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야구의 기원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1905년 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보급되었다는 설이 가장 우세하다. 이후 야구는 그들에 의해 팀이 조직되고 저변을 넓혔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인들로 구성된 팀과 조선인들로 구성된 팀의 대결이 대중들의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야구를 포함한 스포츠는 일제강점기 일본을 합법적인 방업으로 이길 수 있는 수단이었고 억압받는 국민들은 이를 통해 식민지 지배의 울분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었다.
이런 야구의 역사에서 인천은 그 중심에 있다. 역사의 기록에 초창기 인천에서 조선인들로 구성된 야구부가 있었고 이들이 일본인 팀들과 대결한 흔적이 남아있다. 인천은 조선이 가장 먼저 개항을 했던 항구로 서양의 문물이 가장 먼저 유입된 곳이었다. 이런 인천에서 야구의 역사가 시작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인천은 가장 먼저 야구의 도시라는 명칭을 들을만한 곳이었다. 이렇게 시작한 우리 야구는 고교 야구의 최전성기를 지나 1980년대 초 프로야구의 시작과 함께 크게 발전했고 최고 인기 스포츠가 됐다. 인천은 이런 야구의 역사가 시작됐다는 점에서 큰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인천 야구는 프로야구가 출범한 이후 오히려 쇠퇴기를 겪었다. 그 어느 곳 보다 야구 열기가 뜨거운 인천이었지만, 인천을 연고로 한 구단들이 쉽게 뿌리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시 인천에는 삼미 슈퍼스타스가 자리했다. 삼미 슈퍼스타즈는 인천과 경기, 강원지역까지를 연고지로 했지만, 인천을 홈경기장으로 했던 탓에 인천을 연고로 한 팀이라 할 수 있었다. 삼미 슈퍼스타즈는 인천 야구팬들의 기대와 달리 최약체 팀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열악한 선수층을 극복하기 어려웠다.
1983 시즌 재일 동포 투수 장명부를 앞세운 삼미는 우승에 도전하는 전력을 갖추기도 했다. 장명부는 그 해 30승을 기록하며 홀로 팀 마운드를 책임졌다. 그의 투구 이닝은 400이닝이 넘었다. 지금의 기준으로는 말도 안 되는 초인적인 투구였다. 하지만 장명부가 혹사의 후유증으로 급속히 내림세를 걸으면서 삼미 슈퍼스타즈 역시 최하위권으로 추락했다. 결국, 삼미 슈퍼스타즈는 18연패라는 프로야구 역사에 남은 최다 연패 기록과 함께 각종 기록에서 최악의 팀이 됐다. 1985년에는 모 기업의 재정난 등이 겹치며 최초로 매각되는 프로야구단이 됐다.
이때부터 인천 연고지 프로야구단은 혼돈의 역사가 시작됐다. 삼미 슈퍼스타즈를 인수해 창단된 청보 핀토스 역시 약팀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청보 핀토스는 3년여의 짧은 역사를 남긴 채 태평양그룹에 매각되며 사라졌다. 태평양 돌핀스로 재편된 인천의 프로야구단은 1989 시즌 인천 연고 프로야구단으로는 처음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기도 했고 1994 시즌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등 달라진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반전의 기간은 길지 않았다. 태평양 돌핀스는 1995 시즌을 끝으로 현대그룹에 매각되며 그 역사를 끝냈다.
1996 시즌부터 인천 연고의 팀은 현대그룹의 현대 유니콘스였다. 프로야구 진출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재계 서열 1, 2위를 다투던 현대 유니콘스는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단숨에 리그 정상급 팀으로 발돋움했다. 이로써 인천 연고 프로야구단의 약체 이미지는 사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현대 유니콘스 역시 인천에 완전히 정착하지 못했다. 애초 현대 유니콘스는 서울로의 연고지 이전을 원했고 2000시즌 연고지 이전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 시점에 현대그룹은 후계 구도를 둘러싼 내분이 있었고 현대유니콘스의 모기업인 현대전자, 지금의 하이닉스 반도체의 경영악화가 겹치며 재정난에 빠졌다. 이에 현대유니콘스는 서울로의 연고지 이전을 보류하고 수원을 임시 연고지로 사용하게 됐다.
이렇게 또 하나의 인천 연고팀이 떠난 자리는 SK 와이번스로 채워졌다. SK 그룹은 심각한 재정난에 허덕이던 쌍방울 레이더스를 인수해 프로야구단을 창단했고 연고지를 인천으로 했다. 쌍방울 레이더스는 전주를 중심으로 전북을 연고지로 했었다. 한때 상위권 팀으로 자리하고 했지만, 열악한 재정상황 속에 주력 선수의 현금 트레이드로 어렵게 프로야구단을 지속하는 중이었다. 1999 시즌을 끝으로 한계에 봉착한 쌍방울 레이더스는 팀 운영을 포기했고 구단 해체 후 재 창단과의 과정을 거쳐 SK 와이번스가 창단됐다.
SK 와이번스는 인천을 연고로 했지만, 쌍방울 레이더스를 그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이에 인천 야구팬들은 SK 와이번스는 인천의 프로야구단으로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인천 연고지 구단의 부침이 거듭되는 상황에서 인천의 야구 열기가 식어버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한때 야구의 역사가 시작되고 뜨거운 야구 열기로 구도라는 별칭도 있었던 인천이었지만, 프로야구 출범 이후 야구 도시의 이미지는 부산이 가져갔다.
