 아파트 가격이 더 오르는 게 가장 큰 행복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삶을 풍요롭게 채울 수 없음을 우리는 느낄 수밖에 없는 요즘이다. 풍요로운 삶 속에 여가선용을 위한 기회가 시간이 더 생겼지만, 막상 주변에서 그것을 실현한 장소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이런 삶의 질에 대한 요구를 충족시키는 건 공공의 영역에서 채워야 한다. 특히, 주민들의 밀접한 관계에 있는 지자체에서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부천시는 공공의 책무를 문화, 예술의 도시라는 목표를 가지고 지속력을 가지고 이행하고 있고 성과를 내고 있다. 이런 공공의 순기능이 더 많은 곳에서도 보이기를 기대해 본다.


사진 : 프로그램 / 위키백과,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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