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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라고도 하고 영어 약자, MLB라 하고 하는 메이저리그는 미국에서 가장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프로스포츠다.  메이저리그는 긴 역사와 전 세계 선수들이 모여드는 넓은 선수 저변, 큰 시장성까지 갖추고 있다. 메이저리그는 그 자체로 유명 상표가 됐고 의류나 각종, 각종 캐릭터 상품은 전 세계적으로 큰 매출고를 올리고 있다. 야구팬은 물론이고 야구를 잘 모르는 이들도 메이저리그 소식을 뉴스에서 자주 접할 수 있다. 그만큼 메이저리그가 가지는 영향력은 막대하다. 

이런 메이저리그의 시작은 187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전에도 프로와 아마추어 팀이 함께 하는 리그가 존재했지만, 얼마 가지 못했고 온전히 프로팀들만의 리그인 내셔널리그가 1876년 시작됐다.
 

초창기 리그는 상황이 열악했다. 리그 선수 저변 대중들의 관심도도 크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메이저리그에 대한 미국 내 관심이 커졌고 1901년 내셔널리그에 대응하는 아메리칸 리그가 만들어지면서 양대 리그 체제가 자리하고 현대적 리그가 시작됐다.
 
그렇게 자리를 잡은 메이저리그는 점차 팀 수가 늘어가고 시장도 커져갔다. 초창기 미국 동부지역을 중심에 집중됐던 프로야구 팀들의 연고지도 점차 서쪽으로 확장됐고 미국 전역으로 확대됐다.
 
지금은 내셔널리그와 아메리칸리그 각각 15개팀씩 30개 팀이 있고 팀당 162경기를 치르고 있다. 그중 29개 팀은 미국에 연고지를 두고 있고 우리나라 최고 투수 중 한 명인 류현진이 활약하고 있는 토론토 블루제이스가 유일하게 캐나다가 연고지를 두고 있다.
 
이렇게 메이저리그는 오랜 역사를 바탕으로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프로 스프츠 중 하나다. 최근에는 미식축구와 농구,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축구, E 스포츠 등에 밀려 최고 인기 스포츠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는 미국의 발전과 그 맥을 함께 하고 있다. 유일하게 19세기 시작했고 미국의 산업화 과정과 함께 성장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냉전시대 등 그 시대의 사건사고와 함께했고 그 속에서도 리그가 끊어지지 않고 이어졌다. 또한, 인종차별의 사회적 분위기를 깨는 최초의 흑인 선수 재키 로빈슨의 스토리는 메이저리그를 더 각별하게 한다. 메이저리그는 미국의 발전사와 함께 100년 넘은 역사를 가지고 있고 이는 미국인들이 메이저리그를 특별하게 생각한다. 그만큼 메이저리그의 저력은 크고 깊다.
 
또한, 프로스포츠 중 가장 오랜 기간, 가장 많은 경기 수를 소화하며 많은 시간 미국인들과 호흡하는 프로 스포츠이고 미국인들의 일상 속에 자리하고 있다. 미국 최고 인기 프로스포츠라 할 수 있는 미식축구가 주로 가을과 겨울철 팀당 16경기 정도를 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에 메이저리그는 산업적으로 매우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천문학적인 금액이 오가고 있고 미디어 콘텐츠로서의 가치가 매우 크다. 중계권료와 입장료 수익은 상상을 초월하고 그에 따른 선수들의 연봉 수준도 엄청나다. 이에 메이저리그는 야구를 하는 이들에게는 꿈의 무대다.
 
메이저리그 선수가 되면 2022년 시즌 기준 최소 70만 달러의 연봉이 보장되고 이는 미국 내에서도 매우 높은 수준이다. 또한, 메이저리그 선수로 하루만 등록이 돼도 해당 선수와 직계 가족은 헬스케어 의료보험 서비스를 평생 제공받게 된다.
 
