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728x90
반응형
728x170

꾸준히 방송을 이어가고 있는 역사 예능 프로그램 벌거벗은 세계사가 세 번째 시즌을 맞이했다. 프로그램 초기 역사 고증과 진행자와 관련한 구설수 등의 악재가 있었지만, 각 주제마다 전문가들이 강의하는 형식으로 프로그램을 개편하면서 논란의 가능성을 줄이는 등 자체적인 노력 끝에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세 번째 시즌의 첫 방송인 29회에서는 2021년 해외 뉴스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던 아프가니스탄과 관련해 근. 현대사 내내 이어진 아프가니스탄의 전쟁사를 중심으로 이야기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특히, 왜 아프가니스탄이 끊임없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에 대해 살폈다. 

아프가니스탄은 중앙아시아와 남아시아, 중동과 중국 사이에 끼어있는 내륙 국가다. 국토의 대부분은 고원지대와 험준한 산악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고 비가 많지 않은 건조한 기후 지역이다. 대부분의 땅은 척박하고 물이 귀한 탓에 농경을 하기에 부적절하다. 산업적인 발전도 더디기만 하다. 그도 그럴 것이 계속되는 내전과 외세의 침략이 반복되는 혼돈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사회 시스템이 붕괴되고 사실상의 무정부 상태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아프가니스탄을 토후국이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프가니스탄은 최근 20여 년간 지역을 장악하고 통제했던 미국이 군대를 철수하면서 뉴스에 중심에 섰다. 미군의 철수와 함께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인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정권을 재 장악했다. 그 과정에 많은 아프가니스탄인들이 나라를 탈출하기 위한 필사의 노력을 하는 등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탈출 행렬에는 우리나라와 협력 관계에 있었던 아프가니스탄인들도 있었다. 이들은 외국과 협력한 이들에 대해 극심한 탄압을 가하는 탈레반이 지배하는 조국에서 살 수 없었다. 탈레반의 미국과 동맹국을 침략자로 규정하고 적대시한다. 우리 정부는 이들의 탈출을 돕기 위해 군용기를 급파하고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탈출 작전으로 수백 명의 아프가니스탄인들을 입국시키는 조치를 했다. 우리뿐만 아니라 미국 등 서방국가들도 자국민과 협력 아프가니스탄인들의 탈출을 도왔다.

 

이미지 - 픽사베이

 


하지만 그런 행운을 누린 아프가니스탄인들은 극 소수에 불과하고 상당수 아프가니스탄인들은 탈레반이 지배하는 나라에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런 불안에 더해 아프가니스탄은 세계 최 빈곤국이다. 국민들의 삶은 피폐하기만 하다. 탈레반의 집권 이후 해외 원조가 끊기면서 삶을 더 힘들어졌다. 여기에 이슬람 세력 간 무력 충돌이 계속되고 있다. 불특정 다수를 겨냥한 테러도 빈번하고 발생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인들은 신변의 안전과 생활고를 모두 건뎌야 하는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계속되는 혼란과 그에 파생되는 빈곤과 고통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은 지정학적 특성상 과거 동. 서양의 교역로였던 실크로드의 관문이었다. 지금도 아프가니스탄은 6개 나라와 국경을 접한다. 육로 교통의 요지라 할 수 있다. 실크로드가 번성하던 시기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러한 위치는 정복자들의 통로가 되기도 했다. 과거 대제국을 건설했던 페르시아, 알렉산더 대왕의 원정군, 중국은 물론이고 유라시아 지역을 장악했던 몽골제국도 아프가니스탄을 지났다. 이에 아프가니스탄을 정복자들의 고속도로로 칭하기도 한다. 이로 인해 아프가니스탄은 계속되는 외세의 침략에 직면해야 했다. 이런 상황은 통일 국가를 만드는 데 큰 장애요소가 될 수밖에 없었다. 

