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이 마무리되어 가는 시점에 큰 트레이드가 성사됐다. KT의 중심 타자 박병호와 삼성의 중심 타자 오재일이 맞 트레이드가 발표됐기 때문이다. 두 선수는 1986년생 동갑으로 올 시즌이 FA 마지막 해라는 공통점이 있다. 무엇보다 리그에서 손꼽히는 거포로 활약하며 남다른 커리어를 쌓아오기도 했다. 반대로 올 시즌 모두 부진하다는 공통점도 있다.
중량감 있는 선수들의 트레이드지만, 보다 더 시선이 쏠리는 건 박병호다. 박병호는 이승엽에 이에 리그를 대표하는 홈런 타자였고 수차례 홈런왕 타이틀을 차지하기도 했다. 또한, 길지 않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 이력도 있다. 박병호는 LG에서 프로에 데뷔했지만, 만년 유망주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다 키움에 트레이드되면서 잠재력을 폭발시키고 기량이 만개한 대표적인 트레이드 성공 사례이기도 하다.
이에 박병호는 키움의 프랜차이즈 선수라는 인식이 강하다. 박병호가 전성기를 보내던 시절 키움은 상위권 팀으로 완벽하게 자리했다. 또한, 박병호는 메이저리그 포스팅을 통해 키움에 막대한 포스팅 비용을 안겨 주기도 했다. 이후 KBO 리그로 복귀해 키움의 중심 타자로 꾸준한 활약을 했다.
하지만 그도 세월의 무게를 완전히 이길 수 없었다. 30대 후반의 나이로 접어들면서 박병호는 서서히 에이징 커브의 조짐을 보였다. 홈런 수가 30개 이상에서 20개 수준으로 떨어졌고 타율은 떨어지고 삼진 비율을 더 높아졌다. 홈런을 위해 삼진은 지불해야 할 비용이고 거포의 숙명이라 할 수 있지만, 늘어나는 삼진은 홈런의 효율성을 떨어뜨렸다.
KT에서 화려하게 부활한 홈런왕 박병호
2021 시즌 후 박병호가 FA 자격을 얻었지만, 그에 대한 시장이 반응이 뜨뜻미지근한 이유였다. 20개 홈런이 가능한 타자이고 화려한 커리어로 마케팅적 가치고 큰 박병호였다. FA C 등급으로 보상 선수 부담도 없었다. 하지만 점점 내림세를 보이는 타격은 미래 가치 평가를 부정적으로 만들었따다. 막대한 보상금도 걸림돌이었다. 원 소속팀 키움 역시 냉정했다.
이 시점에 KT가 박병호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를 영입했다. KT는 막대한 FA 보상금에 3년간 최대 30억 원을 박병호에게 투자했다. 2021 시즌 정규리그, 한국 시리즈 동반 우승 팀 KT는 계속 윈나우를 지향하는 중이었고 팀 타선의 중심을 잡아줄 상징성 있는 타자가 필요했다. 이를 통해 간판타자 강백호의 부담을 덜어주려 했다.
KT의 박병호 영입에 대해 당시로는 부정적 평가가 많았다. 박병호의 반등을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박병호는 거짓말처럼 되살아났다. 2022 시즌 박병호는 35홈런 98타점을 기록했다. 4할대 초반으로 떨어졌던 장타율로 5할을 넘겼다. 박병호는 그 해 KBO 리그 역사상 최고령 홈런왕 타이틀을 차지했다. 홈런왕의 화려한 귀환이었다.
무엇보다 박병호는 KT가 간판타자 강백호의 부상과 외국인 타자의 부진 등 부상 도미노 속에서 타선 구성마저 힘겨운 상황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며 타선을 이끌었다. 보이는 성적 외에 팀 기여도가 매우 컸다. 비록 KT는 2022 시즌 최종 4위에 머물렀지만, 시즌 초반 극심한 부진을 극복한 성과였고 그 중심에는 박병호가 있었다.
2023 시즌 박병호는 부상이 겹치면서 이전 시즌만큼의 활약을 하지 못했지만, 18개의 홈런에 87타점으로 팀 타선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시즌 중 부상으로 경기 출전이 힘든 상황에서도 팀 순위 경쟁이 급한 팀 상황을 고려해 출전을 강행하는 강한 의지도 보였다. 포스트시즌에서도 박병호는 중심 타자로 KT의 한국 시리즈 진출을 이끌었다.
극심한 부진에 빠진 2024 시즌
이렇게 성공적인 시즌을 KT에서 보낸 박병호였지만, 올 시즌 박병호는 극심한 타격 부진에 주전 경쟁에서도 밀리는 모습을 보였다. 박병호는 1할대 빈타에 허덕였고 홈런이나 타점 생산도 크게 줄었다. 그 사이 잠재력을 폭발시키지 못하던 문상철이 새로운 팀의 중심 타자로 급부상했다. 문상철은 박병호를 밀어내고 주전 1루수로 출전하는 기회가 늘었다. 어느새 박병호는 백업 1루수, 대타 요원으로 역할을 축소됐다.
