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스포츠에서 저니맨은 자주 팀을 옮겨 다니는 선수를 지칭한다. 과거에는 실력이 부족해 한 팀에 정착하지 못하는 부정적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젊은 유망주라 해도 실력이 부족하면 연차에 상관없이 현역 선수 생활을 마감하는 일이 보편적인 된 요즘은 그 평가가 다소 달라지고 있다. 그만큼 그 선수를 필요로 하는 팀이 있고 그 선수가 나름 경쟁력이 있어 팀을 자주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LG와 FA 계약을 체결한 KT의 백업 포수 허도환은 전형적인 저니맨이다. 그는 2007년 두산에서 프로에 데뷔했지만, 1군에서 1경기 출전 후 방출된 아픈 이력이 있다. 이후 허도환은 현역으로 군 복무를 하면서 공백기를 가져야 했다. 이후 허도환은 지금의 키움 히어로즈인 넥센 히어로즈와 계약하며 프로야구 선수 이력을 다시 쌓을 수 있었다. 2011 시즌부터 허도환은 히어로즈의 1군 포수로 커리어를 이어갔다.
허도환은 2011시즌부터 2014 시즌까지 히어로즈가 강팀으로 성장하는 기간을 함께 하며 주전급 포수로 활약했다. 2014 시즌에는 한국시리즈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부실한 타격과 기량이 정체 등으로 주전의 입지를 다지지 못했고 점점 1군 전력에서 멀어졌다. 허도환은 2015 시즌 한화로 트레이드 됐다. 그의 저니맨 인생의 시작이었다.
허도환은 한화에서 3시즌 활약 후 지금의 SSG 랜더스의 전신 SK 와이번스에서 2시즌을 보냈고 2020, 2021 시즌에는 KT 위즈에서 활약했다. 그 사이 그의 나이는 30대 후반으로 접어들었다. 화려하지 않지만, 백업 포수로 성실히 제 역할을 하는 허도환은 소속팀에서 소금 같은 역할을 했다. 허도환은 SK와 KT에서 각각 한국시리즈 우승 엔트리에 포함되며 2번의 우승 경험을 하기도 했다. 스타 선수들 상당수가 그의 우승 커리어를 쌓지 못하는 게 현실인 것과 비교하면 허도환은 행운의 선수였다. 그에게 반지 수집가라는 별명을 붙여도 될 정도였다.
2021 시즌 후 허도환은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FA 자격을 얻었다. 주로 백업 포수 역할을 했던 탓에 허도환은 FA 자격을 충족하기 위한 경기 출전수를 채우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시장의 관심을 크지 않았다. 내년 시즌이면 39살이 되는 베테랑 포수에 공격력은 평균 이하라는 점은 그를 매력적인 FA 선수와는 거리를 두게 했다.
비록, 그가 C 등급으로 보상 선수가 없고 7,500만원의 연봉으로 보상금액도 크지 않다는 점이 있었지만, 백업 포수에게 FA 계약을 제안할 팀이 있을지 의문이었다. 이에 허도환의 KT 잔류는 확실해 보였다. 100억원 계약이 보편적이 되는 과열된 FA 시장에서 허도환은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원 소속팀 KT 역시 내부 FA 선수인 황재균, 장성우의 잔류를 더 우선시했다. 허도환의 협상 순위는 계속 밀렸다. KT는 키움의 거포 박병호 영입을 확정한 이후 허도환에 눈길을 돌렸다. 그의 나이 등을 고려하면 1년 단 년 계약이 유력했다.
반전이 일어났다. LG가 전격적으로 허도환을 영입했다. LG는 2년간 최대 4억원에 그와 계약했다. 허도환은 우승을 함께 한 KT에 미련이 남아 있을 수 있었지만,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한 LG의 제안을 거절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다년 계약이 유력한 그에게 2년의 계약을 보장했다는 점이 허도환의 마음을 움직였을 가능성이 크다. KT로서는 허도환의 공백이 아쉽긴 하지만, 올 시즌 중 트레이드로 롯데에서 주전급으로 활약했던 군필 포수 김준태가 있고 내년 시즌 그를 제1 백업 포수로 활용할 가능성이 컸다. 허도환은 제3의 포수로 1군과 2군을 오가는 상황을 예상할 수 있었다.
LG는 달랐다. LG는 주전 포수 유강남의 백업 포수 자리를 채워야 했다. 2년간 그 자리를 충실히 메워주던 베테랑 포수 이성우가 은퇴했고 1군에서 경험치를 쌓았던 백업 포수 1순위 김재성이 FA 보상 선수로 삼성의 지명을 받았다. 2군에 유망주 포수들이 있지만, 그들은 1군 경기 경험이 극히 부족했다. 그들의 성장할 시간 동안 1군에서 백업 포수 역할을 할 자원이 필요했다. 허도환은 LG에 안성맞춤의 선수였다. 허도환은 은퇴한 이성우의 역할을 당장 대체할 수 있고 경기 경험도 풍부하다. 2번의 한국시리즈 우승 경험은 우승에 목마른 LG에는 매력적이다. 무엇보다 영입에 들어갈 자금에 부담이 없었다. 우승을 위해 윈나우를 지속하고 있는 LG로서는 충분히 투자할 만한 선수였다.
이로써 허도환은 수도권에 위치한 두산 베어스, 키움 히어로즈, SSG 랜더스, KT 위즈, LG 트윈스까지 5개 팀에서 모두 선수 생활을 하는 진기한 기록의 소유자가 됐다. 이런 독특한 이력의 저니맨인 그에게 LG는 마지막 귀착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허도환의 FA 계약은 대형 계약과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이라 할 수 있지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근 프로야구 흐름이 내부 육성과 효율성에 더 중점을 두면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선수들이 매 시즌 수도 없이 방출되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자신의 특기와 경쟁력을 유지한다면 오랜 기간 선수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점은 허도환은 증명했다.
허도환은 리그에서 귀한 포수 자원이고 평균 이상의 수비 능력을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최근에는 경험을 바탕으로 타격에서도 만만치 않은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경험 많은 포수의 수요는 어디서든 존재한다. 허도환은 성적이 필요한 팀에 필요한 선수다. 그가 걸어온 길에 두 번의 우승을 경험했다는 점은 분명 의미가 있다. 이제 허도환은 우승을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는 LG에 일원이 됐다. 최근 소속된 두 팀에서 거듭 우승을 경험한 그의 이력이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이 또한 진기한 기록이라 할 수 있다.
허도환의 사례는 끝까지 살아남는 이가 진정한 승자임을 보여준다 할 수 있다. 허도환이 그의 남은 선수 커리어를 어떻게 채워갈지 궁금하다.
사진 : KT 위즈,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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