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주간 2회에 걸쳐 TV에서 독특한 소재의 다큐 프로그램을 볼 수 있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는 유명 외식사업가이지 요리 연구가인 백종원이 프리젠터로 나선 삼겹살 랩소디가 그것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대한민국에서 대중적인 식재료인 돼지고기, 그중에서 가장 많은 이들이 선호하는 삼겹살을 사회 문화적인 관점으로 새롭게 조명했다.
보통 음식과 관련한 프로그램은 음식의 맛을 찾아가는 여정이나 맛을 내는 방법, 그에 얽힌 사연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음식과 관련하여 사람들은 방송을 통해 다양한 맛집과 음식을 누가 빨리 잘 만드는지를 겨루는 프로그램을 자주 접했었다. 삼겹살 랩소디는 세심하면서 여유 있는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갔다. 삼겹살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음식에 대한 보다 입체적인 시각을 보여주었다.
삼겹살은 돼지고기 중에서 극히 일부분이다. 그 양은 많지 않지만, 유독 우리나라에서 그 수요가 많다. 세계 삼겹살 시장에서 우리나라는 최고 소비국이다. 국내에서 생산하는 돼지고기나 수입하는 돼지고기에서 삼겹살의 비중은 절대적이다. 최근 삼겹살 외 다른 부위에 대한 소비가 늘어나고 있지만, 삼겹살은 여전히 특별한 존재다.
삼겹살의 수요는 우리 경제발전과 연관이 있다. 1970년대와 80년대 경제발전이 가속화되면서 육류 소비가 크게 늘었다. 육류 소비에서 가장 우선 고려되는 재료는 소고기였지만, 소고기는 가격 면에서 일반 서민들에 쉽게 접근하기 어려웠다. 그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돼지고기 그중에서 삼겹살이었다. 우리나라의 만의 독특한 고기 섭취 방식도 삼겹살의 수요를 더 키웠다. 전 세계에서 그 예를 찾기 어려운 화로를 식사상에 올려놓고 직화구이를 하는 방식이 보편화되면서 삼겹살은 이에 딱 맞는 식재료였다. 삼겹살에 함께 붙어있는 지방층은 구워지면서 고기의 풍미와 고소함을 더하게 했다. 노릇노릇 구워지는 삼겹살은 식감을 강하게 자극한다.
이런 맛에 육류 소비가 대중화되는 시점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돼지 삼겹살의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직화구이를 용이하게 하는 휴대 가능한 다양한 불판과 휴대용 가스레인지 등이 추가되면서 삼겹살의 대중화를 촉진했다. 가족들과 지인들과 함께 여행을 가거나 하면 의례 삼겹살을 구워 먹는 건 당연했던 시절이 있었고 지금도 캠핑 등 야외 활동에서 삼겹살은 중요한 먹거리가 되고 있다. 삼겹살은 우리 경제발전과 그 맥을 함께 하고 있다.
돼지고기가 대중화되어 있는 유럽 등 국가에서는 선호되지 않는 삼겹살의 맛을 찾고 대중화한 우리의 독특한 식문화도 삼겹살이 우리 생활과 밀접한 식재료로 자리 잡는 데 영향을 주었다. 통상적으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은 지인들과의 소통의 장이었고 하루를 기분 좋게 마무리하는 일종의 통과의례였다. 전통적인 회식 장면에서도 삼겹살은 빠지지 않는 요소였다. 삼겹살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단백질을 공급받을 수 있는 수단이자 그 안에 서민들의 삶의 애환을 가득 담고 있었다. 삼겹살 외에 족발이나 순대, 국밥 형태로 돼지고기가 소비되고 있지만, 돼지고기 먹는다는 말을 하면 가장 먼저 연상되는 이름은 삼겹살이다. 삼겹살은 지금도 사람들이 모였을 때 가장 먼저 고려되는 식재료다.
삼겹살은 다양한 방법으로 구워지고 소비되고 있다. 불판에서 굽는 일반적인 형태에서 지역과 장소의 특성에 맞게 구워졌다. 숯가마가 있는 곳에서는 갖 구워져 나온 숯을 이용해 구워지고 벼농사가 활성화된 곡창지대에서는 짚불로 구워졌다. 이는 현대에까지 이어져 사람들은 다양한 형태로 구워지는 삼겹살의 맛을 즐기고 있다. 사람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더 맛있게 삼겹살을 즐기는 방법을 찾았고 이는 삼겹살의 형태를 바꿔가고 있다.
