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TV 시청자들은 음악을 매개로 한 경연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음악 경연이 큰 성원을 얻으면서 각 방송국은 너도나도 음악 경연 프로그램을 만들고 홍보했다. 그 속에서 새로운 스타들이 등장하기도 했고 대중들의 큰 관심을 받기도 했다. 모 케이블 방송은 음악 경연 프로그램으로 그 인지도를 한층 높일 수 있었다.
이전에도 강변가요제나 대학 가요제 등의 음악 경연은 있었지만, 순수 아마추어들의 경연장이었다. 최근 음악 경연 대회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흐름을 그대로 반영했다. 각 기회사들이 자사의 연습생들을 심사하고 선발하는 오디션 방식이 그대로 적용됐다. 단순히 한 무대에서 노래만을 부르는 방식이 아니다. 각 출연자마다 각자의 서사가 있고 연출이 더해졌다. 출연자의 기쁨, 슬픔, 분노, 경쟁구도 속 갈등과 감동의 코드도 함께하고 있다. 마치 한 드라마를 보듯 경연은 1회성이 아닌 수차례 미디어에 노출된다.
여기에 시청자들이 적극적으로 경연에 참여할 수 있게 되면서 대중의 투표로 우승자가 결정되는 시스템이 보편화됐다. 시청자들은 각자가 응원하는 출연자에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숨기지 않는다. 간혹 그 열기가 지나쳐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이런 열기는 음악 경연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방송국에서는 이와 파생된 중요한 수입원을 만들 수 있었다. 대중적 관심이 커지면서 출연자 중 상당수가 스타로 자리할 수 있었다. 현대판 신데렐라 스토리가 곳곳에서 만들어졌다. 이런 스타 탄생의 과정은 흥미롭고 극적이었다.
최근 음악 경연 프로그램은 그 열기가 식어갔다. 경연 프로그램이 과도하게 등장하면서 시청자들은 식상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스타의 등용문이라는 중요한 기능도 유튜브 등 각종 SNS의 발전으로 다양화됐다. 음악 경연 대회가 아니어도 스타가 탄생하는 길이 생겼다. 비슷한 포맷의 프로그램의 반복은 시청자들에게 피로감으로 다가왔다. 방송국 차원의 순위 조작 스캔들과 과도한 연출 등이 문제가 되면서 프로그램은 애초 의도와 달라 정해진 각본에 따라 결과가 정해진 듯한 모습도 보였다. 이렇게 신선함이 떨어진 음악 경연은 점점 대중들의 외면을 받았다.
최근 음악 경연 대회는 그동안 소외된 장르였던 트로트를 통해 되살아났다. 트로트는 장년층 이상의 음악으로 치부 받으며 젊은 층에게 외면받았다. 대중문화의 중요 소비층은 청소년, 청년층의 관심을 못하는 트로트는 어른들의 음악이었다. 대중의 노출 수단도 극히 제한되고 있었다.
하지만 모 종편 방송에서 시작한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은 엄청난 관심을 불러일으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 프로그램은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했다. 경연은 시즌 1에서 시즌 2로 이어지고 있고 여전히 시청률은 고공행진이다. 그 과정에서 아이돌 못지않은 팬덤이 형성되고 대형 스타로 탄생했다. 미디어의 지속적인 노출은 트로트 음악을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대중적인 음악으로 만들었다.
미디어 환경의 다양화 속에 청년층과 청소년들이 TV 외에 미디어에 관심을 가지면서 발생한 시청 주도권의 빈자리를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이 파고들었다. 그동안 채널 선택권에서 소외되었던 장년층이 TV 앞에서 자신의 프로그램을 선택한 기회가 커졌고 그들의 기호에 맞는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대중문화에서 소회되었던 장년층은 그들의 원하는 방송에 열광했고 이는 높은 시청률로 이어졌다. 그 바람은 전 세대로 전해졌다.
하지만 하나가 히트하면 비슷한 상품이 등장하듯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 역시 과잉 현상을 보이고 있다. 종편 방송은 물론이고 지상파에서도 트로트 경연 대회가 우후 죽순처럼 생겨났다. 방송을 하면 일정 시청률이 보장되는 프로그램을 방송국들이 놓칠 리 없었다. 부작용이 있었다. 트로트 경연의 증가는 음악의 쏠림 현상으로 이어졌다. 많은 국민들이 좋아하는 장르인 트로트지만 노출 빈도가 지나치게 늘었다.
점점 대중들은 이런 쏠림 현상에 서서히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자칫 과거 음악 경연 프로그램처럼 한때의 유행이 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프로그램의 인기에 비례해 각종 논란이 커지는 것도 프로그램에는 악재가 될 수 있다. 개인의 경연이 아닌 기회사들 간 경쟁구도가 형성되면서 그 순수성이 훼손되는 결과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방송된 음악 경연 프로그램 싱어게인은 신선했다. 싱어게인은 기존 음악 경연과 차별화가 뚜렷했다. 참가 대상을 음반 발매 경험이 있는 가수로 한정했다. 기존 음악 경연 프로그램이 신인들을 중심으로 했던것과는 달랐다. 기존 음악인들이 경연 프로그램이 참여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수는 많지 않았다.
