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역사에서 태종 이방원은 각종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자주 소재가 될 정도로 그 영향력이 큰 인물이다. 그는 조선 건국 이후 신권과 왕권의 대립하는 권력 투쟁에서 승리하며 왕권으로 힘은 균형추가 완전히 기울게 했다. 태종 시대 조선은 제왕 중심의 중압 집권제로 강력히 시행했다. 이런 권력 투쟁의 과정에서 수 많의 희생이 뒤따랐다. 조선 건국을 이끌었던 정도전이 그의 칼에 목숨을 잃었고 조선 태조 이성계를 도와 건국에 일조했던 공신들 상당수가 피의 숙청을 피하지 못했다. 정도전은 재상 중심의 정치를 꿈꿨다. 권력의 중심은 3정승이 중심된 의정부에 있었고 왕권은 제한됐다. 이성계도 이에 동의했다. 하지만 태종은 생각이 달랐다. 이는 무력 충돌로 이어졌다. 태종은 정도전 세력의 숙청에 이에 세자였던 이복동생..
경북 상주는 삼국시대가 정립되기 전 한반도 남쪽의 삼한에 속했던 사벌국을 그 기원으로 할 정도로 긴 역사를 간직한 도시다. 상주는 신라로 병합되었고 통일 신라시대 지방 행정 구역인 9주에 그 이름이 있다. 고려 시대에는 지방에 설치한 12목에 속해 지방관의 파견되었고 조선 시대 초기 경상도 지역의 중심 도시로 지역을 관할하는 감영이 설치되기도 했다. 경상도는 경주와 상주를 합친 말로 유서 깊은 도시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곳이다. 도시 기행 프로그램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124회에서는 경북 내륙의 유서 깊은 도시 상주를 찾아 지역의 명소와 특산물, 사람들과 만났다. 여정의 시작 전 멋진 낙동강의 풍경을 살필 수 있는 경천대를 찾았다. 경천대로 올라가는 산책로는 잘 정비되어 있었고 초록의 수목이 방문자를 ..
지금의 만주 요동지역을 장악했던 고구려에게 중국 세력과의 대결은 필연적이었다. 고구려는 건국 초기과 성장기에 만리장성 넘어 중국 북방의 여러 이민족과 맞서야 했다. 그 과정에서 국가적 위기도 있었지만, 광개토대왕와 장수왕 시대를 거치며 그들의 대결을 이겨내고 요동 지역의 맹주로 자리했다. 고구려는 그들의 왕을 태왕으로 지칭하며 독자적 천하관을 유지하는 동북아시아의 강국으로 굴림했다. 하지만 중국에 통일 왕조에 들어서면서 고구려는 한차원 높은 상대와 대결해야 했다. 중국을 통일한 수나라와 당나라는 당시로는 세계 최강국의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고구려는 그들에게 쉽게 고개를 숙이지 않았고 중화사상속으로 편입되지 않았다. 이런 고구려가 중국을 호시탐탐 노리는 북방 이미족들과 연결되면 더 큰 위협이 될 수 있었..
서울 용산은 한강과 맞닿아 있고 위로를 서울 종로로 아래로는 강남과 연결되는 말 그대로 요지 중 하나다. 하지만 용산은 이런 지정학적 위치를 긴 세월 외국 군대가 이용했다. 1882년 임오군란 당시 이를 진압하기 위해 조선 땅에 들어온 청나라 군이 주둔한 지역이 용산이었고 이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군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이후 러. 일 전쟁까지 승리한 일본은 한반도에 대하 식민 지배를 공고히 했고 1905년 을사늑약으로 조선의 식민 지배를 명확히 이렇게 일제에 의한 강점기 기간 용산은 일본군의 대륙 침략을 위한 후방기지로 기능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패망으로 일제가 물러난 후에는 미군이 최근까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이렇게 긴 우리 근현대사에서 용산은 외국 군대가 주둔한 역사로 채워졌다. 미군이 평..
전라북도 무주는 덕유산을 포함해 지역의 80% 이상이 산지로 이루어진 고원지역이다. 무주를 포함해 주변의 진안, 장수 지역은 남부 지방이지만, 이러한 지리적 특성으로 겨울이면 많은 눈이 내리는 곳으로 교과서에도 나와있을 정도로 특별한 기후조건을 가지고 있다. 또한, 청정한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에 무주는 스키 등 동계 스포츠가 활성화되어 있고 2018년 동계 올림픽을 개최한 강원도 평창에 맞서 국내 유치전을 펼치기도 했다. 이런 지역적 특성은 무주가 도시에서는 먼 오지라는 인식을 가지게 했다. 하지만 최근 고속도로가 주변에 들어오고 보다 많은 이들이 찾을 수 있는 곳이 무주이기도 하다.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115회에서는 전북 무주의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 이웃을 만났다. 여정의 ..
서울에서 옛 모습을 가진하고 있는 몇 안 되는 곳 중 서촌이 있다. 경복궁과 인왕산 사이에 자리한 서촌은 행정동으로 효자동, 청운동, 사직동 등을 포함하고 있다. 이곳은 과거 왕족들과 사대부, 중인들이 주로 거주했던 곳이었다. 일제 강점기 이후 문화, 예술인들의 거주지이자 외국인들의 거주지, 고관 대작들의 거주이기도 했다. 또한, 인왕산 계곡의 멋진 풍경도 함께 품고 있어 역사와 자연이 함께 하고 있다. 유서 깊은 동네지만, 청와대와 인접한 탓에 1960년대 이후 보안상의 이유로 각종 규제에 묶이면서 개발이 제한되고 나날이 변해가는 서울에서 소외된 지역이 되고 말았다. 서울에서 은둔이 땅이었던 서촌은 최근 삼청동 일대 한옥촌이 북촌으로 지칭되며 유명 관광지로 자리 잡은 상황에서도 그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