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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원과 아버지 이성계의 대결은 내전, 조사의의 난으로 이어졌다. 이성계는 이방원의 왕위를 인정할 수 없었고 그가 사랑했던 신덕왕후와 그의 아들들을 살해한 이방원을 용서할 수 없었다. 이성계는 태상왕의 자리로 밀려나 있었지만, 복수 의지를 버리지 않았다. 이성계는 젊은 시절부터 그의 중요한 정치, 군사적 기반인 동북면 일대에서 군대를 모았고 아들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다. 

여전히 이성계의 권위가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동북면과 그들에 동조하는 서북면의 군사까지 더해진 군대의 기세는 만만치 않았다. 이방원은 중앙군을 파견해 그들을 제압하려 했지만, 백전 백승의 장군이었던 이성계의 지휘를 받는 군사들의 위세는 쉽게 꺽이지 않았다. 비록 왕위에서 물러났지만, 창업 군주로서의 권위는 보이지 않는 힘으로 작용했다. 

이방원의 스스로 전장에 나갔다. 그는 이성계의 군대를 반란군으로 규정했고 아버지 이성계는 반란군의 수괴가 됐다. 이성계 역시 자신의 마지막 남은 힘과 지략을 모두 쏟아부었다. 아버지의 아들의 최후의 일전이 벌어졌다. 승부는 이방원의 승리였다. 군사의 숫자나 보급 등 모둔 여건에서 우세한 중앙군은 시간이 흐를수록 반란군의 기세를 제압했다.

왕이 직접 전장에 나와 반란군과 상대하는 모습은 움츠러든 군사들의 사기를 끌어올렸다. 결정적으로 이성계의 신변을 확보하면서 반란군의 구심점을 와해시켰다. 반란군을 지탱하던 중요한 축이 사라지면서 반란군의 전열은 급격히 흐트러졌다. 결국, 이성계는 그의 마지막 전투에서 아들 이방원에 패하며 패장이 되고 말았다. 이성계는 다시 사실상의 가택 연금 상태가 됐다. 이성계는 좌절했지만, 더는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500년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왕조를 열었던 이성계였지만, 그의 치세는 얼마 안 가 그의 아들 이방원에 의해 무너지고 말았다. 그는 재기를 꿈꿨지만, 현실은 그의 바람과는 달랐다. 이성계는 인생의 무상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식들간의 피의 대결을 지켜봐야 했고 그가 사랑했던 여인 신덕왕후가 후궁으로 격하되고 능이 파괴되는 등 그 명예가 회복 불늘의 상황에 이르는 모습을 무기력하게 볼 수밖에 없었다. 아들 이방원은 이제 그가 상대할 수 없는 최고 권력자에 올라섰다. 

이렇게 아버지와의 승부를 마무리한 이방원이었지만, 그는 만족할 수 없었다. 그에게는 이제 권력을 가져오기 위한 투쟁이 아닌 차지한 권력을 공고히 하고 대대 손손 이어지게 할는 수성의 전략이 필요했다. 이미 이방원은 이를 위해 공신 세력들을 견제하고 숙청하기도 했다. 정치적으로 그의 중요한 파트너였던 중전 민씨과 그 가문에 대해서는 마찬가지 였다.

이 과정에서 중전 민씨와의 관계가 크게 악화되고 민씨 집안과의 유대 관계에 금이 가기도 했지만, 이방원은 멈출 수 없었다. 현재의 정적들 뿐만 아니라 민씨 가문과 같이 잠재적  정적들에 대해서도 이방원은 경계를 멈출 수 없었다. 이방원은 자신의 치세 뿐만 아니라 다음을 이어갈 아들들의 치세에 방해가 될 수 있는 정치 세력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었다. 공신세력과 외척 세력들이 왕권을 등에 업고 득세한다면 그가 원했던 왕 중심의 강력한 중앙 집권 체제가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이는 그가 원하는 나라가 아니었다. 그 가능성을 이방원은 차단하려 했다. 

이방원은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대신들을 억압하는 공포 정치를 병행했다. 그에 불만을 품었던 이들이 하나 둘 제거됐다. 죄가 없다 해도 죄를 만들어 그들을 제거했다. 하륜과 이숙번, 조영무 등 이방원의 측근들은 이방원의 뜻을 따라 그 일에 동참했다. 이방원의 최측근이 되면서 그들은 여타 정치 세력들의 견제를 받아야 했다. 특히, 차기 권력 구도를 놓고 세자가 된 양녕대군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민씨 가문과도 불편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들 공신 세력들은 그들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방원은 이들을 활용해 민씨 가문을 견제했다. 

그 한편으로 이방원은 민씨 가문과의 사적 관계 회복을 도모했다. 정치적으로 정적이 됐지만, 사돈과의 관계가 악화되는 건 이방원에 부담이었다. 이방원은 중전 민씨의 권한을 다시 회복하고 소통을 시도했다. 중전 민씨 역시 동등한 관계 설정을 포기하고 이방원의 뜻에 따라 현실 정치에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였다. 민씨는 이방원의 칼날이 언제든 자신과 민씨 가문을 향할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당장은 이방원에 날을 세우기 보다는 공격의 빌미를 제공하지 않는 게 현명했다. 중전 민씨의 판단은 옳았다. 표면적으로 이방원과 민씨 가문의 관계는 회복 조짐을 보였다.