싱어게인은 또 하나의 조건을 더했다. 대중적으로 큰 관심을 얻지 못한 무명 가수여야 한다는 조건이 더해졌다. 이는 그동안 음악경연 프로그램에서 소외되었던 대상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됐다. 음악 활동을 지속하고 있지만, 무명가수로 불렸던 이들에게는 자신의 존재를 알릴 수 있는 기회였다. 참가자 중에는 힘겹게 활동을 이어가는 젊은 가수들과 과거 활동을 했지만, 이런저런 사유로 활동을 못하는 음악인과 추억의 가수들도 있었다.
그들은 이름이 아닌 번호로 불리며 동등한 위치에서 경연을 시작했다. 물론, 그 속에서도 인지도 있는 가수들이 보다 유리할 수도 있었지만, 심사 과정에서 보다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모습이 보였다. 출연자들의 서사도 과감히 줄이고 노래만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무대 역시 화려함보다 담백함으로 채워졌다. 마치 일반 기회사의 오디션과 같은 분위기였다. 코로나 상황으로 대면 무대를 만들기 어려운 상황도 있었지만, 시청자들은 음악에 보다 더 집중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시청자들과 대중은 보이지 않았던 원석들을 하나 둘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속에서 대중들의 관심을 받는 숨어있던 실력자들이 등장했다. 이런 가수가 있었나 하는 찬사도 나왔다. 과거 추억을 뒤로하고 재기를 꿈꾸는 가수들에 대한 응원도 더해졌다. 이런 경연의 과정을 거쳐 2월 8일 최종 결승이 치러졌다.
우승자는 첫 등장부터 자신만의 음악세계로 관심을 모았던 이승윤이었다. 30호 가수로 등장한 그는 음악 장르를 알 수 없는 독특함과 강렬한 무대매너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매 무대마다 그는 파격적인 모습으로 등장했다. 기존 노래를 자신의 노래로 만드는 능력도 탁월했다. 시청자들의 그의 또 다른 무대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이런 기대감은 그에 대한 강렬한 팬덤을 형성했다. 그는 순위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문자투표에서 다른 경쟁자들을 압도했다.
그와 함께 결승전에 진출한 멤버들은 다양한 장르의 가수들로 채워졌다. 소외된 장르인 헤비메탈을 기반으로 한 정홍일은 방송에서 접하기 힘든 헤비메탈 음악의 매력을 한껏 뽐내며 2위에 올랐다. 그는 다른 장르의 음악을 헤비메탈로 승화시키며 또 다른 매력을 보여주었다.
유튜브를 통해 알려진 가수 이무진은 독특한 음색과 현란한 기타 연주, 뛰어난 가창력을 더해 1위 이승윤과의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3위에 머물렀지만, 그 역시 독특한 색깔을 가진 가수로 앞으로도 기대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과거 교통사고로 멤버 2명이 사망하는 큰 불행을 겪었던 레이디스코드의 리더 보컬 이소정 역시 이 프로그램을 통해 가수 이소정으로 다시 비상할 기회를 잡았다. 결승 무대에서 큰 실수를 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그는 경연을 통해 뛰어난 가창력과 다양한 음악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4위 성적 이상으로 그는 능력 있는 가수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연어 장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가수 이정권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가수와 직장인의 중간 경계에 있던 자신을 완전한 가수의 길로 완전히 정착시킬 수 있었다. 담백하면서 힘 있는 보컬은 분명 매력적이었다. 5위를 차지한 그는 이제 가수 이정권으로 새롭게 시작할 기회를 잡았다. 독특한 음색의 가수 요아리는 무대 공포증을 극복하고 자신의 매력을 마음껏 뽐낼 수 있는 가수로 거듭났다. 6위에 머물렀지만, 무대에 대한 자신감을 얻으면서 앞으로 활동을 기대하게 했다.
이들 외에도 다수의 실력자들이 이 무대에서 그 이름을 알렸다. 모두가 가수로서 능력을 인정받는 이들로 순위는 큰 의미가 없었다. 이들에게는 자신의 알릴 수 있는 무대가 목말랐다. 무명 가수들에게는 더욱더 힘든 무대와 방송의 기회가 코로나 사태로 거의 사라진 상황에서 이 무대는 작은 오아시스였다. 모두가 조명 받지 못했지만, 이 무대는 참가한 가수들에게는 중요한 경력으로 남을 수 있다. 앞으로 음악을 하는 데 있는 큰 힘이 될 수 있다.
시청자들 시류에 편승한 음악 장르가 아닌 다양한 음악들을 접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의 장이었다. 특히, 아이돌 중심의 청소년, 트로트 중심의 장년층 사이에 낀 30~40대들에게 싱어 게인은 새로운 음악의 통로였다. 각종 경연에 지친 이들에게는 휴식 같은 시간이기도 했다. 다만, 평가의 객관성을 보다 더 강화해야 하는 과제는 남겨두었다. 한정된 심사위원만으로 경연자들의 우열을 가리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아쉬운 탈락자도 다수 발생했다.
하지만 싱어게인은 기존 음악 경연과 다른 따뜻함이 있었다. 각자의 경쟁자들은 자신을 알려야 하고 이겨야 하는 이유가 절실함이 있었지만, 서로에게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무대에서 노래하는 것만으로도 출연자들은 행복했다. 그 따뜻함을 시청자들과 함께 느낄 수 있었다. 이 경연은 경쟁보다는 음악을 함께 하는 무대였다. 이제 월요일 밤 음악 향연은 마무리됐다. 이런 기회의 장이 앞으로 더 많아지기를 기대해본다. 싱어게인 시즌 2 역시 기대된다.
사진 : 프로그램 홈페이지,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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