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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상에서 남의 것을 훔치는 것인 합법적으로 인정받는 스포츠가 있다. 야구가 그렇다. 야구에서 도루는 주자가 한 룰를 더 가는 공격법이다. 당연히 상대는 그것을 막기 위해 주자의 움직임에 신경이 곤두설수밖에 없다. 도루는 날카로운 단도 같아서 눈에 확 드러나지 않지만, 상대를 흔들고 무너뜨릴 수 있는 날카로운 무기가 되기도 한다. 


최근 우리 프로야구가 시원한 장타력과 타자들의 능력을 중시하는 빅볼보다 조직력과 기동력을 중시하는 스몰볼 경향이 강해지면서 도루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떨어지는 장타력과 공격력을 메울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도 하고 상대 수비진을 흔들고 팀 사기를 높일 수 있는 공격수단이기 때문이다. 올해도 상당수 팀들을 뛰는 야구로 공격의 돌파구를 열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팀 공격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도루지만, 도루를 많이 하는 선수들은 장타자들 비교하면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홈런을 많이 때려내고 타점을 많이 올리는 선수에게 팬들의 시선이 향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선수들을 평가하는 연봉에서도 그 차이가 느껴진다. 역대 홈런왕에 대해서는 잘 아는 이들도 역대 도루왕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상당하다. 


여기서 잠깐 우리 프로야구 도루왕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 시대를 풍미하는 몇몇 선수를 만날 수 있다. 그 속에서 도루왕의 계보를 살펴볼 수 있다. 프로야구 원년 그리고 초창기 도루왕의 대명사는 김일권이었다. 프로야구 해태에서 프로선수 생활을 시작한 김일권은 1982년과 1984년까지 내리 3년 연속 도로왕을 차지하면 대도의 이미지를 굳혔다.


김일권은 날렵한 몸을 가진 것도 아니고 다부진 몸매를 가진 선수였다. 언뜻 보이게 스피드가 뛰어난 선수 같지 않았다. 하지만 김일권은 투수들의 동작을 빼앗고 도루 순간 포착 능력이 탁월했다. 김일권은 투수들에 성가신 존재였다. 당시 투,포수의 주자견제 능력이 그리 뛰어나지 않았던 상황에서 김일권의 출루는 한 루를 더 주는 것과 같았다. 





이대형



이후 김일권은 팀내 포지션 경쟁에서 밀리며 상당기간 침체기를 보내기도 했지만, 한 1987년과 1988년 팀을 태평양으로 옮겨 2년 연속 도루왕에 오르는 저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30살을 훌쩍 넘긴 노장이 이룬 반전이었다. 그만큼 김일권의 도루 능력을 천부적이었다. 김일권이 80년대 도루왕의 시조였다면 90년대 초반 도루왕 구도는 이종범과 전준호의 대결이었다. 


그 중간 이순철이라는 과도기가 있었지만, 1993년 이종범과 전준호의 도루왕 대결은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두 선수는 시즌 종료 까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접전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출루율을 높이기 위한 대타 기용 등 소속팀들의 밀어주기 도를 넘어서면서 진흙탕 싸움양상으로 그 대결이 과열되기도 했다. 1993년 당시 승자는 전준호였지만, 이후 도루왕의 계보는 이종범이 이어갔다. 


이종범은 1994년 시즌 84개를 도루를 기록하며 아직도 깨지지 않는 시즌 도루 신기록을 작성했다. 당시 타격 전 부분에서 선두권을 달렸던 이종범이 도루에 더 주력했다면 시즌 100개도 가능했을 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종범의 도루 능력을 출중했다. 이종범은 타고난 야구센스에 엄청난 스피드 투지까지 겸비한 선수였다. 우월한 타격 능력으로 높은 출루율을 유지하면서 도루의 기회도 상대적으로 많았다.


이후 이종범은 일본 진출로 상당 기간 국내 프로야구에서 공백기가 있었지만 한 참의 세월이 흐른 2003시즌 50개의 도루로 이 부분 1위에 올랐다. 방망이는 슬럼프가 있어도 발에는 슬럼프가 없다는 것을 이종범은 입증했다. 이런 이종범의 뒤를 잇는 도루왕으로는 정수근을 들 수 있다. 정수근은 1998년 시즌부터 2001년 시즌까지 내리 4년 연속 도루왕에 오르며 도루왕의 세대교체를 이끌었다.


정수근은 날렵한 체격에서 저돌적 주루 능력을 겸비한 선수였고 몸을 사리지 않는 투지 넘치는 선수였다. 정수근은 두산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팬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는 선수이기도 했다. 끼가 넘치는 그의 성격은 타고난 쇼맨십과 어울리면서 야구 외적으로 그의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정수근은 4년 연속 도루왕 타이틀을 발판삼아 FA 대박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 경기 외적인 구설에 자주 휘말리며 이른 나이에 선수 생활을 접어야 했던 비운의 선수이기도 했다. 


정수근 이후 춘추전국시대로 접어들었던 도루왕 경쟁에서 우뚝 선 선수가 나타났다. 2000년대 도루왕의 계보를 이어가는 선수는 이대형이었다. 이대형은 수퍼소닉이라는 별명답게 센스, 스피드, 슬라이딩의 도루 3요소를 겸비한 선수였다. 이대형은 2007년 시즌부터 2010년 시즌까지 4년 연속 도루왕에 50개 이상의 도루를 성공하며 이 부분 최고의 선수로 자리했다.


시즌 내내 대주자로만 나서도 도루왕이 될 수 있다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이대형의 도루 능력을 탁월했고 현재도 여전히 그는 도루왕 1순위 선수다. 하지만 최근 극심한 타격부진에 시달리며 팀 내 입지가 좁아졌고 부상이 겹치면서 이대형은 도루왕 경쟁에서 조금 멀어진 상황이다. 그 사이 오재원, 이용규가 최근 2시즌 도루왕 타이틀의 주인공이 되었다. 





정수근




하지만 이대형이 풀타임 주전으로 뛸 수 있다면 여전히 도루왕에 가장 근접한 선수임이 틀림없다. 이밖에 이대형 못지않은 도루센스를 가진 김주찬, 고감도 타격감을 지닌 지난 시즌 도루왕 이용규도 새롭게 도루왕 계보를 이어갈 선수 후보다. 


도루는 그 자체로 팀 기여도가 높지만, 부상의 위험을 안고 하는 플레이다. 특히 열악한 그라운드 컨디션 속에서 수차례 몸을 던져야하는 도루는 선수들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도루는 팀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중요한 공격수단인것만은 분명하다. 매년 도루왕에 오른다는 것은 높이 평가받을 만한 기록이기도 하다. 하지만 도루왕에 대한 평가에 조금 인색한 것이 야구의 현실이다. 


올 시즌도 많은 선수들이 도루왕 경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여전히 부상 위험을 안고 뛰어야 한다. 도루는 잘 뛴다고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데 많은 과정을 거치는 노력의 결정체다. 역대 도루왕들 역시 이러한 노력의 산물로 그 결과를 얻어냈다. 화려함이 떨어진다고 하지만, 도루왕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갖고 그 가치를 인정해줄 필요가 있다. 


올해는 어느 선수가 상대 베이스를 더 많이 훔치고 도루왕에 오를지 그리고 그 선수가 팬들의 마음까지 훔칠 수 있을지 주목된다.


Gimpoman/심종열 (http://gimpoman.tistory.com/http://www.facebook.com/gimpoman)

사진 : LG 트윈스, 롯데자이언츠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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