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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계약 100억 시대가 열린 프로야구지만, 이는 극소수 선수들 이야기다. 올해 FA 시장에서도 특급 선수들을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 중 상당수는 추운 가을 그리고 더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 FA 자격을 얻어 권리를 행사했지만, 이들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너무나 싸늘하기 때문이다. 보상 선수라는 제도가 선수들에게 올가미가 되고있기 때문이다. 자칫 몇몇 선수들은 FA 미아가 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런 FA 시장의 상황은 FA 권리를 행사한 것이 선수 생명을 더 단축기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올 시즌 NC의 백업 포수로 활약했던 용덕한의 전격 은퇴는 FA 제도에 대한 고민을 깊게 하고 있다. 2004년 두산에 입단해 프로선수 생활을 시작한 용덕한은 이후 롯데, kt, NC를 거치며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백업 포수로서 팀에 소금 같은 역할을 했던 선수였다. 가뜩이나 포수난이 극심해지는 우리 프로야구 현실에서 용덕한은 주전 포수의 짐을 덜어주는 가치 있는 존재였다. 



올 시즌에도 용덕한은 NC의 주전 포수 김태군과 짝을 이뤄 NC의 안방을 책임졌다. 88경기에 나선 용덕한 타율은 2할대 초반에 머물렀지만, 안정감 있는 투수 리드와 수비를 보였다. 10년이 넘는 선수생활을 하면서 쌓아온 경험과 노하우는 아직 젊은 포수들이 성장하는데 시간이 필요한 NC에 필요한 부분이었다. 특히, 포스트시즌 LG와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나온 9회 말 끝내기 안타는 숨 막히는 접전을 끝내고 NC의 한국시리즈 진출의 발판을 마련한 소중한 안타였다. 





(플레이오프 1차전 끝내기 안타 주인공이었던 용덕한)



하지만 용덕한의 선수로서 활약은 올 시즌이 마지막이 되고 말았다. 올 시즌 후 FA 자격을 얻은 용덕한은 그 권리를 행사했다. 사실 무리한 일이었다. 30대 중반을 넘긴 나이, 2할대 초반의 통산 타율에 주전으로 한 시즌도 치르지 못한 선수인 그였기 때문이었다. 그도 보상 선수로 문제로 타 팀에서 그를 영입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현실적으로 그와 계약할 수 있는 팀이 현 소속팀 NC 외에는 없다는 점도 알았을 용덕한이었다. 



용덕한으로서는 자신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선수의 권리인 FA 자격을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분명 용기 있는 일이었지만, 현실은 그에게 냉정했다. 원소속팀 NC는 그에게 선수로서 계약을 제안하지 않았다. 그는 1년 계약도 받아들 의사가 있었지만, 그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용덕한과 NC의 협상 결과는 선수은퇴와 퓨처스팀 배터리 코치로 새로운 야구인생을 여는 것이었다. 



NC는 그의 백업포수로서의 가치를 인정했지만, 그와 계약보다 신예 포수의 육성으로 방향을 틀었고 용덕한에 그와 관련한 임무를 맏겼다. 용덕한은 현역 선수의 의지를 보인 FA 신청이었지만, 그의 생각과 다른 현실속에 변화를 받아들여야 했다. 그렇게 그의 현역 선수생활은 다소 허망하게 마무리 됐다. 선수로서 가치를 인정받고 싶었던 그였지만, 그의 의지는 뜻하지 않은 결말을 맺고 말았다. 



쉽지 않은 야구 인생을 보낸 용덕한이었다. 용덕한은 두산 시절 쟁쟁한 포수들 팀에서 1, 2군을 오가며 힘겨운 엔트리 진입 경쟁을 수년간 이어가야 했다. 트레이드로 강민호를 뒷받침할 포수가 절실했던 롯데로 팀을 옮긴 이후에는 출전 기회가 늘어나며 새로운 야구 인생을 여는 듯 했지만, 신생구단 kt의 창단은 롯데와의 인연을 3년만 이어가게 헸다. 롯데는 신생 구단 우선 지명을 위한 보호 선수 명단에서 그를 제외했고 kt는 즉시 전력감인 그를 특별지명 선수로 택했다. 



아쉬움은 있었지만, 용덕한으로서는 신생 구단에서 주전 도약의 기회를 잡을 희망도 함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자리는 여전히 백업포수였다. 그나마도 kt와의 인연은 얼마 이어지지 않았다. 2015시즌 중 용덕한은 트레이드로 NC로 다시 팀을 옮겼다. 당장 백업 포수 자원이 필요한 NC의 필요에 의한 트레이드였다. 이렇게 용덕한은 포수난 허덕이는 우리 프로야구의 현실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는 선수였다. 



만약 FA 시장에서 보상선수 규정에 없었다면 타 팀 이적 가능성도 충분한 용덕한이었다. 하지만 해마다 문제점을 지적받으면서도 바뀌지 않는 규정은 그에게 큰 족쇄로 작용했다. 그의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도자로의 변신을 택했다. 이는 용덕한이 원치 않았던 슬픈 선택이었다. 타 포지션보다 선수 수명이 긴 편인 포수임을 고려하면 아쉬움이 남는 결과라 할 수 있다. 



용덕한의 사례는 아직 경쟁력이 있지만, 나이가 많은 베테랑 FA 선수들의 처지를 대변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씁쓸함을 남긴다. 용덕한은 구단의 배려로 코치로서 새로운 길을 가게 된 것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마저도 어려운 선수들은 구단의 처분만 기다릴 수밖에 없다. 선수생활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크게 불리한 계약을 받아들이거나 FA 미아가 되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선택받을 기회마저 원천 봉쇄되는 현실은 FA 계약의 본래 취지를 크게 흔드는 일이라 할 수 있다. FA 선수 용덕한의 은퇴는 보상 선수 문제를 비롯해 FA 제도에 대한 개선이라는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사진 : NC 다이노스 홈페이지, 글 : 심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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