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레전드 중 이만수는 그 누구보다 특이한 캐릭터의 인물이다. 헐크라는 별명이 붙었지만, 그에 대한 이미지는 거칠어 보이는 외모와 달리 과격하고 무섭기보다는 유모 감각이 있고 친근한 이미지로 기억된다. 그는 타자로서 홈런포를 양산하고 파괴력 있는 공격력을 보여주었다. 헐크라는 별명은 그의 경기력에 기인한 측면이 강하다 할 수 있다. 이만수의 포지션을 포수였다. 그는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삼성 라이온즈에서 4번 타자 겸 포수로 데뷔했다. 데뷔 시절부터 이만수는 강타자의 반열에 있었다. 프로야구 공식 경기 첫 홈런도 그가 때려냈다. 그는 프로야구 초창기를 대표하는 홈런 타자였다. 삼성은 1983년 입단한 장효조와 함께 이만수가 중심 타선에 자리하면서 공포의 타선을 구축할 수 있었다. 실제 이만수는..
장맛비가 프로야구 여름 레이스에 변수가 되고 있습니다. 비로 말미암은 경기 취소는 선발 로테이션 운영과 컨디션 조절에 어려움을 초래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선수층이 두텁지 못하고 내림세에 있는 팀들에게는 고마운 단비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중에서 장맛비를 가장 반기는 팀 중 하나는 SK일 것입니다. 그만큼 그들의 현재 상황은 최악입니다. 현재 SK는 승리의 기억마저 가물가물합니다. 지난주 SK는 주중 롯데와의 2경기를 패한 이후 주말 한화전에서 2패를 추가했습니다. SK의 연패는 7로 그 숫자가 바뀌었습니다. 순위 역시 5위로 떨어졌습니다. 이제는 5할 승률을 걱정해야 할 정도입니다. 무엇보다 올 시즌 천적 관계를 유지하던 최하위 한화에도 연패 탈출을 하지 못했다는 것은 그 충격을 더해주었습..
2,000년대 후반 프로야구 최강팀은 SK였습니다. 김성근 감독의 조련하에 SK는 한국시리즈 단골 진출팀이었습니다. 시즌 중에도 앞도적인 전력으로 타 팀을 압도한 적이 많았습니다. 김성근 감독이 지향하는 승리지향적인 플레이는 타 팀 팬들에게 비호감 이미지로 비쳐지기도 했고 타도 SK라는 공동의 목표가 형성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SK는 강했고 완벽한 팀이었습니다. 완벽하다기 보다는 가지고 있는 전력을 최대한 극대화시킨 이기는 야구에 특화된 팀이었습니다. SK 선수들의 면면을 살피면 스타플레어가 많지 않습니다. 에이스 김광현과 재간둥이 타자 정근우, 최고 포수의 자리를 여전히 지키고 있는 박경완 등이 있지만 그들 역시 SK라는 팀의 한 부분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만큼 SK는 개인보다 팀 조직력..
준 플레이오프의 향방을 결정할 3차전은 SK의 2 : 0 완승으로 끝났습니다. 양팀은 무대가 인천에서 광주로 바뀌고 야간경기로 치러진 3차전에서도 빈공에 시달렸습니다. 상대적으로 활발한 공격을 펼치던 SK는 6회초 찬스에서 2점을 얻었고 철별 불펜을 앞세워 그 점수를 끝까지 지켰습니다. 대부분이 KIA의 우세를 점쳤던 시리즈였지만 그 방향은 반대로 흘러가는 양상입니다. 이만수 감독대행의의 용병술과 투수 운용이 돋보인 한 판이었습니다. 안치용의 5번 지명타자 기용과 호투하던 선발 투수 고든을 일찍 내리고 불펜을 가동한 것 모두가 성공적이었습니다. 그동안 이만수 대형의 선이 굵은 야구에 SK 팬들조차 의구심이 많았습니다. 데이터 보다는 자신의 감과 경기 상항에 따른 용병술은 그 수를 상대에게 그대로 보여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