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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리뷰] 성공한 축구 명장들을 통해 살핀 리더십 비교

문화/미디어

by 지후니74 지후니74 2021. 9. 2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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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TV에서 흥미로운 방송을 봤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나와 사회 이슈를 살피고 강의를 하는 이슈 픽 샘과 함께 라는 프로그램인데 56회에서 한준희 축구 전문가가 나와 축구 감독들의 리더십을 비교 분석하는 시간을 가졌다. 언급된 감독들은 축구 팬들뿐만 아니라 스포츠에 관심이 덜한 이들도 알만한 세계적 명장들이었다. 

축구는 11명의 선수가 유기적인 움직임을 보이며 경기장 내에서 제한된 시간 내에 공격과 수비를 병행해야 한다. 경기장 넓고 현대 축구로 넘어올수록 속도감이 더해진 탓에 조직적인 선수들의 조직적 움직임은 매우 중요하다. 물론, 선수 각 개인의 개인 기량이 전제되어야 한다. 우수한 개인기가 승리의 가능성을 높이긴 하지만, 최근 축구는 한두 명의 스타 선수만으로 승리를 가져오기 어렵다. 강팀이라도 상대 수비벽에 막히면 득점이 어렵고 그 탓에 이변의 가능성이 가장 큰 운동 종목이기도 하다. 그런 팀을 지휘하는 감독의 역량이 팀 전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질 수밖에 없다. 

많은 선수들의 경기를 하는 야구도 축구 못지않게 전략 전술이 중요하지만, 감독들의 역할 비중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야구는 축구와 몸과 몸이 부딪히는 경기가 아니가 공격과 수비의 구분이 명확하다. 최근 야구의 흐름은 누적된 데이터를 분석해 최적의 방법을 도출하고 그에 맞는 훈련법과 경기 운영을 하고 있다.

과거 감독의 감각이나 경기 운영 능력보다는 객관적인 지표와 그에 따른 전략적 움직임이 중요하다. 선수 구성도 그에 근거한다. 프로야구단의 운영에 있어 경기장에 나서는 감독과 달리 보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선수들의 살피고 팀을 만드는 단장의 역할이 크게 중요시되고 있다. 감독은 주어진 여건에서 최상의 결과를 만드는 일종의 매니저로서 자리하기 시작했다. 경기 외적인 면에서 감독의 영향력은 축소된 느낌이다. 

 

FC 바르셀로나



축구는 다르다. 철저한 분석과 데이터가 중요해졌지만, 축구는 경기 중 선수 구성이나 전술적인 움직임이 여전히 승패에 큰 영향을 미친다. 데이터 외에 선수들의 역량을 파악하는 요소가 많다. 선수들의 캐미를 만드는 일도 쉽지 않다. 축구 감독은 팀의 지휘자로서  그 영향력이 막강하다. 선수단 구성에도 감독의 의견이 매우 중요하다. 감독이 능력이 팀 성적과 직결되는 경우가 많다.

그 탓에 축구 감독들의 연봉은 전 세계 스포츠를 통틀어 가장 높은 수준이다. 성적이 곧 팀의 수익과 직결되는 프로 축구 리그에서 우수한 감독의 영입은 중요하다. 그 탓에 역량이 뛰어난 감독을 영입하기 위한 경쟁은 치열하다. 그에 따라 감독들의 연봉도 상상 이상으로 치솟는다. 그에 비례해 축구 감독은 미디어 노출 빈도가 크고 대중적인 관심도 크다. 명장이라 불리는 축구 감독들은 지금도 언론을 통해 우리가 자주 그 이름을 접하고 있다. 

프로그램에서는 대표적인 명장들을 다시 한번 조명하고 그들의 리더십을 평가했다. 가장 먼저 언급한 인물은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대표적 명장인 퍼거슨이었다. 그는 1986년부터 2013년까지 무려 27년간 영국의 대표적인 축구 명문 구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으로 재직했다. 그 기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세계적인 명문 구단으로 발전했고 영국은 물론이고 유럽에서 수많은 우승컵을 차지했다.