시즌 초반 부진에 빠진 KT가 팀을 개편하면서 강백호를 전격적으로 포수로 기용하면서 박병호의 입지는 더 줄었다. KT는 강백호를 일주일에 한두 번 선발 포수로 기용하고 그 외 경기는 주로 지명타자로 기용했다. 강백호의 수비 부담을 덜어주고 포수로서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하는 시도였다. 이는 강백호가 타격에서 괴물 모드를 회복하며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이는 박병호와 강백호, 새로운 중심 타자 문상철의 공존을 더 어렵게 했다. 박병호는 강백호가 선발 포수로 출전하는 경기에서나 선발 출전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백업과 대타 전문 요원의 역할은 박병호에게는 낯설었다. 박병호는 타격감이 늦게 올라오는 선수이기도 했다. KT의 급한 팀 상황은 박병호가 회복할 충분한 시간을 제공하기 어렵게 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박병호는 적응하지 못했다. 내적 갈등도 커질 수 있었다.
이 시점에 박병호의 웨이어 요청, 방출 요청 관련 기사가 일부 언론에서 나왔다. 박병호가 보다 많은 출전 기회를 위해 KT에 직접 방출을 요청했다는 게 내용이었다. 여기에 더해 이와 관련한 논의가 이미 4월부터 있었다는 말도 더해졌다.
이와 관련해 여러 추측성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일부에서는 박병호가 개인적인 욕심으로 팀 케미를 깬다는 비판도 있었다. 일부에서는 박병호가 팀에 보탬이 안되는 고액 연봉 선수로 남기보다는 은퇴를 택하려 했다는 기사도 혼재했다. KT로서는 곤혹스러운 상황이었다.
박병호는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이고 살아있는 레전드다. 그만큼 상징성이 큰 선수다. KT는 이런 선수를 더는 필요가 없어 방출하는 식의 이별을 하기 부담스러웠다. 그대로 은퇴하는 그림도 아름답지 못했다. 이에 트레이드 논의가 급하게 이루어졌고 삼성과 접점을 찾았다. 결국, 그의 선수 커리어에서 세 번째로 팀을 옮기게 됐다.
전격 트레이드와 대구행
그는 선수로서 서울과 수도권을 벗어나지 않았지만, 사실상 마지막 커리어는 대구에서 마무리할 가능성이 커졌다. 삼성은 오재일을 트레이드 카드로 내놓았다. 오재일은 리그에서 대표적인 좌타 거포로 두산 시절 전성기를 보냈고 FA 계약으로 함께 한 삼성에서도 2시즌 연속 20홈런 이상, 90타점 이상으로 기대했던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도 지난 시즌부터 급격한 에이징 커브 조짐을 보였다. 타격에서 급격히 생산력이 떨어졌다. 그 흐름은 올 시즌도 달라지지 않았다. 2군에서 상당 기간 조정기를 거치기도 했지만, 2할대 초반의 타율에서 더는 반등하지 못했다. 그 사이 삼성에는 김영웅이라는 새로운 좌타 거포가 등장했고 그의 포지션 1루수에는 외국인 타자 맥키넌이 굳건히 자리했다. 오재일 역시 그 입지가 삼성에서 크게 줄었다.
KT와 삼성은 팀에서 그 위치가 애매해진 두 베테랑을 맞교환하면서 팀 분위기를 새롭게 하고 변화한 환경에서 두 선수가 반등할 수 있다는 희망을 함께 교환했다. 두 베테랑은 여전히 새로운 팀에서도 경쟁이 불가피하고 능력을 입증해야 하는 상황이다. 마침 두 선수는 연봉 수준도 비슷하고 올 시즌 후 FA 계약이 끝난다. 샐러리 캡 부담도 지속적이지 않다.
다만, 박병호는 대표적인 타자 친화 구장인 삼성의 홈구장에서 보다 많은 홈런 생산 가능성이 있고 삼성에 부족한 우타 거포형 타자라는 점이 그 활용도를 높일 수 있다. 올 시즌 삼성이 상위권을 유지하며 포스트시즌 진출 가능성을 높이는 상황도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의 필요성을 크게 한다.
다시 한번 반등?
그렇다 해도 박병호는 주전 1루수에 꾸준한 활약을 하고 있는 외국인 타자 맥키넌의 벽이 높고 특정 선수를 지명타자로 기용하지 않는 삼성의 선수 운영에서 지명타자 상시 출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 KT보다는 출전 기회를 더 잡을 수 있지만, 선발 주전으로 나서기 위해서는 한정된 기회에서 가치를 입증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험난한 선수 생활 후반기를 보내고 있는 박병호다. 리그를 대표하는 홈런 타자라면 그가 전성기를 보냈던 팀에서 명예로운 은퇴식과 함께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는 게 아름다운 그림이지만, 그 가능성이 컸던 키움과 그는 원치 않는 이별을 했다. 현역 선수 생활의 마지막 팀이라 여겼던 KT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여정은 대구 삼성으로 이어졌다.
모든 것이 낯설고 바로 뭔가를 보여줘야 하는 부담감 속에 박병호는 이제 생존을 위해 남은 시즌을 보내야 한다. 과연 박병호가 새로운 팀에서 다시 기적 같은 반등을 보여줄 수 있을지, 그는 이미 키움과 KT에서 그런 모습을 보인 바 있다. 하지만 세월의 무게는 이전 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워져 있다. 삼성의 박병호는 어떨지 궁금해진다.
사진 : KT 위즈,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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