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성계의 막내아들 방석이 세자가 조선의 막후 실력자가 된 신덕왕후 강씨는 강. 온 양면 책을 활용하며 위험 세력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특히, 이성계의 첫 번째 부인 신의왕후의 소생인 장성한 다섯 아들의 존재는 큰 위협이었다. 이성계도 신덕왕후 강씨에게 힘을 실어줬다. 세자 책봉에서부터 신덕왕후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보였던 이성계는 첫 번째 부인 사이에 낳은 다섯 아들을 권력에서 멀어지게 했다. 즉위식은 물론이고 이후에도 아들들과의 만남을 거부했고 조선 건국 공신에도 아들들을 제외했다. 이성계는 아들들을 아버지와 자식이 아닌 왕과 신하의 관계로 설정했다. 신하와의 관계도 정적과도 같이 대했다. 나이 어린 세자에게 아들들은 부담이 될 수 있는 존재였다. 특히, 이성계 가문의 유일한 장원급제자로 문신의 길을..

강원도 화천군은 다수의 군부대가 자리하고 있는 북한과의 접경지다. 팽팽한 군사적 긴장감으로 대표되는 곳이면서도 화천군은 청정 자연이 잘 보존된 도시이기도 하다. 또한, 화천은 물의 도시다. 일제 강점기 건설된 화천댐은 우리나라 최북단의 거대한 인공 호수 파로호가 만들었다. 이 파로호는 북한의 금강산에서 발원한 북한강의 물을 품고 있다. 화천군은 겨울 축제의 도시이기도 하다. 화천의 겨울 산천어 축제는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고 겨울을 대표하는 장면을 연출한다. 도시 기행 프로그램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는 화천군의 이모저모와 그 안에 살고 있는 이웃들의 삶과 이야기를 찾아 함께 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른 아침 북한강 파로호 주변의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겨울 풍경과 함께 했다. 그 길을 따라가..

최근 바다와 접한 지자체마다 멋진 풍경을 활용한 여행 명소가 많아졌습니다. 다소 유행과 시류에 편승하는 느낌도 들고 독창성이 떨어진다는 아쉬움도 있지만, 여행자들의 선택이 폭이 넓어지고 지역을 대표할 랜드마크가 생긴다는 건 긍정적이다. 강원도 동해시 묵호항에도 그런 장소가 있습니다. 기존 묵호항과 그 주변의 과거 모습에 더해 현대적 느낌의 명소가 더해졌습니다. 묵호항 도째비골이 그곳입니다. 이곳에는 묵호항의 명소 논골담길의 레트로 감성 가득한 공간에 더해 하늘과 가까워질 수 있는 스카이 워크와 재미있는 캐릭터와 만날 수 있는 골목, 바다와 접하는 산책로가 함께 하고 있습니다. 한 장소에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마침 저는 화창한 오후 햇살아래 그 장소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곳의..

1840년 일어난 영국과 중국의 전쟁인 아편전쟁은 전쟁의 이름에서 보듯 보통의 전쟁과는 다른 면이 있었다. 마약이라 할 수 있는 아편이 전쟁의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전쟁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이 전쟁은 세계사에서 범위를 좁히면 중국과 동아시아의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다. 이 전쟁에서 영구에 패한 청나라 왕조는 멸망의 길을 걸었고 긴 세월 동아시아를 지배하던 중국 중심의 중화사상이 무너지는 계기가 됐다. 중국에 승리한 영국은 제국주의 최전성기를 열었다. 이후 중국은 서구 열강들과 심지어 일본의 침탈을 받으며 그들의 이권 대결장으로 전락했다. 중국은 서양이 주도하는 세계관 속에 포함됐고 동서양의 균형을 무너졌다. 서세동점의 시대가 열렸고 그 서구 중심의 세계관과 가치관이 우..

동해바다와 접한 강원도 동해시를 대표하는 항구인 묵호항이 최근 여행지로 사람들의 발걸음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조용한 어촌 마을의 이미지를 벗어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특색 있는 공간으로 변모했기 때문입니다. 묵호항을 가장 높은 곳에서 바라볼 수 있는 묵호항 등대를 중심으로 미래 지향적인 공간으로 네이밍 된 도깨비 골 스카이 밸리가 있습니다. 바다와 가장 가깝게 접할 수 있는 해랑 전망대도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이와 함께 누군가에는 추억의 장소로 누군가에는 과거의 시간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논골담길이라는 대조적인 곳도 있습니다. 저는 묵호항에서 과거와 만날 수 있는 곳인 논골담길을 먼저 찾았습니다. 논골담길 곳곳에 있는 정겨운 벽화와 묵호항의 풍경, 아기자기 한 조형물이 어울려 있어 걷..

고려 왕조의 수호를 이끌었던 정몽주가 격살되면서 새로운 왕조 건국의 흐름을 막을 장애물이 모두 사라졌다. 실제 역사에서도 정몽주가 세상을 떠나고 3개월 후 조선이 건국됐다. 이제 이성계가 용상에 오르는 건 시간문제였다. 다시 정국의 주도권을 손에 넣은 급진파 사대부들을 빠르게 움직였다. 정몽주와 함께 이성계 세력과 맞섰던 공양왕은 기울어진 분위기에 전의를 상실했다. 구심점을 잃은 온건파 사대부 세력도 더는 힘을 쓰지 못했다. 정도전을 중심으로 한 급진파 사대부는 고려 왕실을 압박해 선위를 이끌어냈다. 사실상의 왕위 찬탈이었지만, 선위의 형식을 통해 새 왕조 건국의 정당성을 조금이나마 확보했다. 이성계는 왕위에 오르는 걸 주저했지만, 위화도 회군 이후 역사의 흐름을 그는 거스를 수 없었다. 이미 고려왕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