그와 함께 수많은 스타 선수들이 그 팀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우리나라 축구를 대표했던 선수인 박지성과 퍼거슨과 함께 맨테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성기를 함께 하기도 했다. 박지성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의 활약을 바탕으로 유럽에 진출했고 그 존재감을 높이며 명문 구단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일원이 되며 축구 선수로서 성공 가도를 달렸다. 박지성의 존재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일약 한국인이 가장 많이 응원하는 팀으로 만들었다. 이는 맨체스터가 유럽을 넘어 아시아 시장에서도 그 영향력을 확대하는 계기가 됐다. 

퍼거슨은 수십 년간 그 팀을 지휘하며 명성을 쌓았다. 그가 쌓은 수많은 우승의 경력은 영국 왕실이 그에게 기사 작위를 내리게 할 정도였다. 축구 종주국임을 자부하는 영국에서 퍼거슨의 최고의 명예를 얻었다. 이런 퍼거슨의 성공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효율적인 인재경영이었다. 퍼거슨은 아주 뛰어난 전략가는 아니었다. 대신 그는 팀에 맞는 선수단 구성과 선수 운영에 능통했다. 독선적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그가 쌓은 명예와 권위는 선수단 전체가 그를 따르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그는 팀에 맞지 않은 선수라면 가차 없이 팀에서 방출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선수가 영국을 대표하는 축구 스타 베컴이었다. 베컴은 축구 실력과 함께 수료한 외모로 영국을 대표하는 셀럽으로 큰 인기를 누렸다. 베컴의 영향력은 감독도 쉽게 그를 대하기 어렵게 했다.

 

맨체스터유나이티드 홈구장



하지만 퍼거슨은 자신의 지도 방식에 충돌하는 베컴을 과감히 방출했다. 퍼거슨은 팀 조직력에 저해되는 선수와 함께 하지 않았다. 그만큼 그는 냉정했다. 반대로 팀에 필요한 선수는 그가 직접 나서 영입하기도 했다. 맨체스터의 살아있는 전설인 긱스가 대표적이다. 퍼거슨은 긱스의 유년 시절부터 그를 눈여겨봤고 직접 집을 찾아 유소년팀에 입단하도록 했다. 맨체스터 유스팀에서 기량을 발전시킨 긱스는 이후 팀을 대표하는 선수로 큰 활약을 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스타 박지성 역시 퍼거슨의 의지로 영입이 이루어졌다. 박지성의 유럽 무대 성공 신화는 이렇게 시작됐다. 

퍼거슨은 자신에게 부족한 전술적인 역량을 뛰어난 코치진 구성으로 대신했다. 그는 과감한 권한의 위임을 통해 코치들이 그 역량을 발휘하도록 했다. 얼마 전까지 한국에는 천적과도 같은 이란 대표팀을 이끌었던 케이로스 감독은 맨체스터의 코치였다. 그 팀에서 케이로스는 뛰어난 전술적 역량을 과시했다. 퍼거슨은 그의 능력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한편 감독과 코치로서의 선을 지킬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퍼거슨의 뛰어난 용인술은 맨체스터가 여전히 강팀의 자리를 지키는 원동력이 됐다. 

