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남원은 지역의 삼국시대 백제와 가야의 영역에 있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던 시기에는 고구려 유민들이 부흥운동을 전개하는 과정에 과거 백제 영역이었던 익산에 세운 보덕국이 망하면서 그 유민들 다수가 남원으로 이주했다는 역사적 기록이 있다. 남원은 삼국시대 모든 나라의 영향력 미치는 독특한 역사적 전통이 있다. 또한, 남원은 조선시대 고전소설이자 한글소설인 춘향전의 무대로 크게 알려져 있다. 난 원하면 떠오르는 이름인 성춘향과 이몽룡은 소설 춘향전의 주인공이다. 이런 역사적 전통이 함께 하는 남원은 지리산 자락의 청정 자연과도 함께 하고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도시 기행 프로그램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에서는 남원을 지켜가고 있는 이웃들을 만나고 그들이 이야기와 함께 했다. 여정의 시작은 남원을 상징하..
서울 용산은 한강과 맞닿아 있고 위로를 서울 종로로 아래로는 강남과 연결되는 말 그대로 요지 중 하나다. 하지만 용산은 이런 지정학적 위치를 긴 세월 외국 군대가 이용했다. 1882년 임오군란 당시 이를 진압하기 위해 조선 땅에 들어온 청나라 군이 주둔한 지역이 용산이었고 이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군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이후 러. 일 전쟁까지 승리한 일본은 한반도에 대하 식민 지배를 공고히 했고 1905년 을사늑약으로 조선의 식민 지배를 명확히 이렇게 일제에 의한 강점기 기간 용산은 일본군의 대륙 침략을 위한 후방기지로 기능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패망으로 일제가 물러난 후에는 미군이 최근까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이렇게 긴 우리 근현대사에서 용산은 외국 군대가 주둔한 역사로 채워졌다. 미군이 평..
전라북도 무주는 덕유산을 포함해 지역의 80% 이상이 산지로 이루어진 고원지역이다. 무주를 포함해 주변의 진안, 장수 지역은 남부 지방이지만, 이러한 지리적 특성으로 겨울이면 많은 눈이 내리는 곳으로 교과서에도 나와있을 정도로 특별한 기후조건을 가지고 있다. 또한, 청정한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에 무주는 스키 등 동계 스포츠가 활성화되어 있고 2018년 동계 올림픽을 개최한 강원도 평창에 맞서 국내 유치전을 펼치기도 했다. 이런 지역적 특성은 무주가 도시에서는 먼 오지라는 인식을 가지게 했다. 하지만 최근 고속도로가 주변에 들어오고 보다 많은 이들이 찾을 수 있는 곳이 무주이기도 하다.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115회에서는 전북 무주의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 이웃을 만났다. 여정의 ..
서울에서 옛 모습을 가진하고 있는 몇 안 되는 곳 중 서촌이 있다. 경복궁과 인왕산 사이에 자리한 서촌은 행정동으로 효자동, 청운동, 사직동 등을 포함하고 있다. 이곳은 과거 왕족들과 사대부, 중인들이 주로 거주했던 곳이었다. 일제 강점기 이후 문화, 예술인들의 거주지이자 외국인들의 거주지, 고관 대작들의 거주이기도 했다. 또한, 인왕산 계곡의 멋진 풍경도 함께 품고 있어 역사와 자연이 함께 하고 있다. 유서 깊은 동네지만, 청와대와 인접한 탓에 1960년대 이후 보안상의 이유로 각종 규제에 묶이면서 개발이 제한되고 나날이 변해가는 서울에서 소외된 지역이 되고 말았다. 서울에서 은둔이 땅이었던 서촌은 최근 삼청동 일대 한옥촌이 북촌으로 지칭되며 유명 관광지로 자리 잡은 상황에서도 그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
경기도 연천군은 휴전선과 인접하고 있어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곳으로 오랜 기간 여겨졌다. 남북 대치의 상황에서 연천은 도시화와 산업화의 흐름과 거리가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런 환경은 연천이 그 어느 곳보다 자연이 더 잘 보존되고 오래된 유적들이 그 원형을 유지할 수 있는 터전이 됐다. 연천은 과거 구석기 시대 유물과 유적부터 고구려 성곽, 더 고대의 지질 유적까지 고대의 역사를 품고 있다. 연천은 한반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터전을 잡았던 곳이었다. 그만큼 사람이 살기 좋은 입지를 갖추고 있었다. 임진강과 한탄강의 물줄기는 그 근본이었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남측 변방으로 그들의 안위를 책임지는 중요한 요지였다. 이런 연천은 6.25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시대의 흐름과 다소 동떨어진 위..
인천 국제공항이 생기기 전까지 김포공항은 오랜 세월 우리나라를 세계와 연결하는 관문이었다. 김포공항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기점으로 해외여행 수요가 증가하고 국내 여행자들이 증가하면서 엄청난 인파로 몸살을 앓았다. 항공수요의 증가에 따른 국민들의 삶의 방식이 변화하는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 현장이었다. 이에 공항 환송은 단출하게 하자는 캠페인까지 나올 정도였다. 지금은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김포공항은 우리 항공교통의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그런 김포공항을 품고 있는 동네 공항동을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110번째 여정에서 찾았다. 과거 소나무가 많아 송정리라 불리던 공항동은 시대의 흐름과 함께 그 모습이 사라졌다. 김포공항은 이제 이 동네를 대표하는 장소가 됐다. 첫 번째 여정도 김포공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