대신 아프가니스탄은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공존하는 땅이었다. 이슬람의 영역에 속하지만, 불교문화 유적이 곳곳에 자리한 이유이기도 하다. 고대 역사의 중요한 사료인 왕오천축국전에서는 저자인 신라 승례 혜초가 이 지역의 불교 유적을 본 기록이 있다. 하지만 이런 다양성은 나라 발전의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했다. 근. 현대사의 역사에서도 아프가니스탄은 전쟁으로 그 역사를 채웠다. 특히, 그 시대 강대국들의 침략과 이들과의 싸움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첫 번째 강대국은 영국이었다. 19세와 20세기 초반 세계 최강국이었던 영국은 당시 강하게 세력 확장을 하는 러시아와 함께 양강 체제를 구축했고 치열하게 대결했다. 해양세력을 대표하는 영국은 대양으로 진출하려는 대륙세력인 러시아의 팽창을 강하게 억제했고 곳곳에서 군사적 충돌이 일어났다. 영국이 아프가니스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중요한 식민지였던 인도 때문이었다. 

만약, 지금은 파키스탄이지만, 당시 인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을 러시아가 장악한다면 인도가 위험해질 수 있었다. 영국은 러시아 견제를 위해 아프가니스탄을 선제적으로 장악하려 했다. 영국의 침공은 전쟁으로 이어졌다. 아프가니스탄은 강하게 저항했다. 1차 영국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는 아프가니스탄이 큰 승리를 하며 영국의 의도를 저지했다.

하지만 2차 영국 아프가니스탄 전쟁에는 영국이 승리하면서 아프가니스탄은 영국의 영향력 아래 놓였다. 영국은 1893년 아프가니스탄의 협정을 통해 현재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국경선을 확정했다. 이를 통해 영국은 인도에 대한 지배권을 확고히 했다. 친 영국 성향의 아프가니스탄 정부와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했다. 비록 영국의 지배권에 속해있었지만, 아프가니스탄은 30여 년간 전쟁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다. 

1919년 큰 변화가 찾아왔다. 우리나라의 3.1 만세 운동이 일어난 해이기도 한 그 해에 아프가니스탄은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은 선언했다. 당시는 미국 대통령 윌슨이 주창한 민족자결주의의 여파로 여러 지역에서 식민 지배를 받고 있는 민족과 나라들의 독립 열기가 뜨거웠다. 물론, 독립을 할 수 있는 대부분 나라들은 1차 세계대전 패전국의 식민지에 국한됐지만, 식민 지배 체제를 벗어나려는 시대적 흐름을 거스를 수 없었다. 아프가니스탄도 일정 그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영국은 군사적으로 이를 억압하려 했지만, 긴 전쟁을 더는 수행할 수 없었고 아프가니스탄에서 물러났다. 아프가니스탄은 마침내 진정한 독립을 이룰 수 있었다. 

독립을 이뤄내긴 했지만, 아프가니스탄은 빈곤한 나라였다. 이런 아프가니스탄에 사회주의 소련이 접근했다.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에 원조를 제공하면서 그들의 영향권으로 편입했다. 이슬람 국가였던 아프가니스탄은 사회주의 국가로 자리했다. 여기에 두 번의 쿠데타를 거치며 아프가니스탄에는 친 소련 정권이 들어섰다. 

친 소련 성향의 급진파 사회주의 정권은 이슬람의 전통에 근거해 각 지역을 지배하던 토호세력과 군벌들의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았고 이슬람 전통에 반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우선 토지를 국유화했고 사유재산을 금지했다. 사회에 만연한 조혼을 금지했다. 조혼 금지 등 여성의 인권을 억압하는 전통을 금지하는 등의 조치는 긍정적 측면도 있었지만, 오랜 세월 사회 전반에 자리하던 이슬람의 전통을 부정하고 세속화는 추진한 급진파 사회주의 정권은 이슬람 전통을 중시하는 세력과의 마찰을 불러왔다.

