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지리산의 이야기의 중심축이었던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은 레인저 김솔이었다. 애초부터 김솔은 유력한 용의자로 주목을 받았다. 일반인들이 쉽게 믿지 않은 귀신의 존재를 확신했고 각종 사건 현장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어려서부터 지리산에 낳고 자란 탓에 산과 그 산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레인저로서 경험까지 쌓았다.
다만, 김솔이 왜 연쇄 살인사건의 범인인 되어야 했는지에 대한 동기와 이유였다. 드라마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연쇄 살인사건이 단순히 살인 충동을 못이긴 사이코 패스적인 범죄가 아닌 과거와 연결된 일임을 보여줬다. 드라마 초기에는 지리산을 배경으로 일어났던 일제강점기, 6.25 한국 전쟁 당시의 비극적 사건들을 떠올리게 했지만, 점차 1991년 지금은 폐허가 된 검은다리골 마을에서의 숨겨진 과거 그 속에 담긴 인간의 탐욕이 비극의 시작임을 보여줬다. .
김솔은 그 검은다리골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냈다. 그 마을을 대대로 산에 의지해 공동체를 구성하고 마을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었다. 보통의 사람들이 그리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평화로운 일상이 하루하루를 채워가던 마을이었다. 하지만 외부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마을 사람들을 흔들었고 마을의 평화에 균열을 발생하게 했다.
지리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산중 마을의 주민들은 그들의 생활에 있어 큰 제약을 받았다. 대대로 그들의 삶을 지탱했던 약초 채집이나, 사냥, 화전 등의 일을 할 수 없었다. 그들은 산에 의지해 살았고 산이 그들의 삶의 전부였지만, 그들의 의지와 달리 산과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산중의 삶은 거대한 자연 속 섬과 같이 변했다. 마을 주민들을 궁핍해진 생활을 벗어나기 위해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그런 마을 주민들에게 케이블카 사업을 추진하는 이가 나타났다. 그들은 마을 주민들에게 큰 보상금을 약속했다. 현재의 삶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마을 주민들에게는 솔깃한 제안이었다. 하지만 그런 마을 사람들의 마음이 한결같지는 않았다. 그 마을을 지키고자 하는 이장과 그와 함께 양봉 사업을 하던 이들은 케이블카 설치에 반대했다. 그들에게 마을은 대대로 지켜온 고향이기도 했지만, 삶의 터전이었다. 만약, 개발의 바람에 밀려 마을을 떠난다면 삶 자체가 무너질 수 있었다. 마을을 떠나 새로운 가능성을 찾으려 하는 마을 사람들과 마을에 머물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해관계는 엇갈렸고 큰 갈등으로 이어졌다. 이웃에 대한 따스한 마음은 사라졌고 서로에 대한 불신과 대립, 갈등이 자리를 잡았다.
이주를 원하는 다수의 마을 주민들은 힘을 모았고 무리한 방법으로 찬성 여론을 만들어나갔다. 그들 스스로 마을의 평화를 깨뜨렸다. 공동 우물에 동물 사체를 넣는가 하면 개발에 반대하는 마을 주민들에게는 회유와 협박을 통해 동의를 얻어냈다. 이 과정에서 이장의 배우자이나 김솔의 어머니가 다툼 과정에서 사망했다. 마을 주민들은 이 사실을 숨기고 실종 사고로 위장했다. 이렇게 마을 주민들은 살인 사건의 공범이 됐다. 범죄를 공유한 주민들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개발에 따른 보상금을 챙겨 마을을 벗어나는 게 절실했다.
마음 한편에 자리한 이기심이 그들을 지배했고 탐욕에 눈이 먼 마을 주민들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그들은 마지막까지 마을을 떠나지 않으려 했던 이장, 김솔 아버지의 양봉업을 벌들을 폐사시키는 방법으로 좌절시켰고 그와 동업관계에 있던 마을 주민 이세욱의 아버지의 뺑소니 교통사고도 진실을 은폐했다. 마을 주민들은 그 사건을 은폐하는 대가로 사고를 일으킨 김웅순의 아버지를 회유했다. 절박한 마음은 그에게 남아있던 일말의 양심마저 사라지게 했다.
탐욕의 광풍이 몰아친 마을은 과거의 사람 냄새나는 산촌이 아니었다. 그 과정에서 다수의 의견을 따르지 않은 소수자들은 철저히 소외됐고 희생됐다. 김솔의 아버지 역시 그의 아내를 잃고 그의 인생을 걸었던 양봉사업마저 실패하며 깊은 좌절에 빠져들었다. 그는 연일 환청에 시달렸고 스스로 삶을 접었다.