이런 삼겹살이 변신은 K 푸드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 삼겹살을 변화시켰다. 과거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요리로 자주 소개되는 불고기가 있었지만, 생고기를 직화구이 형태로 식당에서 구워 먹는 삼겹살은 외국인들에게는 생경하기도 하지만, 한국만의 독특한 식문화를 체험하게 하고 있다. 이렇게 삼겹살은 우리의 삶을 넘어 외국에서도 그 존재감을 높여가고 있었다.
삼겹살이라는 최고 식재료를 제공해 주는 돼지고기 역시 우리의 역사와 문화 속에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소와 달리 돼지는 예로부터 식용용으로 각 가정에서 키워졌다. 돼지고기는 마을 잔치나 가정의 중요한 행사에서 들어가는 식재료였다. 돼지 한 마리 잡는다는 말은 중요한 행사가 있음을 의미했다. 그 행사가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돼지고기를 잡는 날은 고기 먹기가 어려웠던 과거에는 너무나 특별한 시간이었다.
그 돼지고기는 지역별로 다양한 형태로 조리됐다.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강원도 한 시골 마을에서는 구덩이를 파고 불을 피워 가열하고 물을 넣어 수증기로 삶는 방식으로 통 돼지고기를 조리하는 방식이 특이했다. 해외 음식문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에서 특정 지역의 원주민들이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불을 피워 통고기를 구워 먹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것과 매우 유사했다. 이런 원시적 형태의 조리방법은 아주 오래전부터 돼지고기가 우리 삶과 함께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돼지고기의 오래된 소비 형태는 제주에서도 볼 수 있었다. 제주는 육지와 동떨어진 섬이라는 특성 탓인지 우리 토종 돼지가 보존되고 있었다. 제주에서는 마을 잔치나 큰 행사에서 돼지를 부위별로 정육해서 우리에게 생소한 돼지고기 욱회를 포함해 모든 부위를 함께 나누고 소비해다. 그 전통은 아직도 남아있었다. 예로부터 돼지고기는 어느 것 하나 버려지지 않고 소비됐다. 돼지고기가 함께 하는 잔치와 행사는 나눔의 시간이었고 공동체를 더 돈독하게 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단순히 의식주의 중요한 한 부분을 채우는 것 이상의 의미였다. 돼지고기는 특별한 시간에 중심이 되는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 돼지고기는 삼겹살로 대변되고 있다. 소 못지않게 다양한 부위로 나뉘는 돼지고기지만, 소비의 형태는 극히 제한되어 있다. 이는 소비 편중은 부위별로 가격의 불균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중적인 삼겹살이라고 하지만, 최근 삼겹살 가격은 높은 수준이다.
특히, 우리 돼지 한 돈의 삼겹살 가격은 대중적인 접근성을 어렵게 하고 있다. 다양한 부위를 소비할 수 있다면 돼지고기를 보도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가격에 즐기 수 있다. 프로그램에서는 삼겹살 외에 돼지고기의 다양한 부위를 소비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했다. 육가공품의 재료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고급 식재료로 활용되는 돼지 뒷다리를 이용한 하몽을 만들거나 돼지 기존 방식과 다른 돼지 정육 방법으로 새로운 돼지고기 형태를 만드는 모습도 소개되었다.
여러 요리 기법을 통해 다양한 부위를 보다 고급스럽고 자연스럽게 즐기는 방법도 제안되기도 했다. 한편에서는 상온 숙성육인 드라이에이징 형태로 돼지고기를 2차 가공하여 고급화하는 방안도 엿볼 수 있었다. 돼지고기는 삼겹살이라는 한계를 넘어서 소고기처럼 돼지고기를 다양하게 소비하는 또 다른 방법론을 살피는 건 의미가 있었다. 여기의 돼지고기가 가지는 사회, 문화적 가치를 찾았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음식 문화는 그 사회의 시대상과 역사를 담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 돼지고기 소비문화도 단순히 먹을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무엇보다 역사의 주역이 아닌 일반 대중과 서민들의 삶이 그 안에 투영되어 있다는 점에서 돼지 고가가 새롭게 다가왔다. 이에 더해 대량생산의 이면에서 가축 전염병이 생기면 공산품같이 쉽게 살처분되는 돼지고기를 비롯한 육류 생산과 소비의 어두운 이면도 함께 다뤘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1, 2부의 한정된 분량에서 여러 가지 다양한 면을 모두 다루는 건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인지도 높은 인물을 프리젠터로 내세워 딱딱할 수 있는 음식문화와 관련한 이야기를 이해하기 쉽게 풀어갔다는 점은 평가할만했다. 이와 관련한 또 다른 이야기도 기대된다.
사진,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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