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각종 뉴스와 SNS 등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가 영끌이다. 자신의 모든 역량을 다 쏟아붓는다는 의미의 영혼까지 끌어모았다는 말을 줄인 신조어 영끌은 이제 일상 곳곳에서 사용되고 있다. 5월 8일 어버이날 경기의 롯데가 딱 그에 맞는 총력전을 펼쳤다. 롯데는 한국 시리즈 마지막 경기라는 듯 가지고 있는 불펜 자원과 선수 엔트리를 모두 쥐어짜냈고 9 : 8의 극적인 역전승을 기어코 만들어 냈다.
롯데에게는 한편의 드라마 같은 경기였다. 전날 경기 후반 뒷심 부족으로 아쉽게 승리를 내준 롯데는 승리가 절실했다. 롯데는 전날 패배에 대한 설욕의 의미도 있었지만, 최하위로 쳐지면서 침체한 팀 분위기를 되살릴 계기가 필요했다. 시즌 초반 롯데는 투. 타의 불균형으로 경기력의 편차가 크고 부실한 마운드 문제까지 겹쳐있다. 지난 시즌부터 불거진 팀 내부 갈등 상황은 언론사를 통해 지속 보도될 정도로 공공연한 사실이 됐다. 이런 롯데를 둘러싼 비판 기사가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안팎의 각종 악재를 벗어날 방법은 승리 이상의 치료제가 없다. 선두 삼성전 승리는 긍정 효과가 클 수 있었다.
하지만 올 시즌 최강팀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는 삼성은 최하위 롯데전에 버거운 상대였다. 이미 상대 전적에서 1승 2패로 밀려있던 롯데는 5월 7일 경기에서 올 시즌 혜성처럼 등장한 삼성 에이스 원태인에 타선이 침묵하며 패했다. 5월 8일 경기는 삼성 에이스 뷰캐넌과 맞서야 하는 롯데였다. 롯데는 올 시즌 처음 선발 등판하는 서준원이 선발 투수로 나섰다. 선발 투수의 무게감은 비교가 될 수 없었다.
롯데는 경기 초반 타선이 삼성 에이스 뷰캐넌 공략에 성공하며 열세를 극복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롯데는 1, 2번 타자의 연속 볼넷으로 잡은 득점 기회에서 전준우의 희생플라이와 이대호의 2점 홈런을 더해 3득점했다. 올 시즌 1점 방어율의 강력한 선발 투수였던 뷰캐넌으로부터의 초반 3득점은 롯데가 경기 분위기를 가져올 수 있는 결정적 장면이었다.
이런 롯데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삼성은 2회 말 공격에서 롯데 선발 서준원에게 2루타 2개와 3루타 홈런을 더하며 가볍게 4득점했다. 1회 말 만루 위기를 넘겼던 서준원이었지만, 두 번째 위기는 극복하지 못했다. 서준원은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연달아 장타를 허용하며 너무 쉽게 무너졌다. 서준원의 시즌 첫 선발 등판은 2이닝으로 마무리됐다. 롯데는 빠른 불펜 가동으로 삼성 타선의 흐름을 끊으려 했다.
3회 말 마운드에 오른 롯데 불펜 투수 나균안은 3회를 무난히 넘겼지만, 4회 말 유격수 마차도의 실책이 원인이 되면서 위기에 빠졌다. 이에 롯데는 좌타자 상대를 위한 좌투수 김유영으로 마운드를 교체했다. 삼성의 거포 좌타자 오재일을 상대하기 위한 카드였지만, 김유영은 오재일의 시즌 첫 홈런을 허용한 투수가 됐다. 오재일의 홈런으로 경기는 삼성의 7 : 3 리드가 됐다.
올 시즌 롯데의 경기라면 이대로 삼성의 시간으로 남은 이닝이 채워져야 했고 그런 흐름이 이어졌다. 롯데는 5회와 6회 초 병살타로 득점 기회를 놓쳤다. 초반 선발 투수의 부진과 실점, 이어진 불펜진의 추가 실점과 타선의 부진이 함께 몰려오는 롯데의 전형적인 패배 공식이 반복됐다. 롯데 팬들이 또 한 번의 패배를 예상하는 시점에 롯데의 반격이 시작됐다.
롯데는 삼성 불펜진을 상대로 7회 초 한동희의 2타점 2루타를 포함해 3득점하면서 삼성을 7 : 6 한점 차로 추격했다. 4회 말 오재일에 3점 홈런을 허용했지만, 5회와 6회를 무실점으로 버틴 불펜 투수 김유영의 투구가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특히, 한동희의 2타점 2루타는 득점 기회에서 전준우, 이대호가 연속 삼진을 당한 후 패색이 짙어지는 상황에서 나온 적시 안타로 그 의미가 매우 컸다. 무엇보다 삼성에서 강력한 불펜 투수 우규민을 상대로 한 타격이었다는 점에서 팀 사기를 높일 수 있었다.
롯데는 7회 초 3득점 이후 7회 말 수비에서는 4번째 투수 김대우가 무실점 투구를 하며 추격의 불씨를 지켜냈다. 하지만 롯데는 8회 초 득점 기회를 놓친데 이어 8회 말 수비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불펜 투수 최준용이 추가 1실점을 하면서 마지막 희망이 사라지는 듯 보였다. 이는 접전의 경기에서 좀처럼 승리하지 못하는 롯데의 또 다른 패배 공식이 적용되는 장면이기도 했다.
