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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북동쪽 내륙에 자리한 구례군은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경남 하동군과 접하고 있고 북쪽으로는 전북 남원군, 남쪽으로는 전남 광양시와 순천시, 서쪽으로는 전남 곡성군과 접하고 있다. 지리산 자락의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으로 노고단이 구례군에 포함되어 있다. 구례군에 자리한 고찰인 화엄사는 조계종 대표적 사찰이기도 하다. 

섬진강은 구례군과 하동군이 함께 공유하는 지역의 하천이다. 하동군에 서는 대표적 장인 화계장터는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영남과 호남 사람들이 뒤섞인 상권이 형성된다. 도시 기행 프로그램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159회에서는 봄이 오는 길목의 구례군을 찾았다. 

구례군을 대표하는 섬진강 풍경을 따라 걸으며 여정을 시작했다. 섬진강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고려 우왕 때 왜구들이 섬진강 하구를 따라 구례군 지역으로 침입했다. 그때 섬진강의 수많은 두꺼비 떼가 울면서 큰 소리를 냈고 왜구들은 구례를 피해 광양지역으로 피해 갔다는 전설이 있다. 그때부터 강의 이름은 한자로 두꺼비 섬자를 사용해 섬진강이 됐다. 그 오랜 전설을 품고 섬진강을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강변을 벗어나 지리산 자락의 한마을을 찾았다. 정겨운 돌담길을 따라 동네 이모저모를 살폈다. 겨우내 얼었던 맑은 계곡물이 녹아 흐르며 봄이 오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 길을 따라 많은 산수유나무들이 서 있었다. 이 마을은 구례군의 대표적인 여행 명소인 산수유 마을이었다. 산수유는 매년 초봄에 그 꽃을 피운다. 산수유 꽃은 봄이 왔음을 상징한다. 산수유 축제는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봄을 가장 먼저 느끼려는 사람들로 구례 산수유 마을을 인산인해를 이루곤 했다. 코로나 상황으로 2년간 그 축제가 열리지 못했다. 이번 봄에는 많은 이들이 함께 봄맞이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마을 깊숙이 더 걸어 들어갔다. 한 민가에서 시간을 함께 보내는 식구들을 만났다. 그 집의 가장 큰 어른인 할머니는 올해 96세가 됐다고 했다. 할머니는 고령이지만, 꿋꿋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산수유 마을을 산수유로 가정의 생계를 유지하고 자녀들을 키워냈다. 이 마을의 여성들은 어려서부터 산수유를 접했다. 산수유를 가공하기 위해 열매 씨를 발라내야 하는데 과거는 입으로 그 일을 했다고 했다.

그 덕분에 산수유 마을 여성들의 이가 크게 상할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도 그런 세월을 견디고 또 견뎌냈다. 할머니는 가정의 생계라는 삶의 무게를 어깨에 메고 더 힘든 세월을 보냈다. 이제 자녀들은 장성했고 이제는 자녀들이 할머니를 돌보고 힘이 되고 있었다. 그 집에서 만들어낸 산수유 열매가 들어간 산수유 술빵과 산수유 막걸리는 마을의 상징이기도 했고 그 안에는 할머니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다시 섬진강변으로 나와 걸었다. 강변에서 그물을 치고 걷고를 반복하는 어부가 보였다. 섬진강의 내수면 어업은 허가받은 사람만 할 수 있다. 섬진강의 어부는 보통 대를 이어가며 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 어부는 초봄부터 나오기 시작하는 참게를 잡고 있었다. 그는 장인어른이 하는 일을 이어받았다. 그를 따라 그와 그의 아내가 운영하는 식당으로 향했다. 그 식당의 어항에는 부지런히 섬진강에서 잡은 민물고기들이 가득했다. 이들 부부는 이 식당의 대표 메뉴인 참게 매운탕을 내놓았다. 참게 매운탕은 섬진강 주변에서 맛볼 수 있는 지역의 별미다. 

이 부부는 과거 도시에서 살다 큰 사기 피해를 입고 좌절의 시간을 보냈다. 부부는 떠밀리 듯 아내의 고향이 구례군으로 낙향했다. 남편은 원치 않았던 변화에 크게 좌절했고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다시 마음을 다잡은 그는 장인어른이 어부 일을 배우고 그 일로 새롭게 제2의 인생을 열었다. 지금은 섬진강 어부의 일이 너무 익숙하고 행복하기만 하다. 큰 시련을 이겨낸 그들 부부에게 섬진강은 그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자리를 내준 고마운 존재였다.

구례 오일장으로 향했다. 인근 경남 하동의 화계장터가 전국적으로 유명하지만, 구례 오일장도 긴 역사를 자랑한다. 이곳 역시 구례와 하동 등 영호남 사람들이 함께 하는 장터이기도 하다. 시장의 이런저런 풍경을 살폈다. 오랜 세월 장터를 지킨 노부부가 운영하는 건어물 가계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인생 황혼기를 맞이한 부부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여전히 자식들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항상 자식들 일에 노심초사하는 우리 부모님들의 모습 그대로였다. 

