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무주는 덕유산을 포함해 지역의 80% 이상이 산지로 이루어진 고원지역이다. 무주를 포함해 주변의 진안, 장수 지역은 남부 지방이지만, 이러한 지리적 특성으로 겨울이면 많은 눈이 내리는 곳으로 교과서에도 나와있을 정도로 특별한 기후조건을 가지고 있다. 또한, 청정한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에 무주는 스키 등 동계 스포츠가 활성화되어 있고 2018년 동계 올림픽을 개최한 강원도 평창에 맞서 국내 유치전을 펼치기도 했다. 이런 지역적 특성은 무주가 도시에서는 먼 오지라는 인식을 가지게 했다. 하지만 최근 고속도로가 주변에 들어오고 보다 많은 이들이 찾을 수 있는 곳이 무주이기도 하다.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115회에서는 전북 무주의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 이웃을 만났다. 여정의 ..
서울에서 옛 모습을 가진하고 있는 몇 안 되는 곳 중 서촌이 있다. 경복궁과 인왕산 사이에 자리한 서촌은 행정동으로 효자동, 청운동, 사직동 등을 포함하고 있다. 이곳은 과거 왕족들과 사대부, 중인들이 주로 거주했던 곳이었다. 일제 강점기 이후 문화, 예술인들의 거주지이자 외국인들의 거주지, 고관 대작들의 거주이기도 했다. 또한, 인왕산 계곡의 멋진 풍경도 함께 품고 있어 역사와 자연이 함께 하고 있다. 유서 깊은 동네지만, 청와대와 인접한 탓에 1960년대 이후 보안상의 이유로 각종 규제에 묶이면서 개발이 제한되고 나날이 변해가는 서울에서 소외된 지역이 되고 말았다. 서울에서 은둔이 땅이었던 서촌은 최근 삼청동 일대 한옥촌이 북촌으로 지칭되며 유명 관광지로 자리 잡은 상황에서도 그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
1980년대 제5공화국 시대의 궤적은 따라가고 있는 역사저널 그날 305회에서는 우리 정치사의 중요한 인물이었던 김영삼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관계를 다시 조명했다. 이 과정에서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에 이어서 치러진 13대 대통령 선거의 막전 막후 이야기도 함께 다뤘다. 김영삼과 김대중은 영어 약자인 YS, DJ라는 애칭으로 자주 불릴 만큼 긴 세월 정치 지도자로 그 자리를 지켰고 국민적 관심의 대상이었다. 이들은 1970년대와 80년대 독재세력에 맞선 민주화 투쟁의 역사에서 중요한 구심점이지 동반자이기도 했고 정치적 라이벌로 치열하게 대결하기도 했다. 두 정치 지도자는 14대 김영삼, 15대 김대중 대통령까지 차례로 대통령에 자리에 오르며 각각 절정을 맞이했다. 정치인 김영삼, 김대중의 남긴 유산..
제5공화국 시절의 사건 사고를 되짚어가고 있는 역사 교양 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 304회에는 1983년 10월 온 국민을 슬픔에 빠뜨렸던 아웅산묘소 테러 사건에 대해 이야기했다. 북한 특수부대의 소행으로 밝혀진 이 사건은 장기간의 해외 순방 중이던 전두환 대통령의 암살을 목적으로 실행되었지만, 전두환은 암살을 모면했다. 대신 고위 관료 17명이 목숨을 잃었고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하는 등 큰 인명피해가 있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해외 순방 외교 중 테러 사건이었다. 사건의 전모는 이랬다. 대통령 전두환은 1983년 10월 장기간 일정으로 인도와 스리랑카 등 서남아시아와 오세아니아 지역을 포함한 해외 순방을 했다. 이는 그동안 우리나라와 큰 교류가 없었던 제 3세계 ..
경기도 연천군은 휴전선과 인접하고 있어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곳으로 오랜 기간 여겨졌다. 남북 대치의 상황에서 연천은 도시화와 산업화의 흐름과 거리가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런 환경은 연천이 그 어느 곳보다 자연이 더 잘 보존되고 오래된 유적들이 그 원형을 유지할 수 있는 터전이 됐다. 연천은 과거 구석기 시대 유물과 유적부터 고구려 성곽, 더 고대의 지질 유적까지 고대의 역사를 품고 있다. 연천은 한반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터전을 잡았던 곳이었다. 그만큼 사람이 살기 좋은 입지를 갖추고 있었다. 임진강과 한탄강의 물줄기는 그 근본이었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남측 변방으로 그들의 안위를 책임지는 중요한 요지였다. 이런 연천은 6.25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시대의 흐름과 다소 동떨어진 위..
1950년 6월 25일 시작된 민족의 비극 6.25 한국전쟁은 수많은 사상자와 함께 인적, 물적 피해를 남기고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을 통해 비극의 시간을 멈췄다. 하지만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종전이라 말하기도 하지만, 당시 휴전 협정은 종전이 아닌 잠시 전쟁을 멈추는 휴전이었다. 이후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남과 북은 엄청난 군사력으로 대치중이고 크고 작은 군사적 충돌이 지속됐다. 같은 민족이지만, 우리 민족은 남북으로 갈라져 서로를 적대시하며 살아가고 있다. 6.25 한국전쟁의 중요한 원인이었던 미국과 소련, 두 강대국의 냉전체제는 그중 하나인 소련의 붕괴와 공산주의 붕괴로 사라졌지만,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여전히 철 지난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이념 논쟁이 우리 사회 상당 부분을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