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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각 지자체 단위로 공연과 전시가 가능한 문화센터가 세워지고 있다. 문화생활을 위해서는 서울 등 대도시 도심을 찾아야 했던 지역민들에게는 반가운 일이다. 최근에는 그 문화센터의 규모의 커지고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콘텐츠의 질도 한층 발전하고 있다. 문화생활을 위한 선택의 폭과 시공간의 제약도 크게 줄어들었다. 

인천 부평구의 아트센터에 흥미로운 전시가 열리고 있다. '칸딘스키 모빌 체험전' 이 7월부터 시작되어 진행 중이다. '칸딘스키 모빌 체험전'은 어른들이라면 기억도 까마득한 어린 시절 요람에서 볼 수 있는 완구로 알고 있지만, 최근에는 그 기능 확대되어 인테리어 소품으로 많은 이들이 활용하고 있다. 더 나아가 기성품이 아닌 자신이 직접 생활공간을 만드는 인테리어 DIY의 중요한 요소가 되기도 한다. 

'칸딘스키 모빌 체험전'은 이 모빌을 체험하는 한편, 미술사에서 매우 중요한 화가이자 미술가, 예술이론가, 종합 예술인이었던 칸딘스키의 작품과 그의 생애를 함께 살필 수 있다. 칸딘스키는 20세기 시작된 현대 추상미술의 원조로 알려져 있고 현대 추상작품을 처음 그린 작가로도 유명하다. 그의 작품은 간결하면서도 기하학적이고 잘 정돈된 듯하면서도 색이 어지러운 듯 조화를 이루고 있다. '칸딘스키 모빌 체험전'은 미술사의 흐름을 함께 알게 하는 시간이었다.

 

 

 

 

 

전시가 열리는 부평 아트센터 갤러리 꽃누리

 

 

칸딘스키 초상

 

 

전시관 안내도

 

 

기념품 판매숍

 

 

도슨트가 안내하는 칸딘스키 작품

 

 

칸딘스키는 1866년 러시아에서 태어나 1944년 프랑스에서 세상을 떠났다. 생의 시작과 끝이 다르다. 그의 생이 결코 순탄치 않았고 여러 변화 속에 놓여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러시아에서 귀족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전제 군주정이 강력히 시행되는 러시아에서 귀족은 안락한 삶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양질의 교육을 받았고 법학과 경제학을 공부하며 상류사회의 일원의 되기 위한 준비과정을 거쳤다. 그 중간 귀족 집안 간 정략결혼으로 인해 사촌과 결혼해야 했다. 

경제적으로 윤택했을지 모르지만, 그의 유년기 성장 과정은 불행했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가 그를 떠났고 틀에 박힌 삶에 갇혀 살아야 했다. 그는 예술적 재능이 있었지만, 이를 대놓고 표출할 수 없었다. 스스로 그와 관련한 공부를 해야 했다. 그는 귀족이었지만, 그 삶이 그에게는 감옥과도 같은 삶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과정에서 그는 예술에 관한 연구와 함께 작품 활동을 했다. 

 

 

칸딘스키 연표

 

 

칸딘스키가 예술가로서의 삶을 살게 된 건 독일에서 살게 되면서부터였다. 세계 각국을 여행하며 예술적 영감을 얻은 칸딘스키는 독일에 정착하면서 미술을 공부하고 예술가의 길을 걷게 된다. 그는 인상파의 대표적 화가인 모네의 작품을 통해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이후 그는 사랑하는 이를 만나면서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한다.

그 여인은 그보다 훨씬 나이 어린 여성이었지만, 사랑에는 큰 장애가 되지 않았다. 그는 전 부인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재혼했다. 이 시기 그는 당대 예술 사조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의 작품은 추상화와 거리가 멀었다. 인상파 화가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말 타는 연인

 

 

다채로운 삶

 

 

보트가 있는 가을의 정경

 

 

칸딘스키의 초기 작품은 그가 태어난 러시아를 배경하는 작품이 많았다. 그는 주 활동 무대가 독일이었지만, 러시아를 잊지 않았다. 그는 러시아의 다양성을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몽골족의 피가 섞여 있었고 어머니는 독일계 여성이었다.  그의 초상을 보면 칸딘스키의 모습은 동양적인 느낌이다. 

'말 타는 연인'은 배경에 모스크 건물이 보이고 말을 탄 여인들이 러시의 전통 복장을 입고 있다. 연인은 칸딘스키와 그의 애인으로 사랑하는 이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다채로운 삶'은 그가 살았던 시대 러시아의 여러 모습을 압축하고 있다.

칸딘스키는 독일에서 활동하다 러시아로 귀환해 러시아의 문화 예술 부분에서 활동했다 그 기간 러시아는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고 전제 군주정이 무너지는 격변기였다. 그는 러시아의 변화를 직접 경험했다. '다채로운 삶' 1907년 초반에 그려진 작품인데 러시아의 명암을 담고 있다. 모스크 건물과 러시아 정교회 주교, 가난한 이들과 부자, 몽골 문화의 영향을 받은 러시아를 상징하는 말 타는 병사, 자식의 없었던 삶의 허전함을 달래주었던 그의 반려동물 고양이, 전제 군주정에 저항하여 궐기하는  민중들이 모습이 있다.

그는 그 시대 지식인으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비록 귀족이었지만, 러시아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그림에서 그의 사회적 인식을 보여줬다. 실제 러시아는 사회주의 혁명을 거치며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로 변신했다. 이런 변화 속에 칸딘스키는 러시아에서 생활할 수 없었고 다시 독일로 향했다. 다시 돌아온 독일에서 칸딘스키는 추상 화가로서 그의 작품세계를 새롭게 했다. 

