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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프로야구 포스트시즌에서

성사된 KIA와 삼성의 한국시리즈는

모처럼 만의 비 수도권 팀 간 대결이다.

 

여기에 1993년 이후

31년 만의 양 팀 대결이라는

점에서 큰 화제성을 가지고 있다.

 

1993년 양 팀은 KIA의 전신인

해태 타이거즈와 삼성 라이온즈의

대결이었다.

 

당시 해태와 삼성에는 리그를

대표하는 스타들이 즐비했다.

 

 

 

 

 

 

 

스타들의 대결이었던

31년 전 한국시리즈

 

 

 

해태는 프로야구 레전드 선동열을

시작으로 조계현, 이강철, 이대진 등

막강한 투수들과 김성한, 홍현우

이순철 등 1980년대부터

해태의 전성기를

이끌던 타자들이 라인업을

구성하고 있었다.

 

삼성도 이에 못지않았다.

리그 정상급 투수인 김상엽과

김태환, 특급 신인 박충식의

투수진에 김성래, 강기웅, 동봉철

팀의 정신적 지주 이만수가

타선을 구성하고 있었다.

 

그때까지 해태와 삼성은

프로야구에서 양강 체제를

형성했고 한국시리즈에서

자주 만났다.

 

그 한국시리즈 대결은

해태의 독무대였다. 해태는

한국시리즈에서 한 번도

패하지 않았고 삼성은 번번이

해태에 밀려 우승에 실패했다.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절대 우세 전망에도 최동원의

말도 안 되는 역투에 밀려 우승을

내줬던 삼성은 이후 구단의 막대한

투자가 있었지만, 그토록 원했던

우승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 시절 삼성에는 큰 경기에

약하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삼성에게는 지독한

한국시리즈 징크스였다.

 

하지만, 1993년은 삼성이

한국시리즈 우승을 기대할만했다.

 

1993년 정규 시즌에서 해태는

여유 있는 우승을 확정하고

한국시리즈에 선착했다.

 

삼성은 정규 시즌 2위였지만,

해태와의 대결에서는 강점이

있었다. 특히, 삼성 타선이

해태에 강한 면모를 보였다.

 

당시 해태는 무려 6명의 투수가

10승을 달성한 팀이었다.

 

그런 해태를 상대로 삼성 타선이

선전했다는 건 한국시리즈에 대한

기대를 높일 수 있는 일이었다.

 

다만, 삼성은 플레이오프가

5차전까지 이어지며 힘을

소진한 상황이었다.

 

그래도 주전 야수들의 서서히

노소화를 보이는 해태가 쉽지

않은 승부를 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그 한국시리즈는 팀의 대결과

함께 1993년 나란히 입단한

대형 신인 이종범과 양준혁의

대결로도 관심을 모았다.

 

이종범은 입단 당시부터 천재

유격수로 명성이 높았고

양준혁 역시 천재 타자로

불리고 있었다.

 

이종범과 양준혁은 해태와

삼성의 연고지 출신으로

프랜차이즈 스타로서

자질을 보였다.

 

신인이었지만, 두 선수는

바로 주전을 차지했고 팀 주축

선수로 활약했다.

 

정규 시즌에서는 앞선 공격력을

앞세운 양준혁이 이종범을

누르고 신인왕에 올랐다.

 

한국시리즈는 두 신인의

대결 2막이었다.

 

 

 

 

 

 

 

이종범과 양준혁의 대결

15회 연장 무승부

 

 

 

시리즈는 팽팽했다.

1차전과 2차전 1승씩을

주고받은 양 팀은 3차전에서

역대 한국시리즈 최고 명승부를

펼쳤다.

 

투수전을 전개된 3차전은

연장 15회까지 이어지는 승부에도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2 : 2

무승부로 마무리됐다.

 

그 경기에서 해태는 에이스 선동열

경기 초반 빠르게 마운드에

올렸지만, 승리하지 못했다.

 

반대로 삼성은 신인 박충식이

15회까지 180개가 넘은 공을

던지며 홀로 경기를 책임졌다.

 

말 그대로 초인적인 투구였다.

지금이라면 말도 안 되는 투구로

엄청난 비판을 받을만한

일이었다.

 

삼성은 선동열이 나올 수 없는

4차전을 승리하며 한국시리즈

우승에 한발 더 다가섰다.

 

여기서 해태의 반격이 시작됐다.

 

해태는 5차전부터 그들의 야구

스타일을 변화시키며 상황을

반전 시켰다.

 

강타자들의 즐비한 해태는

빅볼 야구를 중심으로 했다.

해태하면 호쾌한 장타를 바탕으로

한 선 굵은 야구로 설명됐다.

 

하지만, 5차전부터 해태는

기동력 야구를 과감히 시도했고

성공적이었다.

 

그 중심에는 이종범이 있었다.

이종범은 해태 기동력 야구를 이끌었다.

그는 출루하면 쉼 없이 도두를 시도하며

삼성 베티리와 내야진을 흔들었다.

 

해태는 힘대 힘의 대결이 불리함을

인정했고 빠르게 방향을 전환했다.

이런 해태를 상대로 삼성은 포수진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공격의 또 다른 옵션을 활성화한

해태는 5차전 부터 내리 3경기를

승리하며 한국시리즈 챔피언에

올랐다.

 

삼성은 벼랑 끝에 몰린 7차전

3차전 15회 완투를 했던

박충식을 선발투수로 마운드에

올랐지만, 3차전에서 에너지를

크게 소모한 박충식은 흐름을 탄

해태 타선을 막기 역부족이었다.

 

결국, 삼성은 또 한 번 한국시리즈에서

좌절하며 한국시리즈 징크스를

벗어나지 못했다.

 

한국시리즈 해태 타선을 이끌었던

이종범은 신인으로 한국시리즈

MVP에 올랐고 그의 레전드로 가는

길을 걸었다.

 

이후 해태와 삼성의 한국시리즈

대결은 더는 볼 수 없었다.

 

해태는 모기업의 재정난 속에

급속히 전력이 쇠퇴했다.

 

팀의 기둥이라 할 수 있는

선동열과 이종범이 일본

리그로 진출했고 주력 선수들도

현금 트레이드하며 어렵게

구단을 유지했다.

 

 

 

 

 

 

해태에서 KIA로

많은 것이 변한 후 대결

 

 

 

결국, 해태는 2001년 KIA

타이거즈로 이름을 바꾸며

구단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삼성은 롯데와 함께 구단명과

모기업이 프로야구 원년부터

바뀌지 않은 구단으로

남아있다.

 

1993년, 엇갈린 희비를

뒤로하고 KIA와 삼성은

다시 한국시리즈에서 만난다.

 

그 사이 두 구단의 상황은

크게 달라졌고 과거의 기억도

먼 추억 속의 이야기다.

 

하지만 구단 역사에서

그 의미가 결코 적지 않다.

 

이 역사를 알고 보는 KIA와 삼성의

한국시리즈는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사진 : KIA 타이거즈 / 삼성 라이온즈 / KBO

글 : 지후니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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