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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단양] 온달 장군 설화가 함께 하는 특별한 장소 온달관광지

발길 닿는대로/여행

by 지후니74 지후니74 2021. 3. 17.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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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는 고대 역사에서 넓은 만주벌판을 호령했고 중국의 통일왕국인 수나라, 당나라와의 전쟁까지 이겨낸 동북아시아의 강국이자 자랑스러운 역사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주 영역이 북한 지역과 중국 만주지역인 탓에 그 역사의 숨결을 가까이에서 느끼기에 다소 어려움이 있습니다. 최근 고구려 역사와 관련한 유적들이 관심을 받으면서 그 역사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지만,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보다는 친숙하지 않습니다.

 

충북 단양에 가면 고구려와 가까워질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온달국민관광지가 그곳입니다. 온달 테마파크와 온달동굴과 전시관 온달산성까지 고구려 장수였던 온달 장군을 이름으로 한 각종 시설과 사극을 위한 야외 세트장 등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온달장군과 관련한 설화와 당시 시대상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담아 보았습니다.

 

 

테마파크 입구의 고구려 상, 드라마 세트장 입구에서

 

온달동굴 입구

 

꽤 긴 거리의 온달 동굴

높이가 낮은 구간이 있어 들어가기 전 헬멧 착용이 필수적이었습니다.

 

긴 세월 만들어진 자연의 작품들

 

드라마 세트장

 

과거 느낌으로 보정해본 세트장 이모저모

 

고구려 풍의 세트장

 

과거 시간 속으로

 

단양의 드라마 세트장은 그동안 여러 작품들이 촬영되었습니다. 특히, 고구려를 무대로 한 드라마가 자주 제작되었습니다. 그 때문인지 다른 사극 세트장과 다소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온달 장군 동상

 

온달 전시관

고구려의 문화와 시대상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온달장군 설화

 

삼국사기에도 기록되어 있는 실존 인물 온달은 오래전부터 구전되어 전해오는 설화가 있습니다.

 

고구려 제25대 왕 평원왕에게는 어려서부터 울기를 잘하는 딸인 평강공주가 있었습니다. 평원왕은 이런 평강공주에서 울음을 그치지 않으면 바보 온달에게 시집을 보내겠다고 놀렸습니다.

 

고구려 평양성의 가난한 집에 살고 있었던 온달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습니다. 착한 천성을 지녔지만, 가난 탓에 항상 행색이 남루하고 그 모습이 볼품없어 동네 아이들과 사람들에게 놀림을 당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온달은 웃음으로 넘겼습니다. 이에 사람들은 그를 바보 온달이라 불렀고 그 소문은 온 성안에 퍼져 모르는 이가 없었습니다.

 

평강공주는 16살이 되었고 평원왕은 딸을 고관대작의 아들과 혼인시키려 했지만, 평강공주는 아버지가 어릴 적 얘기했던 온달과 혼인하겠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이에 화가난 평원왕은 평강공주를 궁 밖으로 내보냈고 그 길로 평강공주는 온달의 집으로 찾아가 그와 혼인했습니다. 혼인 후 평강공주는 온달의 진면목을 확인하고 그가 훌륭한 무인으로 성장하도록 도왔습니다.

 

평강공주의 지원 속에 수련과 공부를 한 온달은 문무를 겸비한 인물로 변신했고 국가 주관의 사냥 대회에서 1등을 하며 평원왕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이후 온달은 중국 후주가 고구려를 침략하자 선봉에 싸워 전쟁 승리에 큰 공을 세웠습니다. 이후 온달은 장군 벼슬을 받았고 왕의 사위로 공인됐습니다. 평원왕이 승하하고 영양왕이 즉위하자 온달은 자신 군사를 이끌고 나가 신라에 빼앗긴 한강유역을 되찾아 오겠다고 했습니다.

 

왕은 이런 온달에게 군사를 내주었고 온달은 신라와 접전을 벌이다. 전사하게 됩니다. 그는 신라와의 전쟁 전 조령과 죽령 이북을 땅을 되찾지 않으면 돌아오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고 원정을 떠났습니다. 이런 뜻을 이루지 못한 원통함 탓인지 온달 장군의 시신이 있는 관은 여러 사람을 힘을 써도 좀처럼 움직여지지 않았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평강공주가 찾아와 관을 향해 돌아갈 것을 청하자 그제야 관이 움직였고 고구려로 돌아온 그는 성대한 장례 속에 영면을 했습니다.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온달의 설화입니다. 그 안에는 당시 시대상과 국제관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신분의 장벽을 뛰어넘는 온달의 성공 스토리는 고구려가 보다 열린 사회였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 멀이 보이는 온달 산성

 

온달이 전사한 곳이 서울과 구리에 걸쳐있는 아차산의 아차산성이라는 견해도 있지만, 단양 지역에는 오래전부터 온달장군이 이곳에 성을 쌓고 신라와 전투를 하다 전사했다는 이야기가 구전되어 전해졌다고 합니다. 실제 단양 일대는 고구려와 신라의 세력 다툼이 지속적으로 있었다는 역사 기록도 있습니다. 온달 산성의 축조 양식이 고구려 성과 닮아있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이런 복잡하고 전문적인 학술적 견해를 떠나서 고구려의 역사 흔적을 만날 수 있다는 게 너무 반가웠습니다. 화창한 하늘 아래에서 이 모습들을 담지 못한 게 아쉬웠지만, 흥미로운 시간의 연속이었습니다.

 

사진,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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