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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동해안의 남부에 자리한 동해시는 1980년 지금의 강릉에 통합된 명주군 묵호읍과  삼척시 북평읍이 통합되어 신설된 시다. 대체로 기초 자치단체의 면적이 큰 강원도지만, 동해시는 속초시와 함께 강원도에서 가장 적은 면적을 이루고 있다. 서쪽으로는 태백산맥의 줄기가 있고 동쪽으로 동해바다와 면하고 있다.

이로 인해 동해시는 멋진 바다 풍경과 산세가 함께 하는 곳이기도 하다. 묵호항은 동해시를 대표하는 항구로 최근에는 중요한 관광지가 됐다. 도시 기행 프로그램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156회에서는 동해바다와 같은 이름의 도시 동해시를 찾아 그곳의 명승지와 각자 사연을 가직한 이웃들과 만났다.

여정의 시작은 최근 동해시의 핫 플레이스로 많은 이들이 찾고 있는 묵호항이었다. 오랜 세월 항구를 지키고 있는 묵호항 등대에서 멋진 동해바다 풍경을 만났고 최근 설치된 스카이 워크 길을 걸었다. 묵호등대 일대는 오랜 기존의 오랜 마을과 새롭게 조성된 관광단지의 스카이밸리를 축으로 동해시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됐다. 그곳에서는 동해시의 과거와 현재를 함께 만날 수 있다. 잠시 묵호항의 풍경을 살피며 시간을 보냈다. 

묵호항 등대를 내려와 어시장으로 향했다. 어시장의 분주함을 뒤로하고 시장 한편에서 횟감을 써는 일을 하는 어머니를 만났다. 이제 팔순이 넘은 나이지만, 어머니는 늘 하던 대로 이른 아침부터 하루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많은 어머니들의 횟집이나 시장의 손님들, 식당 택배 등의 용도로 의뢰받는 수산물을 손질하고 있었다. 오랜 세월을 거치며 숙련된 어머니들의 실력은 빠르고 빈틈이 없었다.

 

 


그곳에서 만난 한 어머니로부터 삶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결혼 후 일찍 세상을 떠난 남편으로 인해 어머니는 생활전선에 뛰어들었고 횟감 써는 일로 가정의 생계를 유지했다. 묵호항은 그녀와 가족을 지켜준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이제 나이가 들어 일이 힘이 들기도 하지만, 자신의 평생을 바친 이곳을 떠나기 어려운 이유다. 어머니는 오늘도 그녀의 또 다른 이야기를 묵호항에서 만들어가고 있었다. 

어시장을 벗어나 시장 뒷골목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특이한 가게 하나를 만났다. 항구 골목과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빵가게였다. 일명 빵반찬 가게라고 불리는 그곳에서는 빵과 곁들여 먹을 수 있는 다양한 식재료가 함께 하고 있었다. 채소는 물론이고 바다에서 나는 명란 젓 같은 해산물도 있었다. 동해시의 특성을 살린 식재료였다. 가게의 사장님은 과거 패션 관련 일을 하다 일을 접고 부모님의 고향인 동해시에 정착했다.

그는 과거 프랑스 유학시절 그나 사람들이 주식으로 먹는 빵에 다양한  식재료를 곁들여 먹었던 기억에서 착안해 빵반찬가게를 열었다. 이 가게에서는 빵이 밥을 대신하고 있었다. 빵하면 흔히 잼이나 버터 등을 발라 먹는 게 보통이지만, 이 가게에서는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사장님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빵반찬 도시락 등 새로운 상품 개발을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었다. 자신의 과거 일과 다른 분야지만, 제2의 인생을 멋지게 열어가는 사장님을 응원하며 다시 길을 나섰다. 

동해시의 과거 정취를 간직한 묵호항 인근 산비탈의 마을을 찾았다. 논골담길이라 불리는 마을의 길을 걸으며 곳곳에 과거를 추억하거나 떠올릴 수 있는 벽화를 감상했다. 과거 묵호항을 살필 수 있는 사진들이 인상적이었다. 묵호항은 과거 시멘트와 무연탄이 오가는 항구이나 동해 바다를 대표하는 어항으로 번영을 누렸다. 논골담길을 그 시절 묵호항에서 생계를 유지하던 이들이 삶의 터전이었다.

