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지역, 나라를 초월해 왠지 모를 활력이 느껴지는 장소입니다.그곳에 가면 뭐든 살 수 있을 것 같은 설레임이 생깁니다.특히, 오일장 같은 특정일에 열리는 장은 그 희소성 탓에더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강원도 양양에 자리한 양양시장은 5일마다 열리는 장이유명한데요. 그 규모도 크고 다양함으로 채워진 장면들이외지인인 저에게도 인상적입니다. 봄이 오던 어느 3월, 양양시장 오일장을 담아보았습니다. 양양 전통시장 입구에 자리한 대장간,그 시설은 다소 현대화됐지만, 전통방식으로 농기구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말이죠. 그 한 편에는 농기구 외에 다른 철 제품들도 자리하고 있었고 봄이 왔음을 실감케 하는 봄나물도 시선을 끌었습니다. 생선, 건어물을 파는 곳을 지나면 주점 부리 할 수 있는 과자, 사탕이 저를..
강릉은 곳곳에 역사적 유적지와 멋진 바다로 대표되는 자연경관, 현대적 감각의 볼거리가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계절을 가리지 않고 많은 이들이 찾는 대표적 관광지가 됐습니다. 물론, 그곳을 찾기 위해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이들은 극심한 교통체증을 이겨내야 하지만 말이죠. 강릉에서 남쪽으로 해안을 따라가면 하슬라아트월드라는 미술과 호텔이 있습니다. 다양한 미술 작품들과 바다 풍경을 함께 할 수 있는 색다름이 있는 곳입니다. 사람들에게는 호텔이라기보다는 다양한 미술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미술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 지난여름 이곳을 찾아보니 다양한 미술작품들과 소품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바다와 접한 곳에서 만나서인지 더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하슬라아트월드의 이런저런 모습을 담아..
도시인들에게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은 동경의 대상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부러 시간을 만들어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곤 합니다. 도시속에서 지친 심신을 추스르기 위해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는 노력을 감수합니다. 자동차가 보편화되면서 시간과 공간의 제약도 많이 사라졌고 인터넷은 멋진 장소를 아주 빠르게 공유시킵니다. 멋진 풍경과 자연이 있는 장소는 이제 도시인들의 힐링장소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경남 산청은 경남 내륙의 조용한 고장이었지만, 최근 여행지로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과거 지리산으로 오르는 관문에서 벗어나 청정자연과 멋진 풍경이 함께 하는 곳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저 역시 산청의 자연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몇 차례 찾았던 산청에서 담은 장면들은 아직도 기억속에 남아 있습니다. 산청이 저에게..
최근 사람이 살지 않은 섬을 멋진 정원이 함께 하는 힐링의 공간으로 만드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여행프로그램에서도 그 섬들이 자주 소개되곤 합니다. 거제도에서 가까운 외도나 몇몇 섬들은 바다 위 정원으로 그 명성이 매우 높습니다. 주말이면 많은 사람으로 북적이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곳, 남해바다에 자리한 장사도는 최근 그 존재가 알려졌습니다. 다른 곳과 다른 점이 있다면 섬의 원형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섬 곳곳에 베어 있다는 점입니다. 잘 꾸며진 정원이나 조형물 중 상당수는 이전부터 섬에 있었던 것들입니다. 사람의 손길로 만들어진 공간이지만, 인위적인 느낌이 덜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늦봄에 찾았던 장사도는 제가 알고 있는 정원과 다르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아마 올여름에도 많은 분이 이..
사진을 담으로 곳곳을 다니다 보면 이전에 무심코 지나쳤던 사물과 일상들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사진 속에 담긴 모습들은 눈으로 보는 것과 다르게 보이기도 하고요. 사진기의 렌즈로 보는 세상은 사람의 눈과 조금 다름을 느끼기도 합니다. 내가 볼 수 없는 세상을 볼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 사진의 매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과정에서 일상의 사물들이 만들어 내는 일정한 패턴을 만난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입니다. 당시에는 큰 생각 없이 사진으로 담았지만, 지금 다시 보니 또 다른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장면들이 보이더군요. 제가 담았던 일상의 패턴들을 하나로 모아보았습니다. 담벼락 장작더미 장독대 그리고...... 모두 일상의 장면들입니다. 하지만 일정한 모양을 이루고 있음을 모르고 있었을 뿐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3월 1일은 일제에 맨몸으로 항거한 3.1운동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1919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우리 민족은 일제에 보다 더 체계적으로 대항할 수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많은 세월이 지나 광복을 기쁨을 누릴 수 있었지만, 그 해 3월의 온 민족이 하나되어 일제에 맞섰던 기억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해마다 국경일이 되면 다는 태극기지만 3.1절은 더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어떻게 무모하게 보일 수 있는 3.1운동에서 우리 선조들은 아무 무기도 없이 태극기 하나에 의지해 일제의 총검에 맞섰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국가대표팀을 응원하는 도구로 패션에 아이템으로 태극기가 이용될 정도가 되었지만, 당시는 우리 민족의 해방에 대한 의지를 표현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우리 국기로서 나라를 상징하는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