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자들은 무기력했고 믿었던 에이스도 무너졌다. 상대는 너무나 강했다. 결과는 0 : 8 패배, 최강야구의 프로야구팀 몬스터즈가 올 시즌 최악의 경기 내용과 함께 12라운드 상대팀 동국대학교와 1차전에서 완패했다. 이 패배로 19경기에서 13승 6패가 몬스터즈는 승률이 다시 7할 밑으로 떨어졌다. 이와 함께 몬스터즈는 20번째 경기에서 승리하지 못한다면 20경기 7할 달성 실패와 함께 애초 공약대로 방출자가 발생하게 된다. 몬스터즈와 동국대학교와의 2차전은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방출자 결정전이 됐다. 올 시즌 최대의 위기에 직면하게 된 몬스터즈다. 경기는 30도 후반의 기온과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한낮 폭염 속에 치러졌다. 40대 선수들이 다수 포함된 몬스터즈에는 부담되는 환경이었다. 여기에 팀에 활력소..

몬스터즈의 연승이 계속됐다. 몬스터즈는 시즌 12번째 충암고와의 대결에서 투. 타에서 상대를 완전히 압도하며 8 : 1로 대승했다. 이 승리로 몬스터즈는 시즌 9승 3패의 전적으로 7할 승률 유지에 청신호를 켰다. 아울러 지난 시즌 충암고에 당했던 콜드경기 패의 아픔도 조금은 지워낼 수 있었다. 충암고는 지난 시즌 몬스터즈에게 큰 아픔은 안겨준 팀이었다. 충암고는 지난 시즌 몬스터즈에게 콜드 패의 수모를 안겨준 팀이었다. 당시 충암고에는 올 시즌 신인으로 소속 팀 1군 멤버로 활약하고 있는 좌완 선발 윤영철과 포수 김동헌이 있었다. 이들은 각각 KIA와 키움의 지명을 받았고 1군에 자리를 잡았다. 윤영철과 김동헌은 몬스터즈전 승리의 주역이었고 그때 활약은 야구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참고로 충암고..

스포츠 예능의 새로운 형식을 보여준 최강야구 시즌 2가 방영을 앞두고 있다. 최강야구는 기존 스포츠 예능과 달리 신변잡기나 선수들에 대한 서사, 재미적 요소를 줄이고 더 많은 승리를 위해 싸우는 프로야구 레전드 선수들의 팀 몬스터즈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를 위해 경기에만 프로그램 분량의 대부분을 할애하고 프로야구 중계방소 이상의 물량을 투입했다. 이런 형식은 자칫 지루함으로 다가올 수 있었지만, 최강야구는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의 표정과 순간순간을 매우 세세하게 담으면서 시청자들의 몰입도를 높였다. 선수들 역시 점점 몬스터즈라는 팀의 일원으로 온 힘을 다했다. 승리에 매우 진심이고 패배에는 모두 다 분해하는 투지를 보였다. 대부분 프로야구에서 많은 것을 이룬 선수들로 경기에 대한 진지함이 떨어질 수 있었..

2018년 2월 우리나라에서는 사상 최초로 동계 올림픽이 열렸다. 그 장소는 강원도 평창군이었다. 평창은 3번의 도전 끝에 올림픽 개최권을 획득했고 훌륭히 올림픽을 치러냈다. 평창 동계 올림픽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던 남. 북 관계를 대화국면으로 전환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 또한, 멀게만 느껴지던 평창군을 한층 가깝게 느껴지게 했다. 올림픽을 전후로 조성된 고속 열차와 고속도로 등 교통망은 도시인들이 이곳을 더 편하게 찾을 수 있도록 했다. 실제 평창은 태백산맥의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어 대부분이 산지로 이루어졌고 평균 해발 고도가 600미터에 이른다. 이런 평창에 동계 올림픽은 머나먼 산천이라는 이미지에 갇혀 있던 지역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었다. 도시 기행 프로그..

충청남도 남부의 내륙에 자리한 부여군은 금강 지류의 비옥하고 넓은 평야가 있어 예로부터 농업이 흥한 풍요의 땅이었다. 금강을 따라가며 만날 수 있는 자연경관도 수려하다. 부여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건 538년 백제 성왕이 웅진, 지금의 공주에서 사비, 지금의 부여로 수도를 옮기면서부터다. 부여는 그 이후 660년 백제가 멸망할 때까지 백제의 수도였다. 사비시대 백제는 나라를 다시 부흥하고 수준 높은 문화, 예술을 발전시켰다. 비록 백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들이 남긴 각종 유적과 유물은 백제의 옛 영화를 기억하게 하고 있다. 부여 지역의 부소산성과 능산리 고분군, 정림사지, 부여 나성 등의 유적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처럼 고대 왕국 백제의 흔적을 담고..

지금의 만주 요동지역을 장악했던 고구려에게 중국 세력과의 대결은 필연적이었다. 고구려는 건국 초기과 성장기에 만리장성 넘어 중국 북방의 여러 이민족과 맞서야 했다. 그 과정에서 국가적 위기도 있었지만, 광개토대왕와 장수왕 시대를 거치며 그들의 대결을 이겨내고 요동 지역의 맹주로 자리했다. 고구려는 그들의 왕을 태왕으로 지칭하며 독자적 천하관을 유지하는 동북아시아의 강국으로 굴림했다. 하지만 중국에 통일 왕조에 들어서면서 고구려는 한차원 높은 상대와 대결해야 했다. 중국을 통일한 수나라와 당나라는 당시로는 세계 최강국의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고구려는 그들에게 쉽게 고개를 숙이지 않았고 중화사상속으로 편입되지 않았다. 이런 고구려가 중국을 호시탐탐 노리는 북방 이미족들과 연결되면 더 큰 위협이 될 수 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