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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에서 외국인 선수 제도가 생기면서 수많은 외국인 선수들이 KBO 리그에서 함께했다. 아직도 그들을 향한 시선 중 상당 부분은 스쳐 지나가는 용병 정도로 보고 있고 실제 더 나은 조건을 찾아 떠난 이들도 많았다. 몇몇 선수들은 긴 세월을 함께하면서 KBO 리그에서 상당한 커리어를 쌓기도 했다. 

수준 이하의 외국인 선수도 다수 있었지만, 리그의 수준이 올라가면서 KBO 리그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더 큰 리그에서 자신의 역량을 펼치는 외국인 선수도 늘었다. 여러 문제도 있지만, 이제는 각 구단에서 외국인 선수의 비중은 절대적이 됐다. 특히, 선발 마운드에서의 외국인 투수 2인의 활약 정도는 팀 성적과 직결되는 요소가 됐다. 나날이 떨어지는 리그 투스들의 수준과 비례해 외국인 선수에 대한 의존도도 커지고 있다. 외국인 타자 역시 중심 타선에서 그에 걸맞은 활약을 하는 팀과 그렇지 못한 팀의 공격력에 큰 차이가 생기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외국인 선수들의 국내 선수들보다 팬들과의 유대가 떨어지고 오랜 기간 함께 할 수 있는 선수라는 인식이 여전히 강하다는 점이다. 리그 수준 향상 등을 명분으로 외국인 선수 제도의 확대를 주장하는 여론도 상당하지만, 전력 강화 등 기능적 측면이 강하다. 아직은 외국인 선수는 KBO 리그에서 이방인이다. 




롯데에서 선수와 코치로 활약했던 옥스프링은 외국인 선수에 대한 인식을 긍정적으로 만들어준 선수였다. 옥스프링은 2013, 2014시즌 롯데의 선발 투수로 2년 연속 10승 이상을 달성하고 이닝 이터의 면모까지 보이며 큰 비중을 차지한 투수였다. 2015시즌 롯데와의 재계약이 불발됐지만, 그 해 KT와 계약하며 KBO 리그 커리어를 이어갔다. 상대적으로 전력이 떨어지는 신생팀의 한계에도 옥스프링은 12승 10패에 방어율 4.48, 185이닝을 소화하며 여전한 경쟁력을 보여주었다. 

이런 활약에도 옥스프링은 보다 젊고 강력한 구위의 외국인 투수를 찾는 흐름에 밀려 선수로서 KBO 리그에서의 선수 경력이 단절될 위기에 처했다. 옥스프링은 풍부한 경험과 여전한 구위, 너클볼이라는 차별화된 구종을 던질 수 있었지만, 30대 후반에 이른 나이가 걸림돌이 됐다. 결국, 옥스프링은 2015시즌을 끝으로 KBO 리그에서 선수로는 더는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 

그렇게 KBO 리그와의 인연이 끊어지는 것 같았던 옥스프링은 코치로서 그 인연을 이어갔다. 롯데는 옥스프링에게 투수 코치직을 제안했고 옥스프링은 2016 시즌부터 롯데의 투수 코치로 2018 시즌까지 활약했다. 롯데는 선수 시절 누구보다 성실하고 모범적이었고 자기 관리가 철저한 그의 코치로서의 능력을 기대했다. 

옥스프링은 메이저리그와 일본 리그, KBO 리그를 두루 경험하면서 선진 야구에 대한 이해와 지식이 있었다. 긴 부상 재활을 이겨내고 선수로 복귀할 만큼의 의지가 강한 선수였고 이 경험은 코치로서 큰 자산이 될 수 있었다. 무엇보다 KBO 리그에 대한 애정이 깊다는 점이 큰 장점이었다. 옥스프링은 2007시즌 LG에서 KBO 리그에 첫 선을 보였고 2008시즌 10승을 달성하며 주축 선수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큰 부상으로 재계약에 실패했고 부상 회복이 더디면서 잊히는 선수가 됐다. 그렇게 5년의 세월이 흘렀다. 선수로서는 황혼기에 접어든 그는 더는 KBO 리그의 외국인 선수 리스트에 없었다. KBO 리그는 그를 잊었지만, 옥스프링은 선수 복귀를 위한 노력을 계속했다. 2013년 WBC 대회는 그에게 소중한 기회였다. 자신의 조국 호주 대표팀 투수로 마운드에 선 옥스프링은 예전의 기량을 재현했다. 

마침 시즌을 준비하고 있었던 롯데는 계약했던 외국인 투수가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하면서 대체 자원이 필요했다. 시즌 개막이 임박한 시점에 당장 활용이 가능한 외국인 투수를 찾기는 어려웠다. 롯데는 옥스프링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그렇게 옥스프링과 롯데의 인연이 시작됐다. 옥스프링은 롯데에서 긴 공백을 무색하게 하는 투구를 했다. 구위는 여전히 살아있었고 체력도 문제가 없었다. 2013, 2014시즌 옥스프링은 에이스급의 활약을 했다. 모범적인 선수 생활은 그의 활약과 함께 그에 대한 팬들의 호감도를 상승시켰다. 그의 이름에서 따온 옥춘이라는 별명은 그의 애칭과 같이 통용됐다. 

그렇게 롯데에서 KBO 리그에서 이력을 다시 시작한 옥스프링은 코치로서 또 다른 이력을 롯데에서 쌓았다. KBO 리그에서 선수로 다시 코치로 활약한 사례는 히어로즈의 투수 코치로 활약하고 있는 브랜드 나이트와 함께 극히 드문 사례였다. 5시즌이었지만, 그동안 옥스프링은 다른 외국인 선수와 다른 신뢰를 함께 쌓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렇게 모범 외국인 선수였던 옥스프링을  2018 시즌을 끝으로 KBO 리그에서 더는 볼 수 없게 됐다. 옥스프링은 내년 시즌에도 롯데의 투수 코치로 활약할 것으로 기대됐지만, 스스로  그 자리를 내려놓았다. 그는 작별의 편지를 통해 KBO 리그 롯데에 대한 애정과 아쉬움, 소회를 밝혔다. 그의 결정에 대해 롯데팬들 역시 강한 아쉬움을 봉고 있다. 그는 다시 돌아올 것은 기약하긴 했지만, 금방 이루어질 일도 보이지는 않는다. 현역 선수로서의 미련이 남아있고 너클볼을 던질 수 있다는 점은 새로운 도전의 가능성을 상상하게도 한다. 

확실한 건, KBO 리그에서 옥스프링의 이름은 이제 기록으로만 남게 됐다는 점이다. 하지만 긍정의 기억을 가득 남기고 떠난 그의 발자취는 우리가 알고 있는 외국인 선수 그 이상의 무엇이 있었다. 


사진 : 롯데 자이언츠 홈페이지, 글 : 지후니 74 (youlsim7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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