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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팬들 사이에서 언급되다 이제는 사실상의 신조어가 된 단어가 있다. 롯데와 LG의 대결을 빗대어 표현한 엘롯라시코가 그렇다. 한때 롯데와 LG가 하위권을 함께 전전하던 시기 양 팀 팬들 사이에서 만들어진 이 단어는 유독 치열한 승부를 많이 펼쳤던 두 팀의 관계를 대변하고 있다.

하지만 이 단어는 엘꼴라시코라는 조롱의 의미를 강하게 내포한 신조어가 그 기원이다. 긴 암흑기를 지나고 있던 2000년대 초 롯데는 대표적인 하위권 팀으로 최하위 팀의 불명예를 수차례 감수해야 했다. 그 시기 롯데 팬들에게 꼴데라는 말은 그들이 응원하는 팀에 대한 자조 섞인 표현이었고 다 팀 팬들도 즐겨 사용하는 말이 됐다. LG 역시 하위권 성적을 전전하던 시기 양 팀 대결은 치열한 타격전과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는 난전이 많았다.

그 경기를 통해 양 팀 팬들은 실망의 탄식과 짜릿함을 함께 경험하는 일이 많았다. 스페인 프로축구의 대표적 라이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대결을 보고 만들어진 엘꼴라시코는 엘롯라시코로 순화되었지만, 양 팀 팬들에게 유쾌한 표현은 아니었다. 그런 암흑기를 지났지만, 엘롯라시코는 프로야구에서 흥미로운 단어로 자리를 잡았다. 4월 27일 그 엘롯라시코의 주인공 롯데와 LG가 LG의 홈 잠실구장에서 2021 시즌 첫 대결을 펼쳤다. 롯데에게는 시즌 첫 잠실 경기이기도 했고 롯데 그룹 신동빈 회장의 경기장 방문으로 또 다른 관심을 끌었던 경기였다.

두 팀의 첫 대결은 LG의 4 : 0 완승이었다. LG는 선발 투수 정찬헌의 6이닝 무실점 호투와 3회 말 오지환, 라모스의 솔로 홈런,  5회 말 홍창기의 1타점 3루타와 김현수의 희생 플라이를 묶어 4득점하며 선발 투수 정찬헌의 승리 투수 요건을 만들어주었다. 이후 LG는 송은범, 정우영, 김대유, 마무리 고우석까지 효과적인 불펜진 운영으로 실점 없이 경기를 마무리했다. 올 시즌 LG가 선두권을 유지하는 데 큰 힘이 되고 있는 마운드, 특히 불펜진의 힘을 제대로 보여준 경기였다. 여기에 팀 타율 최하위의 팀 타선이 홈런포를 포함해 장타력을 보여주며 확실한 회복 조짐을 보였다는 점도 LG에 큰 의미가 있었다. 

 

좌타자 극복의 과제 풀어야 하는 롯데 노경은



롯데는 선발 투수 노경은이 5이닝 4실점으로 선발 투수 대결에서 밀리며 경기 흐름을 내줬고 이후 그 흐름을 반전시키지 못했다. 노경은은 다양한 구종으로 LG 타선에 맞섰지만, LG의 강력한 좌타선을 넘지 못했다. 1회 말 무사 2, 3루 위기에서 노경은 노련한 투구로 실점을 막아냈지만, 오지환과 라모스 두 힘 있는 좌타자에 연달아 홈런을 허용하며 실점했고 5회 말에도 좌타자 홍창기와의 승부를 이겨내지 못했다. 올 시즌 유독 좌타자에 약점을 보이고 있는 노경은은 그의 첫 선발 등판 경기인 두산전에서도 3개의 홈런을 모두 좌타자에 허용했다. LG전에서도 흐름은 달라지지 않았다. LG는 6명의 좌타자를 라인업에 포함해 노경은을 압박했고 원하는 결과를 얻어냈다. 

하지만 롯데의 더 큰 문제는 타선에 있었다. 선발 투수 노경은은 4실점했지만, 대량 실점 위기를 벗어나며 5회까지 책임졌다. 이후 마운드에 오른 이인복, 서준원, 박진형까지 불펜 투수들은 더 이상 실점하지 않았다. 4점 차는 팀 타율 1위의 롯데 타선이라면 극복 가능한 차이로 보였지만, 롯데는 2회 초 만루 기회를 놓쳤고 4회 초 무사 2루 기회에서도 득점하지 못했다. 롯데 타선은 LG 선발 정찬헌의 변화구를 효과적으로 공략하지 못했다. 득점권에서 타선은 더 부진했다. 그렇게 6회를 보낸 롯데는 LG 불펜진이 가동된 경기 후반 반전 기회를 다시 잡았다. 

