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역사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임금 중 정조가 있습니다. 조선 초기 세종대왕이 한글 창제와 각종 과학 발명품 등 나라의 문화, 예술을 부흥하고 전성기를 이끈 성군이었다면 정조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기울어져가는 조선의 부흥을 도모하고 변화를 꽤 한 개혁군주였습니다. 그는 유년기 그의 아버지 사도세자가 정치싸움에 휘말려 아버지 영조에 의해 사사되는 비극을 겪었고 그로 인해 세손으로 있으면서도 할아버지 영조의 끊임없는 시험과 견제,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몬 반대파들에 의해 신변을 위협을 받으며 불안한 나날을 보내야 했습니다.
정조는 힘든 시간을 견디고 견뎌 영조에 이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는 그의 정통성에 대한 비판의 중요한 소재인 죄인의 자식이라는 멍에를 뛰어난 정치 감각과 학문과 예술, 무예 등 다방면에 능통한 실력으로 극복했습니다. 그는 흔들리는 왕권을 튼튼히 했고 영조가 추진하던 탕평책을 계승해 정치의 연속성을 유지했습니다. 노론을 중심으로 한 반대파의 위협이 여전했지만, 굳건히 이를 이겨냈습니다. 그 결과 정조는 강력한 군주로서 자리할 수 있었고 그가 원하는 정치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정조에 수원은 그의 이상향을 실현하는 장소였습니다. 정조에 의해 계획도시로 건설된 수원은 선진 축조 기술이 집약된 수원 화성을 근간으로 상업과 유통이 활성화되고 선진 농사기법으로 농사를 짓는 자족도시로 발전했습니다. 또한, 정조의 친위부대 장용영을 중심으로 강력한 군대가 있는 군사도시로서의 면모도 갖추고 있었습니다. 정조는 수원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건설 후 수시로 이곳을 찾았습니다. 수원에는 그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가 있었습니다. 정조에게 수원은 그의 강력한 권력을 상징하는 장소이기도 했고 왕의 정통성을 입증하는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정조의 숨결이 그대로 담겨있는 수원, 그리고 수원 화성을 한 곳에서 이해할 수 있는 장소가 있습니다. 수원 화성 박물관이 그곳입니다. 이곳은 수원 화성의 축조와 그 배경, 당시의 상황 등을 알기 쉽게 하는 전시물들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수원 화성 박물관은 수원 화성을 살피기 전 수원 화성을 보다 흥미롭고 깊이 있게 살필 수 있는 장소였습니다. 그곳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봤습니다.
박물관 정원에 전시된 수원 화성 축조 당시 사용된 녹로, 거중기, 수레 등 공사 장비
도르래 원리는 이용한 녹로와 거중기는 무겁고 큰 돌을 쉽게 이동하게 해 공사 기간을 대폭 단축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 조선의 앞선 성곽 축조 기술을 대표하는 기계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수원 화성과 관련한 기록물들을 모아 전시하는 특별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인증서
수원화성은 축조 당시 관련 기록한 내용들을 세세히 기록해 남겼습니다. 수원화성의궤는 그 결과물로 소중한 유산으로 남아있습니다. 수원화성은 축조 후 세월의 흐름과 일제 강점기, 6.25 한국전쟁, 산업화와 도시화의 과정을 거치며 그 원형이 상당 부분 훼손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의궤가 있어 그 원형을 재현할 수 있었습니다. 이 기록물의 존재는 수원화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는 데 있어 중요한 근거가 됐습니다.
미니어처로 재현한 수원 화성의 전경
시대별 축성 기법
화성행궁
수원 화성의 시장 풍경
수원 화성은 지방에서 수도 한양으로 올라오는 길에 자리한 교통의 요지로 상업과 물류의 중심지로 발전했습니다. 정조는 나라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농업 외에 상공업 발전에서 관심이 컸습니다. 시전 상인의 독점적 권한이라 할 수 있는 금난전권을 폐지하고 누구가 상업에 종사할 수 있는 자유 시장경제의 원리를 도입한 신해통공을 단행한 것도 그 일환이었습니다.
수원 화성은 그런 정조의 경제정책을 실현할 수 있는 장소였습니다. 당연히 상업이 발전하고 시장에는 활기가 넘쳤습니다. 재현한 미니어처에서도 그 느낌이 담겨 있었습니다.
정조 개혁 정책의 또 다른 일면인 둔전제 시행, 병농 일치의 구현
정조는 군역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땅을 나눠주고 그 땅을 개간하고 농산물을 생산해 급여로 대신하도록 했습니다. 농업생산력을 높이는 한편, 군대 유지를 위한 세수 확보, 군역을 부담하는 일반 백성들의 경제적 안정을 도모했습니다.