 

 

칸딘스키의 초상화

 

 

그는 독일에서 자신의 예술관을 확고히 하고 추상화라는 새로운 미술 사조를 열었다. 그의 작품은 기존 미술작품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것이었다. 그는 특히, 점과 선, 면을 강조했다. 그림의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자를 이용하기도 했다. 마치 반듯한 도형을 그리 듯 보였다. 이를 두고 미술계의 비판도 있었지만, 그는 그의 작품관을 지키고 오히려 더 발전시켰다. 


그는 1911년부터 1914년 사이 청기사파라는 표현주의 화풍의 그룹을 만들었다. 그 그룹은 얼마 안 가 해체됐지만, 칸딘스키는 표현주의를 넘어서는 추상화를 창시했다. 그는 기존 그림이 눈에 보이는 사물과 풍경 등을 그렸다면 추상화는 눈에 보이지 않는 소리와 보이지 않는 빛, 생각과 순간의 감정까지 그려내려 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그리는 과정에서 그림은 도형화되고 기하학적으로 변했다. 그의 그림은 현대 디자인의 시초이기도 했다. 

 

 

생의 말년에 그린 작품 블로 스카이

 

 

칸딘스키는 조국 러시아에서도 정착하지 못했고 독일에서 활동하며 독일 예술가로서 명성을 날렸다. 그는 독일 시민권을 획득해 독일 국민이 됐다. 칸딘스키는 건축과 예술을 함께 하는 종합 예술 학교인 바우하우스의 교수로 재직하며 후진을 양성하고 그의 미술 이론을 연구하고 완성했다. 

하지만 독일에서의 삶도 행복으로 채워진 건 아니었다. 나치가 독일의 권력을 장악하고 사회 전반을 지배하면서 그의 작품과 예술은 퇴폐예술로 낙인찍히고 배척됐다. 그가 교수로 재직하던 종합 예술학교 바우하우스도 폐쇄됐다. 그에게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독일에서 그는 예술가로서의 삶을 살 수 없었다. 그는 프랑스로 떠났고 프랑스 국민으로서 생의 말년을 보냈다. 그 삶도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나치가 프랑스를 점령하면서 순탄했다 할 수 없다. 

생의 끝자락에서 칸딘스키는 '블루 스카이'를 완성했다. 그 그림에는 푸른 하늘과 그 하늘을 나는 듯 한 여러 모습의 캐릭터와 같은 물체들이 있다. 정치적, 사회적 변화와 전쟁을 겪으며 국적을 옮겨야 했던 그는 상황 변화에 따라 예술가로서의 삶에 제약을 받았다. 이 그림은 그의 자유로운 작가로서의 삶을 표현한 것일지도 모른다. 또는 전쟁에 고통받는 세상의 평안함을 기원하는 작품일 수도 있다. 

 

 

그의 작품관을 보여주는 전시실

 

 

점과 선, 면, 그리고 소리를 구현하고자 했던 칸딘스키의 예술관을 상징하는 전시실을 지나 마지막 체험 장소로 향했다. 

 

 

모빌 만들기 체험실

 

 

모빌 만들기

 

 

작품을 살핀 후 다양한 모습의 모빌을 관람객이 직접 만드는 체험을 할 수 있었다. 관람객들은 준비된 세트를 현장에서 만들 수도 있고 추가 비용으로 소품을 더하면 더 특징 있는 모빌 소품을 만들 수도 있었다. 포장이 가능해 집에서 만드는 것도 가능했다. 

어른들은 추억을 소환하게 하고 아이들에게는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모빌의 어원은 최근 중요한 용어가 된 모바일과 같다. 모빌은 가느다란 실, 철사 등을 이용해 쇳조각이나 나뭇조각 최근에는 플라스틱 등의 조각을 매달아 균형을 이루게 하는 작품을 말하다. 모빌은 균형과 함께 순간순간 소리를 내며 움직임을 가진다. 유아기 때 모빌을 보면서 시각적 훈련을 할 수도 있다. 1923년 조각가 알렉산더 콜더가 '오브제 모빌'이라는 작품을 발표하면서 이름이 처음 사용됐다고 전해진다.

모빌은 움직이는 조각품의 의미도 가질 수 있다. 이는 소리와 마음의 생각과 감정 등 인간 내면의 보이지 않지만, 복잡 미묘한 움직임을 표현하려 했던 칸딘스키의 작품세계와도 통하는 부분이 있다. 모빌을 그 조합에 따라 추상적인 모양으로도 창조가 가능하다. 자신의 성향에 따라 다양하게 모습을 바꿀 수 있기도 하다. 

 

 

전시 홈페이지

 



같은 어원에서 파생된 모바일은 정보통신 기기 중 이동성을 가진 것을 통칭한다.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태블릿 PC 등도 이에 포함된다. 최근에는 그 범위가 확대되어 자동차 등 이동 수단에도 IT 기술 등이 접목되면서 모빌리티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다. 즉, 모바일에는 동적 움직임이라는 큰 의미가 있다.

이는 모빌 그리고 칸딘스키 작품이 하나의 중요한 끈으로 연결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칸딘스키의 시대를 앞서가는 사고와 예술관은 새로운 시대를 열가는 데 있어 중요한 수단인 모바일과 시대정신이 크게 다르지 않다. '칸딘스키 모빌 체험전'은 그 점에서 예술의 사회적 연결성을 고민하게 하고 재미를 함께 할 수 시간이었다. 



본 게시글은 체험 이벤트를 통해 초대권을 제공받아 방문하여 작성하였습니다.



사진,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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