이에 이슬람 세력들은 무장 투쟁을 전개했고 무자헤딘이라는 전사 집단을 만들었다. 이들은 이슬람의 전통을 파괴하는 세력들과의 전쟁을 성전으로 규정하고 강하게 저항했다. 사회주의 정권에 맞섰던 조직인 무자헤딘은 이후 이슬람 무장세력의 뿌리가 됐다. 

 

아프가니스탄 촌락 - 픽사베이

 


이슬람 세력의 강력한 저항에 아프가니스탄의 친 소련 정권은 소련의 군사개입을 지속 요청했다. 하지만 소련은 당장 이에 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친 소련 정권 내에서도 분열이 발생하고 서로에 대한 피의 숙청이 이어졌다. 이런 혼란 속에 소련은 비밀공작을 통해 기존의 급진파 사회주의 세력을 제거하고 새로운 친 소련 정권을 세워 아프가니스탄을 그들의 영역으로 포함했다. 이 과정에서 소련은 1979년 대규모의 군대를 파견해 무력으로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했다. 이런 소련의 조치에 미국을 포함한 서방 국가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이는 1980년 소련의 모스크바 올림픽에 미국을 포함한 서방 국가들의 보이콧을 불러왔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소련을 포함한 공산진영은 1984년 미국의 LA 올림픽을 보이콧하며 보복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새로운 세계 질서의 중심이었던 미국과 소련 두 강대국이 주도하는 냉전체제 속에서 아프가니스탄은 중요한 전장이 되고 말았다. 

소련의 지배하에서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무장세력은 끈질기게 게릴라전을 전개하며 저항했다. 소련은 최첨단 무기를 동원해 이슬람 무장세력의 소탕에 나섰지만, 험준한 산악 지형에서는 첨단 무기의 위력이 반감됐다. 이에 소련은 지속적인 군사작전과 함께 공포심을 자극하는 심리전을 전개하며 이슬람 무장세력의 와해를 시도했지만, 그들의 의도는 통하지 않았고 전쟁은 장기화됐다. 이슬람 무장세력 무자헤딘 뒤에는 소련과 대척점에 있는 미국의 지원이 있었다. 미국은 첨단 무기를 지원하기도 했고 재정적 지원과 군사교육도 지속했다. 그 과정에는 공산주의에 대한 증오심을 부추기는 심리 교육도 함께 있었다.

무자헤딘 세력이 가장 두려워하던 소련의 헬기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사용된 대공 개인화기 스팅어 미사일은 미국이 무자헤딘에 공급해 처음으로 전쟁에서 그 위력을 확인한 첨단 무기였다. 이에 더해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접하고 있었던 파키스탄도 무자헤딘을 지원했다. 파키스탄은 그들의 국경지대와 아프가니스탄에 거주하고 있는 파슈툰족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고자 했다. 파슈툰족은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은 강대국들의 대리전의 전장이 됐다. 소련은 막대한 군비와 인원을 투입했지만, 무자헤딘을 완전히 섬멸하지 못했다. 대신 막대한 인명과 물적 피해가 누적됐다. 이는 소련의 국가 재정에 큰 부담이 됐다. 결국, 소련은 협상 테이블에 나섰고 1989년 10년만에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했다. 큰 상처만 남긴 전쟁이었고 그 여파는 소련의 붕괴에 중요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영국에 이어 러시아까지 물러나면서 아프가니스탄은 강대국의 무덤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렇게 침략자를 몰아낸 아프가니스탄이었지만, 평화는 찾아오지 않았다. 소련의 철군 후 아프가니스탄은 다시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정부는 힘을 잃었고 군벌들이 득세했다. 국가 시스템은 무너졌다. 이때 새로운 이슬람 세력인 탈레반이 등장했다. 애초 이슬람 신학을 공부하는 청년들이 중심이었던 탈레반은 혼란기 질서를 회복하는데 앞장서면서 국민적 지지를 얻었다. 1994년 정치 세력화에 성공한 탈레반은 1996년 아프가니스탄의 정권을 장악했다.