 

논골담길 벽화 - 지후니

 

사람들이 바다에서 잡은 생선을 산비탈을 따라 옮겼는데 그 양이 많아 많은 물이 흘러 마을의 흙길을 질퍽하게 만들었다. 이에 진흙길이 논과 같이 질퍽해진다 하여 논골담길이라는 이름이 생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다. 지금은 시멘트로 포장되었지만, 과거 묵호항의 일면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다. 마을 벽화 한편에 신랑 없이 살아도 장화 없이 못 살고, 신부 없이 살아도 장화 없이 못 산다는 문구는 당시 생활상을 그대로 상징하고 있다. 

그 길을 따라 올라 정상 부근에 생선을 말리는 덕장이 보였다. 명태를 말리고 있었는데 명태 덕장 하면 추운 산바람이 부는 인제를 연상하게 되는데 동해시에서 보는 덕장이 이채로웠다. 이 덕장은 전국에서 거의 볼 수 없는 해풍으로 건조하는 덕장이었다. 이 덕장에서 나는 말린 명태는 묵호태로 불린다고 했다. 이 덕장의 주인인 어머니는 많은 나이에도 추운 날씨를 이겨내며 현장을 일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젊은 시절 남편이 세상을 떠나면서 덕장 일을 하며 가정의 생계를 책임졌다. 한참 아래 묵호항에서 덕장까지 가파른 산 비탈길을 오르내리는 일은 남자들도 하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 모진 세월을 남몰래 눈물 흘리며 견디고 또 견뎠다. 그 세월에 대한 보상으로 지금의 자리에 자신의 덕장을 열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는 혼자였지만, 지금은 장남 내외가 어머니와 함께하고 있어 외롭지도 않다. 장남 내외는 어머니의 인생의 담긴 덕장을 이어가는 게 어머니의 삶에 대한 예의이기도 했고 소중한 가업을 이어가고자 5년 전 도시에서 귀향을 결심했다. 아직 서툴고 모르는 부분이 많지만, 어머니는 든든한 아들 내외가 있어 큰 힘이 되고 있었다. 묵호항 덕장의 역사는 이렇게 대를 이어가며 지켜지고 있었다. 

 

천곡황금박쥐동굴 - 지후니

 


논골담길의 또 다른 명소를 찾았다. 나무로 만든 나무 인형들과 공예품이 가득한 가게가 그곳이었다. 뒤늦은 나이에 부부의 연을 맺은 부부가 운영하는 가게는 마치 동화나라와 같았다. 부부는 그 동화나라에 사는 사람들처럼 복장을 하고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남편은 매일매일 폐자재들을 활용해 작품을 만들고 가게 내부와 외부를 꾸미고 있었다. 그곳은 논골담길을 방문한 사람들 누구나 방문할 수 있는 곳으로 어른들은 잠시 동안 동심의 세계로 이끌고 아이들은 재미있는 경험을 하도록 해주었다. 동화나라를 꾸미며 지켜가는 이들 부부가 이곳을 오랫동안 지켜내길 기원하며 다시 길을 나섰다. 

항구와 가까운 식당 골목을 걸었다. 동해에서 나는 수산물 식당들이 곳곳에 있었다. 그곳에서 겨울에만 맛볼 수 있는 별미인 동해바다 도치 식당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복어와 닮은 생선이 도치는 강원도에서는 심퉁이로도 불린다. 과거에는 모양이 볼품없어 버려지는 생선이었지만, 지금은 귀한 생선이 됐다. 이 식당에서는 겨울 도치로 요리하는 도치 알탕이 주요 메뉴였다. 톡톡 씹히는 도치알의 식감과 김치의 조합은 알탕의 맛을 더해주는 것 같았다. 겨울 동해바다의 맛을 느끼며 새로운 여정을 향한 힘을 얻었다. 

