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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에서 40대의 나이는 하나의 한계를 나타내는 숫자로 인식된다. 최근 선수 수명이 늘어나고 있지만, 40대 선수는 좀처럼 보기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이는 프로야구도 다르지 않다. 특히, 많은 공을 던져야 하는 투수라면 40대 나이는 큰 부담이다. 

하지만 KIA의 불펜 투수 최영필은 그렇지 않았다. 최영필은 40살을 넘긴 나이에 기량을 꽃피웠고 팀의 핵심 불펜투수로 자리했다. 그는 프로야구에서 귀감이 되는 선수였다. 그만큼 자기관리에 노력이 있기에 가능했던 40대 현역 선수였기 때문이었다. 2016시즌에도 최영필은 54경기 등판에 57.1이닝을 소화했고 4승 3패 2세이브 10홀드의 성적을 기록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단 8개의 볼넷만을 내줄 정도로 안정적인 투구를 했다. 최영필의 투구 내용은 어느 팀 필승 불펜에도 뒤지지 않는 기록이었다. 

성공적인 2016시즌을 뒤로하고 최영필의 불혹의 투혼은 올 시즌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였다. 선발진과 비교해 불펜진의 무게감이 떨어지는 KIA에 있어 최영필은 소중한 불펜 투수였다. 하지만 지난 후반기 입근 부상의 여파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스프링 캠프도 충실히 소화하지 못해 페이스도 늦어졌다. 많은 나이가 역시 부담이었다. 





최영필은 퓨처스 리그에서 몸을 만들었고 5월이 끝나가는 시점에 1군에 콜업됐다. 불펜 불안으로 고심하던 KIA는 컨디션이 떨어지는 젊은 불펜 투수들을 대거 2군으로 내리고 베테랑들을 1군에 불러올렸다. 최영필도 그중에 포함됐다. KIA는 지난 시즌 최영필의 투구가 재현되길 기대했지만, 최영필은 두 경기 등판에서 모두 실점하며 필승 불펜 투수로서의 면모를 보이지 못했다. 

그 두 경기 등판을 끝으로 최영필은 다시 1군 엔트리에서 그 이름이 빠졌고 은퇴를 선언했다. 여러 어려움에도 선수 생활을 이어갔던 그였기에 조금은 갑작스러운 선택으로 여겨졌다. 많은 이들인 이전처럼 최영필이 다시 돌아올 것으로 여겼지만, 자신의 공이 통하지 않음을 느낀 최영필은 그의 도전을 멈췄다. 

최영필은 40대 선수로로 살아남기까지 상당한 우여곡절을 거쳤다. 1997시즌 넥센의 전신인 현대에서 프로에 데뷔한 최영필은 트레이드로 한화로 팀을 옮긴 이후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활약했다. 화려하지 않았지만, 팀이 필요할 때 마운드에 올라 제 역할을 해냈던 최영필이었다. 

2010시즌을 마치고 최영필은 뒤늦게 FA 자격을 얻었다. 최영필은 오랜 노력의 결과를 FA 계약으로 평가받기를 기대했지만, 30대 중반을 넘어선 불펜 투수에게 보상 선수까지 내주며 영입할 만큼의 관심을 가지는 구단이 없었다. 원 소속팀 한화 역시 그가 원하는 다년 계약의 계약서를 내밀지 않았다. 결국, 최영필은 FA 미아가 됐고 한 시즌을 통째로 날리고 말았다. 그의 사례를 두고 FA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졌지만, 최영필의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 최영필은 2011시즌 KBO리그 마운드에 오를 수 없었다. 

이대로라면 은퇴의 길을 걸을 수 있는 상황에서 최영필을 포기하지 않고 해외 독립리그에서 선수생활을 하면서 복귀를 준비했다. 2012시즌 최영필은 극적으로 SK에서 선수로서 기회를 잡았다. SK에서 2012시즌 불펜 투수로서 경쟁력을 보인 최영필은 2013시즌 부진하며 재기가 힘들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2014시즌부터 KIA에서 최영필은 회춘투를 선보였다. 2014시즌 4승 2패 14홀드를 기록한 최영필은 2015시즌 5승 2패 10홀드로 KIA불펜진의 핵심투수로 자리했다. 그 사이 그의 나이는 불혹에 이르렀지만, 오히려 기량이 더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최영필은 아들뻘 되는 고졸 선수들과 경쟁을 마다하지 않았고 그 경쟁을 이겨내며 스스로를 더 발전시켰다. 철저한 몸 관리와 노력, 그를 믿은 팀의 신뢰가 함께 한 결과였다. 최영필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고 노력하면 나이에 상관없이 더 나은 경기력을 유지할 수 있음을 몸소 보여줬다. 

하지만 올 시즌 최영필은 자신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자 미련없이 선수생활을 접었다. 그렇게 프로야구 선수로서 20시즌을 보낸 최영필은 선수 이력을 마무리됐다. 강산이 두번 변하는 기간 최영필은 현역 선수로 치열하게 경쟁했고 1군 선수로 그 이름을 올렸다. 그의 동료들이 지도자로 변신하는 동안에도 최영필은 선수로서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최영필은 그의 아들과 함께 경기에 나서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낼 정도로 현역 선수로서 상당한 의지를 보였지만, 떠나야 할 때가 언제인지 알고 있었다. 

최영필은 불멸의 대기록을 남긴 스타도 아니었고 스포트라이트와는 거리가 먼 선수였다. 그의 이름 역시 잊혀질 수밖에 없는 위치다. 하지만 최영필은 그 이상의 투혼을 남기고 그라운드를 떠났다. 전력 분석원으로 새 인생을 시작하는 최영필은 오랜 기간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그만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지도자로 또는 프런트로서 상당한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최영필이 그릴 미래가 기대된다.


사진 : KIA 타이거즈 홈페이지, 글 : 지후니(심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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