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에서 투수의 보직은 선발과 불펜으로 구분된다. 불펜투수 중 마무리, 중간 셋업맨, 롱맨으로 역할이 세분되지만, 기본적으로 선발투수와 불펜투수는 그 역할이나 경기에 대하는 자세가 다르다. 충분한 휴식일이 보장되지만, 많은 이닝을 책임져야 하는 선발투수와 짧은 이닝동안 힘을 모아 던지는 불펜 투수는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투수의 분업화가 뚜럿해진 현대 야구에서 선발에서 불펜으로 불펜에서 선발로 보직을 변경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오랜 기간 그 역할을 하고 있었다면 변화가 더 어려워진다. 몸을 만드는 것부터 마음가짐도 새롭게 해야 한다. 특히나 공 하나하나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투수이기에 보직 변경은 어떻게 보면 큰 모험일 수도 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변신에 성공하며 야구 인생을 새롭게 여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많은 노력과 절실함이 있어 가능한 일이다. LG의 선발 투수 우규민은 올 시즌 불펜투수에서 선발 투수로 변신에 성공했다. 이젠 당당한 LG의 선발투수라 해도 될 만큼 그 위치도 단단해졌다. 우규민은 올 시즌 10승 8패에 방어율 3.91을 기록하며 보직변경 우려를 씻어냈다.
(불펜 투수로의 아픔 씻어내고 10승 선발 투수로 거듭난 우규민)
올 시즌 우규민이 소화한 이닝을 147.1이닝에 이르렀고 10승 중에는 완투와 완봉승이 한 번씩 있었다. 선발 투수에 필요한 꾸준함도 보여준 시즌이었다. 언더핸드 투수의 약점인 좌타자 승부에서 큰 약점이 없었다. 우규민은 LG가 가을 야구 진출의 숙원을 이루는데 큰 역할을 했다. 여름 더위가 한창이던 6월에서 8월 사이에는 2점대 방어율과 함께 안정된 투구로 사실상의 에이스 역할을 하기까지 했다. 두산과의 포스트시즌 대결에서도 호투하면서 큰 경기에도 경쟁력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선발 투수로 변신한 우규민은 2003년 LG에 입단한 이후 주로 불펜에서 활약했다. 2007시즌에는 30세이브를 기록하며 LG의 마무리 투수로 그 입지를 단단히 했다. 하지만 2007년을 기점으로 우규민은 내림세에 들어섰다. 구원 실패 횟수가 급격히 늘었다. 그에게는 어느새 불규민이라는 좋지 못한 별칭이 붙기 시작했다. 마무리 투수 자리에서도 조금씩 밀려났고 자신감도 떨어졌다.
2009시즌 3패 7세이브 방어율 5.70의 성적을 남기고 우규민은 경찰 야구단에 입단했다. 입대를 미룰 수 없었고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다. 2년간 우규민은 퓨처스 리그에서 선발 투수로서 가능성을 찾았다. 경찰 야구단의 에이스 역할을 하며 자신감도 높였다. 2012시즌 LG에 복귀한 우규민은 선발 불펜을 오가며 전천후 투수로 적응기를 가졌고 올 시즌 선발 투수로 의미 있는 한 해를 보냈다.
경기 운영능력이 좋아졌고 힘에 의존하지 않고 강약 조절이 가능해졌다. 떨어지는 변화구 제구가 잘 이루어지면서 범타 유도가 많아졌다. LG의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타선의 지원도 활발했다. 풀 타임 첫 선발 투수인 탓에 리그 막판 구위가 떨어지고 경기별로 기복있는 투구를 한다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불펜투수의 선발투수 변신 첫 시즌치곤 성공적이었다. 불펜투수로서 겪었던 마음고생을 털어낼 수도 있었다.
내년 시즌에도 우규민은 LG 선발진의 한 축으로 자리할 가능성이 높다. 잠수함 투수가 많은 LG지만 경험이나 구위 등에서 비교 우위를 보이는 것이 유규민이다. 올 시즌 경험은 더 큰 발전을 위한 밑바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억대 연봉 재진입도 예상된다. 2013시즌은 여러 가지로 우규민에게 새로운 야구인생을 여는 시간이었다. 오랜 침체기를 이겨낸 결과이기에 더 값졌다.
우규민은 20대 후반으로 아직 더 발전할 여지가 있는 투수다. 프로에서 성공하지 어렵다는 언더핸드 선발 투수라는 희소성도 있다. 많은 경험은 한 해 반짝하고 그다음 해 부진한 2년 차 징크스 가능성도 줄일 것으로 보인다. 물론, 계속된 노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긴 시간이 지나 자리한 선발 마운드의 소중함도 알고 있다. 우규민이 올 시즌 성공을 바탕으로 내년 시즌 얼마나 더 발전된 모습을 보일지 궁금해진다.
사진 : LG 트윈스 홈페이지, 글 : 심종열, 이메일 : youlsim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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