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해 2회에 거쳐 그 의미를 재조명한 시사 교양 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 211회에서는 3.1운동의 전개 과정을 소개해주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 외에 잘 몰랐던 이야기까지 알 수 있었다. 물론, 3.1 운동의 역사적 의미는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하다는 건 변함이 없었다. 3.1운동은 1910년 일제의 조선에 대한 강제 병합 이후 계속된 압제에 대한 반감, 고종 황제의 승하를 기점으로 증폭된 분노, 국. 내외 독립운동과 민족자결주의 등 대외적 여건이 결합되어 발생했다. 결코 우연에 의한 사건이 아니었고 치밀한 준비와 많은 이들의 헌신이 있어 가능했다. 3.1운동은 전국적으로 200만명 이상의 국민들이 만세 운동에 참여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일제의 무자비한 진압에 죽거나..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15번째 여정은 3.1운동 100주년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서울 용산구 효창동과 청파동이었다. 여정의 시작은 이른 새벽 효창운동장에서 운동을 즐기는 이들과 함께 시작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축구 전용인 효창 운동은 이제 큰 경기는 열리지 않지만, 지역민들의 생활체육을 위한 장소로 사용되고 있었다. 진행자는 새벽 축구 경기를 하고 있는 동호회 회원들과 시간을 보내며 하루 일정을 위한 에너지를 충전했다. 효창공원으로 가는 길에 지난 가는 이들에서 이른 아침부터 공존하게 인사를 건네는 이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나이를 구분하지 않고 자신의 가게 앞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90도로 고개를 숙여 하루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그는 효창공원 입구에서 김밥 집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매일 이와 같은..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그 의미를 되새기기 위한 여러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 세계사에서 유래를 찾기 힘든 온 국민이 하나가 되어 진행된 비폭력, 평화운동은 우리의 독립의지를 전 세계에 알리는 한편, 일제의 강압통치에 힘을 잃어가던 독립운동을 다시 촉진시키는 촉매제가 됐다. 3.1운동의 정신은 이후 임시정부를 거쳐 대한민국에까지 이어지고 있고 헌법에도 명시되어 있다. 그렇기에 3.1운동 100주년은 그 의미가 너무나 크다 할 수 있다. 역사 시사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이 3.1운동의 의미를 되새기는 코너를 2부에 거쳐 마련했다. 그 첫 순서로 김규식과 여운형 두 독립운동가의 3.1 운동을 전후한 활동에 대해 재조명했다. 이들은 1차 세계대전 종전 후 1919년부터 1920년 사이..
포항 호미곶은 우리나라 일출 명소 중에서 대표적인 곳이다.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14번째 이야기는 이 호미곶의 일출과 함께 시작했다. 이른 새벽 그 일출의 사진으로 마음속으로 담기 위해 호미곶을 찾은 이들에게 동해바다는 멋진 일출의 장면을 선물해주었다. 호미곶 일출을 더 유명하게 해준 손 조형물, 그 조형물 위에 사뿐히 내려앉은 갈매기는 일출의 장면을 더 멋지게 만들어 주었다. 호미곶의 일출로 시작한 여정은 새벽 버스와 함께 동해의 황금 어장의 전진기지라 할 수 있는 구룡포항으로 향했다. 추적추적 비와 눈이 섞여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구룡포항은 새벽 조업을 마치고 돌아온 어선들의 수확물들의 경매하는 북적임으로 가득했다.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구룡포항은 늘 그렇듯 북적임에 활기를 더한 에너지가 가득했..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12번째 여정은 물의 도시라 불리는 강원도 춘천, 그중에서 죽림동과 효자동이었다. 예로부터 춘천은 예로부터 젊음과 낭만의 여행지였다. 서울에서 춘천을 이어주는 경춘선은 각 역마다 대학생들의 MT 장소나 각종 단체들의 행사 장소로 사랑을 받았다. 한강을 따라 만들어진 풍경과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많은 이들은 함께 추억을 만들었다. 춘천은 그런 추억 만들기의 정점과 같은 곳이었다. 춘천하면 이상하게 마음이 설레고 꼭 한 번 가봐야겠다는생각이 들곤 했다. 지금은 고속도로와 고속 열차가 생기면서 수도권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여행지가 됐고 완행열차의 낭만과 추억을 사라져가고 있지만, 여전히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여가를 즐기는 여행지로 사랑을 받고 있다. 이런 춘..
설 연휴를 앞두고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가 찾는 곳은 인천항의 역사를 간직한 북성동과 신포동이었다. 이곳은 인천항이 개항하고 최초의 근대 철도인 경인선이 생긴 이후 여러 역사의 흥망성쇠를 함께했다. 쇄국정책을 보리고 개항을 선택한 조선이 서구의 문물을 받아들이는 전초 기지가 인천항이었고 최초 근대식 시설이 차례로 들어서기도 했다. 하지만 인천항은 서구 열강과 일제 침략의 역사를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했던 아픔도 지니고 있다. 6.25 한국전쟁 당시에는 북한군의 남침에 낙동강 전선까지 밀렸던 국군과 유엔군이 전세를 단번에 역전시킨 인천 상륙 작전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이후 인천항은 수출 주도의 경제 정책에 밀려 부산항에 비해 발전이 더뎌지기도 했지만, 최근 중국과의 무역이 늘어나고 인천공항과의 연계를 통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