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시즌을 준비하고 있는 롯데에 큰 악재가 발생했다. 지난 시즌 주전 중견수 겸 주장으로 활약했던 민병헌이 스프링 캠프를 앞두고 전력에서 이탈했기 때문이다. 민병헌은 뇌동맥류 수술과 치료 및 재활을 위한 시간이 필요함을 밝혔다. 뇌혈관과 관련한 자칫 뇌출혈로 이어질 수 있는 민감한 질환으로 그의 선수 복귀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자칫 올 시즌 전반기 출전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롯데로서는 큰 전력 공백이 불가피하다.
올 시즌 후 두 번째 FA 자격을 얻을 수 있는 민병헌에게도 올 시즌은 중요했다. 2020 시즌 민병헌은 최근 들어 가장 부진한 시즌을 보냈다. 반등이 필요한 올 시즌이었다. 나이는 30대 중반으로 향하고 있지만, 반등할 수 있다면 공수에서 고른 기량을 갖춘 외야수로서 시장의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롯데에서도 민병헌은 주전 중견수로 올 시즌을 시작할 가능성이 컸다. 그만큼 민병헌의 롯데에서 입지는 크다고 할 수 있다. 그가 프랜차이즈 스타가 아님에도 지난 시즌 주장으로 선임된 건 그에 대한 구단의 기대치가 반영된 일이었다.
2018 시즌을 앞두고 FA 계약을 통해 두산에서 롯데로 팀을 옮긴 민병헌은 당시 4년간 80억 원의 대형 계약을 체결하며 큰 기대를 모았다. 민병헌은 두산 시절 공수주를 겸비한 외야수로 두산에서 큰 역할을 담당했고 젊은 선수들의 리더로서의 면모도 보였다. 국가대표로서도 많은 대회에 나섰다. 롯데는 민병헌의 영입을 통해 전력 강화와 함께 두산 선수로 오랜 기간 활약했던 그의 강팀 DNA가 롯데에 이식되길 바랐다.
또한, 당시 팀의 프랜차이즈 선수이자 핵심 전력인 주전 포수 강민호의 FA 계약 실패에 따른 비난 여론을 잠재우려는 목적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 롯데는 주전 3루수 황재균과 포수 강민호에 대한 FA 협상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이들을 모두 타 팀으로 떠나보냈다. 이에 대한 팬들의 비난은 상당했다. 롯데는 FA 시장에 남아있던 대어급 선수인 민병헌 영입으로 이를 상쇄하려 했다.
하지만 급하게 진행된 민병헌과의 FA 계약은 오버 페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롯데는 상대적으로 외야 자원에 여유가 있었다. 민병헌의 영입은 포지션 중복이 불가피했다. 그의 영입은 중견수 전준우의 포지션 이동이 불가피했다. 강민호의 팀 내 비중을 대신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있었다. 롯데는 잠실 홈구장으로 쓰는 두산에서 3할대 타율과 두자릿 수 이상의 홈런과 평균 80타점을 생산했던 그가 타자에게 보다 유리한 롯데의 사직 홈구장에서 3할의 타율에 20홈런 80타점을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예상했다. 기존 롯데 외야수들 보다 뛰어난 수비 능력과 주루 능력, 작전 수행능력까지 갖춘 롯데 야구에 없는 능력이 있는 민병헌은 팀의 공수를 모두 강하게 할 수 있었다.
이런 롯데의 기대와 달리 FA 민병헌의 성적은 부족함이 있었다. 우선 부상 등 요인이 겹치면서 한 번도 풀타임을 소화하지 못했다. 경기 중 몸 맞는 공 부상도 있었고 잔부상이 있었다. 2018 시즌 민병헌은 부상으로 118경기 출전에 그쳤고 2019 시즌에는 101 경기에만 출전했다.
2018 시즌에는 17홈런 66타점으로 타격에서 기여도가 있었지만, 2019 시즌에는 9홈런 43타점으로 생산력이 줄었다. 하지만 모든 시즌에서 민병헌은 3할 타율을 넘어섰다. 건강한 민병헌의 기량은 의심하지 않아도 됐다. 2020 시즌 민병헌은 철저한 시즌 준비를 다짐했고 큰 의욕을 보였다. 주장으로 선수단을 이끌어야 하는 중책도 맡았다. 2019 시즌 최하위를 기록한 롯데는 새로운 주장 민병헌에 대한 기대가 컸다.
