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이후 KBO 리그에서 대표적인 홈런 타자는 키움의 박병호였다. 박병호는 2012 시즌 31개의 홈런으로 이 부분 타이틀을 차지한 이후 2015 시즌까지 홈런 부분에서 가장 윗자리에 있었다. 2014 시즌과 2015 시즌에는 2시즌 연속 50홈런 이상을 때려내기도 했다. 이에 박병호는 리그 최고의 거포로 자리했다. 히어로즈가 상위건 팀으로 올라서는 데 있어 홈런왕 박병호의 역할은 매우 컸다. 박병호의 활약은 갈수록 외국인 선수의 비중이 커지는 리그 현실에서 외국인 타자들과의 경쟁을 이겨낸 결과로 가치가 있었다.
박병호는 대표적인 트레이드 성공사례이기도 했다. 박병호는 2005 시즌 LG의 1차 지명 선수로 입단한 유망주였지만, 좀처럼 잠재력을 폭발시키지 못했다. 1군과 2군을 오가던 그에게 2011 시즌 중 당시는 넥센 히어로즈 지금의 키움 히어로즈로의 트레이는 큰 전환점이었다. 히어로즈는 만년 유망주 박병호를 4번 타자로 고정하며 무한 신뢰를 보냈다. 이 신뢰는 곧바로 큰 성과로 나타났다. 박병호는 리그 최고의 거포로 성장했다. 그를 떠나보낸 LG는 땅을 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박병호의 반전 성공 스토리는 그의 여정을 메이저리그로 이끌었다. 2015 시즌 후 박병호는 포스팅을 통해 메이저리그 미네소타와 계약했다. 그의 꾸준한 활약과 그보다 먼저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거포 내야수로 활약한 강정호 효과, 소속 선수의 해외 진출에 적극적인 구단의 역할이 더해진 결과였다.
하지만 메이저리거 박병호는 기대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했다. 박병호는 입단 초기 홈런포를 폭발시키며 팀 중심타자로 활약하기도 했지만, 상대의 철저한 분석 속에 약점이 노출되면서 고전했다. 결국, 박병호는 2018 시즌 KBO 리그로 돌아왔다. 리그 최고 타자의 메이저리그 도전은 아쉬움 속에 마무리됐다.
2018 시즌 박병호는 그 아쉬움을 43개의 홈런포를 때려내며 날려보냈다. 그는 자신이 건재함을 보여주었다. 홈런왕 타이틀을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부상으로 많은 경기를 결장한 이후 113경기에서 이룬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거포 박병호의 존재감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박병호는 2019 시즌 부상에 시달리는 와중에도 33개의 홈런으로 홈런왕 타이틀을 차지했다. 홈런왕 박병호의 귀환이었지만, 세부 지표에서 이상 징후가 있었다.
2019 시즌 박병호는 프로야구 공인구 반발력 조정의 영향이 컸지만, 장타율이 크게 떨어졌다. 무엇보다 4할을 크게 넘어서던 출루율의 하락폭이 컸다. 볼넷과 삼진의 비율도 이전보다 더 나빠졌다. 삼진은 홈런 타자가 지불해야 할 세금이라 하지만, 거포들은 그에 비례해 볼넷도 많이 얻어낸다. 리그를 대표하는 거포들은 집중 견제를 받으면서 걸어나가는 빈도도 늘어난다. 대부분의 거포들은 높을 출루율이 뒤따른다.
장타는 많이 때려내지만, 출루율이 떨어지고 삼진 비율이 높아지면 속된 말로 공갈포라는 오명을 듣기도 한다. 2019 시즌 박병호는 그런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3할을 가볍게 넘던 타율은 2할대로 떨어졌고 출루율도 예년에 비해 그 수치가 낮아졌다. 부상 여파도 있었지만, 30대 후반으로 향하는 나이에 따른 에이징 커브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박병호라는 이름은 그에 대한 우려보다는 반등을 더 기대하게 했다. 2020 시즌 박병호는 자신의 존재감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지만, 극심한 타격 부진에 시달렸다. 고질적인 부상이 그를 더 괴롭혔다. 박병호는 부상 재활을 반복하면서 어렵게 경기에 나섰지만, 93경기 출전에 그쳤다. 타율은 2할대 초반으로 급격한 내림세를 보였다. 21개의 홈런으로 여전한 파워를 보였지만, 경기 출전수가 그전 시즌보다 크게 줄었음에도 삼진수는 비슷했다. 정확성에서 심각한 오류를 보인 박병호였다. 그에 대한 우려가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2021 시즌 박병호는 부상을 털어내고 심기일전을 다짐했다. 박병호는 개인적으로 이번 시즌 후 FA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 큰 동기부여 요소가 있었다. 소속팀 키움 역시 중심 타자였던 김하성의 메이저리그 진출에 따른 공격력 공백을 박병호의 반등으로 메울 필요가 있었다.