마침 LG의 불펜 투수들은 선발 투수 정찬헌 이상의 투구 내용이 아니었다. 8회 초 롯데는 결정적 기회가 있었다. 최근 제구가 불안한 LG의 셋업맨 정우영은 볼넷 3개를 허용하며 1사 만루 위기를 자초했다. 적시타가 나온다면 경기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롯데였다. 엘롯라시코 다운 접전 가능성이 커지는 상황이었다. 이 상황을 정리한 건 LG 좌완 불펜 투수 김대유였다. 

김대유는 1사 만루 위기에서 롯데의 잇따른 우타 대타 김민수, 오윤석을 연속 삼진으로 처리하며 롯데의 추격 가능성을 완벽히 차단했다. 그것으로 사실상 경기는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김대유는 140킬로에 못 미치는 직구였지만, 만만치 않은 타격감의 롯데 두 타자를 과감한 승부로 잡아냈다. 좌우 코너와 위아래를 폭넓게 활용하는 투구가 인상적이었다. 좌완 투수로는 보기 드문 사이드암 형태의 투구폼은 타자들에게 매우 낯설고 어렵게 다가왔다. 올 시즌 그를 처음 상대하는 롯데 타자들은 더욱더 그의 공이 어려웠다. 

이렇게 두 타자만을 상대했지만, 김대유는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투구를 했다. 가장 큰 승부처에서의 탈삼진 2개는 경기 승패를 좌우하는 순간 나왔다는 점에서 큰 가치가 있었다. 이런 그의 투구는 LG가 그를 우타자 대타가 연속으로 나올 수 있음을 예상할 수 있는 상황에서 그를 마운드에 올린 이유를 보여주었다. 

김대유는 4월 27일 롯데전까지 10경기 마운드에 자책점 0를 유지하고 있다. 9개의 삼진을 잡아내는 동안 볼넷을 1개와 불과할 정도로 안정적이 제구를 유지하고 있다. 각 팀 모두 마운드의 사사구 문제로 고심하는 상황에서 김대유는 인상적인 투구를 하고 있다.

여기에 그가 허용한 안타는 단 1개와 불과할 정도로 완벽한 투구 내용이다. LG로서는 지난 시즌 무려 76경기에 등판하며 좌완 불펜진의 절대적 비중을 차지했던 진해수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좌완 불펜 투수를 확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로서는 그 이상의 투구 내용이다. 그가 있어 LG는 진해수를 2군에 내려 재정비의 시간을 가지게 하는 결정을 할 수 있었다. LG는 김대유의 활약으로 시즌 전 영입했던 베테랑 좌완 투수 고효준이 시간을 가지고 몸을 만들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올 시즌 놀라운 활약을 하고 있는 김대유지만, 그의 프로선수로서의 이력은 비약하지만 하다. 2013 시즌 프로에 입단했고 1991년생으로 30살이 나이가 된 김대유지만, 그를 아는 야구팬들도 많지 않다. 2013 시즌 키움 히어로즈의 전신 넥센 히어로즈에 입단한 김대유는 1군 등판 기회를 잡지 못했고 2군에만 머물렀다.

김대유는 군 복무로 인한 공백기를 거쳐 2차 드래프트를 통해 SK 와이번스, 지금의 SSG 랜더스로 팀을 옮겼지만, 돋보이는 선수가 아니었다. 주로 2군에 머물렀고 1군에서 좌타자 상대 스페셜리스트로 기용되기도 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희소성이 큰 좌완 사이드암 투수라는 장점이 있었지만, 그 장점을 극대화하지 못했다. 문제는 제구였다. 보통의 선수라면 현역 선수 생활을 접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좌완 사이드암이라는 점이 그의 선수 이력을 유지하는 마지막 끈이었다. 

2019 시즌 김대유는 KT로 팀을 옮겨 그의 잠재력을 발휘했다. 선수층이 두껍지 않은 KT의 상황이 그에게 기회로 작용했다. 21경기 마운드에 오른 김대유는 2.33의 준수한 방어율을 기록했다. 제구는 완벽하지 않았지만, 까다로운 구질로 이닝 당 1개 이상의 삼진을 잡아냈다. 뒤늦게 프로야구 선수로서 존재감을 발휘할 시점에 김대유는 원치 않는 변화를 겪었다. 2차 드래프트에서 KT는 상대적으로 나이 어린 투수들을 보호하면서 그를 보호선수 명단에 넣지 않았다. 좌완 불펜진 뎁스 확보가 필요했던 LG는 그를 선택했다. 김대유는 이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다. 2020 시즌 그는 1군에서 3경기 마운드에 올랐고 부진했다. 

