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센의 포스트시즌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SK와의 플레이오프 1, 2차전을 모두 내주며 시리즈 벼랑 끝에 몰렸던 넥센이 3차전에서 반격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넥센은 SK와의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선발 투수 한현희를 시작으로 불펜진의 깔끔한 이어던지기와 안정된 수비, 앞선 타선의 집중력을 더해 3 : 2로 승리했다. 넥센은 시리즈 전적 1승 2패를 만들며 승부를 더 이어갔다. SK는 선발 투수 박종훈이 4.1이닝 6피안타 3사사구 3실점으로 다소 부진했고 홈런 2방으로 2득점하긴 했지만, 득점권에서 타선의 집중력이 떨어지며 시리즈를 3연승으로 끝낼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SK로서는 2연승 후 시리즈 낙승의 분위기가 오히려 나쁘게 작용한 경기였다. 경기는 넥센 한현희, SK 박종훈, 리그에서 희소성이 큰 두..
프로야구 구단들의 새 시즌을 위한 팀 개편이 속도를 내고 있다.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기존 선수들의 정리가 이루어지고 있다. 매 시즌 신인 선수들의 입단하는 현실에서 이는 불가피한 일이다. 아직 포스트시즌이 진행 중인 관계로 KBO의 공식적 공시는 없지만, 언론의 보도를 통해 대상 선수들이 공개됐다. 최근 경향이지만, 올 시즌에는 유독 지명도 있는 선수들의 이름이 더 많이 눈에 띈다. 방출되는 선수들의 규모도 크다. 구단들은 해당 선수들의 새로운 팀과 진로를 모색할 수 있는 시간을 주려 배려하기 위함이라 하지만, 프로의 냉정함을 그대로 느낄 수밖에 없다. 몇몇 선수들의 경우에는 팬들과의 마찰이 발생하기 한다. 올 시즌 KIA에서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40대 나이를 잊게 하는 역투를 한 임창용의 방출 소..
시사 교양 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 192회와 193회에서는 일본의 조선 침탈이 본격화된 청일전쟁과 이어진 을미사변을 다뤘다. 청일전쟁을 1894년, 을미사변은 1895년 발생한 사건으로 조선에는 아프고 치욕적인 순간이었고 일본의 조선에 대한 지배권이 강화되는 계기가 되는 사건이었다. 청일 전쟁의 발단은 그 해 일어난 동학 농민혁명이었다. 호남 지방을 중심으로 관리들의 부정부패와 수탈을 견디지 못한 농민들이 당시 서민층들에게 널리 퍼져있는 신흥 종교인 동학을 중심으로 봉기한 것이 동학 농민혁명이었다. 이들의 혁명은 지역민들의 호응을 얻었고 그 세력을 급속히 키웠다. 조선 정부는 이들을 토벌하기 위해 중앙군을 현지에 급파했지만, 동학혁명군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이에 위협을 느낀 조선 정부는 급기야 청나라..
와일드카드전, 준 플레이오프전을 거치며 이어졌던 넥센의 상승세가 SK의 벽에 막혔다. SK는 넥센의 상승세를 잠재우며 플레이오프 1, 2차전을 선점했다. 정규리그 2위 SK는 홈에서 열린 넥센과의 플레이오프 2연전을 모두 쓸어 담았고 한국시리즈 진출에 단 1승만을 남겨두었다. 넥센은 1, 2차전을 통해 마운드의 필승 카드를 모두 소진하는 총력전으로 맞섰지만, 모두 패하면서 벼랑 끝에 몰렸다. SK 연승의 원동력을 베테랑들의 힘이었다. 더 상세히 분석하면 과거 SK가 최강팀으로 군림하던 시절 주역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그 당시 포스트시즌, 가을만 되면 힘을 내던 선수들의 이제는 베테랑이 되어 팀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마운드에서는 1차전 선발로 나선 김광현이 돋보였다. 김광현은 6회까지 3실점으로 상..
포스트시즌이 진행 중인 상황에 그 자리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팀들의 팀 개편 작업이 빠르게 진행 중이다. 포스트시즌의 열기를 반감시킨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하위권 팀들은 하루빨리 팀을 재정비하고 내년 시즌을 대비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감독을 비롯한 코치진 개편과 함께 재계약 대상 선수들도 빠르게 확정하고 있다. 올 시즌을 함께 한 외국인 선수들의 거취 문제도 어느 정도 그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2018 시즌 리그 최고 연봉을 지출하고도 7위에 그친 롯데도 변화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아직 2년의 계약 기간이 더 남은 조원우 감독이 팀을 떠났고 과거 롯데에서 감독과 코치로 인연이 깊었던 양상문 감독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감독 교체와 함께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코치진 교체로 진행됐다. 기존 선수들의 정리도 ..
10월 26일은 현대사에서 격변을 가져왔던 사건이 있었던 날이다. 유신헌법을 통해 사실상 종신 대통령의 자리에 있었던 절대 권력자 박정희가 그의 최 측근의 총탄에 삶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분명 비극적인 사건이었지만, 이후 맞이한 절대 권력의 붕괴는 민주화를 촉진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후 대한민국의 또 다른 군사 독재의 시대에 맞이하고 말았다. 그 과정에서 광주 민주화운동의 또 다른 비극이 역사로 남았다. 그리고 그때의 아픔은 완전히 치유되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사건이 있다. 바로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 역에서 저격, 사살한 날이 1909년 10월 26일이기 때문이다. 당시 조선, 대한제국은 일본의 침략에 을사늑약을 통해 외교권을 잃었고 이후 친일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