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역사에서 유일하게 팀 명이 바뀌지 않은 두 팀은 영남을 연고로 하는 롯데 자이언츠와 삼성 라이온즈다. 1982년 시작된 프로야구 원년부터 두 팀은 모기업과 팀 명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최근 두 팀은 클래식 매치라는 이벤트를 만들어 대결하고 있다. 팀 역사가 역사가 변하지 않고 유지된다는 건 분명 긍정적인 일지만, 수년간 롯데와 삼성은 하위권의 동반자였고 클래식 매치의 의미도 퇴색될 수밖에 없었다.
2021 시즌 두 팀의 상황은 크게 엇갈리고 있다. 시즌 초반이지만, 롯데는 5월 4일 현재 최하위, 삼성은 순위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롯데는 투. 타의 불균형으로 좀처럼 상승 분위기를 만들고 있지만, 삼성은 그 반대다. 삼성은 가장 안정된 전력과 함께 절대 패할 것 같지 않은 팀 분위기다.
지난주말 3연전은 양 팀의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롯데는 최하위 한화와의 홈 3연전을 모두 패했다. 이로 인해 롯데는 단독 최하위로 순위가 급락했다. 순위 경쟁에서 한 발 밀리는 상황이 됐다. 4연패의 침체한 분위기에서 롯데와 상대한 한화는 팀 타선이 롯데 마운드를 맹폭하며 3연승에 성공했다. 롯데는 지난 토요일 경기에서 크게 뒤진 상황에서 야수들을 마운드에 올리며 불펜 소모를 아끼는 전략까지 사용했지만, 일요일 경기에서 마저 역전패 당하며 명분과 실리는 모두 잃고 말았다.
반대로 삼성은 선두 경쟁을 하던 LG와의 홈 3연전을 모두 승리하며 단독 1위로 올라섰다. 삼성은 마운드에서 원태인, 뷰캐넌 두 선발 투수가 호투했고 불펜 데이로 치러진 경기에서는 영건 양창섭이 호투하며 승리의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 팀 타선은 LG 마운드를 효과적으로 공략하며 필요한 득점을 했다. 일요일 경기에서는 시리즈 스윕패를 막기 위해 마운드 총력전으로 나선 LG를 상대로 과감한 스퀴즈 작전 등을 펼치며 경기 흐름을 가져오며 역전승했다. 삼성과의 3연전을 모두 패한 LG는 중위권 경쟁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삼성은 리그 최강의 선발 마운드에 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위력적인 마무리 투수 오승환을 중심으로 한 불펜진이 조화를 이루고 있고 외국인 타자 피렐라를 중심으로 한 팀 타선도 매우 효율적인 공격력을 보이고 있다. 삼성은 부상 선수들이 속출하는 어려움에도 버텨낼 수 있는 두꺼운 선수층까지 더해지면서 가장 안정적인 경기력을 유지하고 있다. 투. 타에서 부상 선수들이 속속 복귀하는 삼성은 지금보다 더 강해질 수 있는 전력으로 지금의 상승세가 일시적 돌풍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지난 수년간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했던 삼성의 반전을 롯데는 씁쓸한 마음으로 지켜봐야 하는 처지다. 롯데는 시즌 초반 폭발적이었던 팀 타선의 기세가 꺾였고 마운드의 시즌 초반 구상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 시범경기 기가 호평을 받았고 부상 선수 없이 시즌을 시작한 롯데지만, 팀 전체 분위기가 내림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롯데는 마운드 정비가 시급하다. 선발 마운드는 에이스 스트레일리와 그 외 투수들의 격차가 크다. 새롭게 영입한 외국인 투수 프랑코가 강속구를 앞세워 가능성을 보이고 있지만, 제구의 기복이 심한 시한폭탄을 안고 있다. KBO 리그로 오기 전 시즌에 경기 공백기를 거친 탓에 풀타임 시즌을 버틸 수 있는 내구성이 있을지도 아직 지켜볼 부분이다. 국내 선발 투수진도 상황이 긍정적이지 않다.
3선발 역할을 하고 있는 박세웅은 2017 시즌 12승을 기록할 당시의 구위를 회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여전히 기복 있는 투구를 하고 있다. 지난 주말 한화전에서는 4이닝을 버티지 못하고 마운드를 물러났다. 가장 믿을 수 있는 국내 선발 투수의 부진은 선발 마운드 운영을 어렵게 할 수 있다. 박세웅을 이은 베테랑 노경은은 다양한 변화구와 노련한 경기 운영이 여전하지만, 긴 이닝을 버티기에는 다소 역부족인 모습이다. 투구 패턴이 읽히면 장타를 허용하거나 연속 안타를 허용하고 있다. 지난 한화전에서도 그 모습이 보였다.