그렇게 아버지가 마을이 무너지는 과정을 어린 김솔은 다 지켜봤다. 그는 마음 가득 마을 사람들에 대한 깊은 원망이 쌓였고 홀로 남겨진 세상이 두려웠다. 그가 믿고 의지했던 어른들의 추악한 이면을 접한 건 큰 충격이었고 큰 트라우마를 남겼다. 이는 어른이 된 김솔을 방황하게 했다. 이런 청년을 누군가 보듬어 주고 상처를 치유하도록 도왔다면 그는 어린 시절 기억을 딛고 일어섰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검은다리골 마을의 30년 전 아픈 기억은 그대로 잊혔다. 가해 주민들과 다른 마을 주민들은 진실에 눈을 감았고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보냈다. 주민들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추진했던 케이블카 사업은 좌절됐지만, 국립공원 관리 차원에서 산중 마을이 폐쇄됐다. 주민들은 이주 지원금을 받았고 산중 마을을 떠나고자 했던 목적을 달성했다. 희망 없는 미래 대신 새로운 미래를 꿈꾸며 검은다리골 마을 주민들은 기쁘게 그들의 고향을 떠났다. 그렇게 그들의 추악한 과거는 묻힐 것 같았다.
하지만 희생자의 가족들은 달랐다. 어릴 적 아픈 기억으로 깊은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김솔은 우연히 만난 검은다리골 시절 마을 친구를 만났다. 김솔은 그가 과거 마을의 아픈 사건들을 잊고 통상적인 안부를 건네는 데 분노했다. 무엇보다 원통한 죽음을 당한 아버지를 편하게 추억하는 그에게 살인 충동을 느꼈다. 그의 충동적 행동은 살인으로 이어졌다. 산중에서 일어난 살인은 사고로 위장됐다. 김솔은 아무 의심도 받지 않았다.
이는 그를 끔찍한 연쇄 살인범으로 만들었다. 그는 산이 그를 돕고 있다는 그릇된 확신을 가지게 됐다. 유년 시절의 비극적 경험에 대한 기억은 이제 당시 마을 사람들에 대한 분노와 복수로 변했다. 복수의 방법은 살인이었다. 그는 체계적인 복수를 위해 레인저가 됐고 산을 공부했다. 완벽한 살인 계획을 짜고 이를 실행했다. 김솔은 산을 배경으로 잔혹한 복수를 이어갔다. 과거 아버지가 검은 다리골에서 뺑소니 교통사고로 억울한 죽음을 당한 이세욱도 끌어들였다. 그 둘의 범행은 완벽했다. 그들의 살인은 산중에서 사고로 바뀌었고 증거도 증인도 없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했다. 그들의 범행을 추적하는 서이강, 강현조의 존재였다. 우연한 계기로 지리산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의 환영을 보게 된 신입 레인저 강현조, 그의 선임 파트너가 된 서이강은 전혀 다른 배경에서 살았지만, 소중한 인연을 지리산에서 잃는 공통의 아픔이 있었다. 강현조는 고통스러운 환영 속 죽음을 막기 위해 지리산 레인저가 됐고 서이강은 지리산 수해로 부모님을 잃었고 이로 인해 상처 가득한 유년기를 보냈다.
지리산에 아픔을 간직한 이들은 연쇄 살인범에 맞서 위기의 사람들을 구하고 실종된 이들을 찾아 명복을 빌었다. 그 과정에서 서이강과 강현조는 연쇄살인사건이 과거 검은다리골의 아픈 과거와 연결되어 있음을 파악했다.
용의자도 압축되어 갔다.
하지만 이들이 사건의 실체에 접근할수록 그들의 위기도 커졌다. 연쇄 살인범 김솔은 이들의 움직임을 읽고 대응했다. 김솔의 함정에 빠진 서이강과 강현조는 피습을 당했다. 서이강은 하반신 마비를 강현조는 깊은 코마 상태에 빠져들었다. 이렇게 연쇄살인범은 자신의 범행을 막을 장애물을 제거했다. 그건 착각이었다.
서이강과 강현조는 포기하지 않았다. 서이강은 휠체어에 의지해 지리산으로 돌아왔고 강현조는 생령이 되어 지리산을 헤맸다. 서이강과 강현조는 시공을 넘어 소통했고 다시 사건에 다가섰다. 서로를 오해하던 동료 레인저들도 힘을 보탰다.