하지만 이방원의 첫째 아들 양녕대군이 성장하면서 양측 갈등의 불씨가 다시 자라기 시작했다. 양녕대군은 어린 시절 민씨 가문에서 자라면서 그 가문에 대한 애착이 매우 강했다. 민씨 가문으로서는 양녕 대군이 왕위에 오르는 건 억눌렸던 권력의지를 되살릴 기회가 될 수 있었다. 물론, 이는 이방원에 원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이방원은 세자의 제왕 수업을 엄격히 하는 한 편에 민씨 가문에 대한 견제를 다시 강화했다. 

여기에 중전 민씨의 노비로 궁궐에 들어와 이방원의 아이를 가지게 된 여인이 민씨 가문에서 핍박을 받았다는 소문이 들리면서 민씨 가문과의 관계가 다시 어긋났다. 민씨 가문은 그 여인이 이방원의 아이를 낳는 게 결코 바람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방원으로서는 왕가의 자식이 민씨 가문에 의해 고통을 겪었다는 사실은 그의 권위를 흔드는 일이 될 수 있었다. 역사상 효빈 김씨가 되는 그 여인은 실록에서 실제 이방원의 아들을 임신하고 낳았다. 그 과정에서 효빈 김씨는 사가에서 민씨 가문에 학대를 당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결국, 세자의 숙부가 되는 민무구, 민무질 형제에 대한 숙청의 이유 중 하나가 된다. 

이런 이방원의 시선을 중전 민씨는 알고 있었다. 민씨는 아버지 민제 등에게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당장은 생존이 급했다. 미래 권력에 대한 의지를 보이는 건 피의 숙청 대상이 될 수 있는 일이었다. 민씨 역시 이런 이방원에게 큰 어려움을 겪었던 기억이 있었다. 이방원과 중전 민씨 그리고 민씨 가문은 세자의 성장과 함께 고도의 정치 게임을 하는 상황이 됐다. 

살얼음 국면에서 민씨 가문의 민무구, 민무질 형제는 그들의 마음을 숨기는 정치술이 필요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그들은 발언과 행동 하나하는 이방원이 그들을 숙청하기 위한 명분으로 쌓여갔다. 이방원은 더 큰 함정을 만들었다. 이방원은 돌연 세자에게 양위를 선언했다. 예상치 못한 양의 정국이 발생했다. 아직 세자의 나이가 어린 점을 고려하면 이해하기 힘든 돌발 선언이었다. 그의 의중을 두고 여러 의견이 엇갈렸다. 이방원은 대신들의 번복 요청에도 응하지 않고 양위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 

물론, 진심은 아니었다. 그와 측근들이 함께 한 정치적 음모였다. 이를 통해 민씨 가문의 속 마음을 파악하려 했다. 그들이 이 과정에서 결정적 실수를  하기를 기다렸다. 중전 민씨는 이를 파악하고 경계했지만, 민무구, 민무질은 신중하지 못했다. 그들은 은연중 권력 의지를 보이고 말았다. 이방원의 양의 파동은 다시 번복됐지만, 민무구, 민무질 형제에게는 불충의 죄가 덧씌워졌다. 짜여진 각본대로 그들에 대한 탄핵 상소가 올라왔고 조정에서 그들의 처벌을 강력히 주장했다.

 

 


민무구, 민무질 형제는 빠져나올 수 없는 덫에 걸려들었고 귀양길에 올랐다. 이방원은 민씨 가문에 또 한 번 강력한 경고를 했다. 또 다시 권력에 뜻을 보인다면 가문 전체가 위험에 빠질 수 있었다. 중전 민씨는 이런 상황을 인내하며 다음을 기약했다. 그에게는 왕위를 계승할 세자가 있었다. 

이렇게 이방원은 권력을 지키기 위해 빈틈을 보이지 않았고 상대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정적들을 제거하거나 무력화 했다. 그가 원하는 대로 왕 중심의 중앙 집권 시스템은 점점 공고해졌다. 하지만 또 다른 갈등의 씨앗이 자라고 있었다. 세자 양녕대군이 장성하면서 이방원과의 대립이 본격화될 조짐을 보였다. 이방원의 왕의 덕목으로 뛰어난 학문적 자질과 인성 등을 우선시 했지만, 양녕대군의 성향은 틀에 얽매이지 않는 삶을 추구했다. 궁궐의 꽉 짜여진 시스템이 그에게는 맞지 않았다. 

이방원 역시 왕자시절부터 정치적 관점 등에게 아버지 이성계과 큰 대립각을 형성하고 대립하며 갈등이 커진 경험이 있었다. 이방원은 세자를 강하게 훈육하며 그의 뜻대로 강력하면서 뛰어난 지적 능력을 가진 군주가 되길 원했지만, 양녕대군은 이를 원치 않았다. 반대로 세쩨 아들 충녕대군은 학문과 지적 능력이 뛰어나며 대조를 보였다.

이방원은 그 자신이 장자 상속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던 점을 지적하며 아버지에 반기를 들었고 정변을 일으키는 중요한 명문으로 삼았다. 이방원으로서는 세자가 그가 원하는 군주로서 성장하길 기대하고 있지만, 세자의 마음을 그와 다른 모습이다. 이는 차기 권력구도를 흔들 수 있는 일이고 세자가 강하게 연결돼 있는 민씨 가문에게는 또 다른 위기가 될 수 있을 일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 다시 한 번 조선 정국이 크게 흔들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사진 : 프로그램,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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