군사 기지로서의 수원 화성
수원 화성은 정치, 경제적 목적 외에 군사적으로 중요한 장소였습니다. 수원 화성은 과학적인 설계와 축성을 통해 단단한 성곽을 구축했고 적에 대한 효율적인 방어가 가능했습니다. 정조는 수시로 수원 화성에서 그의 친위부대인 장용영을 중심으로 훈련을 하기도 했습니다. 장용영은 정조의 왕권을 지키고 강화하는 군사적 기반이었고 조선 최정예 부대였습니다. 하지만 장용영은 정조의 사후 얼마 안 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수원 화성 박물관에서는 이런 정조의 또 다른 면모를 볼 수 있습니다.
수원 화성으로 향하는 대규모 원행
정조의 꿈과 이상이 함께 하는 도시 수원 화성은 정조시대 제2의 수도 이상의 위상을 가졌습니다. 정조는 수시로 수원 화성을 찾았습니다. 그의 재위 기간 무려 13번이나 이곳을 방문했습니다. 그가 승하한 해인 1800년에도 그는 이곳을 방문했습니다. 그만큼 수원 화성에 대한 정조의 애정을 대단했습니다. 궁궐의 건축 양식과 구조를 그대로 따라 한 화성행궁은 정조의 수원 화성에 대한 각별한 마음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정조는 자신의 왕권의 안정되고 국정을 장악한 1795년 8월 대규모 원행을 단행했습니다. 그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환갑을 축하하기 목적이 주 이유였지만, 자신의 입지를 과시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었습니다. 수천 명의 인원이 동원된 이 원행길은 한양을 떠나 수원 화성까지 장관을 이뤘습니다. 보통의 임금 원행길은 백성들이 감히 접근할 수 없었지만, 정조는 백성들이 자유롭게 그 모습을 보고 즐길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는 백성과 함께 하는 임금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개혁 정치는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는 측면도 있었지만 나라를 더 부강하게 하고 백성들의 삶을 편안하게 하는 목적도 있었지만, 그는 개혁 군주이기도 했지만 애민군주이기도 했습니다.
축제
1795년 8월 정조의 화성 행차는 그 내용이 기록으로 상세히 남았습니다. 이를 근거로 현대에서 그 행사를 원형에 가깝게 재현할 수 있습니다. 그 규모나 화려함도 뛰어났지만, 섬세하고 온 백성을 배려한 구성 등의 포함된 대규모 이벤트였습니다. 그 8일간의 화성 행차는 정조의 황금시대를 상징하는 일이었습니다. 정조가 더는 죄인의 아들이 아닌 반대 정치세력까지 껴안은 진정한 조선의 왕으로 거듭났음을 온 세상에 알리는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조의 시대는 그 이후 정조의 갑작스러운 승하로 그 뜻을 다 펼치지 못하고 사라졌습니다. 그의 아들 순조가 세자로 책봉된 지 얼마 안 돼 정조가 세상을 떠나면서 어린 순조는 그의 정치적 유산을 하나도 승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순조는 그와 대척점에 있던 세력들의 대리청정을 받아야 했고 자연스럽게 정조의 유산들이 지워졌습니다. 정조의 업적 역시 역사 저편으로 사라졌습니다.
정조의 승하 이후 조선의 부흥기는 막을 내리고 외척들이 득세하는 세도정치의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정치는 실종되고 소수의 기득권 세력이 나라의 정치와 경제를 모두 장악하는 기형적인 국가 운영 시스템이 가동됐습니다. 정조 시대 조금 나아지는 듯했던 백성들의 삶도 집권층의 수탈과 부정 비리에 파묻히면서 나락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이에 더해 조선은 변화하는 세계정세를 읽지 못했고 앞선 문물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건도 마련하지 못하며 쇠락을 길을 걸었습니다. 정조시대 가능성을 보였던 진보의 흐름이 차단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훗날 우리가 조선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정조시대의 갑작스러운 종말을 아쉬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지만 정조가 남긴 유산은 각종 기록으로 남았고 그의 역량이 집약된 수원 화성도 남아 있습니다. 특히, 수원 화성은 조선의 발전된 기술과 과학이 함께 하는 상징물로 그 가치가 큽니다. 정조의 유산이기 이전에 조선의 자랑스러운 유산이기도 합니다. 이에 수원 화성을 바라보는 마음은 각별할 수밖에 없습니다. 수원 화성 박물관은 그래서 소중한 공간이었습니다.
사진,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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