이런 퍼거슨과 달리 대표적인 축구 명장인 과르디올라와 모리뉴는 감독이 팀의 모든 부분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원톱 체제로 팀을 이끌었다. 모두 디테일한 면모를 보이지만, 두 감독의 성향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과르디올라는 현대적 전술 개발의 선두주자다. 그의 바르셀로나 시절 완성한 높은 공 점유율에 근거가 패스 전술은 지금도 여러 나라에서 사용하고 있다. 과르디올라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전술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이를 실전에 적용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가끔은 그의 창조적 전술이 독이 되어 패배를 불러오기도 하지만, 전술에 관해서는 과르디올라는 창조자의 역할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성과도 있었다. 그가 과르디올라는 그가 지휘했던 팀에서 모두 우승컵을 들었다. 세계적인 축구 클럽 바르셀로나는 그와 함께 전 세계 최고 축구 클럽으로 올라섰고 세계적인 축구 스타 메시의 잠재력을 이끌어내고 그를 최고 선수로 만드는데 큰 영향력이 있었다. 바르셀로나에서의 성공은 그를 독일의 최고 명문 구단 바이에른 뮌헨을 거쳐 세계 최고 갑부인 만수르가 구단주로 있는  부자 구단 맨체스터 시티의 감독으로 이끌었다. 그는 그곳에서도 모두 성공 스토리를 썼다. 이런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전술가 과르디올라는 축구의 흐름을 주도하고 이를 통해 선수들에게 알게 모르게 자긍심을 가지게 한다. 성적까지 뒤따르면서 선수들은 그를 신뢰할 수밖에 없다. 

그와 쌍벽을 이루는 모리뉴는 얼마 안 되는 선수 생활을 뒤로하고 이른 나이에 코치로 새로운 길을 걸었다. 그 과정에서 모리뉴는 뛰어난 전력 분석 능력으로 인정을 받았다. 유럽에서 강팀이라 할 수 없는 포르투갈의 축구 클럽 포르투를 이끌고 유럽 클럽 대항전에서 우승하면서 그의 존재감은 커졌다. 이후 모리뉴는 세계 3대 리그라 할 수 있는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에서 명문팀 감독을 하면서 우승의 성과를 냈다. 그는 유일하게 세계 3대 리그에서 팀을 우승을 이끈 감독이다. 이에 대한 스스로의 자부심도 강하다. 그는 스스로는 스페셜 원이라 칭했다. 

모리뉴의  축구는 화려한 전술보다는 상대팀에 대한 세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한 철저한 실리를 추구한다. 지나치게 수비적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그는 높은 승률로 팀을 선두권 팀으로 이끄는 능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모리뉴는 지나치게 독선적이고 자신의 스타일로 팀과 선수들을 통제하는 성향이 강했다. 그의 디테일함과 세심함은 경기 외적인 부분에서도 선수들을 통제했다. 심지어 부진한 경기에서는 선수들에 대한 독설을 마다하지 않았다. 또한, 상대팀에 대한 신경전에 직접 나서는가 하면 상대팀에 대한 지나친 대립각을 세우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선수들의 정신력을 강하게 하는 측면도 있지만, 그만큼 적을 많이 만드는 일이었다. 

모리뉴는 부임 후 초기 강력한 카리스마와 선수 장악력으로 팀을 잘 이끌어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선수들과의 불화와 함께 불명예 퇴진을 하는 일이 많았다. 모리뉴는 얼마 전 현 한국 축구의 슈퍼스타 손흥민이 소속된 토트넘의 감독으로 손흥민을 지도하기도 했다. 토트넘에서도 그는 단기간 재임 후 팀을 떠났다. 그럼에도 그동안 쌓아온 실적은 그를 쉽게 또 다른 팀의 감독으로 이끌고 있다. 

모리뉴의 축구 스타일은 이제 많이 분석됐다. 하지만 변화에는 인색한 모리뉴다. 성적도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자기중심적인 선수단 운영에 대한 비판도 크다. 측면이 강하다. 전술적인 측면에서 융통성도 부족함이 있다. 이는 모리뉴의 스페셜 원의 입지를 크게 흔들고 있다. 소위 말하는 빅클럽에서 모리뉴에 대한 관심도 줄었다. 모리뉴의 축구는 카리스마 형 리더십의 명과 암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축구 이미지