롯데가 기대하는 영건 이승헌과 김진욱은 제구 난조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이들은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됐다. 이들을 대신할 선발 자원 서준원도 좌타자 상대로 어려움이 있다. 서준원은 선발 로테이션에 들어오지 못하고 불펜에 자리하고 있다. 롯데는 최고 유망주 포수에서 투수로 전환한 나균안을 최근 1군 엔트리에 포함했다. 낙균안은 지난 시즌 투수로 전환한 이후 2군에서 안정된 제구를 바탕으로 선발 투수로서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선발 마운드 전체가 흔들리고 있는 롯데는 나균안을 대안으로 택했다. 하지만 투구 경험이 부족한 나균안이 1군에서 어떤 투구를 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불확실성이 쌓이고 있는 선발 마운드와 함께 불펜진 상황도 부정적인 요소로 채워져 있다. 필승 불펜진 핵심인 구승민, 박진형이 부진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시적인 부진이 아닌 구위 저하가 심각하고 자신감도 떨어졌다. 현재로서는 1군에서 이들을 활용하기 어렵다. 박진형은 2군으로 내려갔고 구승민의 위치도 위태롭다. 30대 후반의 베테랑 김대우가 분전하고 있지만, 올 시즌 그의 위치는 필승 불펜이 아니었다.
또 다른 필승 불펜 최준용은 아직 구위가 살아있지만, 풀 타임 첫 시즌에 멀티 이닝 소화가 늘어나면서 과부하 현상을 보이고 있다. 문제는 김대우, 최준용 외에 여타 불펜 투수들이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인복, 오현택은 추격조 이상의 역할에 부담이 있다. 서준원은 선발 투수 자원으로 시즌을 준비했다. 최근 2군에서 불러올린 박재민은 롯데에 유일한 좌완 불펜이지만, 경험이 부족하다. 지속적인 활약은 미지수다.
롯데는 시즌 전 1군 마운드와 2군 마운드를 확실히 구분했다. 2군은 유망주 위주로 육성에 주력했다. 1군 마운드가 흔들릴 때 이를 대체할 자원이 부족하다. 롯데가 큰 기대를 가지고 영입했던 대형 신인 윤성빈은 이제 1군에서 역할을 해야 하지만, 2군에서조차 투구를 하지 못하고 있다. 좌완 투수 부족 현상은 여전하다. 마운드 운영 계획이 완전히 어긋난 롯데다.
시즌 초반 뜨거웠던 팀 타선도 최근 급격히 식었다. 롯데는 한번 폭발하면 두자릿 수 득점을 쉽게 할 정도로 폭발력이 있지만, 한 번 식으면 타선 전체가 부진한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시즌 초반에서 그 현상이 징검다리식으로 발생하면서 5할 승률에 근접할 수 있었지만, 지난주 타선은 부진한 경기가 더 많았다. 특히 상대 상위 순위 선발 투수에게 매우 약한 모습이었다.
롯데 타선은 지명도 높은 선수가 다수 포함되어 있다. 분명 수준급 타선이지만, 기복이 심한 모습이다. 한때 팀 타율 선두권이었지만, 그 순위가 뒤로 밀렸다. 한때 4할 타율을 기록하던 전준우는 3할 밑으로 타율이 떨어졌고 1번 타순에서 성공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안치홍을 제외하면 3할 타자가 없다. 중심 타자 중 한 명인 손아섭은 명성에 크게 못 미치고 있고 이대호는 꾸준한 활약을 하고 있지만, 나이에 따른 파괴력 저하가 눈에 보인다.
롯데의 미래 4번 타자 한동희가 분전하고 있지만, 중심 타선에 서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1루와 중견수를 모두 소화하면서 순도 높은 타격 능력을 선보이고 있는 정훈도 수비 위치 변경이 잣아지면서 체력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높은 대타 성공률로 호평을 받고 있는 베테랑 좌타자 이병규는 선발 출전 경기에서는 부진하다. 마차도, 김준태 등의 하위 타선은 지난 시즌보다 나은 활약을 하고 있지만, 팀 타선의 분위기를 바꿀 정도는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주전들의 부담을 덜어줄 백업 활용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내야의 백업 자원 오윤석, 배성근, 김민수 등은 한동희, 마차도, 안치홍의 입지가 워낙 단단한 탓에 충분한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 민병헌을 대신할 중견수 1순위 후보였던 추재현은 정훈이 그 자리에 더 많이 서면서 출전 경기 수가 줄었다.