이런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SK 와이번스는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쳤다. 연고지 선수들을 대거 영입하기도 했다. 여기에 현대식 구장인 인천 문학구장이 들어서면서 인프라가 개선됐다. 팀 성적도 상위권으로 올라서면서 인천 야구팬들의 관심도 커졌다. 인천 연고지 프로야구 팀들은 대부분 비인기 구단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SK 와이번스는 성적과 마케팅을 모두 잡을 수 있었다.
2003 시즌 한국시리즈 진출에 성공한 SK 와이번스는 김성근 감독 영입 이후 리그를 대표하는 강팀으로 자리했다. 2007 시즌부터 2012 시즌까지 SK 와이번스는 6시즌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에 성공하며 왕조 시대를 열었다. 김성근 감독의 뛰어난 지략과 벌떼 야구로 불리는 불펜을 적극 활용하는 독특한 마운드 운영, 모든 경기를 다 승리하려는 듯 매 경기 승리를 위해 집중하는 플레이는 SK 와이번스 야구를 대변했다.
이후 잠심 침체기가 있었지만, SK 와이번스는 2018 시즌 외국인 힐만 감독을 중심으로 홈런포를 앞세운 빅볼 야구로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랐고 2019 시즌에도 정규리그 2위의 성과를 남기며 강팀의 자리를 다시 찾았다. 이런 SK 와이번스의 성공은 인천 야구의 성공과도 같았다. SK 와이번스는 20년간의 노력으로 인천 연고지 프로야구단으로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2021 시즌을 앞두고 SK 와이번스의 갑작스러운 매각 소식은 큰 충격이었다. 2020 시즌 SK 와이번스는 주력 선수들의 해외 진출과 부상이 겹치는 악재 속에 정규리그 9위로 추락하는 아픔이 있었다. SK 와이번스는 이후 구단 대표이사와 단장, 감독 교체를 단행하고 팀을 빠르게 개편하면서 새로운 시즌을 준비하고 있었다. 새 시즌에 대한 기대감도 컸다. 이 상황에서 신세계 그룹의 프로야구단 인수 소식이 전해졌다.
이를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비교적 성공적인 프로야구단 운영을 했던 SK 와이번스가 매각된다는 사실은 프로야구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프로야구단 운영에 있어 모기업의 지원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언제든 어떤 구단이든 이런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프로야구 전반에 대한 위기의식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우려는 신세계의 프로야구단에 대한 적극적인 움직임으로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다. 신세계는 프로야구단을 보는 관점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신세계는 프로야구단을 그룹 홍보의 수단이 아닌 이를 통한 사업 확장과 수익 창출의 가능성을 찾으려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적극적인 투자를 마다하지 않고 있다. 단적으로 KBO 가입금까지 포함해 신세계는 SK 와이번스 인수에 1,400여 억원을 투자했다. 그만큼 프로야구단에 대한 미래 가치를 인정했다는 의미다. 또한 이번 프로야구단 매각이 기존과 달리 매각하려는 기업의 재정난에 의한 것이 아닌 매수자의 적극적인 의사에 있었다는 점도 다른 점이다.
SK 와이번스의 매각은 3월 5일 확정됐다. SK 와이번스는 2000년부터 시작한 20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프로야구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SK 와이번스 선수단은 조촐한 행사로 SK 와이번스를 그들에게서 떠나보냈다. SK는 25억원을 KBO에 쾌척하며 쫓기듯 사라진 이전 프로야구단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이제 그 자리는 신세계 그룹이 주도하는 SSG 랜더스로 새롭게 채워질 예정이다. SSG는 신세계 그룹의 온.오프로라인 사업을 통칭하는 브랜드로 미래지향적이고 역동적인 이미지를 담고 있다. 여기에 랜더스는 인천의 대표적 시설인 인천 공항에서 착안한 이름으로 착륙, 상륙의 의미를 담고 있다. 다소 관념적인 느낌이지만, 지역의 특성과 프로야구단에 대한 의지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SSG 랜더스는 스프링 캠프 기간 메이저리거 추신수를 영입하며 야구팬들의 큰 관심을 이끌어냈다. 추신수는 한국을 뛰어넘어 아시아계 선수의 메이저리그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40대의 나이로 접어들지만, KBO 리그에서 여전한 기량을 과시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추신수 역시 선수 생활의 마무리를 한국에서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욕을 보이고 있다. 부산이 고향인 그는 부산 연고의 롯데 자이언츠에 대한 강한 애정을 드러냈지만, 국내 복귀 시 지명권을 가지고 있는 SSG 랜더스의 강력한 영입 의지를 받아들였다. 1년간 27억 원의 연봉은 KBO 역대 최고 연봉이다. 이는 프로야구단 이상의 그룹 차원의 노력이 있었다 할 수 있다.
추신수의 영입으로 SSG 랜더스는 전력 강화와 함께 마케팅 면에서도 상당한 플러스 요인이 생겼다. 갑작스러운 구단 매각에 따른 인천 야구팬들의 충격도 상당 부분 사라지게 할 수 있는 일이다. 프로야구단에 대한 투자 의지의 진정성도 입증했다. 신세계 그룹은 돔구장 건립 등 추가 투자 의지도 보이고 있다. 이는 코로나 사태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프로야구 전체에 큰 활력소가 될 수 있다. 신세계의 프로야구단을 중심으로 한 사업 모델이 수익 창출에서도 성공을 거둔다면 프로야구 산업화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SSG 랜더스는 그 시작에 있어 프로야구 전체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 프로야구 출범 이후 5개 팀이 나타나고 사라졌던 인천야구에서 새로운 역사를 쓸 것이라는 기대도 크다. SSG 랜더스가 인천의 프로야구단으로 빠르게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성적과 마케팅 모든 면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을지 그들이 만들어갈 인천 야구의 또 다른 스토리가 궁금하다.
사진,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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