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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시즌을 대비한 스프링캠프가 한창인 1월 말 레전드 한 명의 은퇴소식이 전해졌다. 오랜 기긴 두산, 그리고 국가대표 4번 타자 겸 리그 최고 3루수로 활약했던 김동주가 선수생활을 접었다. 두산에서 자유계약으로 풀린 이후 선수로서 마지막 기회를 잡기위해 노력했던 김동주였기에 그의 서선택은 아쉬움이 남는다. 

 

실제 신생팀 kt가 적극적으로 그의 영입을 원했고 접촉도 있었지만, 그 협상이 원할지 않았다. 김동주는 선수 등록이 마감되는 1월 31일, 더는 미련을 갖지 않았다. 선수로서 마지막 불꽃을 태우길 기대했던 팬들로서는 아쉽게 레전드를 떠나보내야 하는 상황을 맞이했다.

 

김동주의 선수 생활은 화려함 그 자체였다. 아마 시절부터 국가대표 4번 타자로 국제경기에서 큰 활약을 했던 김동주는 1998시즌 두산의 전신이 OB에 입단하며 프로선수 생활을 한 이례로 두산의 중심 타선에서 붙박이로 자리하며 큰 활약을 했다. 외야가 넓은 잠실구장을 홈으로 사용하면서도 파워를 갖춘 거포로서 상대 팀에 큰 위압감을 주는 타자였다. 여기에 3할을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정교함과 득점 기회에서 클러치 능력까지 다는 다재다능했다.

 

 

 

 

거구의 몸이었지만, 부드러운 수비는 막강한 공격력을 갖춘 3루수로 그의 가치를 더 높였다. 김동주는 곧바로 두산의 중심 선수가 됐고 국가대표로 큰 대회에서 그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김동주는 중압감이 그 어느 경기때보다 큰 국가대항전에서도 가장 믿을 수 있는 4번 타자였다.

 

이렇게 선수로서 승승장구하던 김동주였지만, 경기 외적인 문제들이 불거지며 시련을 겪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돌연 은퇴 선언을 하는 돌출 행동을 하기도 하면서 팬들에게 실망감을 주기도 했다. 이런 문제들은 그에게 인성에 문제가 있는 선수라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김동주는 실력을 이런 우려를 불식시켰지만, 흐르는 세월 속에 점점 기량이 내림세로 접어들었다. 부상의 빈도가 높아졌고 수비력도 점점 떨어졌다. 파워가 떨어지며 홈런 생산력도 예전과 같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김동주는 타고난 기량을 바탕으로 그 존재감을 유지했다.

 

하지만 2012시즌을 기점으로 김동주는 급격히 두산 전력의 중심에 멀어졌다. FA 계약으로 두산으로 떠나 롯데로 이적했던 홍성흔을 두산이 FA로 재영입하면서 베테랑으로서 그의 입지는 더 줄었다. 김동주의 리더십에 아쉬움이 있었던 두산은 홍성흔에 김동주가 하지 못했던 역할을 기대했다. 홍성흔이 지명타자 자리에 들어서면서 김동주의 출전 빈도는 점점 더 줄었다.

 

2012시즌 이후 김동주는 1군에서 그 모습을 찾기 힘들어졌다. 부상도 있었지만, 두산은 그를 대신에 젊은 선수들에 더 많은 기회를 주었다. 홍성흔이 팀 리더 역할을 하는 상황에서 월등한 기량을 보이지 않는 김동주의 존재는 팀 캐미를 강화하는데 큰 플러스 요인이 아닐 수도 있었다.

 

결국, 이런저런 이유로 김동주는 두산 전력 외로 분류됐다. 2014시즌 김동주는 부상이 아니었음에도 출전기회조차 잡지 못했다. 김동주는 2군에서 몸을 만들며 1군 출전기회를 노렸지만, 1군에서 김동주에 대한 콜업 소식은 전해지지 않았다. 선수로서 더 많은 기회가 필요했던 김동주는 자유계약 공시를 두산에 요청하는 등 다시 마찰을 빚었다.

 

결국, 김동주에게 2014시즌의 기억은 그와 두산의 연결고리를 끊는 일이었다. 김동주는 시즌 종류 후 코치직을 제안한 두산의 제의를 뿌리치고 2015시즌을 앞둔 시점에 새로운 팀으로의 이적을 모색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의 생각과 달랐다. 상당 기간 1군에서 출전하지 못했고 두산이라는 상징성이 강한 그에게 손을 내밀 구단이 많지 않았다. 기량의 검증은 물론이고 기존 선수들과의 융화도 고려해야 했다.

 

이미 다루기 힘든 선수라는 이미지가 강한 김동주의 운신 폭은 좁을 수밖에 없었다. 베테랑 선수가 필요한 신생팀 kt 입단 가능성이 높았지만, 현실이 되지 못했다. kt와의 협상 과정에서 불거진 이야기들은 김동주에 대한 비난 여론을 다시 불러일으켰고 이는 김동주에게는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결국, 김동주는 그에 대한 너무나 달라진 현실을 절감하며 선수생활 연장 의지를 접어야 했다.

 

아직 충분히 뛸 수 있는 레전드로서는 너무나 허무하고 초라한 마지막이었다. 김동주는 통산 0.309의 타율과 1710개의 안타, 273개의 홈런, 1097점의 타점 등의 기록을 남기고 프로야구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가 좀 더 전극적인 자세를 보였다면 하는 부분도 있지만, 명예 회복 기회마저 잡지 못한 채 프로야구를 대표했던 레전드가 떠나가야 한다는 점에서 쓸쓸한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다.

 

이제 두산을 상징하는 두목 곰, 국가대표 4번 타자 김동주의 선수로서 모습을 더는 볼 수 없다. 그 과정에 그의 의지와 상관없는 부분이 많았다는 점은 그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들과 상관없이 그와 그를 아끼는 이들에게 두고두고 아쉬움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김동주가 분명 우리 야구사에 기록될 강타자였고 야구 잘하는 선수였다는 점이다.  

 

사진, 글 : 심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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