미국은 우리나라와 같은 공적 의료보험 제도가 완비되어 있지 않다. 사적 의료보험이 없으면 엄청난 병원비를 부담해야 한다. 이를 고려하면 헬스케어 서비스는 큰 혜택이다. 또한, 43일 이상 메이저리그 선수로 등록되어 활약하면 선수 등록 일수에 비례해 연간 3만 달러 이상의 연금을 지급받게 된다. 이 또한 큰 혜택이고 그만큼 리그의 위상과 시장이 크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런 메이저리그가 대중들 마음속에 자리 잡게 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은 메이저리그 역사 속 최고 홈런 타자로 남아있는 베이브루스다. 1914년부터 1935년까지 선수로 활약한 그는 22시즌 동안 12번 홈런왕에 올랐고 통산 714개의 홈런과 오랜 세월 깨지지 않았던 한 시즌 60개 홈런을 달성한 홈런 타자였다.
 
베이브루스가 높은 평가를 받는 건 그가 등장한 이후 메이저리그에 혁명적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 이전까지 메이저리그는 투수들이 절대적 우위에 있는 리그였고 홈런이 잘 나오지 않았다. 베이브루스는 야구에서 홈런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준 타자였다. 그의 홈런쇼는 매스컴과 야구팬들의 큰 주목을 받았고 야구장으로 사람들을 이끌었다. 그는 메이저리그에서 홈런의 시대를 열었고 최고 인기 스포츠로 가는 길을 열어주었다. 이에 그는 사후 지금까지도 메이저리그의 전설적 선수로 추앙받고 있다.
 
이후 메이저리그는 많은 스타 선수들과 여러 이야기들이 더해지며 다른 스포츠에 없는 역사와 전통을 쌓았고 메이저리그만의 스토리는 메이저리그 인기를 유지하고 이끄는 원동력이었다.
 
그 속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일종의 징크스도 있다. 오랜 세월 속 하나의 전설처럼 여겨지던 4대 저주가 있다. 4대 저주는 메이저리그 역사가 쌓으면 쌓일수록 사람들에 회자되고 야구를 잘 모르는 이들도 알 정도로 대중들에게 퍼졌다.
 
첫 번째는 앞서 소개한 베이브루스와 관련한 밤비노의 저주가 있다. 밤비노는 베이브루스의 애칭으로 그는 1920년 미국의 명문 구단이었던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뉴욕 양키즈로 트레이드 됐다. 당시 베이브루스는 투수와 타자를 겸업하며 모두 빼어난 성적을 거두고 있었고 보스턴의 간판선수였다.

하지만 보스턴 구단주는 개인 사업의 진행을 위해 베이스루스를 현금을 받고 트레이드했다. 이에 보스턴 팬들의 비난이 상당했습니다. 이후 베이스루스는 양키즈에서 최고 타자로 거듭났다. 이를 기점으로 당시 비인기 구단이었던 양키즈는 리그 최강팀이자 최고 인구 구단으로 변모했고 지금도 미국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프로야구단으로 자리하고 있다.

 

 

 
반대로 베이스루스는 트레이드한 보스턴은 이후 2004년까지 월드시리즈 우승을 하지 못했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밤비노의 저주라는 말을 만들었습니다. 1990년 동명의 책이 출간되면서 이 말은 하나의 명사가 됐다. 베이브루스 트레이드 이후 극명하게 엇갈린 양 구단의 상황과 함께 미국 야구사에 영원히 남을 스타인 베이스루스의 존재감이 더해진 결과물이 밤비노의 저주였다. 보스턴은 2004년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하면서 그 저주를 풀 수 있었다.
 
두 번째 저주는 염소의 저주다. 이는 시카고 커브스라는 구단과 관련이 있습니다. 1945년 시카고 커브스 홈구장에서 염소를 끌고 온 한 남성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키우던 염소와 함께 입장하려 했고 이를 저지당했다. 이는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는 그 과정에서 앞으로 시카고 커브스가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지 못할 것이라는 악담을 퍼부었다.
 