2021 시즌 김대유는 심기일전해 1군 엔트리 경쟁을 이겨내며 시즌 개막부터 1군 경기에 나섰다. 그전 시즌의 시행착오를 고치고 자신에 맞는 투구폼을 새롭게 했다. 사이드암에서 조금 더 높은 스리쿼터 형태로 투구를 하면서 제구도 안정이 되고 공의 각도도 커졌다. 김대유는 과거 리그를 대표하던 좌완 투수 구대성을 연상하는 폼으로 빠른 공은 아니지만, 이는 좌우타자 모두에서 까다롭게 다가왔다. 생소함까지 더한 김대유는 현시점에서 리그 최고의 불펜 투수라 할 수 있다. 

한차례 고비는 있었다. 김대유는 두산과의 경기에서 그의 투구에 두산 포수 박세혁이 큰 부상을 당하는 사고가 있었다. 광대뼈 골절을 당한 박세혁은 장기간 결장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는 김대유에게 큰 마음의 짐이 될 수 있었다. 그에 대한 비난도 뒤따를 수 있었고 무엇보다 마운드에서 자신감을 잃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김대유는 그 상황을 극복하고 무실점 투수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인터뷰에서도 박세혁에 대한 미안함을 표현하기도 했다. 이에 박세혁이 따뜻하게 화답하면서 김대유는 마음의 짐을 조금은 덜 수 있었다. 이런 일이 김대유에게는 그를 더 단단하게 하는 일이 될 수 있다. 

 

짧지만 강렬했던 탈삼진 2개, LG 불펜 투수 김대유



이미 김대유는 긴 무명의 세월을 견뎠고 방출과 원치 않는 팀 변경을 수차례 경험했다. 경쟁에서 뒤처지는 좌절도 그 사이 많이 있었다. 순탄치 않은 프로선수 생활 속에 그의 나이는 30살을 넘어섰다. 그 늦은 나이에 김대유는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과거 롯데에서 활약했던 좌완 투수였던 그의 아버지 김종석의 불운을 극복하는 일이기도 하다. 김종석은 고교시절 특급 투수로 이름을 알렸고 대학에서도 국가대표로 활약하는 등 프로에서의 활약이 기대되는 유망주였다. 하지만 롯데에서 그의 프로선수 생활을 순탄하지 않았다.

아마 시절 혹사 후유증으로 김종석의 구위는 그 위력이 크게 떨어졌다. 기대와 달리 김종석은 승리보다는 패배가 익숙한 투수가 됐다. 긴 연패의 아픔을 겪기도 했고 잘 던지고도 이상하게 승운은 없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아마 시절 그의 투구를 기억하는 롯데 팬들에게 김종석은 아픈 손가락과 같았다. 될듯하면서도 안되는 그의 모습에서 롯데 팬들은 안타까움을 가졌고 불운의 투수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1987 시즌 입단한 김종석은 불운의 투수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1993 시즌 이후 다소 빠른 은퇴를 하며 프로야구 선수 생활을 접었다. 

그의 아들 김대유 역시 그 불운을 이어갈 수 있었지만, 김대유는 상황을 극복하고 뒤늦게 그의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물론, 아직 시즌 초반이고 그에 대한 타 팀의 철저한 분석이 이루어지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구위가 뛰어난 투수가 아닌 탓에 적응이 이루어지면 공략당할 가능성도 크다. 당연히 실점하는 경기도 늘어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김대유에게는 1군 마운드에 서는 것만으로도 큰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 그런 간절함은 그를 쉽게 무너지지 않은 투수로 만들어 가고 있다.

그의 미래는 아직 긍정과 부정이 교차하고 있지만, 김대유는 프로야구 팬들의 관심이 컸던 롯데와 LG의 시즌 첫 경기에서 그는 짧지만 가장 크게 빛나는 활약을 했다. 위기 극복 후 마운드에서의 그의 포효는 무명의 세월을 견뎌디며 참고 또 참으며 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그의 의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이제 김대유는 그의 이름을 대부분 야구팬들이 알고 있다. 올 시즌 우승에 대한 의지가 큰 LG에서 현시점에서 김대유는 위기에서 가장 먼저 찾게되는 불펜 투수다. 남은 시즌 김대유가 반전의 아이콘으로 어떤 이력을 더 쌓게 될지 궁금하다. 


사진 : 롯데 자이언츠, LG 트윈스,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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