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남부에 위치한 안성은 과거 조선시대 3대 상업도시로 불릴 정도로 중요한 도시였지만, 산업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과정에서 소외되어 과거의 영광을 잃고 말았다. 지금은 곳곳에 저수지와 호수가 있고 드넓은 평원이 있는 농촌지역을 먼저 연상시키는 도시가 됐다. 하지만 새로운 발전 방향을 모색 중이다.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110회에서는 경기 남부내륙의 도시 안성시를 찾았다. 그곳에서 그들의 꿈을 가꾸고 피우기 위해 하루하루를 알차게 보내고 있는 우리 이웃들을 만났다. 예로부터 물이 풍부해 농업이 흥했던 안성을 상징하는 호수가 저수지 풍경과 함께 여정이 시작됐다. 본격적인 여정의 시장은 동네 피자집이었다. 이곳은 여느 이탈리아 식당과는 달랐다. 지역 관광사업 공동체인 관광 두레 사업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이 ..
1970년대와 80년대 우리 현대사를 재조명하고 있는 역사 교양 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 301회에서는 1980년대 정의사회 구현이라는 미명하에 초반 전두환의 신군부에 의해 자행된 대표적 인권유린의 사례였던 삼청교육대와 관련한 내용으로 채워졌다. 삼청교육대는 신군부의 권력 장악 움직임과 그 궤를 같이하고 있다. 신군부는 계엄사령부의 권한은 대폭적으로 확대하는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의 전국 확대를 선포했다. 그와 동시에 일체의 정치활동 금지와 함께 국회를 폐쇄하고 유력 정치인들을 체포, 가택연금하는 등의 조치로 반대 세력을 손발을 묶었다. 군내 사조직 하나회가 중심된 신군부는 이를 통해 정치, 행정, 입법 기능을 모두 총괄하는 절대 권력을 손에 쥐었다. 과거 유신독재의 또 다른 시작이었다. 이에 대..
2020년을 지나 2021년을 시작되는 시점에 전 세계를 뒤덮고 있는 가장 큰 이슈는 코로나다. 중국 우한에서 원인 모를 괴질로 시작한 이 전염병은 이후 전 세계로 퍼져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지금은 현재 진행형이다. 코로나 시대로 불리는 이 시기 우리는 사회, 문화, 경제 거의 모든 분야에서 경험하지 못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전염병 예방을 위해 비대면과 거리 두기가 일상화되면서 대면 접촉이 필수적인 산업들을 큰 타격을 입었다. 단적으로 우리 주변의 자영업의 피해는 지속적이고 광범위하다. 반대로 배송 서비스와 온라인 사업들을 큰 호황을 누리고 있다. 코로나 수혜업종이라는 웃을 수 없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는 산업구조의 개편을 촉진하고 있다. 가뜩이나 인공지능이나 산업의 자동화 등으로 사람들의 일..
광주 민주화 운동은 1997년부터 국가기념일로 지정되고 정부가 주관하는 기념식이 열리고 있는 우리 현대사의 민주주의 발전과 연결되는 중요한 사건이다. 1980년 5월 18일부터 5월 27일까지 광주지역을 중심으로 발생했던 이 사건은 발생 당시부터 오랜 세월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이름을 얻지 못했다. 광주사태라는 말이 더 일반적이었다. 당시 광주지역에서 폭동이 발생했고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유혈 충돌이 있었다는 정도가 알려진 사건의 주요 내용이었다. 하지만 민주화가 촉진되고 군사정권이 그 막을 내린 이후 광주민주화운동은 1980년 당시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정권을 찬탈한 신군부 세력에 저항한 국민적 저항운동으로 재평가되었다. 또한, 유혈 충돌의 내용 역시 광주지역에 진입했던 계엄군에 의한 무차별적인 무력진압..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탄에 사망한 이후 정국은 큰 혼란에 빠져들었다. 종신 집권을 위한 유신 체제 속 20년 가까이 절대 권력을 지켰던 대통령과 그의 최측근인 중앙정보부장의 부재로 인한 일이었다. 권력 공백기였지만, 한편에서는 민주화에 대한 기대감도 가득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뒤를 이어 대통령 자리에 오른 최규하는 긴급조치를 해제했다. 이를 통해 가택연금 등으로 정치 활동이 불가능했던 김영삼, 김대중 등 야권 지도자들이 정치 일선에 복귀했고 투옥 중이던 민주화운동 인사들도 풀려났다. 최규하 대통령은 1년 내에 개헌과 함께 민주주의 선거를 통한 차기 정부 이양을 약속했다. 멈췄던 민주주의 시계가 다시 작동했다. 민주주의가 회복되는 서울의 봄은 그렇게 시작됐다. 하..
1979년 12월 12일 우리 현대사의 중요한 물줄기를 바꾸는 사건이 발생했다. 10.26 사태 이후 비상계엄 체제에서 계엄사령관과 육군 참모총장 자리에 있었던 정승화 대장이 보안 사령관 전두환 소장에 의해 체포됐기 때문이다.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군내 하극상이었고 국방부 장관과 대통령이 재가를 득하지 않은 군사 반란이었다. 이 과정에서 전방을 지켜야 한 군대가 서울 중요 시설에 진출했다. 12월 12일 밤과 다음날 새벽 사이에 발생한 이 사간은 국민들은 혼란스럽게 했다. 이는 박정희 대통령 서거 이후 민주주의의 복원에 대한 기대가 사라지고 신군부 세력이 권력 중심에 서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12. 12 군사 반란에 대해 세심하게 다뤘다. 12. 12 군사 반란은 이를 주도하고 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