롯데의 높은 주전 의존도는 지난 시즌에도 지적되었던 부분이다. 롯데는 리빌딩에 대한 비중을 높인다고 하면서도 2군 선수들이 콜업과 기용은 소극적이었다. 올 시즌 조금은 유연성이 더해졌지만, 그 흐름은 여전하다. 주전과 비 주전의 기량 차가 크다는 이유를 들 수 있지만, 라인업의 불균형도 유연한 선수 기용을 어렵게 하고 있다. 롯데는 가지고 있는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오윤석, 배성근, 김민수는 모두 내야수다. 외야수 이병규는 외야 수비에 어려움이 있어 주로 1루수, 지명타자로 나서야 한다. 이는 이대호, 정훈과의 포지션 중복을 초래하고 있다. 정훈이 내야와 외야를 겸하며 선수 기용의 폭을 넓혀주고 있지만, 너무 잦은 포지션 변경은 선수에게 부담이 된다. 정훈이 중견수 출전 비율을 높이면서 추재현의 입지가 애매해졌다. 롯데는 지난 주말 한화와의 3연전에서는 2군에서 콜업된 장두성이 주전 중견수로 출전토록 했다. 장두성은 퓨처스 리그에서 매우 빠른 선수로 주목을 받았다. 롯데는 장두성의 가세로 팀에 부족한 기동력 야구를 강화하고 추재현의 경쟁 구도를 만들려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정훈의 포지션에 따라 내야 백업 선수들의 활용이 더 어려워졌다. 뭔가 교통정리가 필요한 롯데의 라인업이다.
이렇게 롯데는 시즌 전 구상과는 크게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모습이다. 팀 운영 기조도 리빌딩 우선도 성적 지향도 아닌 어정쩡한 상황이다. 이를 해결할 프런트와 코치진의 소통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이미 롯데는 지난 시즌부터 감독과 단장 간의 갈등이 표면화됐다. 그 앙금은 여전히 남아있다. 이를 두고 각종 소문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오고 있다. 프런트는 리빌딩에 중점을 두고 있지만, 감독은 그와 다른 방향성을 보이고 있다. 이는 선수구성 및 기용에 있어 혼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문제들이 있지만, 해결의 키는 선수들이 가지고 있다. 특히, 고액 연봉을 받고 있는 주력 선수들의 분전이다. 야구를 결국 선수들이 해야 한다. 감독과 프런트의 갈등이 있다 해도 선수는 자신의 일을 충실히 하면 된다. 키움이 각종 내. 외부 변수에도 지난 수년간 상위권 성적을 유지한 데는 선수들의 역할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롯데는 이런저런 분위기에 선수단이 쉽게 휩쓸리는 경향이 있다. 프로선수로서는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고액 연봉을 받는 선수들은 그만큼 책임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 부상 등의 변수가 아니라면 성적 부진의 이유를 다른 곳에서 찾으면 안 된다. 팀 성적이 아무리 나빠도 선수들의 연봉은 나오지만, 팬들의 성원이 그에 비례해서 줄어든다. 팬이 없는 팀과 선수는 그 존재의 이유가 없다.
롯데는 선수들의 떨어진 경기력을 다시 되찾는 게 우선이다. 팀 분위기가 좋지 않아서 야구를 못한다는 건 변명이 될 수 없다. 구단 역시 운영의 난맥상이 있다면 과감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 소통과 협의가 안된다면 누군가 확실히 주도권을 가지고 이끌고 가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방향이 잘못되었다면 빠르게 수정하면 된다. 경기 외적인 변수가 경기력에 영향을 미치는 건 긍정적인 일이 아니다.
롯데는 지금이라도 어정쩡함을 버리고 그들의 가야할 방향성을 확실히 하고 그에 맞는 선수단 운영을 해야 한다. 방향이 정해지면 불만이 있어도 그 방향으로 함께 노력하는 게 진정한 프로의 자세다. 정리되지 못한 상황에서 반전의 가능성은 점점 낮아질 뿐이다. 아직은 충분히 반전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롯데가 5월 한 달 반전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사진 : 롯데 자이언츠,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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