탈레반의 집권은 새로운 비극의 시작이었다. 탈레반은 기존의 세속화에 역행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탈레반은 이슬람 교리의 근본주의에 근거해 수구적인 모습을 보였다. 기존의 사회 질서를 철저히 파괴했다. 금주령이 선포되고 각종 예술과 문화 활동을 억압했다. 표현의 자유는 사라졌다.

서구화된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활발히 전개되던 여성들의 사회 참여도 금지됐다. 여성들은 온몸을 가리는 히잡을 작용해야 했고 사회적인 차별을 받아야 했다. 탈레반은 이슬람의 교리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지극히 남성 우월주의적인 시각으로 통치를 했다. 이는 문화적 편협성으로 이어졌고 아프가니스탄에 있던 다수의 불교 유적지를 파괴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앞서 언급한 신라 승려 혜초가 인도를 기행하는 과정에 봤다는 거대한 석굴 유적지도 일순간에 폭파되어 사라졌다. 이 밖에 다수의 타 문화재들이 파괴되고 사라졌다. 

더 큰 문제가 등장했다. 탈레반은 이슬람 과격 무장단체인 알카에다와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했다. 알카에다는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산악 지대를 근거로 활동했다. 그들은 미국을 포함한 서방 국가들에 대한 테러를 지속했다. 2001년 9월 11일에 발생한 9.11 테러는 전 세계를 경악하게 했다. 

알카에다는 민간 항공기를 납치해 미국의 정치, 경제, 군사 시절에 대한 자살 테러를 감행했다. 테러범들인 납치한 민간 항공기는 미국의 경제 수도라 할 수 있는 뉴욕을 상징하는 쌍둥이 빌딩에 충돌했고 미군의 콘트롤 타워라 할 수 있는 펜타곤을 타격했다. 또 다른 민간 항공기는 미국의 백악관과 국회의사당을 향했지만, 기내 승무원과 승객들의 강력한 저항과 헌신으로 실패했다.

하지만 거대한 쌍둥이 빌딩은 테러 공격에 불탔고 얼마 안 가 붕괴됐다. 이 장면은 고스란히 전 세계에 생중개 됐다. 미국으로서는 지금까지 겪은 적인 없는 본토에 대한 공격이었다. 엄청난 인적, 물적 피해를 떠나 세계 최강국인 미국 역시 테러에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이 큰 충격이었다. 이는 미국의 대외 정책에 있는 큰 변화를 불러왔다. 9.11을 기점으로 미국의 현대사가 변했다고 할 정도였다. 

테러 직후 빈 라덴을 중심으로 한 알카에다는 9.11 테러가 자신들의 소행임을 밝히고 그들의 행위가 성전의 일환이었음을 주장했다. 빈 라덴은 곧바로 미국의 공적이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알카에다는 과거 소련과 아프간의 전쟁시 미국이 지원한 이슬람 무장단체 무자헤딘을 그 근거로 한다. 공산주의 소련에 대응하기 미국이 지원한 무장단체들이 이제는 미국에 큰 위협이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했다. 

미국은 즉각 보복에 나섰고 이전과 다른 형태의 전쟁에 돌입했다. 기존의 전쟁이 특정 국가에 대한 전쟁이었다면 9.11 즉후 발생된 전쟁은 테러와의 전쟁, 그 실체가 모두 밝혀지지 않은 집단과의 전쟁이었다. 미국은 알카에다의 근거지인 아프가니스탄에 협조를 구했지만, 아프가니스탄의 집권세력인 탈레반은 이를 거부했다. 미국은 거듭 전쟁 가능성을 언급하며 그들을 압박했지만, 탈레반은 알카에다와의 우호관계를 끊지 않았다. 미국은 파키스탄을 압박해 그들의 영공 사용권을 얻었고 대규모 공습과 미사일 공격을 강행했다. 미국의 목표는 알카에다였지만, 그들과 협조하는 탈레반도 공격의 대상이었다. 