그들 앞에 김솔과 마을 지구대의 경찰 김웅순으로 용의자로 등장했다. 의심은 김솔에서 김응순으로 다시 김솔에게로 옮겨졌다. 사건에 접근하면서 숨겨졌던 과거의 진실도 드러났다. 김솔은 그 과거의 피해자였지만, 지금은 가해자로 변했다. 그는 산이 지산의 복수를 돕는다는 잘못된 신념으로 자신의 살인을 정당화했다. 하지만 그는 폭주했다. 복수를 넘어 자신의 범행에 접근하는 이들도 살인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렇게 그의 복수의 정당성은 사라졌다. 그는 과거 검은다리골 마을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는 자신의 잘못된 신념과 탐욕에 눈먼 연쇄 살인범일 뿐이었다.
김솔은 자신의 범죄를 숨기기 위해 증거를 인멸하고 무고한 사람들을 살해하고 함정에 빠지게 했다. 그의 동료인 레인저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지만 서이상과 강현조의 시공을 초월한 의지는 그를 점점 옥죄어 왔다. 그때라도 김솔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죗값을 치러야 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이런 김솔을 산을 더는 관대함을 보이지 않았다. 산은 김솔의 복수를 용인하는 듯 보였다. 어떻게 보면 자연의 섭리와 인간성을 저버린 검은다리골 마을 사람들에 대한 징벌이 김솔을 통해 이루어졌다. 김솔은 복수와 함께 과거 진실을 밝히는 노력을 했어야 했지만, 개인적인 복수에만 집착했다. 그의 계획대로 마을 사람들을 모두 죽인다면 진실은 영원히 묻힐 수밖에 없었다. 산이 원했던 건 진실이 드러나는 것일지도 몰랐다.
과고의 진실은 서이강과 강현조를 통해 밝혀졌다. 그들은 주도면밀한 김솔에게 매번 한 달 뒤 쳐지는 모습이었지만, 한 발 한 발 진실에 다가갔고 어두운 과거의 일면들을 밝혀냈다. 남은 건 김솔에 대한 단죄였다. 김솔은 마지막까지 저항했지만, 산의 징벌을 받고 사망했다. 그에게 밀어닥친 산사태는 김솔이 강하게 믿던 산신이 그에게 내린 징벌이었다. 그는 산이 자신을 돕는다고 했지만, 산은 김솔의 죄를 용서하지 않았다.
그렇게 거대한 비극의 폭풍은 사라졌다. 이제 사람들은 모두 일상으로 돌아갔다. 서이강과 강현조는 기적적으로 건강을 되찾았고 레인저로 산에서 재회했다. 그밖에 그들과 함께 산을 지키고 사람들을 구했던 이들도 행복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그들은 또 다른 하루하루를 시작하며 의미 있는 삶을 만들어갔다. 진한 동지애 그 이상의 감정을 공유한 서이강과 강현조 역시 특별한 인연으로 맺어질 가능성을 남겼다. 비극의 끝은 해피엔딩이었다.
이렇게 드라마 지리산은 아름다운 지리산과 연쇄 살인사건이라는 어울릴 것 같지 않았던 조합을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시간의 흐름 속에 놓여냈다. 전형적인 스토리가 아닌 사람 자체에 초점을 맞췄다. 비극의 시작은 인간의 어두운 일면이었고 사건의 해결은 인간의 선한 마음이었다. 배경이 된 지리산은 선한 인간에 시련의 시간을 주긴 했지만, 그들이 어둠을 이겨내도록 했다.
자연을 자신들 뜻대로 바꿀 수 있는 인간이지만, 각종 자연재해 등 대자연의 힘에 무력하기만 한 인간이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자연의 섭리를 깨는 일이 얼마나 큰 위험을 가져올지 느끼지만 이내 금방 잊어버린다.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기상이변은 오랜 세월 이어진 인간의 탐욕에 근거한 환경파괴가 그 원인이다.
우리는 그 과거를 잊어버리지만, 그렇게 쌓인 과거는 현재의 우리를 힘들게 하고 있다. 검은다리골 마을 사람들의 과거 잘못은 잊히는 듯 보였지만, 김솔이라는 괴물을 불어왔고 그들을 파멸로 이끌었다.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다. 매일매일 부끄럽지 않은 과거의 기록을 쌓아가야 할 필요가 있다. 과도한 PPL과 다소 부족한 완성도 등 몇몇 아쉬움이 있었지만, 여운을 남긴 드라마 지리산이었다.
사진 : 드라마 홈페이지,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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