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을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조선 역사에서 최악의 군주는 단연 연산군이 첫 손에 꼽힌다. 임진왜란의 비극을 초래하고 백성들을 버리고 자신의 안위를 위해 명나라 망명까지 고려했고 구국의 영웅 이순신을 죽음의 문턱까지 몰고 갔던 선조와 조선 역사상 최고의 치욕이라 할 수 있는 병자호란의 패전과 함께 굴욕적인 항복을 했던 인조도 있지만, 연산군이 실정과 폭정에는 이르지 못한다. 연산군은 조선 초기 세종 때부터 성종 때까지 이룬 최 전성기의 정점에서 조선의 국정 운영 시스템을 무너뜨렸고 결국, 대신들의 반정으로 물러나면서 조선이 신권이 왕권을 앞서는 정치 흐름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한 임금이었다. 그만큼 그의 각종 악행은 최악 그 이상이었다. 연산군은 조선 왕조에서 보기 드문 정통성을 가지고 왕위에 올랐다. 유교..
1392년 기존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고 새롭게 건국된 조선은 유교적 가치관을 중심으로 사회 전반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양반 사대부로 불리는 새로운 지배층이 등장했고 고려 시대까지 사회 전반을 지배했던 불교의 영향력을 억제하고 유교가 지배하는 국가 운영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런 조선의 대외 정책에서 중요한 흐름은 사대교린이었다. 조선은 중국의 통일 왕조 명나라에는 사대를 하고 그 외 북방의 여진족, 일본에는 강. 온 양면 정책으로 이들을 관리했다. 그들의 노략질이 극심할 시기에는 무력을 통해 토벌을 감행하고 한정된 통로를 열어 무역 등 교류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교류의 폭은 매우 한정적이었다. 조선과 달리 고려는 북방 민족과 중국, 일본, 아라비아, 동남아시아까지 교류의 폭이 매우 넓었다. 고려는 거란..
조선의 역사에서 큰 전환점이 된 사건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 할 수 있다. 임진왜란은 조선을 그 전후로 조선을 구분하게 하는 사건이었다. 임진왜란을 통해 조선은 세종대왕과 성종의 집권기 전성기 이후 누적된 사회 구조적 문제가 한꺼번에 드러났고 변화의 필요성이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조선의 집권층은 사회 변화보다는 그들의 기득권을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치를 했고 한층 더 보수화되고 경직된 사회 구조를 만들었다. 임진왜란 전 어렵긴 했지만, 계층 간 이동이 가능했고 유학 외 과학 기술의 발전을 이루는 등 역동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임진왜란 이후 유학은 더 깊은 관념론 속으로 빠져들었고 형식이 강조되는 예학이 더 발전하는 등 실생활과 더 멀어졌다. 또한, 대외 교류의 폭 또한 더 축소되고 고립됐다..
조선의 역사에서 영조와 정조 임금 통치기는 조선의 마지막 부흥기로 기억되고 가르쳐지고 있다. 실제 영. 정조 시대 조선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큰 전쟁을 치른 이후 회복되지 못했던 국력을 회복했고 흐트러진 국가 시스템을 복원하며 재 도약을 시도했던 시기였다. 정치적으로는 극심한 붕당의 대립을 극복하려는 탕평책이 왕권을 회복한 왕의 주도로 시행되면서 극단적인 대립이 조금은 완화되기도 했다. 이 시기 조선은 농업 중심의 경제체제에서 상공업이 발전하고 화폐 경제가 활성화되는 등 자본주의 경제체제로의 발전 가능성도 보였고 견고한 신분제 역시 변화의 조짐을 보였다. 그 한편에서는 서양의 문물이 중국을 통해 유입되며서 기존의 관념론적인 성리학을 극복하려는 실학 등의 새로운 사상적 흐름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런 흐..
1592년 발발해 1598년 종결된 임진왜란은 우리 역사상 최악의 전쟁 중 하나다. 이 7년간의 전쟁으로 조선은 사회, 경제적으로 막대한 타격을 입었고 나라의 근간마저 흔들렸다. 인구는 크게 감소했고 국가 경제의 중요한 기반이었던 농토도 대부분 황폐해졌다. 사람과 농토의 상실은 나라의 재정을 궁핍하게 했다. 백성들의 삶은 전쟁 이후 더 비참한 상황으로 내몰렸다. 특히, 17세기는 전 세계적으로 이상기후 현상이 지속되고 소 빙하기라 불릴 정도로 지구의 평균 기온이 내려간 시기였다. 농업 생산에는 최악의 환경이었다. 그 속에서 대 기근과 전염병, 자연재해 지속적을 발생했다. 이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사회개혁과 변화가 절실했지만, 조선의 집권층은 성리학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들은 변화를 통해 새로운..
조선의 역사에서 왕세자는 차기 권력 1순위였다. 아버지 왕이 있고 왕이 되기 위한 수업도 체계적으로 받았다. 그 왕세자가 중전에게서 태어난 적장자라면 그 권위는 한층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성리학적 세계관이 지배하는 조선에서 적장자의 왕가나 민간에서도 그 위치가 매우 절대적이었다. 현시점에서도 장남은 그 집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나 권위가 크다. 하지만 그 적장자의 자리가 세자 그리고 왕위로 이어진 사례는 이외로 많지 않다. 중전으로부터 아들이 태어나지 않았던 경우도 있고 차기 권력을 놓고 벌어진 암투 과정에서 밀리기도 했다. 어린 나이에 요절하는 불행도 있었다. 실제 가장 완벽하다 할 수 있는 계승 절차를 밟아 왕위에 오른 이들은 문종, 단종, 연산군, 인종, 숙종, 순종 정도로 요약된다. 이 중 단종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