결국, 아프가니스탄은 영국, 소련에 이어 또 다른 강대국인 미국과 상대해야 했다. 애초 상대가 안 되는 전쟁이었다. 미국은 개전 후 얼마 안 되는 시간에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렸다. 탈레반은 예전 소련과의 전쟁 때처럼 산악 지배로 숨어들었다. 아프가니스탄에는 친미 정권이 들어섰고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국가들이 지원이 국가 재권을 지원했다. 이에는 우러나라도 군대 파견이나 원조 등에 함께 했다. 이에 아프가니스탄은 탈레반의 억압적 통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프가니스탄 이미지 - 픽사베이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하긴 했지만, 전쟁의 중요한 명분이었던 알카에다의 수장 빈 라덴 제거에는 이르지 못했다. 빈 라덴은 수시로 은거지를 옮기며 미국의 추적은 피했다. 미국은 엄청난 현상금을 걸고 그를 추격했지만, 빈 라덴은 10년간 정체를 감추며 추격을 피했다. 

하지만 2011년 미국 정보당국은 파키스탄의 한 도시 속 저택에 은거하고 있는 빈 라덴과 그 가족들의 거주지를 확인했다. 철저히 고립된 생활을 하며 정체를 감췄던 빈 라덴이었지만, 미국의 끈질긴 추적은 피하지 못했다. 미국은 특수부대를 동원한 기습 작전으로 근거지를 급습해 빈 라덴을 사살했다. 9.11 이후 시작된 테러와의 전쟁이 종결되는 순간이었다.

빈 라덴의 사살과 함께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점령도 끝을 맺어야 했지만,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은 미국의 생각과 달리 흘러갔다. 정권에서 밀려난 탈레반은 와해되지 않았고 끈질기게 게릴라전을 전개하며 미군과 동맹군을 괴롭혔다. 탈레반은 무차별 자살폭탄 테러를 하며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미국은 막대한 군비를 쏟아부으며 탈레반의 섬멸과 아프가니스탄의 안정을 도모했지만, 밑빠진 독의 물붙기와 같은 상황이 이어졌다. 

탈레반은 험준한 산악 지형을 이용해 그들의 세력을 지키는 한편, 마약의 재료인 양귀비 재배와 유통을 통해 자금을 마련해 무장을 지속했다. 여기에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영향력 유지를 원하는 파키스탄이 그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탈레반을 은밀히 지원했다. 탈레반 세력은 더 힘을 키웠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세력을 확장했다. 미국은 2001년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후 20년간 전쟁을 지속했지만, 탈레반을 완전히 섬멸하지 못한 채 긴 전쟁의 수렁에 빠지고 말았다. 

결국, 미국은 탈레반과의 협상을 시작했다. 미국은 탈레반이 미국과 동맹국들에게 위해를 가하는 일을 하는 하지 않는다는 합의를 근거로 철군을 결정했다. 이에 대한 우려가 있었지만, 미국은 긴 시간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의 조직과 육성에 큰 노력을 한 만큼 정부군이 탈레반을 제어할 수 있다는 판단을 했다.

이는 미국만의 생각이었다. 아프가니스탄의 친미 정권은 뿌리 깊은 부정부패로 상당수 원조금과 서방의 지원금을 유용하거나 사익을 채우는 일에 사용했다. 민생은 이전보다 나아지지 않았다. 아프가니스탄의 친미 정권은 국민들의 신뢰를 잃었다. 아프가니스탄의 정부군 역시 그 여파로 제대로 된 군사조직을 갖추지 못했고 오합지졸의 모습이었다. 미군이 철수한 이후 수십만의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의 그 실체가 없었고 탈레반에 무기력하게 무너졌다. 탈레반은 큰 교전 없이 수도 카불에 입성했다. 불과 몇 달 만의 일이었다. 미국은 급히 아프가니스탄에서 발을 빼기 바빴고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부패하고 무기력하기까지 했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이 강대국의 무덤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말았다. 