이런 기대는 시즌 개막 후 얼마 안가 무너졌다. 박병호는 개막 2연전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했지만, 이후 긴 부진에 빠졌다. 4월 한 달 박병호의 타율은 2할을 겨우 턱걸이했다. 홈런은 4개에 불과했고 타점도 11타점으로 기대치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 무엇보다 26개의 삼진을 당하는 동안 볼넷은 9개와 불과했다. 공을 맞히는 부분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그 중간 부상도 있었다. 박병호는 한동안 2군에서 조정기를 거쳤다.
5월 들어 박병호는 1군에 복귀했지만, 반등은 없었다. 타율은 소폭 상승했지만, 여전히 2할대 초반에 머물렀다. 5월 한 달 홈런은 1개에 불과했다. 박병호는 장타에 대한 욕심을 덜어내고 콘택트에 주력하는 타격을 하기도 하고 타격 폼을 수정하는 등 타격감 회복을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했다. 그 결과 삼진이 줄고 안타 생산이 늘었지만, 그의 명성에는 한참 거리가 있었다. 키움은 박병호의 타순을 하위 타선으로 조정하는 등 방법으로 박병호의 타격감 회복을 위한 나름의 처방을 했지만, 그 효과는 크지 않았다.
그렇게 힘겨운 2달을 보낸 박병호는 6월 들어서도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키움은 여전히 그에게 신뢰를 보내고 있지만, 6월 2경기에서 박병호는 7타석에서 삼진 4개를 기록했고 안타는 없었다. 공을 맞히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다. 박병호의 계속된 부진은 키움의 고민을 더 깊게 하고 있다.
키움은 올 시즌 팀 공격력 저하가 눈에 보이고 있다. 김하성의 공백이 크고 타격 능력에 큰 기대를 했던 외국인 타자 프레이타스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프레이타스는 에이스 브리검의 전담 포수로 활약하고 있다. 이미 키움에는 박동원, 이지영이라는 수준급 포수들이 있다. 외국인 타자의 포수 활용은 포지션 중복과 함게 효율적이지 않다. 외국인 선수 교체가 쉽지 않은 현실에서 고육지책에 가깝다.
키움은 5월 들어 마운드가 안정세를 되찾으며 반등했지만, 팀 공격력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 중심 타자 이정후가 5월부터 무서운 타격감으로 타선을 이끌고 도루 1위 김혜성이 또 다른 공격 옵션으로 등장했다. 유망주들의 성장세도 뚜렸하다. 하지만 장타력에서 아쉬움이 있다. 올 시즌 키움은 팀 타율을 물론이고 홈런수가 급감했다. 장타를 날려줘야 할 박병호와 외국인 타자 프레이타스의 부진이 중요한 원인이다. 현재의 타선으로서는 상위권으로 도약에 한계가 있다. 두 거포가 살아난다면 공격력을 한층 강해진다. 특히, 박병호의 반등이 절실한 이유다. 그가 팀에 주는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박병호는 리그 최고 타자로 지금까지 많은 이력을 쌓았다. 그에 비례해 기대치도 크다. 부진에 따른 아쉬움의 크기도 크다. 부담이 될 수 있지만, 박병호는 그런 부담감을 이겨낼 만큼의 경력이 있다. 기술적인 부분에서 부진 탈출의 해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 현재 박병호는 선구안과 콘택트 능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공을 때려내야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지만, 그것조차 어렵다. 계속된 노력에도 나아지지 않는다면 운동능력 저하 등 급격한 에이징 커브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박병호나 소속팀 키움 모두 성적에 대한 기대치를 크게 낮춰야 함을 의미한다.
올 시즌 성적을 위해 달려야 하는 키움은 박병호의 반전을 오래 기다리기 어렵다. 키움으로서는 그의 역할에 대한 고민을 할 시점이 되고 있다. 현재 모습은 선발 출전이 어렵다. 물론, 박병호는 시즌 초반 부진하다 후반기 몰아치기로 이를 극복한 사례가 있다. 아직 기대를 접기 어려운 이유다.
하지만 타격 부진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그에 대한 평가도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올 시즌 후 FA 전망도 불투명해질 수 있다. 자칫 거포 박병호의 시대가 예상보다 일찍 저물 수도 있다. 과연 박병호가 남은 시즌 그의 시대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증명할 수 있을지 확실한 건 그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사진 : 키움 히어로즈,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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