의욕적으로 시작한 2020 시즌이었지만, 민병헌은 깊은 부진에 빠졌다. 부진은 장기간 이어졌다. 민병헌 스스로 2군행을 자처할 정도였다. 롯데는 주장인 민병헌을 1군 엔트리에서 빼지 않고 잔류시키며 스스로 회복하길 기대지만, 민병헌은 좀처럼 부진을 터널을 벗어나지 못했다. 시즌 후반기에는 주로 벤치 멤버로 경기에 나섰다. 그의 중견수 자리는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반전의 시즌을 만든 정훈과 베테랑 좌타자 이병규가 대신했다. 그의 부진을 어느 정도 메울 수는 있었지만, 민병헌이 정상적인 활약을 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었다.
누구보다 성실한 민병헌의 부진을 두고 에이징 커브가 일찍 찾아온 것이 아닌가 하는 분석도 있었다. 시즌 초반 시도한 타격폼 변화 등도 원인으로 지목됐다. 주장의 역할도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였다. 강민호의 반대 급부로 영입되었다는 시선은 상당한 압박감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2021 시즌을 준비하면서 롯데는 민병헌의 주장 부담을 덜어주고 새로운 주장으로 전준우를 선임했다. 민병헌으로서는 새로운 마음으로 시즌을 준비할 수 있었다. 2021 시즌 후 두 번째 FA 자격을 얻는 민병헌으로서도 큰 동기부여 요인이 있었다. 최악의 부진을 보였던 2020 시즌이었던 만큼 반등할 일만 남은 민병헌이었다.
하지만 시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민병헌은 자신의 투병 사실을 알렸다. 그의 질환은 꽤 오래전부터 그를 괴롭혀 왔던 것으로 보인다. 뇌동맥류는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민병헌은 이를 안고 지난 시즌을 버텼다. FA 선수이자 주장이라는 책임감까지 더해진 그는 자신의 투병 사실을 알릴 수 없었다. 민병헌으로서는 큰 책임감으로 위험을 이겨내려 했지만, 그의 투혼이 성적과 연결되지 않았다. 이런 그의 몸 상태는 지난 시즌 큰 부진의 큰 원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민병헌은 성적과 주장으로서의 역할에 대한 부담에 언제든 건강이 크게 악화될 수 있는 상황은 견뎌야 했다. 민병헌으로서는 더는 투병 사실을 숨길 수 없었다. 그는 당장 큰 수술을 앞두고 있다.
롯데는 당장 주전 외야수 공백을 메워야 한다. 일단 지난 시즌 중견수로 공수에서 활약했던 정훈이 그 자리를 대신할 가능성이 크다. 정훈은 내야수로 프로에 데뷔했지만, 외야수로도 무난한 수비 능력을 보여주었다. 지난 시즌 정훈은 중견수와 1루를 오가면서도 3할에 근접한 타율과 11홈런, 58타점, 11도루까지 공격 각 부분에서 프로 데뷔 후 최고의 시즌을 만들었다. 0.357의 득점권 타율로 높은 팀 기여도도 보였다.
다만, 30대 중반으로 향하는 그의 나이는 풀타임 중견수 출전에 부담이 될 수 있다. 롯데가 기대하는 유망주 최민재, 추재현, 내야수에서 외야수로 전환한 강로한, 대형 신인으로 큰 기대를 모으고 있는 나승엽의 외야 전환 등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는 대안이 될 수 있지만, 민병헌의 전성기 때 능력을 모두 채우는 데는 한계점이 있다. 민병헌 개인으로도 두 번째 FA 기회를 잠시 접어야 하는 상황이다.
분명 구단과 선수 모두에 안타까운 일이지만 득실을 따지지 전에 정말 중요한 건 선수의 건강이다. 건강을 잃는 건 미래를 잃는 것과 같다. 민병헌의 뇌동맥류는 수술에도 어려움이 있고 앞으로도 추적 관찰이 필요하다. 회복에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수 있다. 운동능력의 저하도 우려된다. 투병과 선수 복귀에 긴 과정이 필요할 수 있다. 그 복귀를 예상할 수 없는 불확실성이 그를 더 괴롭힐 수 있다.
그의 공과를 떠나 민병헌은 롯데의 중심 선수다. 2019 시즌 롯데가 최하위를 기록했을 때 민병헌은 팀에서 유일하게 2019 프리미어 12 국가대표로 선발되기도 했다. 프로 입단 후 기량을 꾸준히 발전시켜 리그 정상급 외야수로 성장한 의지의 선수이기도 하다. 2021 시즌을 함께 할 수 없는 민병헌이지만, 그에 따른 아쉬움보다는 큰 응원과 격려가 필요하다. 민병헌이 그의 불행을 극복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복귀하기를 기대한다.
사진 : 롯데 자이언츠 홈페이지,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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