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에서 불펜 투수는 정말 고단한 자리다. 로테이션이 정해져 등판 일정에 따른 컨디션을 조절할 수 있는 선발 투수와 달리 등판 일정이 불규칙하고 2경기 연속, 경우에 따라서는 3경기 연속 등판도 해야 한다. 등판하는 상황이 주자가 남겨져있거나 자신의 공 하나가 실점과 직결되는 긴장의 연속이다. 실점에 대한 부담은 정신적으로 상당한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 있다. 매 경기 불펜에서 대기하고 몸을 풀어야 하는 과정이 반복되면 체력적인 부담도 늘어난다. 그 대우가 이전보다 좋아졌다고 하지만, 선발 투수나 각 팀의 주력 타자들에 비해 각종 시장이나 연봉 협상, FA 가치 평가에서 그 순위가 밀리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불펜 투수 중 마무리 투수의 부담은 한층 더 가중된다. 최근 불펜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고 경기를..
점점 사회가 발전하면서 그에 비례해 과거의 전통과 문화가 점점 사라져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는 문화재로서 보호하지 않으면 기록물에서나 볼 수 있는 것들도 많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문화적 전통들도 힘겹게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데요. 우리나라 무형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는 남사당놀이도 그중 하나입니다. 남사당패는 과거 전국을 유랑하며 양반들을 조롱하는 등 풍자와 해학이 가득한 공연을 했습니다. 일반 백성들은 그 공연을 통해 묘한 카타르시스와 힘든 현실을 조금은 잊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 속에 남사당 공연은 민속 명절이나 특별한 날에만 볼 수 있는 공연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남사당 공연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노력이 있어 가끔씩 그 공연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언젠가 용산 국립박물관에서 보..
야구에서 투수가 빠른 공을 던질 수 있다는 건 큰 축복이다. 찰나의 순간에 투수와 타자의 승부 결과가 엇갈리는 야구의 특성상 타자가 투수의 공을 조금이라도 덜 보고 판단할 시간을 줄일 수 있다면, 투수는 타자와의 승부에서 큰 우위를 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들의 성공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빠른 공을 던질 수 있다는 장점을 성공의 결과로 만들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원하는 곳에 공을 던질 수 있는 제구력의 뒷받침이 필요하다. 빠른 공을 던지는 강속구 투수들에게는 제구가 필연적이 해결 과제다. 상당수 투수들의 이를 해결하지 못하고 만연 기대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잊혀가는 사례를 많이 봐왔다. 그럼에도 강속구 투수에 대한 기대감을 놓아 버리는 쉽지 않다. 지난 시즌..
강화도는 섬인 듯 아닌 듯 수도권에서 가까워진 곳입니다.도로 접근성이 좋아지면서 주말이면 강화도를 찾는 이들이 많습니다.그 때문에 강화지역의 명소가 SNS 등에 자주 소개되고 그곳을 찾는 이들이 늘어나곤 합니다. 강화도 남쪽에 자리한 동막해변은 서해안에서는 보기 드물게 모래사장과 개펄이 공존합니다.덕분에 여름이면 피서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룹니다.평소에도 강화도의 명소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제가 사는 김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지만 저는 이런저런 이유로 그동안 동막해변을 찾지 못했습니다. 지난 주말 그 동막해변을 찾았습니다. 2월의 동막해변은 아직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겨울의 느낌을 전해주고 있었습니다.그래도 그 바람이 한겨울과 같은 매서움은 덜해졌습니다. 겨울 느낌이 남아있는 동막해변의 이런 저런..
2019시즌 5인 선발 투수 로테이션 구성에 고심하고 있는 롯데가 불펜 투수 장시환의 선발투수 전환을 현실화할 가능성을 점점 더 높이고 있다. 프로 데뷔 이후 선발 투수로서의 경험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장시환의 주 역할을 불펜 투수였다. 이제 30살을 넘긴 투수로서는 분명 부담이 될 수 있는 일이다. 롯데는 그럼에도 장시환으로부터 새로운 가능성을 찾으려 하고 있다. 장시환의 프로 데뷔 연도는 2007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장시환은 지금 키움 히어로즈의 전신 현대 유니콘스의 신인으로 입단했다. 하지만 현대는 2007시즌을 끝으로 그 간판을 내렸고 야구 전문 기업을 표방하는 히어로즈로 그 주인이 바뀌었다. 장시환은 마지막 현대 유니콘스의 신인이었다. 이후 장시환은 히어로즈의 유망주로 팀의 성장과 함께했지..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그 의미를 되새기기 위한 여러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 세계사에서 유래를 찾기 힘든 온 국민이 하나가 되어 진행된 비폭력, 평화운동은 우리의 독립의지를 전 세계에 알리는 한편, 일제의 강압통치에 힘을 잃어가던 독립운동을 다시 촉진시키는 촉매제가 됐다. 3.1운동의 정신은 이후 임시정부를 거쳐 대한민국에까지 이어지고 있고 헌법에도 명시되어 있다. 그렇기에 3.1운동 100주년은 그 의미가 너무나 크다 할 수 있다. 역사 시사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이 3.1운동의 의미를 되새기는 코너를 2부에 거쳐 마련했다. 그 첫 순서로 김규식과 여운형 두 독립운동가의 3.1 운동을 전후한 활동에 대해 재조명했다. 이들은 1차 세계대전 종전 후 1919년부터 1920년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