하지만 롯데는 9회 초 공격에서 경기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야구의 속설을 현실로 만들며 경기를 반전시켰다. 9회 초 롯데는 삼성 마무리 오승환을 상대로 전준우와 한동희의 안타로 잡은 1사 1, 2루 기회에서 뜻하지 않았던 행운으로 더 큰 기회를 잡았다. 그 기회에서 타석에 선 안치홍은 타구는 빨랐지만, 유격수 정면으로 향했다. 전형적인 병살타 코스였지만, 삼성 유격수 이학주는 그 타구를 놓치며 경기가 끝날 상황이 1사 만루로 급변했다. 이미 8회 초 위기에서 마운드에 올랐던 오승환은 투구 수가 늘어난 상황에 부담이 있었다. 롯데는 상대 실책으로 생긴 틈을 파고들었다.
1사 만루에서 롯데 장두성은 빠른 발로 땅볼 타구의 병살을 막아냈고 롯데는 8 : 7로 삼성을 추격했다. 롯데는 아껴두었던 이병규 대타 카드를 꺼냈다. 롯데의 희망을 이어가야 하는 베테랑 타자 이병규와 팀 승리를 지켜야 하는 베테랑 마무리 오승환의 대결에서 이병규는 우익수 앞 적시 안타를 때려냈고 경기는 8 : 8 동점이 됐다. 올 시즌 매우 높은 대타 성공률을 보이고 있는 이병규는 결정적인 순간 그의 특기를 제대로 보여줬다. 롯데는 상승 분위기를 마차도의 역전 적시 안타로 이어가며 9 : 8 재역전에 성공했다. 올 시즌 블론 세이브가 하나도 없었던 오승환이나 그를 마운드에 올린 삼성 모두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실책 하나가 불러온 엄청난 나비효과였다.
이렇게 역전에 성공한 롯데였지만, 9회 말 수비가 문제였다. 롯데는 추격전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두 명의 포수 엔트리를 모두 소진했다. 동점 적시타의 주인공 이병규의 대타 타석은 두 번째 포수 강태율의 자리였다. 누군가는 포수 마스크를 써야 하는 상화에서 롯데는 선택은 팀 내 최고 베테랑 이대호였다. 이대호는 까마득한 기억 속에 있는 고교시절 포수 경험을 바탕으로 마무리 김원중과 베터리를 구성했다. 이대호에게는 프로 데뷔 첫 포수 출전이었다. 그 첫 출전은 한 점차 리드를 지켜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대호가 그런 이대호 포수를 상대로 한 점 차 리드를 지켜야 하는 마무리 김원중도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다. 김원중으로서는 직구 위주의 투구가 불가피했다. 이에 삼성 오재일과 박헤민의 그의 직구를 노려쳐 안타를 만들어냈고 삼성은 무사 1, 2루 득점 기회가 만들었다. 그 기회를 보내 번트를 거치며 1사 2, 3루의 기회로 이어졌다. 충격적인 역전을 허용했지만, 삼성은 극적인 끝내기로 마지막 승리를 가져갈 수 있었다. 올 시즌 롯데라면 그 가능성은 충분했다.
이 위기에서 김원중, 이대호 베터리는 삼성의 거듭된 대타 김헌곤, 강민호를 모두 범타로 처리하며 극적 승리의 마지막 주인공이 롯데가 되도록 했다. 그 과정에서 마차도는 까다로운 두 개의 타구를 모두 가볍게 처리했다. 마차도는 실점과 연결되는 4회 말 실책이 있었지만, 9회 초 역전 적시안타와 9회 말 두 번의 결정적인 수비로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프로야구 최고 거포 이대호의 프로 데뷔 첫 포수 출전까지 있었던 프로야구사에 남을 롯데와 삼성의 접전이었다. 롯데는 승리를 위해 모든 걸 쏟아부었고 삼성 역시 이에 밀리지 않았다. 삼성은 1위 팀의 저력을 보여주었고 롯데는 경기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승리 의지를 경기력으로 보여주었다. 강대강이 충돌한 대결에서 롯데는 의미 있는 승리를 했다. 불펜 운영의 아쉬움도 있었고 세밀한 플레이의 아쉬움도 있었지만. 승리 의지는 올 시즌 경기 중 최고였다. 베테랑과 신예, 백업 선수들까지 승리를 위해 함께 하는 모습이 확실히 보였다.
롯데는 삼성의 에이스 뷰캐넌에 마무리 오승환까지 삼성의 정예 마운드를 상대로 대역전극을 만들어냈다는 점은 승리의 가치를 더했다. 올 시즌 롯데를 둘러싼 각종 패배 공식을 깨뜨린 승리라는 점도 롯데에는 긍정적인 일이었다. 이런 승리의 기운이라면 상승 반전의 계기를 만들기 충분하다. 하지만 그동안의 롯데는 접전 후 선수들의 경기력이 크게 쳐지는 모습이 많았다. 롯데가 그런 부정적 요소까지 극복하며 상승 반전을 이룰 수 있을지 한 시즌 몇 번 나오지 않는 희귀한 명승부로 끝날지 5월 8일 어버이날 롯데의 극적인 승리가 앞으로 롯데에 어떤 영향을 줄지 궁금하다.
사진 : 롯데 자이언츠,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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