탈레반의 정권 장악은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의 대규모 탈출로 이어졌다. 최근 뉴스에 나온 대로 수도 카불 공항은 나라를 떠나고자 하는 이들로 인산이해를 이뤘다. 그 과정에서 안타까운 죽음이 이어졌다. 자살 폭탄 테러로 무고한 희생자가 나오기도 했다. 이륙하는 비행기에 매달렸던 떨어져 사망하는 장면은 큰 충격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아프가니스탄 빈민촌 - 픽사베이

 


탈레반은 집권 후 이전의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였지만, 아프가니스탄 사회는 금세 과거 탈레반 집권기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하던 20여 년간 신장됐던 여성들의 권리도 사라졌다. 여성들은 과거의 억압된 생활로 돌아가는 중이다. 미국과 서방국가들에 협력한 이들에 대한 탄압이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탈레반 집권 이후 국제적인 원조가 끊기면서 민생이 더 파탄되고 사회 시스템마저 붕괴되는 상황은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에게 더 큰 고통이 되고 있다. 현시점에서 탈레반 정권은 절대 빈곤국인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을 나아지게 할 능력과 미래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에 더해 아프가니스탄의 혼란스러운 상황은 그 지역을 근거로 한 무장 테러조직들의 활동을 더 활발히 해주며 아프가니스탄을 테러의 온상으로 만들 수 있다는 우려를 커지게 하고 있다. 현재 아프가니스탄에는 과거 대규모 무장 테러 조직이었던 IS의 잔존 세력이 존재하고 있다. 그들은 탈레반은 능가하는 급진 세력으로 미국과 타협한 탈레반마저 적으로 돌리고 있다. 그들은 탈레반이 정권을 장악한 이후에도 아프가니스탄에서 자살 폭탄 테러를 지속하는 등 불안 요소가 되고 있다.

이들 외에도 다수의 테러 조직들이 아프가니스탄을 근거지로 삼고 있다. 탈레반은 이들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무장세력 간 무력 충돌을 불러오고 내전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어렵게 끝난 전쟁이 다시 시작된다면 아프가니스탄의 내정을 더 혼란하게 할 수 있다. 여기에 아프가니스탄 주변 국들 역시 이해관계에 따라 아프가니스탄에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다수를 점하는 파슈튼족과 연결된 파키스탄, 중동의 맹주를 자처하는 이란, 미군 철수 이후 탈레반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한 중국도 아프가니스탄과 연결되어 있다. 이들 국가들의 이해관계는 또 다른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 

이렇게 아프가니스탄은 대. 내외적으로 복잡한 상황에 놓여있고 불확실성이 가득하다. 탈레반은 아직 정상적인 국가 시스템을 만들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고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모습이다. 탈레반이 집권 세력으로서 역량을 보이지 못한다면 각 지역 토호들과 이슬람 무장세력, 군벌 세력들이 세력 다툼을 벌이는 혼란의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에게 가중된다. 문제는 당면한 국가적 과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그 틈에 또 다른 외세가 개입한다면 상황은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 

아프가니스탄은 계속된 전쟁과 외세의 침략이 이어지는 고난의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은 강대국들의 주도하는 근. 현대사의 흐름 속에 의도하지 않게 휩쓸렸고 큰 피해자가 됐다. 이를 해결한 리더십은 사라졌고 각 세력 간 이해다툼만 존재한다. 그 사이에서 국민들은 빈곤과 불안한 미래 속에 놓여있다. 이는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는 국가는 언제든 이런 불행 속에 빠져들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언제쯤 아프가니스탄이 긴 고난의 터널을 벗어나 평화로운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지, 아직도 그들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역량과 능력이 없다는 점이 안타깝게 다가온다.  


글 : jihuni74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댓글
반응형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