리더십을 논하면서 우리에게 가장 많이 언급되는 축구 감독은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끌었던 히딩크다. 히딩크는 월드컵 본선에서 단 1승도 없었던 한국 대표팀을 이끌고 기적과도 같은 결과를 이끌어냈다. 홈에서 열리는 대회였다는 이점도 있었지만, 대회 전까지 한국은 조 예선 통과마저 불투명했다. 그 이전까지 개최국이 월드컵 예선에서 탈락하는 일은 없었다.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자신이 연 잔치에 손님들이 주인이 될 수 있었다.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대표팀 경기력을 개선하기 위해 월드컵을 1년여 앞둔 시점에 대표팀은 세계적인 축구 명장을 영입하게 위해 온 힘을 다했다. 히딩크는 1순위가 아니었다. 하지만 축구 협회의 영입 작업이 원활하지 않았고 히딩크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히딩크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자신의 조국 네덜란드는 4강에 올려놓았다. 특히, 한국과의 조 예선에서 네덜란드는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한국에 5 : 0으로 승리했다. 한국에는 치욕적인 패배였다. 이 패배로 인해 한국은 대회 도중 차범근 감독을 경질하는 극약처방을 하기도 했다. 한국은 1무 2패의 초라한 성적표로 예선 탈락했다. 이후 월드컵 개최국으로서 경기력 향상을 도모했지만,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

히딩크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이후 유수의 명문 구단을 감독을 역임하며 성공 가도를 달리는 듯했지만, 성적 부진으로 감독으로서의 커리어를 더 쌓지 못하고 있었다. 절박한 상황은 한국은 그에게 큰 도전의 땅이었다. 히딩크는 대표팀 경기력을 진단하면서 이전 우리의 생각과 전혀 다른 의견을 내놨다. 그전까지 대표팀 부진의 원인은 기본기와 기술 부족이라는 의견이 대부분이었지만, 히딩크는 체력적인 문제가 크다고 했다. 한국 축구가 버틸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가 강한 투지와 정신력이라는 생각이 많았던 상황에서 의아할 수 있는 의견이었다.

히딩크는 대표팀의 그동안 경기를 분석하며서 대표팀의 경기력은 초반 나쁘지 않지만, 시간이 거듭할수록 체력 저하가 두드러지고 경기력이 떨어지는 사실을 간파했다. 히딩크는 전후반 90분 내내 지치지 않고 상대를 압박하고 뛸 수 체력을 만드는 게  경기력 향상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 여겼다. 그는 이전에 없었던 과학적이면서 혹독한 훈련 방식으로 선수들의 체력을 강화했다. 이에 따라오지 못하는 선수는 스타플레이어 일지라도 과감한 대표팀에서 탈락시켰다. 파워 프로그램이라 명령된 이 훈련법은 깊은 우려를 불러왔다. 

전술이나 기량 향상을 위한 훈련과 체력 훈련을 병행하는 건 당장의 경기력에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당연히 선수들의 몸이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평가전에서 대표팀은 계속 부진한 경기력을 보였다. 강팀과의 경기에서는 0 : 5 참패를 당하기도 했다. 한국 축구의 구세주로 여겼던 히딩크에 대한 회의론이 곳곳에 일어났다. 국내 축구 전문가들의 비판은 더 거셌다. 이에 히딩크는 단호하게 대처하며 자신의 훈련 방식을 유지했다. 그는 월드컵 본선에 모든 스케줄의 맞추며 훈련했다. 당장의 패배에 연연하지 않았다. 그와 함께 히딩크는 선수들의 강하게 통제하면서 끊임없이 동기부여를 하면서 팀을 강하게 결속시켰다. 

이렇게 한 팀이 된 대표팀은 월드컵을 얼마 안 남긴 시점에 완전히 다른 팀이 됐다. 이전 경기에서 0 : 5 패배를 안겼던 우승후보 프랑스와 대등한 경기를 했고 강팀들과의 평가적에서도 밀리지 않는 경기력을 보이며 기대감을 높였다. 평가전을 평가전일 뿐이라는 전망도 있었지만, 대표팀은 조 예선 첫 경기 폴란드전 승리를 시작으로 상승세를 만들었고 미국전 극적인 무승부, 포르투갈전 승리와 함께 조 1위로 16강에 진출했다. 월드컵 출전 사상 최고의 성과였다. 이만하면 됐다는 생각이 들 수 있었지만, 히딩크는 선수들에게 강한 동기부여하도록 하며 경기력을 유지했다. 그가 16강 진출 후 했던 나는 여전히 승리에 배가 고프다는 말은 지금도 회자되는 말이다. 

