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일본에 강탈당한 대한제국은 사실상 주권을 상실하고 일본의 식민지배 체제로접어들었다. 일본은 통감부를 통해 사실상 대한제국을 통치했다. 서구 열강들의 지원까지 등에 업은 일본의 강압에 대한제국은 속수무책이었다. 이런 대한제국에게 1907년 열리는 만국평화회의는 자주 독립국으로서의 지위를 지킬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대한제국 황제 고종은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해 을사늑약이 대한제국의 뜻에 반하는 불법 조약임을 세계에 알리고 지원을 얻어내랴 했다. 이것이 헤이그 특사사건의 시작이었다. 시사 교양 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 198회에서는 이 헤이그특사 사건을 다뤘다. 헤이그 특사사건은 3명의 특사를 만국평화회의가 열리는 네덜란드의 헤이그로 파견하기 까지 첩보전과 같은 과정을 ..
인기 연예인들의 신변잡기, 인기 맛집과 해외여행지, 누구나 셰프가 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는 쿡방 등 화려한 화면과 빠른 전개로 가득한 예능 프로그램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게 느리지만, 잔잔한 감동을 주는 프로그램이 찾아왔다. 중견 배우 김영철이 1인칭 시점으로 우리 주변의 삶을 걸어서 탐방하는 다큐 형식의 여행기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가 그 프로그램이다. 1회에서는 마포구 성산동과 망원동을 돌아보았고 2회에서는 지금은 창원에 속한 마산의 합포구를 찾았다. 이곳은 과거 우리나라가 한참 산업화에 올인하던 시기, 수출자유지역으로서 수출항으로 큰 역할을 하던 마산항, 그 마산항을 중심으로 대형 방직 공장이 들어서고 섬유 산업이 발전했던 곳이었다. 지금은 섬유 산업이 쇠락하고 과거의 영화를 잃어버렸지만, 여전히..
자동차 하면 떠오르는 나라는 독일이다. 독일 자동차 메이커 벤츠, BMW, 폭스바겐은 높은 가격에도 그만큼의 품질을 보장할 것이라는 신뢰를 바탕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판매되었다. 과거에는 부유층의 전유물이었지만, 최근에는 수요층도 크게 확대되었고 우리 일상에서 독일 자동차는 자주 볼 수 있다. 그런데 최근 BMW의 특정 차종에서 화재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수년간 BMW 차량의 화재건수가 크게 증가하였고 올해는 관련 뉴스가 잊을만하면 등장했다. 최고 품질이라고 자부하던 독일차의 화재 사고는 소비자들의 독일차에 대한 그동안의 인식과는 크게 상반되는 일이었다. 더 큰 문제는 이에 대응하는 BMW의 자세였다. 무엇보다 동일한 사건이 발생한 미국과 비교되는 대응에 해당 차종을 소유하고..
1905년 11월 17일, 그날은 대한제국의 자주독립국의 직위가 사실상 사라진 날이었다. 그날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일본에 빼앗긴 을사늑약이 체결된 날이기 때문이다. 당시 대중들은 나라 잃은 슬픔을 스산하고 쓸쓸한 분위기에 빗대어 1905년 을사년의 이름에서 따온 을사년스럽다라고 표현했고 지금의 을씨년스럽다의 어원이 탄생했다. 이에 대한 반론도 있지만, 1905년 이전 이런 표현이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만큼 1905년 을사늑약의 우리 역사에서 치욕적인 날이었다. 그 늑약에 서명한 이완용을 비롯한 5명의 대신들을 을사 5적으로 우리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시사 교양 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 197회에서는 을사늑약과 관련한 국내외적 상황을 다뤘다. 당시 일본은 조약에 대해 논의하..
시사 교양 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 196회에서는 1904년 2월부터 1905년 가을까지 이어진 러. 일 전쟁을 주제로 했다. 러. 일전쟁은 일본의 대한제국에 대한 식민지배를 본격화한 을사늑약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있어 중요한 사건이었다. 이 전쟁에서 사실상 승리한 일본은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강대국들에게 인정을 받았고 훗날 군국주의로 나아가는 계기가 됐다. 어렵게 독립국가의 지위를 유지하던 대한제국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 속에서 일본과 세력 균형을 이루던 한 축인 러시아가 퇴장하면서 사실상 일본의 침략을 막을 중요한 수단을 잃었고 비운의 역사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러. 일전쟁은 방송에서도 언급됐지만, 러시아와 일본의 대결이 아니었다. 이 전쟁은 강대국들 간의 대결이었다. 러시아는 당시 독일, 프..
지식인들의 수다 한 마당, tvn의 알쓸신잡 시즌 3, 제9회에서 찾은 장소는 부산이다. 부산은 대한민국 제2위 도시이자 제1의 항구도시로 경제개발 드라이브가 한창이었던 70년대와 80년대 무역 항구로서 큰 역할을 했다. 지금도 부산은 수. 출입 항구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큰 번영을 이룬 부산이지만, 그 발전의 이면에는 6.25 한국전쟁의 아픔이 함께하고 있었다. 알쓸신잡에서는 한국전쟁과 부산의 이야기를 비중 있게 다뤘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남한에 대해 기습적인 전면전을 개시하면서 시작된 6.25 한국전쟁은 개전 초기 북한군의 일방적인 우세였다. 당시 남한의 이승만 정부는 북한의 전면전 가능성이 전혀 대비하지 못했다. 북한은 치밀하게 남침을 준비했고 비밀리에 소련과 중공의 지원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