동해시 도심으로 향했다. 아파트 단지 옆 길을 걷다. 동굴 입구가 눈에 들어왔다. 전국에서 유일한 도심 속 천연 석회암 동굴인 천곡황금박쥐동굴이었다. 이 동굴은 천연기념물인 황금박쥐가 사는 곳이기도 하고 바로 옆에 아파트 단지가 위치하는 등 일상과 함께 하는 곳이었다. 수억 년 전 생성된 이 동굴은 과거 도심 공사 과정에서 우연이 발견되었고 준비 과정을 거쳐 일반인에 개방됐다. 전체 동굴 중 일부만 일반인에게 개방되어 있다. 이 동굴은 수억 년의 세월을 거쳐 변화하는 자연의 신비를 가득 담고 있었고 그 변화는 현재진행형이었다. 도심에서 수억 년의 시간을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 신비로운 경험이었다. 

도심을 벗어나 한적한 농촌 마을로 향했다. 마을 길을 걷다가 화투 그림이 벽과 문에 그려진 집을 발견했다. 그 담벼락 위에는 재미있는 모습의 그림들이 각각의 호박돌 그려져 서 있었다. 호기심에 집에 들어서니 마을 할머니 3분이 돌 위에 그림 그리기를 하고 있었다.

 

 


할머니들의 지자체의 마을 프로젝트에 참여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이후 일상의 취미로 함께 하고 있었다. 이제는 그림에 재미가 붙고 실력도 늘면서 멋진 그림들이 그려지고 있었다. 그 그림에는 할머니들의 지난 삶과 가족들을 향한 마음, 세상을 살면서 느끼는 감정들이 담겨 있었다. 화려하지 않았지만, 그림에는 진실한 마음과 그림에 대한 열정이 함께 하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할머니들의 그림이 더없이 가치 있고 소중하게 보였다. 

여정의 막바지 전국 3대 5일장 중 하나로 손꼽히는 북평 5일장 현장을 찾았다. 5일의 기다림을 거친 시장은 활력이 넘쳤고 분주함으로 가득했다. 그 시장 한편에서 뻥튀기 기계 여러 대가 분주히 돌아가는 장소가 보였다. 쉼 없이 돌아가는 뻥튀기 가게는 손님들이 발걸음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제는 이런 장터에서나 볼 수 있는 뻥튀기 기계와 뻥 터지는 모습이 정겨웠다. 부부가 운영하는 뻥튀기 가게 바로 옆에는 양철 그릇 가득 담아주는 국수가게가 있어다. 장소를 부부는 뻥튀기 가게와 국수가게를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나름 성공한 삶을 살아가는 부부에게는 사연이 있었다. 남편은 과거 광산에서 일하는 노동자였다. 작업 도중 갱도에서 큰 사고를 겪었고 그 후유증으로 일을 그만두게 됐다. 남편이 쓰러지면서 아내는 홀로 가정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그러면서 남편의 재활을 위해 힘썼다. 아내의 헌신으로 남편은 다시 일어섰고 장터에서 뻥튀기 가게를 하면서 경제적 어려움도 극복하고 새로운 인생을 열 수 있었다. 이제 부부는 서로에게 의지하고 힘이 되며 그들 삶의 터전을 지키고 발전시켜 나가고 있었다. 위기에 굴하지 않고 서로를 믿고 역경을 극복한 부부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동해시는 과거 큰 번영을 누렸지만, 시대 흐름 속에 쇠퇴기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동해시는 다시 관광 도시로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가고 있다. 동해시만의 독특한 역사, 문화 전통과 멋진 자연경관은 시의 중요한 콘텐츠가 되고 있다. 이와 함께 오랜 세월 동해시에 터전 잡고 삶을 이어온 시민들의 면면은 동해시의 콘텐츠를 더 살찌우고 있었다. 동해바다와 같은 이름의 동해시가 넓은 동해바다처럼 크고 넓게 번영하는 도시가 되길 기원해 본다. 



사진 : 프로그램 / 지후니,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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