 

산수유마을 계곡 - 픽사베이

 


그 가게를 떠나 40년 넘게 시장을 지킨 뻥튀기, 튀밥 가게를 찾았다. 3대를 이어 운영하는 튀밥 가게의 뜨거운 열기는 아직 쌀쌀한 시장의 공기를 따뜻하게 데워주고 있었다. 이 가게의 어머니는 50년 넘게 튀밥 장사를 했다. 여성이 하기에 힘든 일이었지만, 어머니는 가족들을 위해 그의 모든 걸 이 가게에 바쳤다. 그렇게 세월은 속절없이 흘렀다. 외롭고 힘든 시간이었지만, 지금은 그의 뒤를 이어가는 딸과 사위가 있어 마음이 편안하다고 했다.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렸던 어머니의 인생에 이제서야 약간의 쉼표가 생기고 있었다. 이 튀밥 가계가 그 역사를 계속 이어갈 수 있기를 기원하며 다시 길을 나섰다. 

다시 섬진강변으로 나왔다. 강을 따라 만들어진 산책로를 따라갔다. 멋진 풍경과 함께 걷다 예쁜 정원이 있는 한옥집이 보였다. 한 모녀가 정원에 있었다. 모녀는 집 한편에 마련된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교직생활을 하다 산이 좋아 등산에 취미를 가졌고 그 과저에서 구례에 매료됐다. 어머니는 정년을 앞당겨 퇴직을 했고 구례에 정착했다. 이후 어머니를 따라 딸들이 하나 둘 어머니와 함께 했다. 그들은 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여유와 청정한 자연의 느낌을 가득 안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생계를 위해 시작한 카페가 이름이 나고 많은 이들일 찾으면서 삶의 여유가 사라지고 말았다. 여유 있는 일상은 바쁜 일상으로 변했다. 도시에서 귀촌을 했을 때와 다른 삶에 잠시 좌절하기도 했다. 하지만 카페를 찾는 이들의 발걸음이 이제는 소중하기만 하다. 어머니와 딸은 지역에서 나는 농산물과 케이크를 만들고 차를 만들어 내놓고 있었다. 구례가 이들에게는 삶의 터전이고 그 터전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한 곳이 이 한옥 카페였다.

섬진강변을 따라 자리한 울창한 대나무 숲을 걸었다. 강바람에 흔들리는 숲의 대나무들이 흔들리며 내는 소리가 마음을 울렸다. 그 숲과 멀지 않은 곳에 대나무 공예 작업장이 있었다. 엄청나가 많은 대나무 재료가 쌓인 작업장에서 일하는 장인을 만났다. 그는 3대를 이어진 가업인 전통 대나무 부채를 만들고 있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대나무 대만을 만들었고 그의 아버지는 전통 부채를 재현하며 부채를 만들었다.

그 기술은 지금의 아들에게 전해졌다. 아버지는 20여 년 전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때 아버지가 준비가 대나무 부채 재료들은 지금도 남아 부채 제작에 사용되고 있었다. 아버지의 꿈과 유산이 지금의 장인과 함께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 근처에 대나무밭을 만들었다. 아버지는 전통 대나무 부채 공예가 그 명맥을 이어갈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마쳤다. 그런 아버지의 뜻을 아들은 알고 있었다. 그는 마음이 흔들릴 때면 대나무밭에 가서 마음을 다잡는다고 했다. 그의 어머니는 세상을 떠난 아버지 대신 아들 곁을 지키며 전통 공예 기술을 이어갈 수 있도록 아들을 돕고 있었다. 

 

 


이런 아들과 어머니의 노력, 세상을 떠났지만, 수십 년의 열정과 의지가 담긴 아버지의 유산, 이들이 합쳐진 전통 대나무 부채는 그 어느 것보다 가치있게 다가왔다.

여정의 막바지 지리산 자락의 한 마을을 찾았다. 저수지와 함께 하는 멋진 풍경을 따라 산책로를 걸으며 마을로 들어섰다. 그 길에 마을 주민들이 함께 운영하는 마을 식당이 보였다. 식당은 마을의 네 어머니가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어머니들은 각자 일을 나누고 서로를 도우며 10년 넘게 식당을 지키고 있었다.

이 식당은 지리산에서 나는 버섯들과 나물로 만들어진 버섯전골이 주메뉴였다. 버섯은 어머니들이 시간이 날 때 산에서 채취한다고 했다. 지리산의 청정 자연 속에서 나는 버섯과 어머니들의 손맛이 더해진 버섯전골은 특별했다. 자칭 타칭 4총사로 불리는 어머니들은 식당 일이 힘들기도 하지만, 서로를 의지하며 유쾌하게 하루하루를 행복으로 채워가고 있었다. 이런 행복한 마음 가득한 식당이라면 방문자들도 행복한 마음을 가질 것 같았다. 

구례군은 지리산과 섬진강이라는 거대한 자연의 선물과 함께 하는 동네였다. 봄이 오는 길목에 자리한 구례군은 내륙에서 가장 먼저 봄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구례군은 어디를 가나 멋진 풍경과 만날 수 있고 맑은 공기와 물이 있었다. 복잡하고 삭막한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청량감과 시원함을 마음 가득 채울 수 있었다. 그런 곳에서 만난 이웃들 역시 순수하고 후한 인심으로 방문자를 맞이해주고 있었다. 그런 구례군에서 보낸 시간은 마음 가득 행복을 채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사진 : 프로그램,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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