 

레알 마드리드



이후 대표팀은 16강전 이탈리아, 8강전 스페인전에서 거듭 승리하며 4강에 진출했다. 히딩크는 그 과정에서 고도의 심리전과 상대 맞춤형 전술, 예상을 뛰어넘는 용병술로 팀 승리를 이끌었다. 비록, 4강전 독일, 3.4위전 터키전 패배로 4위에 머물렀지만, 축구의 변방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쾌거였다. 히딩크는 이 성과로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고 여전히 국민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국가대표 감독으로 남아있다. 이후 히딩크는 여러 나라와 대형 클럽의 감독을 역임하며 화려한 감독 이력을 더했다. 그는 특히, 약팀을 조련해 최고의 성과를 내는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한국에서의 경험은 그 자신의 함께 발전시킬 수 있었다.

히딩크는 자신의 축구 철학을 고집스럽게 밀어붙이면서도 치밀했고 선수들의 기량을 최대치로 이끌어냈다. 그의 리더십은 성공의 리더십으로 지금도 크게 조명 받고 있다. 

히딩크와 달리 스페인의 명장 델 보스케는 강팀을 진짜 강팀으로 만드는데 탁월했다. 스페인은 세계 최고 클럽인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라는 강팀을 보유하면서 국가대표  팀 경기에서는 기대와 크게 못 미치는 성과를 냈다. 중요한 이유는 오랜 세월 누적된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한 카탈누냐 지역과 그 외 지역 간의 지역감정이 큰 원인이었다. 스페인 대표팀의 주축을 이루는 바르셀로나, 마드리드 선수들은 리그에서도 앙숙이었고 대표팀 내에서도 반목을 거듭했다. 당연히 팀 조직력을 흔들렸고 우수한 선수들을 다소 보유하고도 그만한 경기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델 보스케는 선수들의 융화를 적극적으로 시도했다. 권위를 다소 내려놓고 선수들과 소통했고 두 강팀 선수들을 하나로 묶었다. 그는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와 감독으로 활약했지만, 스페인 대표팀에서는 당시 세계 축구의 전술 흐름을 주도하는 바르셀로나의 전술을 과감히 채택하며 팀 조직력을 완성했다. 그 결과 델 보스케 감독 시절 스페인은 무적함대의 위용을 뽐내며 월드컵과 유럽 국가대항전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진정한 축구 강국으로 거듭났다. 구슬이 있어도 잘 꿰어야 보배가 된다는 옛말을 그대로 실천한 델 보스케였다.

이렇게 현대 축구를 대표하는 명장들은 각자의 개성과 방식으로 팀을 강하게 했고 그에 걸맞은 성과를 냈다. 그 결과 이들은 축구 역사에 남는 명장으로 자리했다. 마치 전쟁의 축소판이라 불리기도 하는 축구에서 이들 명장들은 축구에서 감독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 확실히 증명했다. 그 때문에 축구 감독의 리더십이 현대 리더십을 연구하는데 큰 예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이 정답이 아닐 수 있다. 퍼거슨의 인재 경영, 과르디올라의 창의성, 모리뉴의 철저한 분석력, 히딩크의 카리스마와 유연성, 델 보스케의 인화력은 모두 각각의 장점이 있다. 이들의 장점을 잘 분석하고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맞게 활용하고 새로운 리더십을 만든다면 더 나은 리더십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이는 어떻게 보면 스포츠가 가진 또 다른 순기능일 수도 있다. 


사진 : 픽사베이,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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