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은 고려 말과 조선 초기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이다. 정도전은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라는 새로운 나라가 건국되는 데 있어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는 조선의 건국과 함께 조선의 통치 시스템을 만들고 나라의 기틀을 다지는 데 있어 중요한 설계자였다. 하지만, 조선 3대 왕이 된 이방원과의 권력 다툼에 밀려난 이후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고 이후 조선의 역사에서 역적이었고 철저히 배척됐다. 조선은 정도전이 세운 토대 위에 건국되고 수백 년의 역사를 유지했지만, 정도전은 환영받지 못하는 인물이었다. 그가 정치적으로 복권된 된 조선 후기 대원군이 집권한 이후 이루어졌다. 정도전은 살아서도 그리고 죽고 나서도 순탄한 삶을 살지 못한 풍운아였다. 8월 7일 방영된 JTBC 시사 교양 프로그램 차이나는 클라..
안산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산업단지다. 과거 반월공단이라 불리기도 했다. 우리 산업화 역사에서 그만큼 중요한 위치에 있었던 안산이었다. 거대한 방조제로 바닷길을 막아 조성된 안산과 접하고 있는 시화호는 과거 활발히 일어났던 간척 사업의 산물이기도 하다. 이렇게 안산은 우리나라의 산업화, 현대화 과정에서 많은 변화를 겪은 곳이다. 그리고 지금의 안산은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공존하는 다문화 공간으로 변신했다. 안산의 산업단지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모여들면서 생긴 현상이다. 이 안산에서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35번째 이야기가 펼쳐졌다. 안산의 이야기는 시화 방조제를 걸으며 시작됐다. 시화 방조제는 7년여의 공사 끝에 1994년 완공됐다. 이를 통해 만들어진 담수호 시화호와 그 주변의 땅은 신도시와 농..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34번째 여정은 서울 서남부의 금천구의 이런저런 이야기로 채워졌다. 금천구는 과거 구로공단이라 불렸던 섬유 산업의 중심지로 1970년대 대한민국 수출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던 공업단지였다. 이곳에는 당시 수많은 섬유, 의류 공장을 비롯해 경공업 공장이 즐비했고 고향을 뒤로하고 서울로 올라온 많은 젊은이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며 꿈을 키워왔던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금천구는 세월이 흐르고 대한민국의 산업의 첨단 산업으로 변화하면서 경공업 단지는 쇠락했고 당시의 공장들은 하나둘 사려져 지금은 고층 빌딩들이 즐비한 IT 산업단지로 변모했다. 이 때문에 금천구는 대한민국의 산업화 흐름을 그대로 보여주는 곳으로 독특한 현대사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진행자는 이 금천구 전체가 내려다보이..
시즌제를 표방한 jtbc의 정치 드라마 보좌관이 충격적인 결말과 함께 시즌 1을 마쳤다. 이 드라마는 마치 지금의 정치판을 그대로 반영한 듯한 현실감 있는 스토리와 빠른 전개로 눈길을 끌었다. 시즌 1 후반부의 여러 사건들은 마치 뉴스의 장면들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드라마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정치권에 뛰어든 젊은 정치 지망생 장태준의 고군 분투가 이야기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긴장의 연속이었던 드라마는 후반부는 송희섭이라는 유력 정치인으로 대표되는 거대악에 맞섰던 청렴하고 정의로운 국회의원 이성민은 죽음을 축으로 이야기가 전개됐다. 그와 뜻을 같이했던 주인공 장태준과 그의 연인인 초선 정치인 강선영과 주변 사람들의 고난과 위기 극복의 과정이 극 후반부의 긴장 구도를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 장..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30번째 이야기는 한강의 지천 중랑천을 품고 있는 서울 중랑구가 주인공이었다. 중랑구는 용마산, 봉화산, 망우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중랑천까지 더해 도시의 삭막함을 덜어주는 요소가 가득하다. 그 중랑구에서의 여정 역시 중랑천을 따라 시작됐다. 마침 중랑천 변에서는 장미축제가 한창이었다. 중랑천 변을 따라 조성된 장미 군락과 산책길, 정원들이 유유히 흐르는 중랑천과 함께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장미축제 기간 운영되는 꼬마 기차는 중랑천을 보다 편안하게 즐길 수 있게 해주었다. 중랑천변에서 열리는 장미축제는 지역민들의 노력으로 조성된 장미 군락이 조성되고 그 규모가 커지고 이제는 서울을 대표하는 또 다른 축제로 자리했다. 여름의 길목에서 장미꽃 가득한 풍경은 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휴식..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27번째 여정은 서울의 북쪽 성북구 성북동에서의 이야기로 채워졌다. 조선시대 도성의 북쪽에 자리하고 있어 그 이름이 유래된 성북동은 도성을 둘러싼 성곽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동네였다. 그 안에서 과거의 전통을 지켜나가는 이들도 함께하고 있었다. 동네 한 바퀴의 시작은 거의 200년 만에 일반 시민들에 개방된 조선시대 정원인 성락원이었다. 그 기원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성락원은 자연과 함께 하는 조선시대 정원의 멋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이었다. 과거에는 철저히 숨겨진 공간이었지만, 이제는 그 모습을 제한적이지만, 시민들이 볼 수 있게 됐다. 성북동은 성락원과 함께 조선 시대 수도 한양을 방비했던 성곽들이 동네를 둘러싸고 있다. 한양도성 순성길이라 이름 붙여진 성곽길은 그 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