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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80회] 호남의 명산 월출산 아래 동네 영암군

문화/미디어

by 지후니74 지후니74 2020. 7. 12.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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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80번째 여정은 전라남도 영암군이었다. 영암군은 영산강과 간척 사업으로 조성된 영암호 사이에 위치해 있고 강진군과 접하는 월출산이 굽어보는 곳이었다. 월출산은 국립공원으로 지역에서 보기 드물게 돌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이름은 서해바다와 가깝고 달을 가장 먼저 맞이한다 하여 지어졌다고 전해진다. 신령스러운 기운이 가득한 월출산 아래 자리한 영암군에서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 나섰다. 

여정을 시작한 곳은 저 멀리 월출산이 보이는 드넓은 녹차밭이었다. 흔히 호남지역에서 녹차밭은 보성을 떠올리는데 영암에도 큰 규모의 녹차밭이 조성되어 지역 특산물로 생산되고 있었다. 초록의 빛으로 가득한 녹차밭에서 잠시 힐링의 시간을 가졌다. 

본격적인 여정의 시작, 지역을 대표하는 산 월출산 아래 동네를 찾았다. 동네에 들어서니 각 집마다 가지런히 정돈된 돌담이 눈에 들어왔다. 마을 대부분의 집들은 일정하게 정리된 돌담이 있었고 돌담 넘어 각 집에서는 텃밭들이 있었다. 그 돌담들은 돌산인 월출산에 가까운 탓에 마을에 많았던 돌들을 정리하면서 꾸준히 쌓아온 돌담들이 지금에 이른 것이고 돌들을 정리하고 만들어진 땅을 밭으로 활용하는 것이었다. 오랜 세월 척박한 자연환경을 이겨내고 그 땅을 터전 삼아 지금의 마을을 만들어낸 선조들의 의지와 노력이 결과물이었다. 그 때문인지 마을의 돌담들이 더 각별히 느껴졌다. 

 

 



마을 길을 걷다가 수많은 옹기가 놓인 집에 이르렀다. 그 집에 들어서 옹기를 살피니 다양한 재료들이 발효되어 만들어지는 식초들이 각각 가득했다. 이 집은 팔순의 아버지와 그 아버지의 건강을 걱정해 도시에서의 일을 접고 귀향한 아들 내외가 함께 지켜가고 있었다. 귀향 초기 아버지의 건강을 위해 만든 각종 식초가 이제는 이 집을 지탱하는 하나의 큰 사업이 되었다. 지금도 아버지와 아들은 함께 메밀꽃이나 신선초 산에서 나는 약초들로 식초를 만들며 부자간의 정을 쌓아가고 있었다. 

건강한 발효식초 향을 뒤로하고 다시 마을 탐방에 나섰다. 마을 주변에 흔한 대나무 숲길을 지나 오래된 팽나무 두 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마치 대문과 같이 나란히 서 있는 팽나무는 그 수령이 250년을 넘었고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었다. 그 팽나무를 지나 죽림정이라는 오래된 현판이 있는 정자에 이르렇다. 이 정자는 여느 정자와 달리 조선시대 정승들이 자주 찾았던 명소였다. 

대대로 지켜오고 있는 정자를 지키고 가꾸고 있는 연주 현씨 18대손으로부터 이순신 장군의 친필 편지를 만날 수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 수군을 이끌며 풍전등화의 조선을 구한 영웅 이순신 장군은 그 편지에서 호남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었다. 실제 최대 곡창지대인 호남의 사수는 전세를 역전시키는 중요한 발판이 됐다. 영암의 오래된 정자에서 이순신 장군의 흔적을 만난 건 색다른 경험이었다. 

역사의 흔적을 벗어나 최근 문을 연 영암군 한국 트로트가요 센터를 찾았다. 2019년 10월 개관한 한국 트로트 가요센터는 우리 가요의 중요한 한 장르인 트로트 음악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으로 다양한 자료들과 기록들, 과거를 추억하게 하는 전시물이 있었다. 최근 중요한 유행을 넘어 새로운 문화 트렌드로 자리한 트로트 열풍을 예상이라고 한 듯 만들어진 이곳은 트로트 음악을 심도 있게 살피고 시대의 흐름도 함께 느낄 수 있는 색다른 장소였다. 

잠시 트로트 음악에 취해 본 후 다시 나선 길에 지금은 간척 사업으로 사라진 포구 상대포의 흔적에서 과거 삼국시대 무역항으로 번성했던 지역의 역사를 알 수 있었고 8대째 이어지는 어란 기술을 지켜가고 있는 장인의 숭고한 정신을 함께 할 수 있었다. 어란은 숭어 알로 만드는데 그 과정이 길고 사람의 손길이 많이 필요한 작업들로 이루어져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다. 조선시대에는 왕의 진상품이었을 만큼 귀하게 여겨졌었다. 과거 방식 그대로 만들어지는 어란 만드는 과정은 보기만 해도 그 어려움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전통의 지키고 계승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어란 장인의 모습은 더 각별하게 다가왔다. 상대포와 어란은 한때 바다가 중요한 삶의 터전이었던 영암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었다. 

현재 영암은 목포와 가깝고 바다를 접하고 있긴 하지만, 간척 사업으로 연안 바다가 상당 부분 육지가 되면서 바다와 접하는 부분이 극히 제한적이었다. 간척 사업이 활성화되기 전 영암 바다의 개펄에서는 낙지가 흔했고 그 낙지로 만드는 요리도 발전했다. 마침 과거 이 지역에 있었던 우시장에서 나오는 소고기와 함께 요리하는 갈낙탕은 영암을 대표하는 요리라 할 수 있다. 이제는 쉽게 접할 수 있었던 개펄도 사라지고 우시장도 사라졌지만, 영암의 갈낙탕은 여전히 지역의 특산물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영암의 낙지거리에서는 낙지와 소갈비가 어우러진 갈낙탕을 맛볼 수 있었다. 한 식당에서 개펄과 우시장이 있었던 영암의 과거 시간을 갈낙탕에 담아내는 모자의 식당에서 잠심 훈훈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다시 바쁘게 나선 길에서 순수한 자연의 모습을 간직한 월출산의 숲길에서 세상의 시름을 잊고 힐링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힐링의 시간 후 마지막 여정은 세련되지 않았지만, 정성스럽게 재미있게 그려진 벽화가 인상적인 떡 방앗간이었다. 

넓은 방앗간은 오래된 기계들이 쉼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 방앗간을 지키고 운영하는 사장님은 함께 방앗간을 운영하던 남편과 사별 후 오랜 기간 홀로 힘든 일을 감당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어머니의 등은 굽고 곳곳에 상처들이 남아 있었지만, 어머니는 오늘도 방앗간 일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힘든 세월이었지만, 어머니라는 이름은 그 모진 세월을 견디는 힘이 됐다. 지금은 자녀들이 장성하고 삶에 여유가 생겼지만, 어머니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방앗간 일은 어머니를 지탱하는 삶의 한 부분으로 보였다. 어머니의 모습은 힘든 일상을 하루하루 견뎌가면서 작은 행복에 힘을 얻고 또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 부모님의 모습 그 자체였다. 

이렇게 영암은 역사와 전통, 색다름이 공존하는 곳이었다. 이전 다른 지역과 같이 이곳을 지키는 사람들은 세월의 변화에도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켜가고 있었다. 이런 일상의 가치와 소중함을 다시 한번 마음 가득 담아 가는 시간이었다. 

사진 : 프로그램 홈페이지,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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