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11일은 1900년대부터 시작한 근대 지진 관측 역사에서 가장 강력한 지진 중 하나로 기록된 동일본 대지진,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이 일어난 날이다. 지진은 일본 동부 태평양 연안해서 발생했고 지진 관측의 중요한 단위인 리터 규모 9.0 이상의 초거대 지진이었다. 이 지진으로 인해 지구의 자전축이 10~25cm 이동하고 일본 지역의 지각판이 태평양 쪽으로 2미터 정도 이동했다. 태평양 지각판과 유라시아 지각판의 교차하면서 오랜 세월 응축된 에너지가 한 번에 분출되면서 발생한 에너지는 그만큼 엄청났다. 이로 인해 지진의 진앙지가 육지와 멀리 떨어져 있긴 했지만, 일본의 동부 해안 일대를 중심으로 상당한 충격파가 전해졌고 그에 따른 피해가 있었다. 그 이전과 이후의 강력한 여진도 영향..
흔히 자동차 산업을 두고 종합산업이라는 말을 한다. 자동차 산업을 차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데 있어 여러 부품의 제조와 완성차 조립, 판매 그와 관련한 금융과 할부 서비스 등 다양한 산업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이 때문에 자동차 산업은 한 국가의 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과 경제 효과가 매우 크다. 그 산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량 생산과 판매가 이루어지는 규모의 경제가 뒷받침돼야 한다. 대신 그만큼 시작하기도 유지하기도 어려운 산업이다. 이에 자국에서 자동차를 생산하고 관련 산업을 유지하고 있는 국가는 손에 꼽을 정도다. 수차례 세계적인 경제 위기를 겪으며 자동차 산업 전반에 큰 구조조정이 있었고 대형 자동차 업체들을 중심으로 산업이 재편되고 있기도 하다. 그 속에서 한국은 자동차 산업의 후발 주자였지만..
세계사를 공부하면 현 인류 문명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고대 문명의 발상지에 대해 접하게 된다. 학창 시절 4대 고대 문명의 발상지로 이집트의 이집트 문명, 중동지역을 중심으로 한 메소포타미아 문명, 중국의 황하 문명, 인도를 중심으로 한 인더스 문명에 대해 배우고 이는 필수적 암기사항이 된다. 이 중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할 수 있다. 메소포타미아는 지금의 이라크에 흐르는 두 개의 강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을 중심으로 형성된 문명을 말한다. 메소포타미아라는 말의 어원 역시 두 개의 강 사이에 있는 도시라는 의미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타 문명과 비교해 매우 개방적인 형태를 보였다. 다양한 문화가 융합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바꿔 말하며 여러 이민족의 침입이 잦았고 전..
서울시 성북동은 도심권에 속해 있지만, 고즈넉한 분위기에 산세가 어우러진 보기 드문 환경을 가지고 있다. 과거 조선시대 성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 현재에 이어지고 있다. 조선시대부터 성북구는 한적한 교외 지역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중요한 의복의 재료를 생산하는 누에가 잘 사육되도록 염원하게 제사를 지내는 선잠 단지가 있었고 산과 계곡이 어우러진 풍광으로 양반들의 저택이나 별장이 지어지기도 했다. 지금도 성북동 일대에 재벌 회장과 고위 관료나 정치인, 각국의 대사관저들이 위치해 있다. 1960년대 들어 도심과 연결되는 교통망이 생기고 서울이 사대문을 넘어 확장되면서 그 모습이 점점 변해갔다. 하지만, 개발의 광풍 속에 성북동의 모습은 변해갔지만, 여전히 성북동 곳곳에서 과거 흔적들이 남아있다...
1592년 발발해 1598년 종결된 임진왜란은 우리 역사상 최악의 전쟁 중 하나다. 이 7년간의 전쟁으로 조선은 사회, 경제적으로 막대한 타격을 입었고 나라의 근간마저 흔들렸다. 인구는 크게 감소했고 국가 경제의 중요한 기반이었던 농토도 대부분 황폐해졌다. 사람과 농토의 상실은 나라의 재정을 궁핍하게 했다. 백성들의 삶은 전쟁 이후 더 비참한 상황으로 내몰렸다. 특히, 17세기는 전 세계적으로 이상기후 현상이 지속되고 소 빙하기라 불릴 정도로 지구의 평균 기온이 내려간 시기였다. 농업 생산에는 최악의 환경이었다. 그 속에서 대 기근과 전염병, 자연재해 지속적을 발생했다. 이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사회개혁과 변화가 절실했지만, 조선의 집권층은 성리학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들은 변화를 통해 새로운..
서울시 용산구에 자리한 도심 속 공원, 효창공원은 다양한 시설들과 추모비가 혼재하는 곳이다. 1960년대 지어진 효창운동장은 과거 한국 축구의 요람으로 많은 경기가 열렸고 현재는 사회인 축구의 중요한 경기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또 한편에는 일제 강점기 임시정부를 이끈 해외 독립운동의 대표적 인물인 김구 선생의 묘와 우리 독립운동사에 남을 의거를 행했던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의사를 포함한 삼의사들과 임시정부 주석을 역임했던 이동녕, 군사부장을 역임했던 조성환, 또 다른 임시정부 요인인 차이석까지 독립운동가의 묘가 자리하고 있다. 1909년 일제의 조선 침탈을 이끌었던 일본의 권력자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 역에서 처단한 안중근 의사의 묘도 그곳에 있다. 하지만, 안중근 의사는 그 유해를 아직 찾지 못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