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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와 삼성의 2016 프로야구 시즌 최종전이 펼쳐진 10월 8일 문학구장, 홈팀 SK 선발 마운드에 올 시즌 처음으로 1군 마운드에 오른 투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신인급 투수도 아니었고 2003시즌 프로에 입단한 베테랑급 투수였다. 더 중요한 건 그 경기가 그에게는 올 시즌 첫 등판이자 그의 프로야구 선수로서 1군 경기 마지막 등판이었다는 점이었다. 그에게는 은퇴 경기였다. 



이런 흔치 않은 상황의 주인공은 SK의 좌완 투수 전병두였다. 전병두는 은퇴 경기를 하는 선수들과 비교해 화려한 커리어를 가진 투수는 아니었다. 변변한 타이틀도 없었고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는 선발투수나 마무리 투수도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평범해 보이기까지 한 불펜 투수였던 그의 은퇴 경기는 분명 특별했다. 



하지만 전병두는 SK가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 핵심 선수였다. 특히, 2009시즌 그의 활약을 대단했다. 그해 전병두는 선발과 불펜, 마무리 등 전천후 투수로 SK 마운드의 마당쇠 역할을 했다. 49경기에 등판한 전병두는 주로 불펜투수로 등판하는 와중에도 무려 133.1이닝을 소화했다. 항시 등판을 대기해야 하는 불펜 투수였음을 고려하면 선발투수의 200이닝 이상 투구를 능가하는 투구 이닝이었다. 당연히 혹사 논란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긴 재활의 시간을 끝낸 전병두)





전병두는 이런 등판 일정을 묵묵히 소화했고 8승 4패 8세이브 1홀드, 방어율 3.11의 프로데뷔 후 최고 성적을 기록했다. 여기에 136개의 탈삼진은 그의 투구 이닝을 고려하면 놀라운 수치였다. 그만큼 그의 투구는 대단했다. 그가 리그에서 손꼽히는 불펜 투수로 자리를 잡은 순간이었다. 2003년 두산에서 프로에 데뷔한 이후 가능성 있는 좌완 파이어볼러로서 주목을 받았고 WBC 대표 선수로 선발되는 등 가능성을 인정받았음에도 제구의 문제로 성장이 더뎠던 전병두로서는 그의 이름을 확실히 팬들에게 각인시키는 2009시즌이었다. 



그에는 화려한 2009시즌이었지만, 그의 전성기를 오래가지 않았다. 이후 SK 불펜진의 전천후 투수로 2011시즌까지 준수한 활약을 했던 전병두는 2011시즌이 끝나길 무렵 큰 부상을 입었다. 투수로서는 치명적인 어깨 부상이었다. 수년간 누적된 무리한 등판을 그의 몸이 더는 견디지 못했다. 이후 전병두는 긴 공백기를 겪어야 했다. 차례 수술을 했고 재활운동을 반복했다. 



재활의 기간은 예상보다 길어졌다. 4시즌을 부상재활로 날린 전병두는 어느덧 30대 선수가 됐지만, 경기에 나설 수 없었다. 은퇴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전병두는 포기하지 않았다. 소속팀 SK 역시 그를 보류 선수로 매 시즌 유지하면서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전병두는 물론이고 구단에도 쉽지 않은 기다림었다. 



이런 기다림의 보람도 없이 전병두의 몸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공을 던질 수 있는 정도는 됐지만, 과거와 같은 구위가 아니었다. 어깨를 정상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그의 투구폼으로는 경기에 나서기 힘들었다. 결국, 전병두는 스스로 재활의 의지를 꺾었다. 단 한 번이라도 1군 경기에 나서고 싶었던 그의 소망도 물거품이 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SK 구단은 현역 선수생활을 접는 그에게 은퇴경기를 선물했다. 불펜 투수로서는 이례적인 일이었지만, SK에서 보여준 그의 헌신적인 투구를 구단은 잊지 않았다. 2016년 10월 8일 전병두는 그토록 소망했던 1군 마운드에 선발 투수로 나섰다. 그의 직구 구속은 130킬로가 넘지 않았지만, 전병두는 최선을 다했고 선두 타자를 범타 처리하며 그의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SK 선수들과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은 아낌없는 박수로 그의 현역 선수로서의 마지막 등판을 응원했다. SK 구단은 이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이벤트로 떠나가는 그를 배웅했다. 



SK는 그 경기에서 간판타자 최정이 홈런 공동 선두를 이루는 40호 홈런을 기록하는 등 활발한 공격력으로 접전의 경기를 승리하며 시즌 마지막 경기를 마무리했고 전병두의 은퇴 경기를 더 뜻깊게 했다. 전병두로서는 분명 아쉬움이 남는 은퇴였지만, 그를 잊지 않고 응원해주는 이들이 있어 결코 외롭지 않은 선수로서의 마지막 경기였다. 



이렇게 전병두는 마지막 소원을 이루었지만, 아직 30대 초반의 투수가 부상으로 선수생활을 접는다는 사실은 분명 안타까운 일이다. 프로야구 초창기 투수들에 대한 관리 개념이 없었던 시절, 혹사로 인한 선수 생명 단축 사례가 있었지만, 투수 분업화가 이루어지고 투구수 등에 대한 관리가 이루어지는 시점에도 이런 상황이 발생했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전병두로서는 SK 전성기 시절 그의 기량을 꽃피웠지만, 그것으로 인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투구를 하고 말았다. 팀 승리의 영광은 그의 몸을 갈아먹고 있었다. 그의 몸 상태를 알았을 때는 이미 시간이 너무 지난 이후였다. 전병두의 사례는 어쩌면 승리 지상주의가 낳은 불행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전병두는 야구 선수로서 그라운드가 아니라 부상을 극복해 나가는 강한 투혼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어쩌면 야구팬들은 그의 선수로서의 기억보다 부상을 이겨내려는 강한 투혼의 의지를 더 기억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많은 이들이 떠나가는 그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는지도 모른다. 미완의 선수생활이었지만, 야구 선수가 아닌 또 다른 인생을 열어가는 전병두의 앞날이 기대된다. 



사진 : SK 와이번스 홈페이지, 글 : 심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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