공교롭게도 시카고 커브스는 이후 긴 세월 월드시리즈 우승을 하지 못했다. 이에 당시의 상황이 사람들에게 회자되면서 또 하나의 저주가 탄생했다. 이에 시카고 구단은 당시 입장을 거부당한 이의 자식이 염소를 이끌고 입장토록 하는 등의 웃지 못할 노력을 하기도 했지만, 하지만 시카고 커브스는 좀처럼 우승에 이르지 못했다. 마침내 2016년, 시카고 커브스는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며 108년간의 긴 저주를 끊어낼 수 있었다.

세 번째 저주는 블랙삭스의 저주가 있습니다. 이는 1919년 메이저리그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승부조작 사건과 관련이 있다. 이는 당시 메이저리그 최강팀이었던 시카고 화이트 삭스의 주력 선수들이 도박사들과 공모해 돈을 받고 월드시리즈에서 고의 패배를 자초한 사건이었다. 당시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선수들은 열악한 처우와 구단주의 부당한 대우 등에 반발해 일을  꾸몄다. 이에 시카고 화이트삭스는 많은 이들의 예상과 달리 우승에 실패했다.

이 사건은 이후 언론 등을 통해 사건의 전말이 알려졌다. 당시 승부조작을 주도한 8명의 선수는 야구계에서 영구 추방되는 징계를 받았다. 또한, 시카고 화이트삭스 구단의 이미지는 크게 실추됐고 메이저리그 전체의 위기를 불러왔다. 이후 메이저리그의 인기는 회복됐지만, 시키고 화이트삭스 구단은 그 오명을 씻어내는 데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이후 우승과는 거리가 먼 팀이 되고 말았다.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저주가 풀린 건 2005년이었다. 그해 시카고 화이트삭스는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했고 1917년 이후 88년 만에 그들의 저주를 과거로 돌릴 수 있었다.
 
마지막 저주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라는 구단과 관련한 와후 추장의 저주다. 클리블랜드는 1948년을 마지막으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구단 마스코트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마스코트는 아메리카 원주민, 인디언 추장의 얼굴을 캐릭터화 한 것인데 인디언들에게 신성한 존재인 추장의 얼굴을 희화화한 것이 원한을 불러왔다고 하는 주장이 제기됐다.

 

 

 
인디언들은 미국 서부 개척시대 삶의 터전을 잃었고 많은 탄압과 박해를 받았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인디언들이 학살당하는 비극도 있었다. 그런 인디언들의 한이 마스코트에 스며들어 팀을 어렵게 한다는 주장은 계속된 우승 실패와 맞물리며 정설이 되었다. 이는 인종차별 이슈와 맞물리며 팀 마스코트 변경의 여론을 높였고 실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는 마스코트를 변경했다. 하지만 아직 클리블랜드는 그들의 저주를 깨뜨리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런 저주들이 절대적인 건 아닙니다. 무려 30개 구단이 경쟁하는 메이저리그에서 마지막 승자가 되는 건 힘든 일이다.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야 하고 우승 전력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더 강한 팀을 만드는 게 우승의 절대 조건이다.

스포츠의 세계에서 각종 징크스가 여전히 선수들의 심리에 크게 중요한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메이저리그의 4대 저주는 웃어넘기기만 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깨질 것 같지 않았던 3개의 저주는 결국, 깨졌다.
 
이런 저주는 어쩌면 메이저리그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흥행 요소로 언론 등이 일부러 부각하는 면도 있다. 해당 팀에게는 매우 신경 쓰이는 일이지만, 흥행적인 면에서는 매우 유용한 장치이기도 하다. 만약, 4번째 저주마저 풀리면 사람들은 또 다른 저주를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
 
확실한 건 저주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허상이고 흥미를 위해 소재일 뿐이라는 점이다. 그것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건 지양할 필요가 있다. 아직 풀리지 않은 네 번째 저주가 언제쯤 풀리고 호사가들이 지어낸 이야기로 남게 될지 궁금하다. 

사진 : 픽사베이,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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